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후더닛’ 은 “Who (has) done it?” 줄여서 만든 용어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을 다룬 ‘탐정 소설’의 하위 장르였다. 대부분은 예기치 않은 인물을 범인으로 공개함으로써 일종의 반전 효과를 누리는 이야기 구조를 갖는다. 셜록 홈즈, 아가사 크리스티를 비롯해서 수많은 미스터리 소설이 ‘후더닛’의 범주에 포함된다. 후더닛은 1930년대와 40년대 사이에 성행했으며 이들 중 상당 수의 작품들이 영화화되었다. 영화화 된 후더닛 작품들은 비슷한 톤을 가진 (더 넓은 범주의) 범죄 영화와 함께 ‘느와르 영화’에 포함되기도 한다.
영화사에서 가장 걸작으로 꼽히는 대표적 ‘후더닛’ 영화는 <말타의 매> (존 휴스턴, 1941)이다. <말타의 매>는 1930년에 나온 대쉴 헤밋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며 영화로서는 1931년작의 리메이크다. 영화는 사립 탐정, 샘 스페이드 (험프리 보가트) 가 함께 사건을 맡기로 했던 동료, 아처를 의문의 살해사건으로 잃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여러 인물과 각종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하는 <말타의 매>는 장르의 고유한 ‘복잡함’을 즐기지 못한다면 접근하기 힘든 영화다.
그럼에도 영화는 빈틈을 찾아 볼 수 없는 플롯과 그를 폭발적인 동력으로 고 가는 캐릭터들, 예측 불가능한 전개 등으로 당시에도 ‘존 휴스턴의 최고 작품’ 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영화의 주연을 맡았던 험프리 보가트는 스튜디오의 첫 번째 선택이었던 조지 래프트의 대타였지만 <빅 슬립> (하워드 혹스, 1946), <인 어 론리 플레이스> (니콜라스 레이, 1950)를 포함, 이후 제작되는 느와르 영화의 주인공을 거의 모두 섭렵할 정도의 인기를 누렸다. <말타의 매>는 AFI 가 매년 선정하는 TOP 100 영화에 선정되며 현재까지도 레거시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장르의 관습이 생겨나고 클리쉐가 남용되며 장르는 서서히 활력을 잃었다. 이후 후더닛은 극장 스크린이 아닌 텔레비전에서 시리즈로 제작이 되기 시작했는데 <형사 콜롬보> (Columbo, 1971-1978), <제시카의 추리극장> (Murder, She Wrote, 1984-1996) 등 10년 가까이 방영되며 장르의 존재를 확고히 했다.
현재까지 ‘후더닛’은 영화(예. <나이브스 아웃>)와 드라마(예. CSI 시리즈)에서 꾸준히 활약 중이다. <오리엔탈 특급 살인> (케네스 브레너, 2017), <나일강의 죽음> (케네스 브레너, 2022) 등 근래에 리메이크된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기반의 영화들과 <나이브스 아웃> (라이언 존슨, 2019)에서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2022, 라이언 존슨) 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후더닛’ 프랜차이즈를 보면 오히려 또 다른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듯하다.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은 올해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넷플릭스의 거대 프로젝트 중 하나다. 제작비는 전편과 같은 4천만 달러 정도에 머물지만 넷플릭스는 MGM으로부터 2편 제작을 위해 나이브스 아웃의 판권을 무려 469 백만 달러에 사들인 바 있다. 전세계 공개에 앞서 11월 23일, 미국에서 단 일주일 동안 극장개봉을 했던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은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은 극장에서 와이드 릴리즈 되었다.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브누아 블랑이 제한된 공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을 그린다.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은 일면부지의 억만장자 마일스 브론 (에드워드 노튼)으로부터 그리스의 한 섬으로 초대를 받는다. 초대된 사람은 마일스의 전 동업자 앤디 브랜드 (자넬 모네), 현 코네티컷 주지사 클레어 디벨라 (캐서린 한), 최첨단 과학자 라이오넬 투생 (레슬리 오덤 주니어), 패션 디자이너 버디 제이 (케이트 허드슨)와 그녀의 성실한 조수 페그 (제시카 헨윅), 인플루언서 듀크 코디 (데이브 바티스타) 와 여자친구 위스키를 포함 총 7명이다.
주말동안 이들은 모두 마일스가 기획한 ‘가짜 살인’의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가짜 살인의 주인공은 마일스지만 죽게 되는 인물은 마일스가 아닌 듀크다. 게다가 실제로 말이다. 듀크의 사망 시점부터 블랑의 활약이 시작된다. 섬에 도착한 이래로 사람들의 소지품, 그들의 행동, 말투 등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를 주목하고 있던 블랑은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이들을 섬으로 불러모은 마일스의 추악한 진실을 밝혀낸다.
전편만큼이나 화려한 캐스팅과 유리로 제작된 섬으로 훨씬 더 볼거리가 많아진 배경이지만 이번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은 여러가지 이유로 실망스럽다. 첫째로 후더닛의 꽃이라고 할 만한 살인의 동기와 방법이다. 셜록 홈즈도 스티븐 킹도 범죄소설에서 가장 힘을 주는 부분은 살해당하는 인물이 왜, 어떻게 죽느냐는 것이다.
<나이브스 아웃> 1편에서는 제목 그대로 집 안에 존재하는 의외의 ‘칼’로 생각지도 못한 동기의 살인이 이루어졌지만 이번편에서는 굉장히 뻔한 이유를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살인이 이루어진다. 감흥 없는 스펙터클을 채워 넣은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둘째로 결말이다. 정의가 실현되는 과정인데 이 또한 결정적인 계기가 감정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아닌 이야기의 흐름상 캐릭터들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야기의 에너지, 이를 구성하는 캐릭터들, 군데 군데 결정적 단서가 되는 소품들까지 완벽했던 1편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크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더닛 영화는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한정된 인물들 안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모두가 동기가 있지만 그 중 한 명 만이 범인이라는 설정은 마치 블루마블 앞에서 주사위를 던지는 순간이 그렇듯 늘 흥미진진하고 스릴이 넘친다. 마지막으로 격찬을 아끼지 않고 싶은 부분은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의 주인공, 다니엘 크레이그다. 이번 영화로 역대급 출연료를 수령(?)해간 그 지만 그의 모놀로그를 보고 있으면 그 몇배를 주었어도 아깝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탄스럽다. 다소 맥 빠진 듯한 이번 속편의 유일한 맥박이라면 바로 크레이그의 놀라운 연기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