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개봉하는 영화들의 러닝 타임이 심상치 않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러닝 타임은 총 161분으로, 2시간 41분에 달한다. 12월 베일을 벗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2: 물의 길>은 3시간 10분이 확정되며 한차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개봉을 앞둔 또 다른 기대작,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바빌론> 역시 3시간 8분이다. 영화 역사의 시작점을 돌이켜 봤을 때, 5분~15분 내외 단편이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가히 놀라운 발전이지 않나. 보통 상업영화들의 러닝타임은 100분 내외에서 120분을 웃돌지만, 이처럼 최근 들어 140분 이상의 상영 시간을 가진 긴 호흡의 영화들이 극장가를 찾아오고 있다. 3시간은 기본이요, 최대 7시간의 러닝 타임을 자랑하는 수작들을 선정해 봤다. 관람 전, 허리 스트레칭을 까먹지 않기로 하자. 


<아이리시맨>
<아이리시맨>

<아이리시맨>
감독│마틴 스코세이지
출연│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제시 플레먼스
러닝 타임│209분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 <갱스 오브 뉴욕> 등 갱스터 사회의 이면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갱스터물의 거장으로 떠오른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2000년대 들어 <셔터 아일랜드>, <더 울프 오브 윌 스트리트>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던 그는 <아이리시맨>으로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제작비만 1억 5900만 달러, 러닝 타임이 무려 3시간 29분에 달하는 <아이리시맨>은 지미 호파 실종 사건을 소재로 각색한  갱스터물이다. 영화는 '아이리시맨'이라 불린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의 일생을 따라가며 지미 호파(알 파치노), 더 나아가 러셀(조 페시)까지 세 사람의 관계를 파헤친다. 화려한 액션이나 특출난 연출 기법 없이 담백하고 현실적인 70~90년대 범죄 영화에 가까운 만큼 루즈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명배우들의 연기와 스코세이지 감독 작품의 익숙한 레퍼런스들을 찾으며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21세기 최고작"이라는 평과 함께 만점을 줬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총 10개 부문 노미네이트 작.

아이리시맨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출연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개봉 20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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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유레카>

<유레카>
감독│아오야마 신지
출연│야쿠쇼 코지, 미야자키 아오이, 미야자키 마사루, 사이토 요이치로
러닝 타임│217분


버스 납치 및 살인 사건의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버스 기사 사와이와 나오키 남매. 이들은 쏟아지는 관심과 곡해되는 소문 속에 일상이 파괴되자 은둔을 택하고 각자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2년이 지난 어느 날, 사라졌던 사와이가 다시 돌아오고 마을엔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자연스레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자 사와이는 나오키 남매를 찾아가고, 단둘이 남겨진 남매와 함께 살 결심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키 남매의 사촌 형 아키히코가 이들을 찾아오고, 네 사람은 버스를 훔쳐 마을을 떠난다. 아오야마 신지 감독의 <유레카>는 일상을 버텨내려는 생존자들의 사투만 다룬 것이 아니다.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을 유추해 내며 인간성과 실존의 의미를 탐구한다. 화면마저 건조한 세피아톤으로 이루어져 현실의 폭력적인 이면들이 더욱 쓸쓸하게 다가올 것. 마침내 그들은 서로를 구원해낼 수 있을까. 3시간 37분에 달하는 시간과 익숙하지 않은 정제된 화면에 진입장벽이 있는 편이지만 그 어느 영화보다 깊은 감정적 여운을 선사한다.

유레카

감독 아오야마 신지

출연 야쿠쇼 코지, 미야자키 아오이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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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감독│후 보
출연│팽욱창, 장 위, 왕위원, 리총시
러닝타임│234분


