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못 알아볼 수도 있겠다. 평소 그가 맡았던 캐릭터를 생각하면 이번 연기가 더욱 판이하게 다르게 보일 테니까. 사실 이런저런 이유를 다 떼고 그냥 이 배우의 연기가 탁월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를 죽여줘>의 현재로 돌아온 안승균은 선천적 지체장애인을 연기해 지체장애인이 살아가는 삶의 단면을 탁월하게 펼쳐 보인다. 10월 19일 개봉하는 <나를 죽여줘>와 함께 배우 안승균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 나를 죽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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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최익환
출연 장현성, 안승균, 이일화, 김국희, 양희준
개봉 2022.10.19.
무대를 거쳐 스크린에 안착한 <나를 죽여줘>
<나를 죽여줘>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단 이 영화는 희곡 「킬 미 나우」를 원작으로 한다. 캐나다 작가 브레드 프레이저의 작품이 한국에서 영화화된 다소 독특한 케이스. 희곡 「킬 미 나우」는 국내에서도 2016년, 2017년, 2019년 총 세 차례에 공연됐다. 공개된 내용만 봐서는 원작의 캐나다 배경을 영화에서 한국 배경으로 옮긴 것을 빼면 기본 뼈대는 그대로 가져온 것 같다. 한때 천재적인 작가로 이름을 알렸지만 지금은 아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아빠 제이크/민석, 선천적 지체장애를 타고나 아버지의 지극정성을 받아왔지만 이제는 독립하고 싶은 조이/현재, 두 사람을 중심으로 장애인의 삶과 개인으로서 존엄성을 얘기한다.
안승균은 이번 영화에서 현재 역을 맡았다. 선천적 지체장애를 지닌 인물이었기에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되 그만큼 연기에 제약이 있었으리라. 안승균은 현재의 신체적 한계를 표현하고자 장애인 단체와 뇌병변 유튜버 등을 만나 그들의 고충을 세심히 살피고 캐릭터에 녹였다. 그 열정은 함께 호흡을 맞춘 선배 배우 장현성조차 "많이 배웠다"고 회상할 정도로 뜨거웠다고.
안승균이 현재 역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 또한 무대에서 데뷔하고 활동했지만 연극 <킬 미 나우>에 출연한 적은 없다. 그전에 현재/조이 역은 윤나무, 오종혁, 신성민, 서영주가 연기한 바 있다. 민석을 연기한 장현성은 2019년 제이크로 출연했었다. 장현성 외에 제이크를 연기한 배우는 이석준, 배수빈, 이승준이다. 연극 원작이라 그런지 주요 배역에 연극/뮤지컬 출신 배우가 많다. 수원 역의 이일화를 제외하고 하영 역 김국희, 기철 역 양희준 모두 무대에서 활동 중인 배우들이다.
교복 착붙 동안남 안승균
안승균 하면 가장 많이 따라붙는 단어가 교복일 것이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전교 2등 오준영을 연기했는데, 촬영 당시 26살이었는데도 전혀 이질감 없는 '고딩' 외모로 화제였다. 하필 양대수를 연기한 임재혁이 안승균과 동갑내기 친구인데 살까지 찌운 터라 유독 비교가 되기도.
<지금 우리 학교는> 촬영장 속 안승균의 활약상은 10회의 강당 장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창고에 있는 물건으로 카트를 만들어 강당을 벗어나려는 일행은 좀비떼에 가로막혀 고립될 위기에 처한다. 이때 오준영이 위험을 무릅쓰고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 카트를 밀기 시작하는데, 그때 "집에 가자!"라고 외친다. 이 "집에 가자"라는 대사는 안승균이 만든 애드리브였다고. 많은 시청자들이 눈물을 쏟은 장면이 사실은 안승균의 애드리브였다니, 그의 센스와 캐릭터 분석력이 정말 빛난 순간이다.
