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영화제라 불리는 칸국제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그러나 세계 각지에는 이들 외에도 쟁쟁한 작품들이 즐비해 있는 여러 영화제들이 있다. 그 대표 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이 매년 2월 미국 유타 주에서 열리는 선댄스영화제. 저예산 인디영화를 중심으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들이 다수 초청받는다. 국내에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2014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미국드라마 부문 관객상,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위플래쉬>가 있다.
지난 4일(현지 시간)에는 다가올 2020년 선댄스영화제 라인업이 발표됐다. 게다가 반가움 이름들도 등장하며 화제가 됐다. 바로 한예리, 윤여정 배우의 할리우드 진출작 <미나리>가 미국드라마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것. 이외에도 유명 배우들의 신작이 대거 즐비,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아직 국내 개봉은 불투명한 상태지만 <미나리>를 포함해 2020년 선댄스영화제를 장식하는 15편의 기대작을 간략히 알아봤다. 부디 좋은 평을 받아 한국에도 상륙할 수 있기를.
<미나리>(Minari)
감독 정이삭(리 아이삭 정) 출연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윌 패튼
한예리, 윤여정의 할리우드 진출작 <미나리>는 할리우드 대표 한인 배우 스티븐 연이 제작, 주연을 맡은 영화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 온 한인 가정의 이야기. 스티븐 연이 아버지 제이콥을 연기하며 한예리가 어머니를, 윤여정이 할머니를 맡았다. 터전을 찾겠다는 제이콥이 집념이 가족 전체를 뒤흔들고,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의 역경이 담긴다. 연출은 <무뉴랑가보> <아비가일> 등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노미네이트됐던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리 아이삭 정) 감독이 맡았으며, 자전적인 양육 경험을 영화에 녹여냈다고 한다. <문라이트> <플로리다 프로젝트> 등을 통해 명품 제작사로 거듭난 A24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블라스트 비트>(Blast Beat)
감독 에스테반 아란고 출연 모이세스 아리아스, 마테오 아리아스, 대니얼 대 킴, 다이앤 게레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위플래쉬>는 사실 단편에서 시작한 영화였다. 동명 단편영화가 2013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단편 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 인기에 힘입어 장편으로 탄생한 것이다. 2020년 선댄스영화제에도 유사한 길을 밟은 영화가 등장했다. 바로 에스테반 아란고 감독의 <블라스트 비트>다. 2015년 제작했던 동명 단편에 살을 붙여 장편화한 사례다. <미나리>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 콜롬비아 출생의 고등학생 형제가 주인공. 다만 인물들의 나이대에 맞게 위태로운 성장담이 펼쳐지며 불법 이주민, 미국의 할렘가 등의 사회 문제가 대두될 예정이다. 단편에서 형제를 연기한 배우들이 그대로 등장하며 다니엘 대 킴, 다이엔 게레로 등 새로운 배우들도 합류했다.
<더 네스트>(The Nest)
감독 숀 더킨 출연 주드 로, 캐리 쿤, 찰리 쇼트웰
앞선 작품들이 미국 사회로 들어선 이방인들을 담았다면 <더 네스트>는 그 반대다. 미국으로 건너와 성공한 기업인 로리(주드 로)는 아내 앨리슨(캐리 쿤)을 설득해 모국인 영국으로 향한다. 그렇게 그들 가족은 영국 시골에서 새로운 터전을 꾸린다. 앨리슨과 아들 벤자민(찰리 쇼트웰)은 익숙하지 않은 생활에 힘겨워하지만 로리는 자신의 부와 권력을 더욱 강하게 굳히려 한다.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점점 더 작은 둥지(nest)를 찾는 로리. 그간 여러 작품들에서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로 관객들의 마음을 앗아간 주드 로는 이번 영화로 어리석고 악랄한 가장으로 변신했다.
<나인 데이즈>(Nine Days)
감독 에드슨 오다 출연 윈스턴 듀크, 재지 비츠, 베네딕트 웡, 빌 스카스가드
기발한 상상력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스>의 윈스턴 듀크, <조커>의 재지 비츠, <닥터 스트레인지>의 베네딕 웡, <그것>의 빌 스카스가드 등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나인 데이즈>다. 광활한 대지에 덩그러니 놓인 외딴 집에서는 비밀스러운 은둔자(빌 스카스가드)의 면접이 이뤄지고 있다. 그 대상은 아직 생명을 갖지 못한 다섯 영혼들. 그는 9일간의 면접 끝에 한 영혼을 뽑아 삶을 부여해주려 한다. 당최 예상이 되지 않는 줄거리의 영화다. 아직 자세한 사항은 알려진 것이 없지만 선댄스영화제 측은 <나인 데이즈>를 두고 “초자연적이고 인간 내면을 바라보는, 찰리 카우프만과 미셸 공드리의 후예”라고 설명했다.
