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vs 팩트, 관객 분노하게 만들었던 역사 왜곡 논란 영화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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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품엔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세조가 왕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 관상가가 함께했다는 상상을 더한 <관상>,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중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다”란 한 줄의 글귀에서 시작해 ‘광해가 정말 두 명이었다면 어땠을까’란 과감한 상상력을 더한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삼아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낸 팩션(faction) 영화는 지금까지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 영화들이 역사에 허구적 상상력을 덧붙였음에도 왜곡이라 비난받지 않은 이유, 바로 역사 속 팩트를 그대로 보존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개봉한 굵직한 사극 영화들이 역사 왜곡 논란을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역사의 뼈대에 상상력을 덧붙이는 걸 넘어 역사 속 사실을 새로운 방향으로 창작해 관객들의 분노를 산 것. 역사 왜곡 논란을 부른 굵직한 영화 다섯 편을 모았다. 영화의 내용과 실제 역사를 비교한 내용도 함께 덧붙인다.

※ 해당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량

감독 김한민 출연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개봉 2014.07.30

STORYLINE /

왜군에게 대패한 칠천량 해전에서 10척의 함선을 지켜낸 배설(김원해). 그는 유일하게 이순신(최민식)에게 큰소리칠 수 있는 인물이다. 12척의 함선을 이끌고 330척의 왜군에 맞서려는 이순신의 뜻을 꺾으려던 배설은 “절대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하며 분위기를 흐리고, 전투 직전 이순신을 암살하기 위해 자객을 동원하기까지 한다. 모든 수가 실패하자 끝내 거북선을 불태우는 파렴치한 인물. 쪽배를 타고 도망치던 배설은 부하의 화살에 맞아 사망한다.

FACT /

실제로 배설은 명량 해전에 참전하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처럼 참패에 대한 공포로 전의를 상실해 도주한 것은 아니다. <난중일기>에 따르면 “배설이 제 종을 시켜 소장을 냈는데, 세가 몹시 중하여 몸조리를 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몸조리를 하고 오라고 공문을 써 보냈더니 배설은 우수영에서 뭍으로 내렸다(8월30일)”라고 기록돼있다. 몸조리 후 다시 전장으로 돌아오지 않고 도주한 배설은 왜란이 종결된 후 1599년 사형 당했다. 거북선을 불태웠다든가, 이순신 장군 암살 시도를 했다든가, 화살을 맞고 죽었다는 등의 영화 내용엔 역사적 근거가 없다.

관객 반응 /

1700만 관객에게 미운 털이 박힌 배설은 왜군보다 더한 <명량> 속 최고의 악역으로 손꼽혔다. 배설의 후손들은 <명량>이 인물의 행적을 왜곡하고 과장해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 논란은 법정으로까지 이어졌다. 배설의 후손들은 김한민 감독, 전철홍 시나리오 작가와 소설 <명량>을 쓴 김호경 작가를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어 제작사 빅스톤픽쳐스와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에게 <명량> 상영 중단과 사죄를 촉구하고, CJ엔터테인먼트를 추가로 고소했다.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창작이 가미된 일부분만 놓고 배설 장군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히며 고소 당한 이들에게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덕혜옹주

감독 허진호 출연 손예진, 박해일 개봉 201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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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손예진). 고국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꿈이지만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친일파 한택수(윤제문)의 여러 공작에도 휘둘리지 않고, 덕혜옹주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서 자신의 신조를 지킨다. 조선의 아이들을 위해 한글 학교를 세우고, 일본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 앞에서 읊기로 한 친일 연설문 대신 “여러분,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옵니다”라 외친다. 독립운동가 장한(박해일)과 가깝게 지내던 덕혜옹주는 영친왕과 자신을 상해임시정부로 망명시키려는 독립운동가들의 계획에 동참한다.

FACT /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는 실제로도 가련한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 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고, 일본 교육기관 가쿠슈인의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아버지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독살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고, 어머니 귀인 양 씨마저 세상을 떠나자 10대 후반부터 신경쇠약을 비롯해 몽유병, 조현병 등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했고, 딸 정혜를 낳았으나 조현병 증세가 심각해져 해방을 맞은 후 1946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딸 정혜가 유서를 남긴 후 실종되었고, 다케유키와는 합의하에 이혼 절차를 밟았다. 1962년, 고종 황제가 살아있을 시절 혼담이 오갔던 김장한의 형 김을한의 노력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관객 반응 /