이렇게 교복이 착붙인 탓에 20대에 매체 데뷔를 했지만 유독 고등학생으로 출연한 작품이 많다. 데뷔 드라마 <솔로몬의 위증>, <학교 2017>, <안단테>에서 학생 캐릭터를 맡았다. 그래도 연기력이 남다른 탓이었는지 <나의 아저씨>에서 송기범 역을 맡으면서 학생 이미지를 벗을 수 있었고, 인지도도 확실하게 쌓기 시작했다. 이후 여러 드라마에서 형사, 직장인, 이공계 대학원생 등 다양한 직업의 캐릭터를 소화하다가 <지금 우리 학교는> 오준영으로 다시 고등학생으로 복귀한 것. 20대 후반 나이에도 위화감이 없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
오디션 뚫고 데뷔해 조용한 입대까지
안승균의 데뷔 스토리는 꽤 화려하다. 본래 그의 꿈은 배우가 아녔다. 고등학생 시절, 연기가 아니라 춤에 미쳐 있었다고 회상할 정도로 그에게 배우나 연기는 가까운 곳에 있지 않았다. 스트리트 댄서로 활동하면서 예술고등학교 '댄스과'로 입학한 안승균, 그런데 신입생 환영회 때 연극과 선배들이 보여준 연극에 오열했다. 작품이 슬픈 것도 아녔는데, 연기를 하는 모습이 멋있어서 눈물이 났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연기가 하고 싶어져서 연극으로 전과를 희망했고, '일단 댄스과에서 열심히 해보자'는 선생님들의 의견에 따라 1년간 댄스과에서 성과를 거둔 후 연기할 수 있는 과로 진로를 전향했다.
그가 연기에 '입덕'한 순간만큼 극적인 것은 연극 <렛 미 인> 출연이다. 욘 린드크비스트가 집필한 스웨덴의 동명 소설을 연극으로 옮긴 <렛 미 인>은 꽤 큰 프로젝트였다. 스웨덴에서 한 번, 할리우드에서 한 번 영화화된 소설이라 인지도도 있고,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의 공연을 그대로 가져오는 '레플리카 프로덕션' 연극이기 때문. 안승균이 <렛 미 인> 오디션을 본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조차 '경험 삼아 본다고 생각해라'고 말할 정도였다. 당시 안승균은 소극장 뮤지컬 한 편, 연극 한 편만 했던 '초짜'였으니까.
그런데 그 <렛 미 인> 초연 캐스팅에 안승균의 이름이 올라갔다. 오승훈과 함께 오스카 역으로 더블캐스팅된 것이다. 당시 제작사 측에서 공개한 오디션 경쟁률은 600:1. 총 4차까지 있는 오디션에서 안승균은 연출진의 꼼꼼한 시선에도 살아남아 배역을 얻었다. "죽기 전에 서보고 싶었던 꿈의 무대"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 데뷔한지 1년 만에 입성했다. 그리고 이 작품에 이어 <솔로몬의 위증>으로 매체에 데뷔하면서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는데 성공한다.
안승균이 뮤지컬, 연극으로 데뷔하고 금방 얻은 별명이 있는데, '리틀 홍광호'이다. 홍광호는 2002년 <명성황후> 앙상블을 시작으로 <지킬 앤 하이드>, <스위니 토드>, <맨 오브 라만차> 등 유명 뮤지컬 주연을 맡고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까지 진출했던 뮤지컬 배우(예능 <무한도전> 뮤지컬 편에 출연했다). 안승균이 홍광호에 닮아서 데뷔 초 '리틀 홍광호'라고 부르는 팬들도 더러 있었다. 안승균은 이후 홍광호와 실제로 만난 적이 있는데, 홍광호 본인도 "닮긴 닮았네"라고 인정했다고.
이렇게 신작 영화가 개봉하는데 안승균이 조용한 이유는 다름 아닌 군 복무 중이기 때문. 안승균은 <지금 우리 학교는> 공개 전 입대한 경수 역의 함성민, 장우진 역의 손상연에 이어 2022년 2월 군에 입대했다. 앞선 두 배우들에 비하면 <지금 우리 학교는> 관련 활동과 반응을 조금이라도 맛보고 입대하는 것이지만, 워낙 조용하게 입대해서 팬들조차 잘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입대 사실을 알았다고. 열심히 군 복무 중인 안승균은 <나를 죽여줘> 최익환 감독, 장현성, 이일화의 인터뷰에서 "대단한 배우" "맑은 배우" "영리하고 정확한 배우"라는 칭찬으로 꾸준히 소환되고 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