<원더 다클리>(Wander Darkly)
감독 타라 미엘 출연 시에나 밀러, 디에고 루나, 베스 그랜트, 아미 카레로
<원더 다클리>는 서사 자체보다는 연출을 맡은 타라 미엘 감독이 이야기를 어떻게 담았을지가 궁금하다. 타라 미엘 감독은 아직 영화로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CW의 TV 시리즈 <애로우>, <배트우먼>의 연출로 참여했던 이. 히어로 장르로 실력을 다진 그녀는 짙은 드라마로 선댄스를 찾았다. 교통사고를 당한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드리엔(시에나 밀러)과 가족의 이야기다. 꼬여가는 관계 속에서 다시 과거의 기억들을 되새기고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순간순간이 어떻게 삶을 구축하는지가 독특한 기법으로 담길 예정이다.
<졸라>(Zola)
감독 쟈닉자 브라보 출연 테일러 페이지, 라일리 코프, 니콜라스 브라운
기획부터 비범하다. <졸라>는 스트리퍼로 일하던 아이지아 킹이 2015년부터 트위터에 게재한 140여 개의 경험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해당 글은 매춘, 살인, 자살 등 참담한 내용이 실리며 크게 화제가 됐었다. 배우 겸 감독으로 활동 중인 쟈닉자 브라보는 이를 영화화하기로 다짐, 아이지아 킹과 함께 각본을 집필하고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주로 TV 시리즈로 활약했던 테일러 페이지가 주인공 졸라를 연기, 그녀를 스트리퍼 생활로 이끄는 제시카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로건 럭키> 등을 거쳐 2018년 <언더 더 실버레이크>로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던 라일리 코프가 맡았다.
<테슬라>(Tesla)
감독 마이클 알메레이다 출연 에단 호크, 카일 맥리클란, 이브 휴슨, 짐 개피건
국내에서도 익숙한 이름 ‘테슬라’를 소재로 한 전기영화도 있다. 전기자동차 회사로 잘 알려진 테슬라는 에디슨과 함께 미국 전기 보급의 선두주자로 활약했던 니콜라 테슬라(1856~1943)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테슬라>는 그의 삶을 조명한 영화다. 이를 재현할 주인공으로는 에단 호크가 나섰다. 그의 삶이 담긴 영화로는 2017년 제작된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커런트 워>도 있다. 다만 <커런트 워>가 당대 활동했던 에디슨, 테슬라, 웨스팅하우스 등의 격돌을 담았다면 <테슬라>는 말 그대로 테슬라 한 인물에 집중한다. 살아생전 ‘매드 사이언티스트’ 취급을 받았던 그의 행동, 고뇌가 어떻게 그려질지 주목된다.
<더 글로리아스>(The Glorias)
감독 줄리 테이머 출연 줄리안 무어, 알리시아 비칸데르, 베트 미들러
선댄스가 소개하는 여러 실존 인물, 실화 바탕의 영화 중 가장 이목이 쏠리는 영화다. 1960년대부터 페미니즘 운동을 이끌고 있는 저널리스트 겸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테이넘의 전기영화 <더 글로리아스>다. 그녀의 자서전 <도로 위의 삶>(My Life on the Road)을 바탕으로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성 운동에 앞장섰던 글로리아의 삶 전반이 담긴다. <엑스 마키나>, <대니쉬 걸> 등으로 평단의 찬사를 받은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젊은 날의 글로리아를 맡았으며 수많은 작품들로 칸, 베니스, 아카데미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던 줄리안 무어가 노년의 글로리아를 연기한다.
<더 라스트 씽 히 원티드>(The Last Thing He Wanted)
감독 디 리스 출연 앤 해서웨이, 벤 애플렉, 윌렘 대포, 오스카 아이삭
소개하는 영화들 중 유일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비다. (전직) 캣우먼과 배트맨이 한자리에 모인 <더 라스트 씽 히 원티드>. 소설가 조안 디디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1986년 발생했던 ‘이란-콘트라 스캔들’(미 정부가 인질 구출을 명목으로 이란에 무기를 팔고, 그 대금으로 니카라과 공화국의 콘트라 반군을 지원한 사건)을 소재로 했다. 영화는 허구의 인물인 기자 엘레나(앤 해서웨이)가 예기치 못하게 무기상이 되는 과정을 미스터리 스릴러 형식으로 담았다. 밴 애플렉이 그녀를 조사하는 정부 관료를 맡았으며, 이외에 윌렘 대포, 오스카 아이삭 등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넷플릭스 공개 전 선댄스에서 최초 상영된다.
<셜리>(Shirley)
감독 조세핀 데커 출연 엘리자베스 모스, 마이클 스필버그, 오데사 영, 로건 레먼
<셜리>는 섬뜩한 스릴을 자아낼 듯하다. 전작 <마델린의 마델린>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던 조세핀 데커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영화다. 젊은 부부가 문학 조교수 자리를 찾아 작은 시골 대학으로 오게 되고, 그곳에 있는 문학 교수 스탠리(마이클 스필버그)의 집에서 숙식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의 핵심 인물은 스탠리의 아내이자 공포소설 작가인 셜리(엘리자베스 모스). 그녀는 부부의 사랑을 시험해보며 소설의 영감을 얻는다. 제목에도 사용됐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듯하다. 또한 TV 시리즈 <매드맨>, 영화 <더 원 아이 러브> 등으로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한 엘리자베스 모스의 소름 돋는 연기를 기대해봐도 좋겠다.
