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단호한 NO를 뜻하는 <놉>, ‘나 다시 돌아갈래~’ 외치는 영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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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놉>

무슨 영화일까. 조던 필 감독의 영화가 나올 때면 이런 궁금증이 가장 먼저 고개를 든다. 재밌을까, 무서울까, 괜찮을까 같은 질문보다 더 근원적인 호기심. 이건 ‘무엇’일까. 8월 26일 개봉한, 조던 필의 세 번째 영화 <놉>도 그랬다. 하늘 위에 나타난 무언가, 그리고 기상천외한 일들. 그리고 조던 필 영화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아시아인 주연까지. 뚜껑을 열어본 <놉>은 <어스>보다 쉽고 <겟아웃>보다 스케일이 컸다. 이야기는 어렵지 않지만 조던 필답게 다양한 은유가 디테일하게 곁들여졌다. 현재 거의 모든 영화 전문가들이 <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씨네플레이 또한 <놉>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는 없다.

※ 하기 본문에는 <놉>에 대한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됐음을 명시한다.


1. 말


<놉>은 공개 전부터 말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말은 <놉>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소재 중 하나다. 주인공 남매 OJ(다니엘 칼루야)와 에메랄드(케케 파머)는 말을 사육하는 목장에서 자랐으며, 그들은 활동사진 ‘움직이는 말’ 기수의 후손이다. 아버지 오티스 헤이우드(키스 데이빗)는 말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OJ가 주변 사람과 하는 교류는 리키에게 말을 맡기는 것(사실상 팔았다에 가깝지만)이며, ‘그것'(이른바 진재킷)은 말이 주식이라도 되는 듯 먹어치운다. <놉>을 보고 그 활동사진과 말을 그냥 넘기는 건 불가능할 정도다.

우리가 보통 ‘영화의 시초’로 뽑는 건 1895년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이다. 글자 그대로 열차가 도착하는 짤막한 영상은 최초의 영화일 순 있으나 활동사진의 시조는 아니다. 그 이전부터 인류는 움직이는 뭔가를 재현하고 싶어했고, 소마트로프(앞뒤에 그림이 있는 종이를 뒤집는 방식), 페나키토스코프(원반형 그림판을 돌리는 방식) 등으로 그 욕망을 실현했다.

소마트로프(왼쪽), 페나키토스코프의 예시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움직이는 말’

그러나 이런 방식은 모두 그림으로 움직임을 재연한 것이라 현재 기준으로 보면 실사영화보다 애니메이션에 가깝다. 그러다가 1826년 카메라의 탄생으로 실물을 기록할 수 있었고 이것을 이용해 1877년, 12대의 카메라를 일렬로 세워 촬영한 끝에 말의 달리는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영화에서 언급한, 에드워드 마이브리지가 촬영한 ‘움직이는 말’ 영상이다. 12장의 사진을 이어붙인 ‘연속사진’이지만, ‘1초에 24장의 사진’이란 영화의 원형을 실현한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2. 니켈과 서부극

그 많고 많은 것 중 왜 동전이어야 했을까.

OJ가 이야기에 휘말리는 단초는 아버지 오티스가 하늘에서 떨어진 동전을 맞고 사망한 부분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동전으로 사망하다니, 이런 황당하고 허망함이라니. 하지만 단순히 그런 감정 유발을 위해 동전이 나온 게 아니다. 과거 영화가 지금보다 더 소일거리로 여겨지던 시절, 막 산업의 단계로 나아가던 시기에 극장은 딱 5센트나 10센트를 받았다. 당시 노동자들이 즐거움을 얻고자 기꺼이 낼 만한 금액이었다. 이런 5센트 극장이 점차 확대되면서 영화는 ‘신기한 기술’을 넘어 대중문화로 자리매김했다. 5센트를 내고 입장하는 극장은 이후 ‘니켈로디언’이라고 불렸다. 헤이우드 목장을 운영하는 오티스가 동전을 맞고 사망하는 상황은 어쩌면 영화의 대중화가 가장 근본적인 부분을 도려냈다는, 다소 비관적인 은유로 읽을 수도 있다.

서부극 아역 스타로 서부극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리키 주프(스티븐 연)

또 다른 주인공 리키 주프(스티븐 연)가 운영하는 ‘주피터 파크’의 테마는 서부극이다. 서부극은 흑백무성영화 시절부터 할리우드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한 장르 중 하나다. ‘움직이는 말’처럼 말의 역동성이 돋보이는 장르이자,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카우보이라는 이상적인 인물상을 탄생시켰다. 진 재킷을 막기 위해 자신들끼리 힘을 모으는 주인공들은 <황야의 7인> 등 소수 인원으로 적에 맞서는 서부극을 연상시키고, 극후반부 말의 달음박질은 누가 봐도 서부극의 영향력을 읽을 수 있다. 서부극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리키 주프가 진 재킷을 볼거리로 만들려다가 파멸을 만나는 것도 어느 순간 볼거리에 매몰돼 시대착오적 문제점들을 안고 몰락한 서부극과 궤를 같이 하는 듯하다.