친구의 아내와 바람을 피운 남자. 불륜을 목격한 친구는 남자의 앞에서 투신자살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동생이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을 그렇게 만든 아이를 찾아 나선다. 한편, 학교 폭력에 휘말린 소년은 친구를 지키려다 가해자를 중태에 빠트리게 되고 졸지에 살인자 취급을 받게 된다. 도망가려는 소년의 발목을 잡는 건 짝사랑하는 소녀 황링. 그는 현재 학교 부주임과 원조교제 중이다. 한편, 퇴역 군인인 황진은 딸 부부와 살고 있지만 늙었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버려져 양로원에 가게 된다.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인물들의 네 에피소드를 엮어낸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서로 얽힌 그들은 공통적으로 코끼리가 있는 만저우리에 가고 싶어 한다. 그들이 만저우리에 도달해 마주하고 싶었던 것은 정말 코끼리였을까. 그곳에서 본 코끼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로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는 무기력한 사회에서 만저우리로 향하는 인물들의 발걸음은 발버둥에 가깝다. 온통 우울하고 암울한 화면은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더욱 절박하게 느끼게 만든다. 234분의 긴 러닝타임을 할애하여 세심하게 그려낸 절망의 연대기는 금마장 영화제에서 작품상, 각색상, 관객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감독 후 보는 영화를 완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9세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해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는 데뷔작이자 유작으로 남았다.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감독 후 보

출연 팽욱창, 장 위, 왕위원, 리총시

개봉 20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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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감독│세르지오 레오네
출연│로버트 드 니로, 제임스 우즈, 제니퍼 코넬리 
러닝타임│251분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을 맡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주인공 누들스의 청년기였던 1921년, 1932년을 주 배경으로 미국의 금주법이 실행되던 시대를 한 인물의 역사에 엮어낸 갱스터 물이다. 영화는 1968년 누들스의 노년기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시작해 장장 251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누들스의 인생을 되짚는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유작으로, 감독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은 영화의 판본이 관객들에게 전달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세르지오 레오네가 촬영을 마쳤을 당시 확보한 필름의 분량은 약 10시간 정도. 편집 감독 니노와 함께 상영 시간을 6시간으로 편집, 2부작으로 나누어 개봉하길 바랐으나 제작사의 거절에 따라 물거품이 됐다. 1984년 칸영화제 초연 당시 공개된 버전은 229분으로, 이는 다행히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개봉을 앞두고 다시 한번 제작사의 입김으로 인해 영화가 139분으로 가위질 됐기 때문이다. 절반에 가까운 분량이 삭제됐기에 영화의 개연성에도 큰 영향이 갔을 터. 감독의 의도가 온전히 반영되지 않은 영화에 쏟아진 비평가들의 혹평은 세르지오 레오네에게도 큰 충격과 슬픔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이후 2011년 칸영화제에서 레오네 감독의 후손들과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참여해 재편집한 246분 버전이 공개됐다. 그러나 최종 버전은 2015년 5분의 분량이 추가되어 4K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한 확장판으로, 총 상영 시간은 4시간 11분에 달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출연 로버트 드 니로

개봉 1984.12.00. / 2015.04.09.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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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감독│에드워드 양
출연│장첸, 양정이
러닝타임│237분


1980년대에 시작된 대만 뉴웨이브의 흐름.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 함께 뉴웨이브의 대표 주자로 불리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다. <타이페이 스토리>, <공포분자>와 함께 타이페이를 배경으로 한 '타이페이 3부작'이라 불리며, 그 마지막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대만 역사상 최초의 미성년 살인범을 소재로 만들었다. 1960년대 독재 정치 하에 무너지는 가정과 개인의 삶을 14살 소년 샤오쓰(장첸)을 통해 그려내며 인물의 성장에 독재의 역사를 촘촘히 새겨 넣어 호평 받았다. 느릿하지만 현실성을 고스란히 담아낸 연출과 섬세하게 심어둔 복선들, 에드워드 양 특유의 빛을 활용한 수려한 미장센, 사운드트랙까지 완벽한 시너지를 낸 걸작이다. 장첸의 데뷔작으로, 제28회 금마장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개봉 26년이 흐른 2017년이 되어서야 정식 개봉됐으며, 약 3시간 57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으로 인해 상영 당시 1부와 2부 사이 쉬는 시간 10분이 주어지기도 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감독 에드워드 양

출연 장첸, 양정이

개봉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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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감독│피터 잭슨
출연│일라이저 우드, 숀 애스틴, 앤디 서키스, 이안 맥켈런, 비고 모텐슨, 올랜도 블룸
러닝 타임│263분


