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데이션>

애플이 칼을 갈았다. 넷플릭스의 독주를 막기 위해! 엄청난 뭔가를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애플TV+가 ‘스트리밍 전쟁’에 출전시킨 작품이 아이작 아시모프 원작의 <파운데이션>이다. 이른바 텐트폴(Tentpole) 작품이다. 원작 소설을 쓴 아이작 아시모프는 SF 3대 거장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나머지 두 사람은 아서 C. 클라크와 로버트 A. 하인라인이다. 여기에 필립 K. 딕까지 추가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작 아이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은 1966년 휴고상 역대 최우수 시리즈(Best All-Time Series) 부문을 수상했다. 참고로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후보에 있었다. 또 같은 해 프랭크 허버트의 <듄>이 휴고상 최우수 장편(Best Novel) 부문에 선정됐다. 1966년에서 50년도 더 지난 2021년에 <파운데이션>과 <듄>이 영화와 TV 시리즈로 각각 만들어져서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듄>의 개봉을 기다리는 팬이라면 <파운데이션>에도 관심이 있지 않을까.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에 비해서 덜 알려진 애플TV+의 야심작 <파운데이션>에 대해 알아보자.


샐버 하딘 역의 레아 하비

1. <파운데이션>에 도전한 사람들
애플TV+를 통해 <파운데이션>이 제작되기 전, 실패의 역사를 간략하게 돌아보자. <파운데이션>이라는 고전은 수많은 SF 작품에 영향을 끼친 만큼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자 한 노력이 있었다. 우리가 알 만한 사람 가운데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먼저 도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제작자였으며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각본가 로버트 로댓에 이어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각본가 단테 하퍼를 고용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에머리히 버전의 <파운데이션> 3부작은 사라졌다. 팬들은 에머리히가 구상한 <아바타> 스타일의 3D영화에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안도했다. 에머리히 다음 타자는 <인터스텔라>의 각본가 조너선 놀란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동생인 조너선의 파트너는 HBO였다. <파운데이션>이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TV시리즈로 만드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었다. 다만 이 거대한 산 앞에 놀란도 손을 들고 말았다. 대신 그는 <웨스트월드>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브라데 데이 역의 리 페이스

2. <배트맨 비긴즈> <맨 오브 스틸> 제작진
2018년 애플이 <파운데이션>을 10개 에피소드의 TV 시리즈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 과업을 이끄는 사람은 데이비드 S. 고이어다. 그는 <배트맨 비긴즈>의 각본으로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맨 오브 스틸>도 그의 작품이다. <다크나이트>에는 원안이라는 크레딧으로 이름을 올렸다. <파운데이션>의 레거시(Legacy) 예고편에 <배트맨 비긴즈> <맨 오브 스틸> 제작진이 만들었다는 문구가 등장하기도 한다. 고이어는 “<파운데이션>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SF 소설이며, <스타워즈> 세계관에 지대한 엄청난 미쳤으며, <듄>도 <파운데이션>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한번도 스크린에서 본 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고이어와 함께 아시모프의 딸인 로빈 아시모프도 제작에 참여했다. 그는 “영화화의 실패 이후 스트리밍 시장이 커지면서 <파운데이션>이 제작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가알 도닉 역의 루 로벨

3. 자레드 해리스 대 리 페이스 그리고 신인들
<파운데이션>의 주요 출연진을 알아보자. <파운데이션>의 핵심 인물 해리 셀던을 자레드 해리스가 연기한다. 영국 출신인 자레드 해리스는 TV 시리즈 <체르노빌>에 출연하면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배우다. 영국 왕실의 일대기를 다룬 <더 크라운>과 1950~70년대 뉴욕 광고 회사를 다룬 <매드맨> 등에도 출연했다. 해리 셀던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은 제국을 지배하는 클레온 유전 왕조(클레온 황제 1세의 복제 인간이 계속해서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의 브라더 데이다. 리 페이스가 브라더 데이 역을 맡았다. 페이스는 <호빗> 시리즈에서 스란두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로난 역으로 익숙한 배우다. 자레드 해리스와 리 페이스와 함께 시리즈를 이끄는 젊은 배우들도 있다. 가알 도닉 역의 루 로벨과 샐버 하딘 역의 레아 하비가 그들이다. 두 사람 모두 <파운데이션>에서 처음 주연급 배역에 캐스팅 됐다.

