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넘어가는 차창 너머로 타워 오브 파워(Tower of Power)의 ‘You’re still a young man’이 흘러나온다. “You’re still a young man baby ooh ooh don’t waste your time” (젊은이여 자네는 아직 어려. 시간을 낭비하지 말게나)라는 후렴구 가사가 21세 아시안 청년의 귓가를 맴돈다. 이 노래는 청년의 찬란한 아메리칸드림이 될 수 있을까? 언뜻 금문교의 이름처럼 황금빛 기회가 가득한 미국으로 향하는 새 출발처럼 보이지만, 사실 21세의 한국인 청년 이철수의 목적지는 무법지대나 다름없는 트레이시 교도소였다. 그 당시 이철수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는 타워 오브 파워보다는 차라리 스팅의 ‘Englishman in Newyork’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스팅의 노래는 사건이 발생한 지 14년이 지나서야 발매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이철수 사건 편

지난 9월 7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이하 꼬꼬무)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남자 ‘이철수 사건’을 조명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개월 뒤인 10월 18일 영화 <프리 철수 리>가 극장에 개봉될 예정이다.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과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 상영을 통해 국내외 관객들에게 충격을 가져다준 다큐멘터리 <프리 철수 리>의 기자 간담회에는 ‘이철수 구명 운동’의 주역이었던 랑코 야마다 변호사와 하줄리, 이성민 감독, 김수현 프로듀서가 참여하여 해당 사건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나누기도 했다. 도대체 21세의 청년 이철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기자 간담회와 ‘꼬꼬무’ 그리고 영화 <프리 철수 리>를 통해 억울하게 누명을 쓴 젊은 청년 이철수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보았다.


시대가 만들어 낸 거짓 용의자

1973년 6월 한낮의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사거리에서 총성 세 발이 발사된다. 다수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중국 갱단의 간부 입이탁이 총에 맞아 살해되었고, 범인은 그 길로 도주한다. 경찰은 21세의 한국인 남성 이철수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목격자 진술과 맞지 않는 인상착의에도 불구하고 그를 체포하기에 이른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총을 발사한 남성은 키가 175 이상에 콧수염이 없는 동양인 남자였다. 이철수는 당시 콧수염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고 키는 160이 조금 넘는 수준의 왜소한 체격이었다. 방에서 발견된 그의 총도 범행에 사용된 총 모델과는 달랐으며, 심지어 그 총은 이철수의 소유가 아니라 일하고 있던 나이트클럽 매니저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청소년기에 방황하며 소년원에 수감되었던 전력과 샌프란시스코의 아시아 갱단과 전쟁을 선언한 지방 정부의 태도가 맞물려 그는 살인죄로 기소되었고, 모든 증거가 그가 범인이 아님을 가리킴에도 불구하고 종신형을 선고받게 된다.


무법지대의 교도소와 구명 활동의 시작

1977년 6월 새크라멘토 유니언이라는 지역 언론의 탐사 보도 기자로 활동하는 이경원 기자는 우연히 이철수 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사건 기록과 재판 기록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철수의 재판과 수사가 완전 엉터리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곧장 기획 기사 준비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기사 발행을 앞둔 1977년 10월 이철수의 이름은 사회 면에 다시 한번 등장하는데, 그가 트레이시 교도소에서 백인 나치주의자 모리슨 니덤을 살해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철수는 모리슨 니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또다시 그는 살해 혐의로 기소되고 말았다. 당시 트레이시 교도소는 여러 갱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갱은 백인과 히스패닉 그리고 흑인처럼 인종으로 구성된 집단이었다. 유일한 아시아인 수감자 이철수는 자신의 편이 하나도 없는 이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노력했고, 모리슨 니덤의 공격은 그의 가혹한 교도소 생활에 대한 증거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상황을 대중은 알지 못했고,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하여 기획 기사를 작성하던 이경원 기자의 취재 활동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프리 철수 리. 구명 활동에서 교민 사회의 중심으로