<더 나이트 하우스>(The Night House)
감독 데이빗 브루크너 출연 레베카 홀, 스테이시 마틴, 사라 골드버그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영화들 모아놓은 미드나잇 섹션을 장식하며, 대놓고 “나 공포영화야!”를 외치고 있는 <더 나이트 하우스>.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아이언맨 3> 등으로 활약한 레베카 홀과 <님포매니악> <복스 룩스> 등에 출연하며 스타덤에 오른 스테이시 마틴 등 역시나 쟁쟁한 출연진을 자랑한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베스(레베카 홀)가 홀로 남은 집에서 남편의 환영을 보고, 그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기본적으로 호러를 깔고, 거기에 멜로를 덧입힌 영화다. 연출을 맡은 데이빗 브루크너 감독은 <더 나이트 하우스>를 통해 선댄스로부터 “장르 영화계의 혁신가”라는 평을 받았다.
<폴링>(Falling)
감독 비고 모텐슨 출연 랜스 헨릭슨, 비고 모텐슨, 로라 라니
앞서 소개한 몇몇 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이방인의 삶’, ‘실존 인물의 전기’ 등의 소재. 2020년 선댄스가 이에 못지않게 주목한 것이 ‘부모 자식 간의 관계’다. 그중 <폴링>은 아버지에 대한 애상을 담았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 <이스턴 프라미스> <그린 북> 등으로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덤을 자랑하는 비고 모텐슨은 감독 데뷔작. 홀로 비통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남자 윌리스(랜스 헨릭슨). 그를 돌보기 위해 아들 존(비고 모텐슨)과 딸 사라(로라 라니)가 시골을 방문한다. 그들은 사사건건 부딪히며 서로의 의미를 확인한다.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그를 둘러싼 자식들. <폴링>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는 모르지만 한국 사회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포 굿 데이즈>(Four Good Days)
감독 로드리고 가르시아 출연 글렌 클로즈, 밀라 쿠니스, 스티븐 루트
다음은 어머니와 딸의 끊을 수 없는 유대를 담은 <포 굿 데이즈>다. <폴링>이 무너지고 있는 아버지에 중심을 뒀다면 <포 굿 데이즈>는 무너지고 있는 딸과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10년째 마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피폐한 삶을 살고 있는 몰리(밀라 쿠니스). 그녀의 어머니 데브(글렌 클로즈)는 점점 지쳐가지만 딸을 놓지 못한다. <포 굿 데이즈>는 그들이 함께 하는 4일간의 기록을 담았다. 가족애를 바탕으로 했지만 마냥 훈훈하지 않은, 비참할 정도의 현실을 그려낸 작품이라고. 전작 <더 와이프>로 여러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여전한 저력을 보여준 글렌 클로즈와 오래간만에 짙은 드라마로 돌아온 밀라 쿠니스의 협업도 기대를 자극한다.
<더 파더>(The Father)
감독 플로리안 젤러 출연 올리비아 콜맨, 안소니 홉킨스, 마크 게티스, 이모켄 푸츠
이번엔 부녀지간이다. 게다가 (혹시나)영화의 완성도가 부족하더라도,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눈과 귀가 충족될 것 같은 라인업이다. 올리비아 콜맨이 딸을, 안소니 홉킨스가 아버지를 연기한 <더 파더>다. 80세가 넘어가며 기억까지 희미해져가는 안소니(안소니 홉킨스)는 간병인도 거절하며 마지막을 준비한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 앤(올리비아 콜맨)은 착잡한 마음이 쌓여가지만 스스로의 삶을 살기도 벅차다. 비고 모텐슨의 <더 폴링>과 유사한 소재이지만, <더 파더>는 보다 따듯한 톤으로 두 사람을 담을 듯하다. 연출을 맡은 플로리안 젤러 감독은 직접 영화를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 비유하기도 했다.
<컴 어웨이>(Come Away)
감독 브렌다 채프먼 출연 키이라 찬사, 조단 A. 내쉬, 안젤리나 졸리, 데이빗 오예로워
아마 소개하는 작품들 중 가장 훈훈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미녀와 야수>(1991), <노틀담의 꼽추>(1996)의 각본을 쓰고 <이집트 왕자>, <메리다와 마법의 숲>를 연출했던 브렌다 채프먼 감독의 신작이다. 이번에도 그녀는 ‘동화적 상상력’을 동원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 <피터 팬>의 피터가 주인공이다. 다만 동화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닌, 그들이 어떻게 동화 속 주인공이 됐는지 그 기원을 쫓아가는 영화다. 앨리스(키이라 찬사)와 피터(조단 A. 내쉬)를 모험의 세계로 이끄는 로즈 역은 안젤리나 졸리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