한국을 대표하는 미남 배우 정우성과 이정재가 23년 만에 만난 영화로 화제를 모은 영화 <헌트>가 절찬 상영중이다. 그들과 더불어,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카메라 앞에서 호흡을 맞춘 한국의 명배우들을 모았다.
설경구
문소리
2002년 <오아시스>
2013년 <스파이>
11년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영화계에 알려지지 않은 배우였던 설경구와 문소리는 2000년 1월 1일에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통해 단번에 한국 관객을 사로잡았다.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영호 역의 설경구가 특히 돋보였다면, 이창동이 또 한번 두 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운 <오아시스>에선 뇌성마비를 앓는 공주를 연기한 문소리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그들이 11년 만에 다시 만난 작품은 할리우드 영화 <트루 라이즈>(1994)의 영향이 역력한 로맨틱코미디 <스파이>. 점차 캐릭터의 명도를 조절해오던 설경구와 코미디 연기에 도전한 문소리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344만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송강호
강동원
2010년 <의형제>
2022년 <브로커>
12년
두 남성 캐릭터를 내세운 <영화는 영화다>(2008)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른 장훈 감독은 송강호와 강동원을 캐스팅 해 (전)국정원 요원과 남파공작원의 우정을 그린 <의형제>를 내놓아 2010년 한국영화 흥행 2위를 기록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능글맞은 송강호와 매사 강직한 강동원의 조합이 정치적인 문제를 오락적으로 영리하게 풀어낸 연출과 만난 모범적인 사례. 두 배우는 12년 후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한국’ 영화 <브로커>에서 빚에 쪼들리며 세탁소를 운영하는 상현과 보육원에서 자라 베이비박스 시설에서 일하는 동수 역을 맡아 <의형제>보다 편안한 의형제의 케미를 보여줬다.
송강호
박해일
2006년 <괴물>
2019년 <나랏말싸미>
13년
송강호와 박해일의 연은 봉준호 감독의 걸작 <살인의 추억>(200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두 배우는 직감을 밀어붙이는 형사와 건조한 태도로 일관하는 유력 용의자로 만났다. 봉준호는 한강에서 괴물이 나타난다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소재의 SF <괴물>에 송강호와 박해일을, 서로 사이는 좋지 않지만 딸이자 조카 현서(고아성)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형제로 캐스팅 해 기묘한 가족영화를 완성했다. 그들은 13년 후 한글 창제 즈음의 조선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 <나랏말싸미>에서 각자 세종대왕과 신미대사를 연기했지만, 세종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기존의 역사를 부정하는 줄거리에 비판이 쏟아지면서 실패작으로 남았다.
전도연
이병헌
1999년 <내 마음의 풍금>
2015년 <협녀, 칼의 기억>
16년
<접속>(1997)과 <약속>(1998)이 연달아 성공을 전도연은 ‘뉴 밀레니엄’을 목전에 둔 1999년,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내 마음의 풍금>에서 17살 소녀 홍연 역을 능히 소화해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배우로 발돋움 했다. 홍연이 짝사랑 하는 총각선생님 수하를 연기한 이병헌은 이듬해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로 흥행력과 연기력을 고루 갖춘 ‘영화’배우로 거듭나게 됐다. 이후 2000년대 한국영화계에 잊을 수 없는 캐릭터들을 새겨온 전도연과 이병헌은 고려 말 배경의 무협 영화 <협녀, 칼의 기억>으로 16년 만에 호흡을 맞춰 화제를 모았지만 여러모로 아쉬운 결과를 낳았다. 다시 한번 주연 배우로 함께 이름을 올린 <비상선언>에서 그들은 한 장면에서도 만나지 않는다.
전도연
설경구
2001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2019년 <생일>
18년
펄펄 끓는 에너지가 가득한 <해피 엔드>(1999)와 <박하사탕>(2000)으로 당대 최고의 연기력을 입증한 전도연과 설경구는 다음 작품으로 한껏 힘을 덜어낸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를 선택했다. 서울 근교 아파트 상가에서 학원 강사와 은행원으로 일하는 원주와 봉수가 사랑을 키워가는 귀여운 로맨스다. 설경구와 전도연은 각자에게 배우로서 최고의 영광을 안겨준 이창동의 연출부 출신인 이종언 감독이 연출한 <생일>에서 만나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가족들을 연기했다. 두 베테랑의 섬세한 연기가 있어 민감한 소재 뒤에 새긴 사려깊은 위로가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설경구에게 새로운 전성기를 선사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변성현 감독의 신작 <길복순>에서도 두 배우가 다시 한번 만난다고.
한석규
최민식
1998년 <쉬리>
2019년 <천문: 하늘에 묻는다>
21년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선후배였던 최민식과 한석규는 1994년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함께 출연해 인지도를 넓혀 1998년 <넘버 3>와 1999년 <쉬리>에서 조폭과 검사, 국정원 특수요원과 북파 공작원 등 서로 대립하는 역을 맡아 90년대 말 한국 극장가를 평정했다. 협업작이 4개가 되기까지는 무려 21년이 걸렸다. 한국의 멜로영화 장인 허진호 감독이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관계를 신분 차이를 넘은 우정으로 풀어낸 사극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한석규가 세종을, 최민식이 장영실을 연기했다. 한국영화계 팬덤 문화를 좌우하는 브로맨스 코드를 겨냥해 만든 영화였지만, 일반 관객은 물론 BL(Boy’s Love) 팬들의 구미 또한 자극시키지 못했다.
이정재
정우성
1999년 <태양은 없다>
2022년 <헌트>
23년
정우성과 이정재를 내세운 <태양은 없다>는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국영화의 청춘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회자된다. 이후 실제로도 두터운 우정을 자랑해온 두 배우는 2016년 기획사 ‘아티스트 컴퍼니’를 공동설립 했다. 두 청춘의 표상을 다시 한 프레임에 모이게 한 건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다. 아티스트 컴퍼니가 (정우성의 <아수라>와 이정재의 <신세계>를 제작한 사나이픽쳐스와 공동)제작한 영화라 정우성의 참여가 당연해 보이지만, 실은 4번이나 캐스팅을 고사한 끝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헌트>는 2022년 휴가 시즌을 겨냥한 한국영화 4편 중 평단에서 가장 좋은 반응을 얻었고 박스오피스에서도 순항 중이다.
강수연
박중훈
1987년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2010년 <달빛 길어올리기>
23년
지금까지 소개한 배우들이 대개 2000년대에 정점을 맞았다면, 1966년생 동갑내기 강수연과 박중훈은 80년대와 90년대를 호령한 배우였다. 강수연이 <씨받이>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1987년 한국영화 흥행 1위였던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에서 강수연과 박중훈이 당시 대학생들의 로맨스를 재현했다. 두 배우가 작품에서 다시 만난 건 40대 중반에 작업한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 천년 가는 한지 문화를 조명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영화는 한지를 통해 만난 다큐멘터리 감독 지원(강수연)과 7급 공무원 필용(박중훈)이 불륜에 빠지는 설정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올해 봄 강수연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두 배우의 다음 재회는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