3. 퇴행하는 카메라

전기기사 엔젤(브랜든 페레아)은 CCTV를 설치하면서 헤이우드 남매와 합류한다.

<놉>을 영화라는 매체와 떼놓고 볼 수가 없는데, 등장인물들이 영화 산업에 맞닿아있는데다 그들의 구성이 영화 제작 현장과도 무척 유사하기 때문이다. 활동사진을 기준으로 볼 때, 말을 배우라고 본다면 그들을 사육하는 OJ는 에이전시라고 볼 수 있다(그리고 후반에는 스스로가 배우이기도 하다). 낯가림이 심한 OJ를 대신해 배우(말)를 포장하는 에메랄드는 일종의 마케터에 가깝다. 그리고 리키는 헤이우드 목장에 자금을 지불하는 제작자이고 엔젤은 당연히 촬영감독이다. 이 팀은 진 재킷의 정체가 또렷해지는 시점부터 와해되고, 이후 촬영전문가 앤틀러 홀스트가 합류하면서 OJ는 배우 겸 스턴트맨, 에머랄드는 연출, 엔젤과 홀스트는 촬영팀인 형태로 재조합된다.

<놉>은 기본적으로 영화 본연으로의 회귀를 꿈꾸는데, 단적인 예시가 클라이맥스에 치닫을수록 영화 속 카메라가 구형이 되는 부분이다. 헤이우드 남매는 진 재킷을 포착하기 위해 CCTV를 설치한다. 여건만 되면 24시간 녹화가 가능한 CCTV는 그러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진 재킷을 담지 못한다. 홀스트가 합류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찌라시 매체의 기자가 가져온 액션캠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엔젤이 가져온 전자동 캠코더는 역시 제 역할을 못한다. 오직 홀스트가 개조한 수동식 카메라만 작동한다. 그것까지 끝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자, 에메랄드가 기지를 발휘해 기념촬영용 카메라로 간신히 진 재킷을 담아낸다. 전기만 있으면 시간 제한 없이 자동으로 찍는 카메라, 사람의 힘을 이용해 일정 시간을 포착하는 카메라, 아주 짧은 찰나만을 담을 수 있는 카메라. 영화 속 카메라는 기술적으로 퇴행하지만 그 퇴행의 끝에 있는 가장 근본적인 카메라만이 진 재킷을 담아내는 데 성공한다.

앤틀러 홀스트(마이클 윈콧)와 그의 수작업 카메라

완전 구형 카메라로 초월적인 무언가를 담는다. 이 명제는 두 가지로 읽힐 수 있다. 하나는 무언가 완벽하게 카메라의 담으려면 그만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비록 구르고 달리고 레버를 돌리는 아주 원초적인 행위일지라도. 이건 홀스트의 장인 정신(?)과도 맞닿는데, 문제는 홀스트조차 실패하고 만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진 재킷이 종반에 카메라 형태로 변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진 재킷은 UFO 형태를 빌려 지구에 눌러앉은 카메라 같은 무언가다. UFO의 미래지향적 이미지와 가장 거대한 형태는 이미 몸을 불릴 대로 불린 지금의 영화를 의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영화는 과거로부터 내려온 영화의 근본(헤이우드 목장)을 위협하고 있으며 진 재킷을 저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영화의 뿌리(구형 카메라)로 회귀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는 것도 가능하다.

OJ 헤이우드(다니엘 칼루야)


4. 그럼에도 NOPE

<놉>

이런 저런 해석을 붙여보지만, 단언은 금지다. 왜냐하면 <놉>은 제목부터 <놉>이니까. ‘놉'(NOPE)은 ‘아니다’ ‘아니요’를 뜻하는 ‘노'(NO)와 같은 뜻이다. 사실상 어떤 대답을 내놓더라도 <놉>은 그 해석에 ‘아니!’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감독 조던 필은 이 제목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제목이 관객에게 주는 반응을 없애고자 했다고 말했다. 의미 없는 제목이라도 ‘놉’이란 단어에 담긴 의미는 이것부터가 모든 걸 아니라고, 누군가의 해석이나 반응이 정답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지 않을까. 제목에 대해서도 여러 추측과 가설을 내밀어볼 수 있겠지만, 제목의 단호함(놉!)은 그대로 남겨두기로 한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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