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요즘 같은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시기겠다. 고현정의 <너를 닮은 사람>부터 이영애의 <구경이>, 전지현의 <지리산>, 송혜교의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임수정의 <멜랑꼴리아>, 한효주의 <해피니스>까지. 굵직한 배우들의 면면이 하루걸러 하루 브라운관을 장식하며 연말을 꽉꽉 채우고 있다. 그중에서도 시청자들에게 “연출 맛집”이라는 평을 얻으며 뒤늦게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드라마 한 편이 있으니. 바로 이영애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구경이>다. 추레한 몰골을 하고 있는 이영애의 얼굴로 시선을 붙든 <구경이>는 이영애란 이름에만 기대지 않고 매회 신선한 연출을 펼쳐 보이며 많은 이들의 호평을 끌어안고 있다. 어느덧 종영을 앞두고 있는 <구경이>. 이 드라마에 많은 이들이 스며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봤다.

구경이

연출 이정흠

출연 이영애, 김혜준, 곽선영, 김해숙, 이홍내, 백성철, 조현철

방송 2021, JTBC

상세보기

이상해서 재밌는
"이상한 드라마여서" <구경이> 제작보고회 당시, 이영애는 <구경이>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대본을 받아 들고 "이상하고 독특하고 재미"있는 감정을 모두 느꼈다는 이영애는, 어느 하나 평범한 게 없었기에 이 이야기에 끌렸다고 밝힌 바 있다. 이영애의 말이 증명하듯 <구경이>는 국내 드라마에서는 흔히 볼 수 없었던 설정이 넘쳐난다. 우선, 메인 캐릭터 구도부터 신선하다. 게임 폐인으로 전락한 40대 여성 탐정 구경이(이영애)와 정의구현이라는 대의를 품고 해맑게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 케이(김혜준). 이 둘의 관계를 앞장세우며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크게 봤을 땐 영국 드라마 <킬링 이브>를 연상시키기에 초반엔 '한국판 <킬링 이브>'라는 수식어가 따르기도 했으나. 회차를 이어나가며 <킬링 이브>와는 확연히 다른 지점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20대 여성과 40대 여성, 은퇴한 탐정과 어린 살인마를 정면에 배치했다는 설정 외에도 스릴러와 코미디를 오가는 괴랄한 연출을 펼쳐 보이고 있는 <구경이>는 이영애가 느꼈던 낯선 매력을 시청자에게도 그대로 전하며 "이상한데 재밌다", 아니 "이상해서 재밌다"는 평을 얻고 있다.  


클리셰를 벗어난 캐릭터 설정
그렇다면 이제부터 이 드라마가 왜 이상하고도 재밌는지를 이야기해보자. <구경이>의 이상한 매력의 8할은 캐릭터 설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마주한 드라마 속 캐릭터들과는 전혀 다른 특징과 서사를 지닌 이들이 <구경이>를 이끈다. 구경이와 케이가 살인의 진위를 두고 수 싸움을 이어나가는 와중에도 이 드라마가 재기발랄함을 잃지 않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이 드라마에서 살인자 케이는 무섭다거나 위협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유혈 사태를 일으키기보다는 아주 철저하게 짜여진 계획안에서 화학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죽이고 마치 살인을 장난으로 여기는 듯 늘 해맑고 기쁜 표정을 짓고 있다. 게다가 사이코패스라는 탈을 쓰고도 약자가 아닌 악한 자를 선택해 살인을 감행하는 케이는 그동안 우리가 쉽사리 보지 못했던 유형의 여성 살인마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설명은 아주 납작한 단면에 불과하다. <구경이>는 동성애를 녹이는 방식, 선과 악을 드러내지 않는 다층적인 묘사, 클리셰를 벗어난 여성 캐릭터와 남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며 전에 없던 캐릭터 맵을 완성했다.


연출 스타일
독특하면서도 촘촘하게 연결된 서사와 캐릭터를 더 돋보이게 만드는 건 <구경이>의 연출 방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경이>를 두고 '미친 드라마'라는 표현을 쓰게 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보낸 연출은 화면을 전환하는 방식. <구경이>에서는 각 캐릭터들이 지닌 과거 기억와 트라우마가 계속해서 공개되는데, 그럴 때마다 계산된 카메라 워킹과 편집을 통해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로 넘어가며 이야기의 맥을 끊기지 않게 한다. 특히 케이와 구경이를 교차로 보여주는 화면 전환 방식이 가장 많은데.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가거나,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올 때면 케이와 구경이의 얼굴을 겹쳐 보이게 하고, 특정 장면 끝과 시작에서 두 사람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며 두 사람이 지닌 관계성을 더 돋보이게 만든다. 무엇보다 화면을 전환하는 방식이 어색하다거나 억지스럽지 않은 이유는 이미 사전에 철저하게 계산된 결과와도 같기에, <구경이> 제작진이 연출 디테일에 얼마나 공을 쏟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 편의 연극
<구경이>의 연출 방식이 다른 드라마와는 또 다른 점 한 가지는, 마치 한 편의 연극 혹은 만화를 보는 듯한 구성을 취한다는 점이다. '제3화'가 아닌 '제3막'이라고 표현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에서 연극은 주요한 요소 중 하나. 먼저, 구경이와 나제희(곽선영), 경수(조현철)와 산타(백성철)가 한데 모여 케이의 살인 수법을 추측하는 장면에선 그저 대사를 통해 상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 무대를 구현해내며 시청자의 이해를 도왔다. 그저 회상이나 말로서 묘사를 할 수 있는 부분이었음에도 한 편의 연극처럼 케이의 살인을 재구성한 것. 즉 단순히 사실적 묘사에 얽매이기보다는 극적인 요소들을 녹여내며 곳곳에 생경한 재미를 더하고 있는 중이다. <구경이>에서 연극이 의미하는 바는 또 있는데. 바로 케이의 살인 수법이 연극 극본을 모티브로 한다는 점이다. <헨젤과 그레텔>, <메두사> 등 연극의 설정들을 직간접적으로 차용하며 그저 케이에게 살인이란 하나의 쇼와 연극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프닝·엔딩 에니메이션
<구경이>는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 역시 색다르다. 구경이와 케이를 애니메이션 속에 녹여낸 애니메이션으로 극의 문을 열고 닫으며 팬들에게 또 다른 재미와 떡밥을 선사한다. 리듬감 있는 모션 그래픽을 활용한 이 애니메이션은, 매회 케이와 구경이의 서사가 변화하는 모습에 맞춰 그림체가 달라진다. 극이 끝날 때마다 엔딩 애니메이션을 확인하는 것 역시 <구경이>를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


김태성 음악 감독
<구경이>의 연출 스타일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이기도 하다. 적절한 타이밍에 틀어져 긴장감을 더하는 <구경이>의 음악들을 스릴러와 코미디를 한데 어우르며 <구경이>만의 분위기를 빚어내는데 가장 큰 몫을 해냈다. 이미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는 업계 최고로 인정받는 김태성 음악 감독이 <구경이>의 음악을 총괄했다. 기존의 드라마에서 사용되는 음악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곡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역시 <구경이>의 관람 포인트 중 하나가 됐다.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