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의 이유? 우리가 놓쳤던 <아가씨>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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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아가씨>의 공식 사진집 <아가씨의 순간들>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재혁 사진가의 스틸 사진을 모은 사진집으로, 지금까지 공개된 적 없는 <아가씨> 촬영 현장의 비하인드를 담아냈다고 전해진다. 책을 감싸는 북클로스(Bookcloth) 천을 선정하는 데만 1년 여의 시간이 소요됐을 만큼, 사진 퀄리티는 물론이거니와 사진집 소재의 완성도 역시 소위 ‘역대급’일 것으로 예상되는바. 영화 팬들은 주문 버튼을 누를 때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아가씨의 순간들> 출간을 기념하며 영화 <아가씨>의 비하인드를 몇 가지 소개한다.


박찬욱은 캐스팅 과정 전에 배우들을 뒷조사(!)했다.

<아가씨>는 박찬욱과 처음 작업하는 배우들이 대부분인 현장이었다. 김민희, 하정우, 조진웅은 물론 신인 배우였던 김태리까지. 모두 박찬욱 감독과 한 번도 작업해보지 않은 배우들이었다. 박찬욱 감독 역시 캐스팅 리스트를 짜면서도 이런 부분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범죄와의 전쟁> 조진웅, <멋진 하루> 하정우, <화차>와 <연애의 온도>를 보며 김민희를 선택하게 된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 미팅에 앞서 세 배우를 뒷조사 아닌 뒷조사 했다고 밝혔다. 이들과 함께 작업해 본 동료 감독, 배우들에게 평판을 묻고 들으며 일말의 우려를 덜어낸 것. 그럼에도 박찬욱 감독은 “대부분의 배우들과 초면이었기 때문에 촬영 초반엔 어색한 기운이 맴돌기도 했다”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이 없어서 초반엔 데면데면한 분위기가 이어졌다”고 밝혔다.


김태리 “어차피 저랑 안 하실 거잖아요”

김태리가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숙희가 됐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지만, 언제 들어도 재미있는 <아가씨>비하인드 가운데 하나다. 박찬욱 감독은 어딘가에 숨어 있을 숙희를 찾기 위해 수많은 신인 배우들을 만났다. 물론, 단 하나의 숙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400명 넘게 오디션을 봐도 숙희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방에 내려가 오디션을 진행하려던 찰나, 말 그대로 오디션의 마지막 주자로 김태리가 나타나 박찬욱 감독의 마음을 뒤흔들었다고. 박찬욱 감독은 처음 김태리를 본 순간,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김태리에게서 당당한 위엄이 느껴졌다며 “주눅 들거나 그러지 않고, 할 말 다 하고 그런 면을 높이 샀다”고 밝혔다. 오디션 현장에서 김태리가 박찬욱에게 한 말을 들어보면 그의 말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김태리는 박찬욱 감독을 앞에 두고 “어차피 저랑 안 하실 거잖아요”라는 말로 박찬욱 감독을 당황케 했다고. 아마도 그 순간 박찬욱은 숙희를 발견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오디션장에서 곧바로 “나는 너로 정했다”는 말과 함께 김태리를 캐스팅했다는 후문이다.


히데코는 처음부터 김민희였다

<아가씨>의 시나리오 작업을 마친 후, 캐스팅 작업이 시작됐을 당시부터 히데코 역엔 김민희란 이름이 지워진 적이 없다. 김민희는 박찬욱 감독 마음속에 1순위, 아니 0순위로 자리 잡고 있었다. 히데코 역에 김민희를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고 밝힌 박찬욱 감독은 “충격적일 만큼 매 작품마다 성장의 성장을 거듭하는 김민희에게 히데코 역을 맡겨야겠다”고 결심했다. “표정에서 조금의 움직임으로도 이런저런 감정들을 만들어내는” 섬세함을 지닌 김민희는 히데코가 겪어내야 하는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배우였다. 적어도 박찬욱 감독에겐 말이다.


주연 배우들은 일본어를 익혀야 했다

조진웅, 김태리, 하정우, 김민희는 완벽한 일본어 연기를 위해 촬영에 들어가기 전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익혔다. 특히 일본어 대사 분량이 가장 많은 김민희는 촬영 3개월 전부터 일본어를 공부했다. 박찬욱 감독이 끊임없이 요구한 부분을 소화해내기 위해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쳤다고. 실제로 <아가씨> 촬영 현장엔 일본어 선생님이 항상 대기했을 만큼 자연스러운 일본어 구사를 위해 굉장한 공을 들였다.


<아가씨>의 영어 제목이 <The Handmaiden>인 이유?

