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돌풍 <자백> 같은 사회고발 다큐 수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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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 메인 예고편

MBC <PD수첩>의 책임PD로 재직할 당시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 시리즈, <4대강 수심 6m의 비밀>, <검사와 스폰서> 등 다큐멘터리를 만든 최승호. 그가 다큐멘터리 <자백>을 들고 돌아왔다. 국정원이 2012년 탈북한 화교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을 추적하는 작품이다. 국정원은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를 협박해 얻어낸 ‘자백’을 증거삼아 그를 간첩으로 내몰았지만, 2015년 10월 대법원은 결국 유우성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일말의 사과조차 하지 않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책임자들의 철면피가 관객의 치를 떨리게 한다. 최승호는 이 사건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었던 스파이 조작 사건의 역사까지 훑어나간다.

반응은 상당하다. 개봉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으로 4억원을 모금한 데 이어, 개봉한 지 일주일 만에 7만을 넘는 관객수를 기록했다. <자백>과 함께 볼 만한, 현대 사회의 추악한 진실을 들춰낸 명 다큐멘터리들을 소개한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들



<로저와 나>

마이클 무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그는 1989년 <로저와 나>로 데뷔한 이래 끊임없이 미국 사회의 병폐를 고발해왔다. 미시건주의 소도시 플린트는 제너럴 모터스사의 공장 폐쇄로 생계의 근간이 흔들리고(<로저와 나>), 은행에서 계좌만 트면 총기를 손에 넣을 수 있고(<볼링 포 콜럼바인, 2002>), 9.11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일가가 오랫동안 경제적 이해관계에 놓여 있고(<화씨 9/11, 2004>), 미국 민간 의료보험의 부조리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지(<식코, 2007>) 똑똑하게 알렸다. 한편 얼마 전 우리나라에 개봉한 <다음 침공은 어디?>(2015)에서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거두고, 유럽 주요 국가의 훌륭한 복지 정책을 소개하며 미국이 지향해야 할 길을 제시했다.
 



<화씨 9/11>

사실 무어의 다큐멘터리는 쇼에 가깝다. 그는 이목을 끌 만한 대상을 정하고, 그 혹은 그것이 저지른 악행들을 관객들의 뇌리에 각인시킬 말초적인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대상에 대한 사소한 것들을 죄다 긁어모아 전시하거나, 직접 대상이나 그와 관련한 자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한다. 늘어놓은 정보가 외곽을 떠도는 음모론일지라도, 인터뷰는커녕 문전박대를 당할지라도, 그 자체로 마이클 무어가 지목한 문제에 힘을 싣는 실마리가 된다. 이성보다는 감정을 먼저 건드리는, 정치와 사회를 타블로이드 기사처럼 다루는, 그의 다큐멘터리는 늘 논쟁거리에 올랐다. 하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 무어처럼 강력하게 이목을 집중시키는 다큐멘터리 감독은 여태껏 없었다. 그는 미국 대선을 3주 남긴 지난 10월 19일, 뉴욕 IFC 센터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풍자한 신작 <트럼프 나라의 마이클 무어>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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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포

어느 날,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이메일이 하나 도착한다. ‘CITIZENFOUR’라는 ID의 제보자는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미국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감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밝힌다. 2013년 6월 10일 NSA의 감청을 온 세상에 알린 ‘CITIZENFOUR’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과정을 담은 <시티즌포>(2015)의 시작점이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다룬 <마이 컨트리, 마이 컨트리>(2006)와 관타나모 수용소를 들여다본 <서약>(2010)을 만들며 정부의 감시를 받던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은 2년간 정부 감시에 대한 작품을 만들던 중, 에드워드 스노든의 메일을 받고 <시티즌포> 작업에 착수했다. 스노든의 ‘지목’을 받은 셈. 포이트라스는 영국 <가디언>지의 저널리스트 글렌 그린왈드와 함께 홍콩으로 가서 스노든을 만나, 폭로를 감행하기 전부터 그의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미 정부가 국가의 입장에 반대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다는 경악스러운 사실을 아주 담담하게 고백하는 스노든의 모습을 담는다. 그리고 NSA가 폭로자를 찾기 위해 수색망을 가동시키면서 웬만한 스릴러를 능가하는 긴장감이 조성된다. 끔찍한 사실과 이를 전하는 무덤덤한 말투, 도망자와 그를 촬영하는 카메라, <시티즌포>는 그 기묘한 아이러니를 유지한 채 오바마 시대에도 버젓이 작동되는 국가 권력의 실체를 하나하나 벗겨낸다. 2015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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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도시 1,2

