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영화 요약 영상을 보는 이유. 물론 내가 모르는 그 세계만의 즐거움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 요약본을 즐겨보는 가까운 친구에게 물었다. 그의 말로는 돈 주고는 굳이 보고 싶지 않지만, 궁금한 영화를 간단하게 파악할 수 있어 좋단다.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우선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조회수에 급급한 영상 제작자들이 작품을 그저 자극적으로 납작하게 묘사하는 방식에 거부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라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말하고자 하는 본질적 메시지가 가려지지 않나 싶었다.
이런 의문을 품고 있던 와중에 보게 된 왓챠 독점 일드 <이시코와 하네오>. 부제는 ‘그런 일로 소송합니까?’다. 코믹 성장 법률 드라마로, ‘우시오 법률 사무소’에서 일반 시민들이 맞닥뜨릴 법한 법적 소재를 다루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특히 세 번째 에피소드에 눈길이 갔다. 이 에피소드는 일본에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패스트(fast) 무비 (한국의 ‘영화 요약’ 영상)’와 저작권법을 다룬다. <이시코와 하네오>는 매 편마다 시의적인 사건을 다루며 고민거리를 던지는데, 그 문제들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법률 사건들은 아니지만, 원만한 해결을 목표로 접근하는 이 드라마의 기저에는 동료 시민으로서 타인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는 정서가 잔잔히 깔려있다.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 ‘우산’이 되자”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 ‘우산’이 되자.” <이시코와 하네오> 속 두 주인공이 일하는 변호사 ‘우시오’ 사무소의 신조다. 우시오의 딸 이시다 쇼코(아리무라 카스미 분)는 법률 사무원으로 아버지의 사무소에서 근무 중이다. 사람이 좋아서 자기 실속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아버지로 인해 사무소의 살림을 운영하는데 허덕인다. 매번 무료 상담을 받아오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사무실 재정에 대한 걱정 섞인 목소리로 한소리하면서도 매 사건마다 성심성의껏 임한다. 사무소에 하네오카 요시오(나카무라 토모야 분) 변호사를 영입하게 된다. 이렇게 ‘이시코’와 ‘하네오’는 함께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이 드라마는 매 에피소드마다 사회적으로 떠오르는 문제를 다룬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생활 법률 수준의 사건들이다. 이를 테면 카페에서 핸드폰 충전하는 것에 대한 절도죄, 초등학생이 엄마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다 발생한 신용카드 결제 건, 영화 불법 업로드로 저작권법 위반 등이다. 이런 사건들은 하나같이 수임료는 얼마 되지 않고 들어갈 품은 만만찮은 것들이다. 여타 정통 법정 드라마처럼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어지는 않지만, 사건의 경위와 파장에 대한 묘사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다만 일본 드라마 특유의 코믹스러움과 교훈을 주려는 서사 방향이 다소 뻔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또, 그 해결 과정이 우연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다른 정통 법정극처럼 치밀한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법률 관련 내용을 전달하기를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매 화 끝에는 내레이션을 통해 해당 에피소드 관련 법안의 상황도 설명해준다. 일본 사회 현실을 진단하는 주제 의식을 고려한 부분이다.
영화 요약본을 불법 업로드한 사건
“사람들이 패스트 영화(요약본 영상) 좋아해요” 세번째 에피소드에서 피의자로 잡혀간 야마다 료헤이가 하는 말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스물세 살의 영화감독 지망생인 그는 대학 영화 동아리에서 직접 영화를 만들어 본인의 동영상 채널에 올린다. 그러다 재밌게 본 영화를 스태프와 공유하기 위해10분 정도 편집한 영상을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 멤버 한정 공개로 올린다. 한번 실수로 영상을 전체 공개로 올린 뒤, 예상 외로 굉장한 조회수를 기록하게 된다. 직접 찍어 공개한 영화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반향에 개봉한 영화를 결말까지 포함해 짧게 편집한 요약 영상 이른바 패스트 영화를 연달아 올린다. 그러자 갑자기 경찰이 찾아온 것. 업로드한 영상 중 일부 영화사가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한 것이다. 계정도 잠기고 본인도 체포된다. 그가 자신을 찾아 온 국선 변호사인 하네오에 묻는 질문에는 그의 인식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패스트 영화가 뭐가 문제죠?”
요즘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를 요약해 놓은 콘텐츠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코로나 이후 범람하는 OTT 콘텐츠의 인기와 더불어 부상한 것은 영화 유튜버들의 존재다. 넷플릭스의 시리즈의 새 시즌이 나온다거나 마블의 새로운 영화가 나온다던가. 봐야 할 콘텐츠는 하루가 다르게 쌓여 가는데 개인이 그 속도를 따라잡기랑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영상을 최소 1.5 배속으로 보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요약 영상의 대두는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에피소드 끝에 우시오는 말한다. ”말 그대로 디지털 타투지, 한 번 인터넷에 퍼진 정보는 완전히 지울 수가 없어” 요약 영상이 실제 영화의 흥행에 피해를 끼치자 이에 대해 한 말이다. 영화 제작자들이 고도로 설계한 몇 시간의 영상이 단 몇 분의 요약 영상에 비견되기는 힘들고 이 영상들이 분명 저작권 문제로부터 자유로울리 없다.
일본은 징역, 한국은?
지난해 11월, 일본에서는 장편 영화를 10분 이내로 요약 영상으로 만들어 업로드한 남성 3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죄명은 ‘저작권 침해 위반’이었다. 피고인들은 영화 5편을 허락 없이 무단으로 편집하고 줄거리를 요약해 설명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영상 제작을 주도한 이는 징역 2년과 집행유예 4년 그리고 벌금 한화로 약 2,060만원(200만엔)을 선고받았다. 또 나머지 2명은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 선고를 받았다. 법원은 이들이 리뷰를 가장한 영상 요약 동영상을 통해 얻은 광고 수익은 부당하다며, 영화 수익 구조를 파괴하는 행위임을 명백히 했다. 또 이와 같은 저작권 침해 행위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할 것임을 경고한 바 있다.
한편, 국내에서는 아직 유튜브 영화 요약 콘텐츠로 실형이 내려진 사례는 없다. 다만 영화 내용을 다수 포함한 영화 리뷰 채널들이 경고받고 영상을 모두 내리거나 채널이 정지된 경우는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유튜브의 재편집이 원칙적으로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여기서 편집된 영상이 정당한 인용인지 아닌지에 따라 해석은 달라진다. 정당한 인용은 비영리적이고 생산적인 목적을 띄어야 하는데, 대개의 영화 유튜버는 편집한 영상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작품은 관객이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짧은 영상 위주 유튜브의 영향력은 갈수록 강해지고 장편 영상은 힘을 잃어가는 듯 보이는 이 시대. 많은 이들이 요약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영화를 다 본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영화를 본 것이라기보단, 영화의 스토리를 파악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테지만 말이다. 사실 정당한 방식으로 제작된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는 영상이라면 문제 될 것도 없다. 유튜브 요약 영상이 통해 혼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영화 속 요소를 짚어줄 때 다양한 관점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도 분명 있다.
어찌 됐든 확실한 건 작품은 관객이 봐줄 때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이 시대에 영상 콘텐츠의 방향은 어디로 가야 할까. 흥미적인 요소에만 너무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교양과 계몽적 요소를 녹여낸 <이시코와 하네오>는 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답답한 뉴스가 많은 요즘 사회 정의에 대한 열망이 있는, 억울한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당신에게, 생활 법률 서사와 성장 로맨스가 담긴 일드 <이시코와 하네오> 추천한다.
허프포스트코리아/ 씨네플레이 김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