<아가씨>의 영제는 <The Handmaiden>다. 하녀, 몸종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다. <아가씨>와는 정반대되는 제목이다. 박찬욱 감독은 이에 대해 “여자 주인공이 두 명인데 한국어 제목으로는 아가씨고, 영어 제목으로는 하녀고 이렇게 하면 서로 균형이 맞을 것 같았다”며 “두 주인공을 놓고 어떤 제목은 한 사람을 다루고, 어떤 제목은 다른 사람을 다루는 식으로 대등하고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다 계획이 있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박찬욱 감독이 말하는 <아가씨>의 베드신

미국의 연예 매체 ‘벌쳐’(vulture)는 “당신은 어떻게 섹스신을 연출하는가? 10명의 감독이 그들의 비밀을 밝히다”라는 기사를 통해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를 실으며 <아가씨> 베드신이 어떻게 촬영됐는지 보도했다. 인터뷰를 통해 박찬욱 감독은 가장 먼저 히데코와 숙희의 정사신이 “진정한 사랑의 장면처럼 보일 수 있도록 고민했다”고 밝혔다. “두 명의 여성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연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이런 노력은 당연지사 촬영 방식으로까지 이어졌다. 박찬욱 감독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스토리보드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만들려고 했다”면서 배우들에게 최대한 카메라에 몸의 어떤 부위가 담길지, 어떤 방식으로 보일지 확실하게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스토리보드를 상세히 그리는 과정을 거치며 배우들과 감독은 구체적으로 피드백을 나눌 수 있었고, 어떤 앵글이 좋고 싫은지 확인하는 과정 역시 거칠 수 있었다. 또한 박찬욱 감독은 정사신을 그리는 과정에서, 배우들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전했다. “두 여성 사이의 감정적인 교감을 그리고 싶었”던 만큼 “배우들의 가슴과 엉덩이가 관객의 눈에 들어오는 순간 그 장면이 퇴색될 것을 우려”하며 최대한 배우들의 얼굴에서 감정을 포착하려고 노력했다고.

박찬욱 감독은 정사신을 최대한 빨리 찍기 위해 여러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세트장에서 모든 남자 스태프를 내보내고, 리모트 컨트롤 카메라를 사용해 촬영을 진행해 세트장에는 붐 마이크를 드는 여성 스태프를 제외하곤 두 배우만이 남도록 했다. 또 최대한 두 번의 테이크 안에 촬영을 끝내기 위해 고도의 집중을 기하기도 했다는 후문. 숙희와 히데코가 그리는 사랑의 순간들이 관객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박찬욱 감독의 디테일과 노력이 숨어있던 덕분이었다.


당초 <아가씨>엔 아역 배우가 세 명이나 필요했다

빈틈없는 연기가 눈에 띄는 <아가씨>는 아역 배우의 연기마저 완벽한 작품이었다. 히데코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배우 조은형의 침착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연기는 히데코의 과거를 적절하게 표현해내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원래 박찬욱 감독은 히데코의 성장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나이대별로) 세 명의 아역 배우를 캐스팅하려 했으나, 조은형을 만난 후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작은 몸인데 표정은 이상하게 어른스러웠던 조은형의 부조화적인 매력”에 끌린 박찬욱 감독은 조은형만을 아역에 캐스팅하기로 마음먹었다고.


김태리가 가장 어려워했던 장면은

<아가씨>를 통해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김태리. 숙희라는 캐릭터를 온전히 표현하기란, 신인 배우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비가 아닌 장면이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김태리가 가장 어려워한 연기는 웃는 연기였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너털웃음을 표현하는 부분이 유독 힘들었다고. 지문에 쓰여 있는 ‘호탕하게 너털웃음 짓는다’를 연기해야 하는데, ‘나 연기해요’라는 표정이라서 박 감독이 쉽사리 OK 사인을 주지 않았다고. 심지어 박찬욱 감독은 “웃음이 그게 뭐냐?”고 하며 김태리에게 핀잔 아닌 핀잔을 주기도 했다. 결국 삭제된 부분도 많지만, 영화 속에서 숙희가 너털웃음을 짓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정신병원에 갇힌 숙희가 주먹밥 속 벌레를 발견하고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오…”라며 백작을 향해 원망하는 장면이다.


원작과는 다른 엔딩, 그 이유는

<아가씨>는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두고 있다. 각색을 거치면서 <아가씨>는 원작과 달라진 부분이 많은데, 특히 결말이 그렇다. 박찬욱 감독은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한 편이 되어 백작(하정우)과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를 골탕 먹이는 것으로 소설이 끝나야 한다고 기대했는데 소설이 그렇게 끝나지 않아서 새로운 결말을 창조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박찬욱 감독은 시나리오의 결말 부분을 써 내려가며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박찬욱 감독이 직접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두 여자는 맺어진다, 둘이 행복하게 끝난다, 둘이 사랑하면서 끝난다, 떠나면서 끝난다, 백작과 코우즈키는 처절하게 응징된다, 응징이 여성 주인공 히데코의 지략에 의해서 이뤄진다, 백작은 이모부 손에 의해 처형된다. 제 뜻대로 새로운 결말을 만든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는 해피엔딩에 모호하지 않은 후련한 영화”라고 소개했다. 히데코와 숙희에게 찝찝하지 않은, 무한한 자유를 남기고 싶었던 박찬욱 감독의 애정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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