이경원 기자는 두 번째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철수에게 면회를 신청한다. 여느 20대 중반의 청년과 다르지 않은 모습과 오랜 수감 생활로 황폐화된 정신이 겹쳐 흐르는 그에게 이경원 기자는 사건의 전말을 묻는다. 그의 결백함에 확신을 가지게 된 이경원 기자는 1978년 이철수의 수사 과정이 잘못되었다는 탐사 보도 기사를 공개한다. 이 기사는 한국 교민 사회를 중심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고, 한인 교회와 유재선 변호사를 중심으로 ‘이철수 구명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철수 구명위원회를 조직하고, 대규모 시위와 모금 활동을 진행하면서 한인 사회는 그동안 인종 차별로 인해 공권력과 사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철수의 오랜 친구였던 랑코 야마다 변호사 역시 그의 수감을 계기로 변호사가 되어 이철수 변호인단에 합류했다. 그녀는 기자 간담회에서 “친구인 이철수가 사건의 연루되면서 변호사를 구하러 사방을 돌아다녔지만,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언제나 법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 순간이 내 인상의 전환점이 되었다”라고 변호사가 된 동기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


천사도 악마도 아닌, 승리도 패배도 아닌

결정적인 증거들을 수집하며 1982년 드디어 재심이 열렸고, 이윽고 배심원단의 무죄 판결에 힘입어 10년이라는 긴 수감 생활 끝에 1983년 3월 이철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소수민족 민권운동 중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이철수 구명운동’은 이철수의 석방과 재심 승리로 끝이 났다. 만약 영화 <프리 철수 리>가 이 지점에서 끝이 났다면, 이는 인권 교육용 다큐멘터리에 그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이철수 구명운동’ 후의 인간 이철수가 겪게 될 우여곡절의 생애를 조망한다. 이철수는 석방 이후 수년간 다양한 한인 단체와 인권 단체를 돌아다니면서 그의 수감 생활에 대한 증언을 하며 인권 운동의 아이콘으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여러 한인들이 소개해 준 일자리에서 번번이 적응에 실패하며 어려움을 겪는다. 영웅의 삶과 현실 사이의 격차, 그리고 교도소 수감 기간 동안 축적된 트라우마는 끝내 이철수가 마약에 손을 뻗게 만들었다. 그리고 돈 때문에 갱단에 연루되어 방화를 저지르다 현장에서 전신에 화상을 입고 만다. 그는 이후 자신을 도와줬던 손길을 기억하며 사회운동과 강연을 이어 나가다 2014년 세상을 떠난다. 그는 이철수였다. 인권 운동을 위해 투옥을 견뎌낸 열사도, 교도소에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한국인 이철수였다. 영화가 끝나고 랑코 야마다 여사는 이철수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놀랍고 아름다운 영화로 너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게 되었다. 이 안에는 너와 내가 같이 있다. 얼마나 고맙고 좋은 일이 아닐까?”하고 그의 생애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냈다.


선배의 정신을 따라, 이철수의 목소리를 담아

이성민, 하줄리 감독이 <프리 철수 리>를 만들게 된 계기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 인물로부터 시작되었다. 기자 간담회에서 두 감독은 “이경원 기자가 저를 기자의 길로 이끌어 준 멘토이자 사수입니다. 이철수 사건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셨기에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이철수 씨의 장례식장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당시 단순 취재를 위해 방문했지만, 그 공간을 아우르는 어렵고 무거운 감정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철수 구명위원회로 활동하신 분들이 입을 모아 이 이야기가 잊히고 있다는 사실에 울분을 토하셨습니다. 몇 개월 뒤 저와 이성민 감독은 재미 교포 2세로서 중요한 이야기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기 위해 영화를 만들기로 다짐했습니다”라며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더불어 <프리 철수 리>에는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에는 낯선 일인칭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이미 사망한 이철수 씨의 관점에서 소년 같은 목소리가 사건을 되짚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세바스찬 윤’으로 그는 우발적 범죄로 16세에 교도소에 수감됐으나 교도소 안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등 성실한 생활로 12년 만에 출소, 현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선 단체 ‘오픈 소사이어티’에서 프로그램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이철수의 여러 면모가 닮아있다고 판단한 감독은 앳되고 결단력 있는 그의 목소리를 이철수의 내레이터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철수 일인칭 시점의 내레이션이라는 과감한 형식을 택한 것에 대해 두 감독은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의 재판과 이철수 구명 운동에 관한 방대한 아카이빙을 아우르면서 이철수 개인의 복잡했던 인생사를 녹여내기 위해서는 일인칭 시점의 내레이션이 필수적이었다”고 밝혔다. 이철수의 내면이 제대로 공개된 적은 없으므로, 나름의 해석을 통해 그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한 것이다.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