2016년 8월 개봉한 <덕혜옹주>는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역사가 잊고 나라가 감췄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등의 문구를 사용해 애국 영화 마케팅을 앞세웠다. 덕혜옹주의 삶을 바탕으로 만든 픽션이라는 자막이 영화 초반부 등장하지만, 많은 이들이 덕혜옹주가 능동적인 독립운동가로 미화된 내용을 지적했다. 극의 중심부에 놓인 망명 계획 역시 실제 역사와 어긋나는 지점. 실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도와 망명 시도를 했던 인물은 영친왕도, 덕혜옹주도 아닌 이친왕 이강이었다. 극 중 우유부단한 태도로 망명 계획을 어그러뜨린 영친왕은 실제로 일본에서 극빈 대우를 받으며 고위직에 오르기도 했던 인물이다. 일제에 순응했던 실존 인물들을 미화했다는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렸지만, <덕혜옹주>는 55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군함도

감독 류승완 출연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개봉 201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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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반도호텔 악단장 강옥(황정민)과 그의 딸 소희(김수안), 종로 일대를 주름잡던 칠성(소지섭)과 일제 지하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말년(이정현) 등 조선인들이 일본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군함도로 향한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조선인들은 해저 1000m 깊이의 막장 속에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낸다. 완장을 찬 친일파들이 같은 조선인을 학대하고, 강옥은 어떻게든 딸 소희를 지키기 위해 일본인 관리의 비위를 맞춘다. 광복군 소속 요원 무영(송중기)은 군함도 속 독립운동 주요 인사 구출 작전을 지시받고 군함도에 잠입한다. 그가 구하려던 독립운동 주요 인사는 군함도의 소장과 손을 잡고 조선인들의 임금을 갈취하던 상태. 설상가상 일본은 군함도에서의 만행을 은폐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가둔 채 군함도를 폭파시키려 하고, 이를 눈치챈 무영은 조선인 모두와 대규모 탈출을 계획한다.

FACT /

영화에서 묘사된 것보다 군함도의 실상은 훨씬 참혹했다. 강제 징용된 노동자들은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한 채 장시간 노동하며 45도의 열, 95%의 습도를 견뎌냈다. 많은 노동자들이 탄광 내 열악한 환경으로 질병에 걸리거나, 안전사고 및 영양실조로 숨을 거뒀다. 술과 담배, 노름을 즐겼던 영화 속 상황과 달리 노동자들은 콩 찌꺼기나 풀 죽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논하던 영화 속 장면 역시 실제론 없었던 일. 군함도 생존자 최장섭 할아버지는 인터뷰를 통해 “(조선인들의 반발은) 없었다. 어디라고 반발을 하냐, 죽으려고”라 답하며 군함도의 참상을 알렸다. 대규모 탈출, 대규모 전투 역시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진 장면이다.

관객 반응 /

본격적으로 국내 영화에 엄격한 ‘역사 왜곡’ 잣대가 드리워지기 시작한 건 <군함도> 개봉 이후부터가 아닐까. 예고편 속 일장기를 반으로 찢는 장면만으로 그해 최고의 여름 기대작으로 떠오른 <군함도>는 개봉 일주일 새 국뽕, 스크린 독과점, 역사 왜곡 논란에 휩쓸리며 곤두박질쳤다. 개봉 당일 최태성 역사 강사는 <군함도>에 대해 “어마어마한 초대형 블록버스터급 ‘탈출’ 영화이고 ‘군함도’가 배경이 되는 듯”하다는 평을 남겼다. 그를 이어 관객들 역시 <군함도>를 ‘스펙터클한 장르적 재미를 위해 역사를 빌린 영화’라 평가했고, 평점 테러가 줄을 이었다. 군함도의 조선인들이 술과 담배를 즐기는 모습이나, 일본인 대신 같은 조선인인 친일파의 악행에 초점을 맞춘 것 역사적 사실을 흐리는 지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심용환 역사 강사는 “강제징용의 실상이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 등장하는 것이며, 비교적 묘사가 잘 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영화의 설득력은 떨어졌지만, 친일파들이 같은 조선인들을 등쳐먹은 것도 사실”이라는 말과 함께 “도덕적인 견지에서 영화를 심판하는 듯한 태도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류승완 감독은 공식 입장을 통해 “당시 조선인 강제징용의 참상과 일제의 만행, 그리고 일제에 기생했던 친일파들의 반인륜적인 행위를 다루고자 했다”는 작품의 취지를 밝혔다.


자전차왕 엄복동

감독 김유성 출연 정지훈, 강소라, 이범수 개봉 201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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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민족의식을 꺾고 지배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조선자전차대회를 개최한 일본. 혜성처럼 나타난 ‘자전차왕’ 엄복동이 일본의 최고 선수들을 제치고 조선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다. 엄복동과 우연한 인연으로 안면을 튼 독립군 형신(강소라) 역시 그의 승리를 응원한다. 계속되는 무패 행진으로 민족 영웅이 된 엄복동. 이 분위기를 타 형신이 소속된 애국단의 활약 역시 거세진다. 암살 작전 중 위기에 빠진 형신을 자전차에 태워 구해낸 엄복동. 일본은 엄복동에게 압박을 가하고, 조선인들의 사기를 꺾기 위해 일본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건 자전차 대회를 개최한다.

