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2021)은 마블의 첫 아시아 솔로 무비로 시무 리우가 주인공 샹치 역을 맡았다. 드라마 <김씨네 편의점>을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그의 얼굴이 익숙하다가도, 화려한 액션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그가 어색해 보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스크린 속에서 아시아인이 ‘쿨하게’ 등장했던 적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니까. 시무 리우는 스크린에서 가장 쿨한 아시아인이 되어 등장했다. 그래서 준비한 시무 리우에 관한 트리비아 10! 그는 어떻게 배우의 길을 가게 되었고, 샹치가 되었을까.

-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
감독 데스틴 크리튼
출연 시무 리우, 양조위, 아콰피나
개봉 2021.09.01.
1. 다섯 살까지 조부모의 손에서 자란 시무 리우
시무 리우는 중국 하얼빈시 출신의 한족이지만, 다섯 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캐나다에 먼저 간 부모를 대신해 그는 조부모의 손에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그의 앞에 나타났고 캐나다로 급하게 데려가게 된다. 갑작스럽게 정서적 기반이었던 조부모의 품을 떠나 낯선 나라로 가게 된 시무 리우는 가족들과도 어울리기 어려워했다.
시간이 흐르고, 시무 리우는 착실한 아들로 성장했다. 학업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부모를 자랑스럽게 하는 아들로 자란 그는 어느순간부터 부모의 기대와 자랑이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2.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 아이비 경영대 졸업한 수재
시무 리우는 캐나다 명문대학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에서도 가장 명문으로 꼽히는 아이비 경영대(Richard Ivey School of Business)를 졸업했다. 아이비 경영대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비즈니스 스쿨로 졸업하면 경영을 전공한 이들에게 있어 최고의 직장을 보증해주는 보증 수표 역할을 한다. 졸업생들은 금융이나 컨설팅 분야에서 주로 일을 하게 되는데 시무 리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3. 회계사가 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딜로이트 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취직했다. 그리고 9개월 만에 회사에서 해고당한 후, 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지금까지 그가 쌓아왔던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위험한 길에 도전하는 행위였는데, 도대체 그는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회계사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던 그는 왜 그 일을 그만둔 것일까.(엄밀히 말하자면 정리해고를 당한 것이지만, 어쨌든.)
그는 회계사로 일했던 9개월 간의 시간이 끔찍했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회계 책에 내 얼굴 갖다 쓰지마”라고 올린 트위터에는 “회계사로 일했던 9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정말 끔찍했고, 일하는 1분 1초가 싫었어”라고 모두 대문자로 적혀 있었다.
실제로 그는 금융쪽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회계사가 되었다고. 그는 해고 이유에 대해 아마도 자신이 이 일에 열정이 없는 게 태도로 드러났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회상했다.
4. 배우 일을 시작하다
그는 인터뷰에서 “불안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망상에 가까운 자신감이 있었다”고 답했다. 만 23세에 회계사의 길을 접고 배우로 전향을 했을 때, 그는 배우가 되기 위해선 어떤 걸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잘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는 무작정 단역과 엑스트라에 지원하며 연기 판에 들어갔다.
5. 스턴트 경력으로 몸을 만들다.
시무 리우는 몸을 잘 쓰는 배우다. 그는 “학교에는 어떤 계층이 존재하고 나는 계층 맨 아래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하며 “인종 때문이든, 아니면 내가 그냥 재미 없는 사람이든 나는 인기 없는 애였고 이건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난 정말로 ‘더 가이’(The Guy)가 되고 싶었는데, 결코 ‘더 가이’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스포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운동을 좋아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밝혔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사립학교에서 운동은 상대적으로 등한시 되었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경기에서 졌고, 끝까지 인기를 얻을 수 없었다고.
그렇게 무용지물이 되는 듯 싶었던 운동 경력은 배우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미국 TV 드라마 <히어로즈 리본>(2015)의 스턴트팀으로 활약하며 스크린 안에서 어떻게 몸을 쓰는지를 배웠고, 이는 드디어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빛을 보게 된다. 그는 “최대한 모든 액션을 직접 소화하기 위해 체력적으로 굉장히 고난이도 훈련을 진행했고 최선을 다했다. 다소 위험한 신도 직접 소화했다”고 밝히며 액션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많은 액션 시퀀스 중에서도 ‘버스 신’을 베스트로 꼽았는데 버스 위에 매달려 있다가 휙 돌아서 문에 부딪히는 장면을 직접 소화해 냈다고 밝혔다.