해리 셀던 역의 자레드 해리스

4. 제국의 몰락과 파운데이션의 번영
<파운데이션>이 제작되기까지의 간략한 과거와 제작진, 출연진에 대해 알아봤다. 이제 가장 중요한 스토리를 소개할 차례다. <파운데이션>의 핵심 인물은 해리 셀던은 심리역사학(psychohistory)자다. 심리역사학이라는 것은 수학적으로 미래 예측을 하는 학문이다. 셀던은 제국의 멸망을 예측했다. 그는 수억 명의 통계 데이터를 종합하는 미래가 수학적으로 예측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파운데이션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제국의 몰락으로 3만 년 동안 진행될 암흑의 시대를 1000년으로 앞당길 일종의 문명 대피소 같은 개념이다. 제국의 황제들은 셀던을 재판정에 세운다. 이때 함께 등장하는 인물이 젊은 수학자 가알 도닉이다. 도닉이 유일하게 셀던의 심리역사학 이론의 수학 공식을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황제들은 셀던의 공식을 맞다고 증명한 도닉의 말에 따라 그를 처형하지 않고 파운데이션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그렇게 셀던 일행은 터미너스(Terminus)라는 은하계 끝의 행성으로 떠난다. 사실상 추방이었다. 이후 파운데이션은 제국과 은하계의 지배권을 놓고 경쟁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한다.

5. 원작과의 차이점은?
<파운데이션>은 <듄>이 그랬듯이 스크린으로 옮기기 어려운 소설이다. 무려 1000년의 시간을 다룬다. 고이어는 “1000년의 체스 게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방대한 세계를 어떻게 각색하는가. 이 프로젝트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요소다.  또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이른바 ‘하드 SF’ 작품으로 분류되는 <파운데이션>은 캐릭터보다는 과학적 엄정함과 상상력 등 이야기가 중심인 작품이다. 다르게 말하면 <스타워즈>처럼 매력적인 캐릭터가 우주 전쟁을 벌이는 재미는 없다는 뜻이다. 아시모프 재단과 후손에게 각색에 대한 전권을 부여 받은 고이어는 캐릭터 개발에 힘을 실었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시모프의 아이디어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원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캐릭터의 성별이 바뀐 부분이다. 터미너스에 건설한 파운데이션을 이끌게 될 인물, 샐버 하딘은 흑인 여성 배우 레아 하비가 연기한다. 소설에 비해 액션 지향적인 캐릭터다. 가알 도닉 역시 마찬가지로 여성으로 바뀌었다. 도닉은 셀던의 양자 레이치(앨프리드 이넉)와 연인 관계이기도 하다. 소설에서는 이런 로맨스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또 황제의 보좌관 역할을 하는 에토 데머즐 역시 핀란드 출신의 여성 배우 로라 비른이 연기한다. 다만 데머즐은 성별이 없는 로봇 캐릭터다.

에토 데머즐 역의 로라 비른

6. 관객의 평가는?
<파운데이션>은 9월 24일(현지시각) 1, 2편을 공개하고 일주일마다 새로운 에피소드를 공개하고 있다. 10월 8일 기준 4편까지 공개됐다. 로튼토마토지수는 71%, 관객들의 평가를 반영한 팝콘 지수는 60%를 기록 중이다. 애플TV+의 야심작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즉, 평가가 엇갈린다고 볼 수 있다. 호평은 대체로 시각적 완성도에서 비롯된다. 1, 2회에 쏟아부은 돈만 해도 1000억 원 가까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CGI를 비롯해 의상, 미술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휘황찬란하다. 극장의 큰 화면에서 보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돌비비전이 지원되는 고화질의 TV가 있는) 관객들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줄 수 있다. 지나친 각색에 반감이 있는 원작의 팬들도 이 부분에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책을 읽으며 상상만 했던 제국의 수도 트랜터의 모습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반면 악평에서는 이야기의 지루함을 지적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고이어가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초반 에피소드에서는 그 힘이 제대로 발휘가 되지 못한 듯하다. <파운데이션>의 이야기는 여전히 진지한 편이다.


애플TV+의 칼을 갈고 만든 <파운데이션>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봤다. <파운데이션>은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들었지만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에 비하면 존재감이 미미한 수준처럼 느껴진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을 영상으로 만들었다는 점에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는 <듄>의 경우와도 마찬가지다. 두 작품을 함께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SF 팬에게는 좋은 감상법이 될 수 있다. 현재 애플TV+는 국내에 공식 서비스되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 계정을 통하면 한글 자막과 함께 시청할 수 있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