FACT /

실제로 엄복동은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였다. 1913년부터 1932년까지 열린 대부분의 자전차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실력자.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일본 선수들을 꺾은 엄복동의 승리가 조선인들의 사기를 높인 것 역시 사실이다. 1920년엔 영국의 자전거 회사 ‘러지’(Rudge)가 홍보 목적으로 엄복동에게 자전거를 후원하기도. 부상당한 몸으로 어린 선수들을 제치고 70바퀴가 넘는 트랙을 완주하며 금메달을 목에 건 다롄 국제 대회는 그의 이름을 아시아 전역에 떨친 계기가 됐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다. 은퇴한 엄복동은 자전거 수십 대를 훔쳐 되파는 범죄를 저질렀다. 당시 자전거는 지금으론 3~400만 원에 다다르는 고가의 상품이었고, 엄복동은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다. 1950년에도 또 한 번 자전거 절도를 저질렀다. 당시 그의 나이는 61세. 궁핍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고가의 자전거를 훔치다 시민들에게 붙잡혀 체포됐고, 이후 그는 ‘자전거 도둑’이란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관객 반응 /

<자전차왕 엄복동>은 허술한 완성도, 역사 고증으로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역사 왜곡적인 측면에서 관객에게 비판을 받은 이유는 실존 인물을 미화했다는 것. 영화는 엄복동이 자전거를 훔친 절도범이란 사실은 언급하지 않고, 그가 국민 영웅으로 활약하는 스토리에만 중점을 뒀다. 독립군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거나,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도 기록에선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무엇보다 “1919년 3·1 운동의 계기가 엄복동의 경기에서부터 비롯됐다”는 자막은 확실히 역사와 어긋난다. 이에 <자전차왕 엄복동> 측은 역사 왜곡 오해의 소지가 있는 “해당 자막을 최종 수정했다”고 밝혔다.


나랏말싸미

감독 조철현 출연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 개봉 20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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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지식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세종(송강호)은 세상에서 가장 쉽고, 가장 아름다운 문자를 만들기 위해 애쓴다. 세종은 소리 문자에 능통한 신미 스님(박해일)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 작업을 시작한다. 세종의 아내 소헌왕후(전미선)와 두 아들 수양(차래형), 안평(윤정일), 수준급의 산스크리트어 실력을 지닌 스님 학조(탕준상)와 궁녀 진아(금새록)가 이 과정을 함께한다.

FACT /

역사가 기록한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은 세종대왕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43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28자를 창제했다. 세종대왕과 신미 스님이 만난 건 그로부터 3년 뒤인 1446년이다. 훈민정음이 다른 나라의 소리 문자를 참고했다는 설정 역시 사실이 아니다. 훈민정음의 원리와 해설이 담긴 <훈민정음해례본>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찾아볼 수 없다. 한글문화연대는 <나랏말싸미>의 후반부, 109자였다가 108자로 줄여진 훈민정음의 서문 역시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내용이 담긴 서문은 세종이 아닌 세조 때 출간된 <언해본>에 실렸다. <언해본>은 한문을 모르는 사람도 읽을 수 있도록 <훈민정음해례본>을 완전한 우리말로 번역해 배포한 책이다. <해례본>에 실린 세종의 서문은 한문 문장으로 적혀있으며 글자 수는 54자다. 이에 김슬옹 세종 국어문화원 원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애초에 세종은 우리말로 서문을 읊었을 것이고, <해례본>은 부득이하게 이를 한자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처럼 세종이 <해례본>을 쓸 때부터 서문을 소리 내 읊었다면, 영화 속 내용처럼 글자 수는 108자가 된다. 영화 속 신미 스님에 관련한 모든 것이 가짜는 아니다. <세종실록>엔 “소헌왕후가 승하한 뒤 명복을 비는 자리를 신미가 주도했고, 규모가 매우 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신미가 세종의 두 아들, 수양과 안평의 스승이었다는 점 역시 사실이다.

관객 반응 /

영화가 시작될 때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일 뿐’이란 자막이 등장하지만,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 창제의 공을 신미 스님에게 돌린 파격적인 전개를 택해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렸다. 개봉 당일부터 네티즌에게 평점 테러를 받았고, 개봉한지 채 2주도 되지 않아 박스오피스 하위권으로 내려앉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영화의 상영 및 해외 보급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글까지 업로드된 상태. 역사 왜곡 논란이 일자 조철현 감독은 “실존했지만 역사 속에 감춰져 있던 신미라는 인물을 발굴해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으로 조명하려는 의도는 없었으며 세종대왕을 폄훼하려는 의도 역시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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