2002년, 2009년 두 편에 걸쳐 공개된 다큐멘터리 <경계도시>의 주인공은 재독(在獨)철학자 송두율 교수다. 송두율은 1972년 유신헌법이 선포되고 2년 후 민청학련사건으로 180명의 지식인들이 구속·기소되자 독일에서 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발족해 유신정권과 갈등을 빚은 뒤, 반체제 인물로 분류돼 한국 입국을 금지 당했다. <경계도시>(2002)는 남북정상회담으로 좌익이라 불리던 이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던 2000년, 송두율 교수가 늦봄통일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귀국을 준비하던 시기에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귀국은 출발일 아침에 좌절된다. 영화는 근 30년이 지난 당시에도 여전한 레드 콤플렉스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 지식인 송두율을 가깝게 바라본다.

한편 <경계도시 2>(2009)는 2003년 송두율 교수의 귀국이 성사된 순간부터 한 달 후 구속될 때까지의 파란만장했던 시간에 집중한다. 입국 당시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뒤집히면서 다시금 ‘빨갱이 사냥’이 들끓는 2003년 한국의 풍경을 보여준다. <경계도시>가 송두율 교수에게 가깝게 다가가 한 개인의 지식인을 탐구했다면, <경계도시 2>는 레드 콤플렉스의 소용돌이에 무참히 스러져가는 송두율을 멀찌감치 바라보면서 한국 사회의 민낯을 전시한다. 특히, 함께 귀국을 추진했던 관계자가 송두율 교수에게 ‘자백’을 요구하는 대화가 담긴 기나긴 시퀀스가 아주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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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문

2009년 1월 19일 새벽 용산4구역 철거현장. 생존권을 호소하며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을 진압하기 위한 불길이 건물을 덮쳤고, 화마는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참사 3년 후 개봉한 <두 개의 문>(2011)은 다시금 그 처참한 새벽의 현장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하지만 <두 개의 문>은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에 흔히 자리할 법한 분노가 없다. 농성자들의 호소나 현장을 설명하는 인터뷰이의 눈물은 보이지 않는다. 감정의 스펙터클을 포기한다는 것. 작금의 현실을 호소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듦에 있어, 수월한 길을 따르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3xFTM>(2009), <종로의 기적>(2011) 등 성적소수자들의 면면을 부드러운 화법으로 담은 다큐멘터리를 선보인 연분홍치마에서 제작한 <두 개의 문>은, 용산 참사를 향한 추모가 닿지 않는 또 다른 소수자 故 김남훈 경사를 비롯한 경찰특공대를 끌어안는다. 농성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공권력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국가-자본 권력에 유린당하는 피해자로서 경찰특공대를 바라본다. 김석기 전 경찰청장이 내린 진압 명령이 불러온 아비규환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일개 공무원들의 공포가 담겼다. 비판해야 할 대상 역시 짚고 넘어간다. 전두환 정권 당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대응한다는 구실로 창설된 경찰특공대가 수십 년간 시위 진압을 위해 확대 운영되면서 벌어진 사건들을 차근차근 되새긴다. 미군기지 이전 발표 이후 용산으로 자본의 유입이 급격하게 늘어난 흐름과 3천 페이지의 참사 수사기록을 은폐한 검찰 역시 짚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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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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