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보았습니다!” 진짜 ‘눈먼 자’는 맹인 침술사 류준열 아닌 누구? 쫀득한 서스펜스물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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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영화 <올빼미>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한 글입니다.

촛불이 꺼지면.. ⓒNEW

한밤중 궁궐에서 ‘소현세자'(김성철)가 독살당했다. 목격자는 맹인 침술사 ‘경수'(류준열). 모두가 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걸 본 단 한 사람이다. 맹인은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보았냐고? 사실 경수는 완전한 맹인이 아닌 주맹증 환자로, 밝은 곳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사물을 식별할 수 있다. 그에게 낮은 하얀 어둠이다. 오직 빛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해가 지고 깜깜한 밤이 되면 그의 눈은 초점을 찾아 또렷해진다. 마치 올빼미처럼. 극장에서 이 영화 <올빼미>를 보는 관객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다. 한밤중의 경수처럼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 바로 경수가 ‘인조'(유해진)의 목뒤에 침을 꽂아 넣고는 “여기서 한 치만 더 찔러 넣으면 온몸이 마비될 것”이라며 대담무쌍한 인질극을 벌이는 장면이다.


맹인 침술사가 왕을 인질로?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설마 경수가 인조를 인질로 잡으리라고는. 앞도 볼 수 없는 침술사가 감히 조선 왕의 목숨을 가지고 겁박하리라고는. 침소에 몰려든 경비대도, 인조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를 찌르는 반격이자 전세 역전의 순간이다. 볼 수 없는 자가 볼 수 있는 자들을 압도한다. 손끝의 감각과 임기응변으로 명과 암, 위와 아래가 뒤집히고 경수는 달아난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어둠 속으로.

보이지 않아도 안다. ⓒNEW

‘볼 수 있음’과 ‘볼 수 없음’은 <올빼미> 서스펜스의 핵심이다. 인조를 비롯한 궁궐의 인물들은 경수 앞에서 은밀한 비밀을 스스럼 없이 주고받는다. 경수를 믿어서가 아니다. 그가 볼 수 없고 따라서 알 수도 없다고 믿어서다. 하지만 경수는 볼 수 있다. 밤. 크고 작은 비밀이 눈에서 눈으로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하필 그 어두컴컴한 시각에 말이다. 그리하여 의도치 않게 많은 것을 알게 된 경수. 그는 궁궐 내 생존 수칙에 따라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하고 싶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다.


세상을 제대로 보려는 ‘경수’와 ‘소현세자’

과연 경수는 진정 눈먼 자일까? 주맹증이라서 밤에는 볼 수 있으니 완전한 맹인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그가 ‘볼 수 있다’는 증거는 또 있다. 바로 그가 ‘열심히 보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경수는 흐릿한 눈으로 어떻게든 세상을 보고 이해하려 한다. 모두가 잠든 깜깜한 밤과 새벽을 적극 활용한다. 경수에게는 밤이 곧 낮이다. 아주 귀하고 짧은 낮이다. 자정부터 새벽까지, 서툴게 배운 글로 동생에게 편지를 쓰는가 하면 궁궐의 길과 약재의 위치를 외운다. 청각과 후각, 촉각을 총동원해 세상을 읽는다. 눈앞이 새하얗게 번질 아침을 대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아픈 동생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무엇이든 어떻게든 한다. 그러니 두 눈으로 앞을 볼 수 없다 해도 그는 이미 세상을 보고 있다.

마침내 고국으로. ⓒNEW

<올빼미>에는 경수와 비슷한 인물이 또 하나 있다. 청에 인질로 붙잡혔다가 8년 만에 돌아온 ‘소현세자'(김성철)다. 소현세자는 경수가 맹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도 비밀을 지켜준다. 그뿐만 아니라 경수가 글 공부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안 보고 사는 게 몸에 좋다고 하여 눈을 감고 살면 되겠는가. 그럴수록 눈을 더 크게 뜨고 살아야지”라며 청나라에서 가져온 확대경을 선물로 준다. 경수가 확대경으로 비추어본 글자는 크고 선명했다. 작중 소현세자는 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조선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독살을 당해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진짜 ‘눈먼 자’는 왕과 어의다

왕위는 나의 것. ⓒNEW

눈을 뜨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자는 인조다. 조선으로 돌아온 소현세자는 아버지인 인조에게 청나라에서 가져온 지구본을 보여주며 “이게 우리 조선입니다”라고 말한다. 명 왕조는 멸망했으니 청의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인조는 그럴 수 없다고 꾸짖어도 주장을 꺾지 않는 소현세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눈이 바뀌었구나.”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현세자는 눈, 코, 입, 귀의 7개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죽는다. 왕위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한 인조가, 아버지가 자식을 살해한 것이다. 학질로 일그러지는 왼쪽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리는 인조. 비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그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반쪽짜리다.