7.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오디션을 4번 봤다
시무 리우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오디션을 네 번 봤다. 결과는 모두 탈락. 그는 쿨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사이에서 자신만 소외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당시의 감정을 언급했다. 그리고 다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촬영장에서 그들을 만났을 때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배우들은 시무 리우를 기억하며 인사했지만 그는 “미안, 얘들아. 난 전혀 기억이 안난다”고 유쾌하게 반응했다. 그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오디션이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동기가 되어 주었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나를 위해 목표를 세우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남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목표보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 좋아하는 것을 위해 일하는 걸 목표로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
감독 존 추
출연 양자경, 젬마 찬, 콘스탄스 우, 아콰피나, 헨리 골딩
개봉 2018.10.25.
8. 한때 아베크롬비와 피치의 ‘셔츠리스 그리터’ 였다.
그는 아베크롬비와 피치에서 셔츠리스 그리터로 일한 적이 있는데, 셔츠리스 그리터란 말 그대로, 상의를 탈의한 채로 매장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이다.
6. 할리우드에서 유색 인종의 한계를 느끼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속 유색인종 배우로서 겪는 고충에 대해 토로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연기와 맥락과는 별개로 항상 “겁 먹은 동양인 남자” 역만을 맡아야 했다고 말했다. 컴퓨터 앞에 있는 동양인, 식료품 점에서 음식을 도둑 맞는 동양인처럼 한심하고 인기 없는 역할을 도맡아야 했다고. 그는 자신의 학창시절과 연결지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언제나 그에겐 동양인이란 일종의 프레임이 씌워졌다. 할리우드가 씌운 동양인 배우의 프레임은 그런 식이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식료품 점에서 찌질하게 구는 남자도 아니고, 컴퓨터 앞에서 킁킁 거리는 남자도 아니다. 전 세계인이 바라는 마블 히어로, 샹치다. 언제나 백그라운드에서 서서 서사의 주변만을 맴돌던 동양인이 이제는 영웅이 됐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의미 있는 이유는 동양인도 서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점에 있다. 마블의 히어로를 보며 아이들은 꿈을 키운다. 이제, 캡틴 ‘아메리카’를 따라하지 않아도 된다. 표본이 생긴다는 것은 이렇게나 중요한 일이다.
9. 김씨네 편의점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
캐나다 CBC 방송사의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에서 주연 정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시무 리우는 <김시네 편의점>에 대해 애정과 아쉬움을 동시에 드러냈다. 그는 갑작스러운 시즌 6 취소와 극 중 유일한 백인 배우 섀넌 로스를 중심으로 한 TV쇼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는 소식에 불편한 감정을 SNS로 드러냈다.
시무 리우는 샹치 역을 맡아도 스케줄을 조정해 정 캐릭터를 쭉 연기하고 싶어할 만큼 <김씨네 편의점>과 정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하지만 시즌을 거듭할수록 그는 제작진의 정에 대한 묘사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는데, 실제로 그는 “등장인물의 성장이 없었다”라고 문제를 지적했다. “아시아 캐릭터가 진정 깊이 있는 성장과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기회를 놓친 게 아쉽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는 작가들에게 여러 제안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백인 제작진들이 절대 다수였기 때문에 아시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0. 책을 썼다
시무 리우는 <위 워 드리머스: 언 이미그런트 슈퍼히어로 오리진 스토리>(We Were Dreamers: An Immigrant Superhero Origin Story)란 책을 썼다. 책에는 시무 리우가 마블 히어로가 되기까지 겪어야 했던 여러 고난들을 다루고 있다. 동양계 캐나다인이라는 문화적 고정관념부터 실패한 회계사라는 개인적 고난까지, 그는 샹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밝혔다.
시무 리우가 캐나다에 있을 땐 보고 따라할 아시아 캐릭터가 없었다. 빈약한 서사와 얄팍한 캐릭터들, 인종적인 유머 코드가 전부였기에 그는 어쩌면 외로웠을 것이다. 미디어는 생각보다도 우리의 인식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스크린에 나타나는 인물과 내가 너무나도 다르다면, ‘나는 이 세상과 어울리는 사람인가’ 라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화면 속의 무한한 가능성은 어쩌면 나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쉽게 포기할지도. 그래서 영어식으로 이름을 바꾸고, 억양을 바꾸고, 식성을 바꾸며 그들’처럼’ 자신을 바꾸려 할지도 모른다. 시무 리우는 세계의 아시아인들이 그들 자신으로 살 수 있도록, 그리고 나아가서는 큰 스크린 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앞장 서서 나아간다.
씨네플레이 객원 에디터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