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당신의 믿음은 어떤 모습인가
★★★
동남 아시아의 샤머니즘 세계관과 끈적하고 습한 여름 기후, 저주가 결합한 결과는 기괴한 지옥이다. <랑종>은 인물에게 일어나는 일을 대물림과 업보의 차원에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풀이보다는 금기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듯한 장면 묘사들에 더 치중한 인상이 두드러진다. 특정 대목부터는 거의 폭주기관차처럼 내달린다. 영화가 취한 파운드 푸티지 형식 역시 면밀한 관찰보다는 관음의 욕망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다. 호러라는 장르성 안에서 이 모든 묘사가 용인 가능한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다만 핵심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는 질문 자체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지금껏 지켜본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믿음은 무엇이고 얼마나 확고한가. 그 믿음은 현혹이 아님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정유미 <더 스크린> 에디터
현혹에만 몰두
★★★
나홍진 감독의 괴작 <곡성>(2016)과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영화다. 나홍진 감독이 기획과 제작, 시나리오 원안까지 제공했으니 연출을 맡은 태국 호러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은 <랑종>이라는 미끼를 창작의 도약대로, 관객은 오랜만에 호기심을 솟구치게 하는 대상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했을 것이다. 한국과 태국 합작이라는 면에서도 시도는 훌륭하나 결과물엔 아쉬움이 따른다. 태국 무속 신앙과 태국 시골의 이국적인 풍광이 빚어내는 공포의 기운은 충분히 음습하다. 그러나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효과적으로 차용하지 못하고, 캐릭터 묘사와 높은 표현 수위에선 공포를 조성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극제로만 기능한다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명과 암'인 나홍진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미끼
★★★
<곡성>의 세계관을 태국으로 옮겨 <블레어 위치> <파라노말 액티비티> 기법으로 찍은 영화. 나홍진과 반종 피산다나쿤, 두 감독의 특징이 융합돼서 상승효과로 이어진 것 같지는 않다. 나홍진의 DNA와 그런 나홍진의 능력치를 곁눈질하는 반종 감독의 연출이 뒤섞여 고르지 못하게 발현된 부분들이 많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홍진의 야심을 대신하기엔 연출이 그 깊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도입부는 늘어지고, 충분히 돌보지 못한 인물의 등·퇴장이 주제의 깊이를 갉아먹는데, 좀비까지 끌어안은 마지막 난장은 힘을 준 티를 너무 내고 있어서 감정을 오히려 후퇴시킨다. 그래 뭐, 주제 의식이고 캐릭터고 뭐고, 뭣이 중헌디 공포 영화는 무서우면 장땡이지, 그래서 무섭니? 라고 묻는다면 (개인적인 감상은) “글쎄.” 폭력적이고 엽기적이고 관음적인 장면들이 공포로 나아가지 못하고 딱 거기에 머물러 자극만을 남긴다. 무서운 것과 자극적이어서 뒤숭숭한 건 엄연히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