독침 회수! ⓒNEW

인조의 수족은 ‘이형익'(최무성)으로 내의원 어의이자 경수의 상관이다. 그는 인조의 명을 받아 소현세자에게 열이 오르는 탕약을 올리고 독침을 꽂아 그를 살해했다. 바로 경수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틀린 전제하에 일을 저질렀다. 애초에 그러려고 맹인 경수를 채용한지도 모른다.

중독된 소현세자의 피를 닦아내던 이형익은 한차례 ‘경수가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수상쩍어하지만, 이내 의심을 거둔다. 두 눈으로 보고도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그 역시 ‘눈먼 자’다. 그런 이형익의 최후는 그야말로 인과응보다. 독침으로 소현세자와 그 아들을 살해하려 한 자가, 눈에 독침을 맞고 쓰러졌으니 말이다.

결국 모든 진실이 밝혀진 아침, 하얀 태양 아래 인조는 칼을 뽑아 휘두르며 경수에게 달려간다. 그러다 넘어진다. 이마가 깨지고 왼쪽 눈두덩으로 피가 흘러내린다. 시뻘겋게 물든 얼굴 반쪽을 감싸고 인조는 외친다. “당장 이놈의 목을 치라!”고. 하지만 누가 듣고 누가 믿겠는가.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자의 비뚤어진 명령을.


모든 것이 뒤집힌 새벽, ‘다 본 자’의 선택은?

가느냐 마느냐. ⓒNEW

다시, 경수가 인조의 목에 침을 꽂고 “사람들을 물리라”고 협박하던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여기서 전복되는 것은 ‘볼 수 있는 자’와 ‘볼 수 없는 자’의 구도만이 아니다. 신분의 높고 낮음도 뒤집힌다. 경수는 잘해봐야 유능한 맹인 침술사지만 인조는 조선의 왕. 태생부터가 다르다. 그런 경수가 왕의 목숨을 손끝에 둔 순간은, 그 목숨을 담보로 왕의 옥쇄를 집어 들어 꽝, 하고 내려찍는 순간은, 그리하여 소현세자 살해사건의 진범을 밝힐 단서를 손에 넣고 전력으로 새벽 궁궐을 내달리는 순간은, 상황의 전복이자 신분의 전복 그리고 무엇보다 인물의 전복이다.

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경수의 최우선 과제는 하나. 동생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가서 동생의 병을 고쳐주는 것이다. 높으신 분들의 궁중 암투에서는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빠지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얽혀버렸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고 선물까지 내린 소현세자에게, 그의 죽음에, 그리고 그의 어린 아들에게. 열린 문을 지나기만 하면 경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아직 어두운 새벽이니 도움도 필요 없다. 하지만 그는 다시 궁으로 들어간다. 가서 “제가 다 보았습니다”라고 말한다. 모두가 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을 본 단 한 사람의 선택이다. 경수만 할 수 있는 일을 감히, 경수가 해낸 것이다.


인조반정의 주역. ⓒNEW

안태진 감독 <올빼미>는 개봉 8일 차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기세를 높이고 있다. 데뷔 이후 처음 왕 연기를 하게 된 ‘인조’ 유해진부터 맹인 침술사 ‘천경수’ 류준열, 궁궐의 보이지 않는 실세 ‘최대감’ 조성하, 그리고 유일한 개그캐 ‘만식’ 박명훈까지. 주조연 가리지 않는 호연이 인상적이다. 올빼미 ‘천경수’가 주로 밤에 활약하는 탓일까. 배경 및 인물관계가 설명되는 초반부는 다소 여유로운 템포로 진행되나 소현세자 사망 시점부터 본격 서스펜스물로 돌입한다. 추리와 사극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김대승 감독의 <혈의 누>를, 또 비범한 재능을 가진 평민이 궁중 권력 다툼에 휘말린다는 점에서는 한재림 감독의 <관상>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허프포스트코리아/씨네플레이 유해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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