피터 잭슨 감독이 연출한 21세기 위대한 판타지 시리즈 영화 <반지의 제왕>. 1950년대 J.R.R 톨킨이 집필한 동명의 소설 시리즈를 영화화했다. 호빗족들의 마을인 샤이어에 살고 있는 프로도가 삼촌 빌보로부터 물려받은 반지의 위험성을 알고 파괴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다뤘다. 소설의 세계관이 방대한 만큼 영화 역시 압도적인 비주얼과 스토리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부터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까지 총 세 편으로 제작됐다. 영화의 흐름과 제작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한 번에 세 편 분량의 촬영을 진행한 비하인드는 익히 유명하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러닝 타임이 상당히 길기로도 유명한데, 확장판 트릴로지를 전부 정주행 하려면 총 12시간 6분이 소요된다. 무려 반나절 동안 앉아서 봐야 정주행이 가능하다. 그중에서도 결말이 담긴 마지막 편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 4시간 23분으로 시리즈 중 가장 긴 러닝 타임을 지녔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감독 피터 잭슨

출연 일라이저 우드, 숀 애스틴, 앤디 서키스, 이안 맥켈런, 리브 타일러, 비고 모텐슨, 올랜도 블룸, 존 라이스 데이비스, 빌리 보이드, 도미닉 모나한, 버나드 힐, 미란다 오토

개봉 2003.12.17. / 2021.03.18.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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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아워>
<해피 아워>

<해피 아워> 
감독│하마구치 류스케
출연│타나카 사치에, 기쿠치 하즈키, 미하라 마이코, 카와무라 리라
러닝 타임│328분


하마구치 류스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에 이어 근 10년 사이 일본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영화감독이다. 그는 2018년 영화 <아사코>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 이어 <스파이의 아내>, <우연과 상상>으로 세계 영화제를 휩쓸었다. 무엇보다 그는 2021년 <드라이브 마이 카>로 국내외 평단의 극찬을 받은 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아시아에선 봉준호에 이어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각색상, 감독상, 최우수 작품상,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이름을 올렸으며,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며 일본 영화계를 이끌 차기 거장 감독으로 떠올랐다. <해피 아워>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2015년 연출작이다. 누구보다 끈끈하다 믿었던 네 명의 친구 아카리, 사쿠라코, 후미, 준은 어느 날 이혼과 불륜 고백을 하고 사라진 준으로 인해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준의 폭탄 발언으로 세 명의 친구들은 자신의 현재와 관계를 되돌아보며 성찰을 통해 연대로 나아간다. 온전한 '해피 아워'는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각자의 위기에 직면한 네 명의 여성들을 감독은 긴 호흡과 많은 대사로 면밀하게 들여다보며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낸다. 총 영화의 상영 시간은 317분이며, 국내에서는 11분의 인터미션을 포함한 5시간 28분으로 상영하였다. 

해피 아워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타나카 사치에, 기쿠치 하즈키, 미하라 마이코, 카와무라 리라

개봉 202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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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탱고>
<사탄탱고>

<사탄탱고>
감독│벨라 타르
출연│미하리 비그, 푸티이 호르바스
러닝타임│438분


프레임에 비친 모든 움직임들을 10분 내외의 길이로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인 감독 벨라 타르는 난이도가 극악에 달하는 롱테이크로 저명하다
. 영화를 구성하는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롱테이크는 인간의 삶을 낱낱이 꿰뚫어보듯 예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지극히도 현실적인 프레임은 초현실적인 감각으로 이끌고, 마침내 인간과 그가 속한 사회의 파멸을 응시하게끔 만든다. <런던에서 온 사나이>, <토리노의 말> 등 다수의 작품을 남기고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한 벨라 타르의 대표작 <사탄탱고>. 1985년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집필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사탄탱고>는 러닝 타임이 무려 438분, 7시간 18분에 이르는 작품이다.

전염병으로 가축들이 죽고 상권은 붕괴된 마을에서 주민들은 서로의 돈을 탐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1년 반 전 죽었던 이리미아시가 살아서 돌아온다는 소문이 돌고, 주민들은 메시아의 부활이라 칭하며 자신들의 타락된 삶을 구제해 줄 것이란 희망을 품기 시작한다. 영화는 선명한 명암의 대비로 그려낸 흑백 화면을 통해 희망이 거세된 마을의 풍경을 스산하게 전달한다. 암울함을 극대화하는 롱테이크는 숨 막히는 듯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할 것. 덕분에 <사탄탱고>는 수많은 거장들의 찬사와 더불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명작으로 남았다.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시네필이라면 한 번쯤은 관람을 도전해 보시길.  

사탄탱고

감독 벨라 타르

출연 미하리 비그, 푸티이 호르바스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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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객원기자 루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