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지망생이자 현직 영어교사인 마일스(폴 지아마티 분)와 한때는 잘 나갔지만 지금은 한물간 배우 잭(토마스 헤이든 처치 분)은 20년지기 단짝입니다. 그들은 잭의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총각파티를 겸해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 지역의 와인농장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나잇값을 못하는 철없는 중년임이 분명합니다. 글쎄, 마일스는 엄마의 일흔 번째 생일날 집에 들러 슬쩍 챙긴 비상금으로 여행경비를 마련하고, 일주일 후면 품절남이 될 잭은 약혼녀가 있음에도 다른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 아무에게나 수작을 걸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게다가 여행을 떠나는 두 사람의 기호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사사건건 부딪힙니다. 와인 애호가인 마일스는 와인농장을 돌며 최고의 와인을 맛보겠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잭은 마지막까지 청춘을 불사르겠다며 들떠있습니다. 딱 봐도 이 여행이 순탄할 리 없어 보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여행은 예정대로 시작됩니다. 가자! 와이너리로!

마일스에겐 이 순간이 더없이 행복해 보입니다. 이혼 후 전처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며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그에게는 와인만이 유일한 안식처였거든요. 잘 숙성된 와인을 한 모금만 마셔도 황홀한 맛의 세계를 정확히 그려내는 능력을 타고난 마일스. 감귤과 딸기, 패션푸르트, 미세한 맛의 아스파라거스와 소량의 치즈 향까지 모두 잡아냅니다. 반면 잭은 와인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와인을 시음할 때도 껌을 씹고 있을 정도로 무심하다니까요.

와인을 마시고 골프를 즐기거나 일광욕을 만끽하려 했던 여행의 계획은 뜻밖의 만남으로 점차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잭은 와이너리에서 만난 ‘섹시녀’ 스테파니(산드라 오 분)에게 작업을 걸어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고, 소심하면서도 섬세한 남자 마일스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웨이트리스 마야(버지니아 매드슨 분)에게 호감을 갖고 다가가려 합니다.

스테파니와 관계가 발전할수록 자신이 곧 결혼할 남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은 잭, 마야가 좋으면서도 이혼의 경험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마일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의 여행은 거짓말이 들통나면서 또 다른 상황으로 접어듭니다
.

와이너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니 두 남자 주인공을 와인에 비유해볼까 합니다. 마일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 피노(Pinot)를 쏙 빼닮았습니다. 피노는 온도 변화에 민감하고 껍질이 얇으며 익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계속 지켜봐야 하는 품종입니다.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마일스에게 어울리죠.

잭은 어떨까요? 어딜 가든, 누구와 있든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는 그는 어떤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카베르네(Cabernet)를 닮아 있습니다. 영화의 주요 소재가 된 와인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이 작품이 개봉한 후 와인 판매율이 상승했다고 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대사만으로도 와인에 대한 환상을 키워가기엔 충분한 것 같네요.

“오직 인내심과 사랑을 가진 사람만이 피노를 키워낼 수 있어요. 피노의 잠재력을 이해하려고 많은 시간을 투자한 사람만이 피노의 진정한 맛을 끌어낼 수 있어요.”

“와인은 끊임없이 변하죠. 만약 내가 오늘 와인을 땄다면 그 맛은 다른 날과는 확연히 다를 거예요. 왜냐면 와인은 사실상 살아있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는 마일스가 평소 아껴두었던 1961년산 슈발 블랑(Cheval Blanc)을 꺼내던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그는 이 와인을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에 마시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와인 마개를 열던 날은 아이러니하게도 40여 년간의 인생 중 최악의 순간이었습니다.

패스트푸드점 구석에 앉아 싸구려 햄버거와 가장 아끼던 슈발 블랑을 마시던 그의 모습은 처절하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다소 찌질해 보이는 마일스란 남자가 마야를 꼭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생의 오늘이 중요한 이유를 넌지시 짚어주는 지혜로운 여자가 많지는 않으니까요.
영화는 제목 <사이드웨이>처럼 의도치 않게 ‘샛길’로 빠져나가게 되는 ‘쉽지 않은 인생’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나이는 먹었지만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뜻하는 대로 되는 일도 없으며 늘어가는 건 주름과 허풍뿐입니다. 이들이 저지르는 실수가 어이없으면서도 한편으론 짠한 마음이 드는 건 아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중년 남성의 모습이기 때문일 겁니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일렉션>,<어바웃 슈미트>,<디센던트> 등의 작품으로 호평을 받아왔습니다. 저는 그가 가벼운 코미디 형식의 작품에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삶의 통찰력을 듬뿍 불어넣을 때 소소한 감동을 받곤 합니다. 한 편, 한 편 모두 재미있는 작품들이니 시간이 된다면 감상해보세요.


영화 속 메뉴 따라하기

와인에 어울리는 안주는 단연 치즈죠. 치즈는 종류에 따라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감칠맛까지 다양하게 갖고 있는 터라 와인의 맛과 향을 더 잘 느끼도록 도와줍니다. 영화 속에 소개된 와인에 곁들이면 좋을 만한 간단한 치즈 요리는 뭐가 있을까 나름 고심해봤습니다. 구하기 어려운 외국 치즈를 이용한 메뉴보다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한 번 사두면 꼭 남게 되는 슬라이스 치즈를 택했죠. 어릴 적, 아빠의 손님들이 불시에 닥칠 때면 엄마는 자주 이 메뉴를 만드셨어요. 이 메뉴를 변형해보고 싶은 분들은 슬라이스 치즈 대신 체다치즈, 고다치즈 등을 직접 잘라서 만들어도 좋습니다.

호두 크랜베리 치즈
재료
슬라이스 치즈 10장, 다진 호두(혹은 캐슈넛이나 아몬드 등) 3 큰 술, 건조 크랜베리(혹은 블루베리나 건포도 등) 3 큰 술
만들기
1. 알루미늄 포일에 슬라이스 치즈 2장을 깔고 그 위에 다진 호두와 다진 건조 크랜베리를 조금 덜어 얹는다.
2. 1의 위로 다시 치즈 2장을 얹고 같은 방법으로 견과류, 크랜베리를 얹기를 반복한 뒤 제일 윗면은 치즈가 오도록 한다.
3. 윗면을 포일로 감싼 뒤 김이 오른 찜통에 넣어 5분간 찐다.
4. 찐 치즈는 포일째 꺼내 한 김 식힌 뒤 냉장실에서 30분 이상 차게 식힌다.
5. 포일을 벗겨 먹기 좋게 썰고 크래커 등을 곁들인다.


파란달 /  요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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