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칙 개봉이라니! 뭣이 중헌디(<스폰지밥> 스틸).

지난주 금요일, <부산행>과 <나우 유 씨 미2>가 변칙 개봉한다는 기사들을 봤을 겁니다.
개봉하기 전 금요일과 주말에 유료 시사를 연다는 소식이었어요.
이 기사는 “극장가를 선점해 예매율을 높이고 관객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사실상 개봉을 앞당겨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변칙 개봉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어요.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거에요.
딱딱한 주제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은 아주 간단합니다. 

변칙은 원칙에서 벗어난 법칙이나 규정을 뜻합니다.
변칙 개봉은 정상적인 개봉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렇다면 정상 개봉은 또 뭘까요?
배급사와 극장이 사전에 약속한 개봉일에 영화를 트는 겁니다.
<부산행>과 <나우 유 씨 미2>가 업계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건 개봉일 전주 주말에 유료 시사를 열어 미리 상영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예매율을 높이고, 입소문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연 시사회가 왜 문제가 되냐고요? 

변칙 개봉은
대형배급사와 멀티플렉스의 담합에 가까워

엄밀히 따지면 영화 개봉일은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요.
업계가 목요일 개봉을 원칙으로 합의해도 배급과 마케팅 사정에 따라 개봉일을 수요일로 앞당겨도 돼요.
개봉일 전주에 유료 시사도 열어도 돼요. 둘 다 위법 행위가 아니니깐요.
다만, 여러분들께서 아셔야 하는 건 수요일 개봉과 유료 시사가 대형배급사와 멀티플렉스의 담합에 가깝다는 사실이에요.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는 만큼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손해가 되는
제로섬 게임

멀티플렉스와 대형배급사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자고요.
극장은 상영되고 있는 작품 중에서 좌석점유율이 낮은 영화를 하루라도 빨리 내리고 싶겠죠.
그 영화를 틀 바에야 예매율이 높은 화제작을 빨리 걸어야 돈을 더 벌 수 있어요.
대형배급사는 하루라도 일찍 틀어서 ‘개봉작 관객 동원 1위’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고 싶겠죠.
그 하루(수요일)가 공휴일이면 더 욕심이 나고요.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했다는 보도자료를 내면 흥행 분위기를 이어가는 데 큰 힘이 돼요.
그런데 대형배급사와 멀티플렉스의 욕망이 커질수록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 누군가는 점유율이 낮거나 입소문이 좀 더 필요한 작은 영화들입니다.
왜냐하면 한국 극장산업은 누군가에게 이익인만큼 또 누군가에게는 손해인 제로섬 게임이거든요.
그러니까 <부산행>과 <나우 유 씨 미2>가 유료 시사를 한다면 그때 상영작 중에서 점유율이 안 좋은 영화는 스크린에 그만큼 잃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변칙 개봉이 문제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마겟돈>, <진주만>, <툼 레이더>, <슈렉> 소환!(왼쪽부터)

변칙 개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예요.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렸던 1998년 디즈니의 <아마겟돈>이 토요일 개봉 관행을 깨고 금요일에 개봉한 바 있어요.
충무로에서는 아주 큰 사건이었어요. 그때만해도 영화 개봉일은 토요일이었거든요.
멀티플렉스가 본격적으로 늘어나면서 개봉일도 덩달아 토요일에서 금요일로, 금요일에서 목요일로 하루씩 앞당겨지게 됐어요.
특히, 2001년에는 변칙 개봉해 논란을 일으켰던 영화가 많았어요.
여름 시장 초입이었던 6월1일, 디즈니가 직배했던 <진주만>이 금요일에 개봉하자 튜브엔터테인먼트의 <툼 레이더>와 CJ엔터테인먼트의 <슈렉> 또한 금요일 개봉에 뛰어들었어요.
‘주 5일제 근무’ 바람에 따른 변화라 어쩔 수 없었지만, 금요일 개봉작이 많아지면서 어쩔 수 없이 목요일에 종용해야 하는 작은 영화들이 피해를 많이 봤죠.
그런 식으로 현재까지 개봉일이 목요일로 앞당겨진 겁니다. 

멀티플렉스 시대가 본격적으로 접어든 2000년대 초
유료 시사나 개봉일을 앞당긴
변칙 개봉이 극장가에서 큰 논란이 됐다.

<부산행>과 <나우 유 씨 미2> 같은 사례가 2001년에도 있었어요.
CJ엔터테인먼트는 <슈렉>을 실제 개봉일보다 한 주 앞당겨 씨네월드 극장에서 이벤트 시사를 연 바 있어요.
그 소식을 들었던 다른 배급사와 극장들이 불만을 터트리자 당시 CJ엔터테인먼트는 “<슈렉>이 애니메이션인만큼 어린이 관객들의 반응을 보기 위한 일종의 모니터링 차원에서 마련한 자리”라면서 “외국에서는 ‘깜짝 유료 시사’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어요. 

"아이고, 의미 없다."

그러다보니 지금처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이 관객수를 집계하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관객수 논쟁도 벌어지곤 했어요.
2001년 <진주만>을 배급했던 브에나비스타는 이 영화가 서울지역 주말관객 23만9700명을 동원해 개봉 주말 흥행 신기록을 수립했다고 보도자료를 냈어요.
19만7400명을 기록한 <미션 임파서블2>를 큰 차이로 따돌렸다면서요.
하지만 서울지역 흥행기록을 공식 집계했던 영화인회의 배급개선위원회는 “<진주만>의 기록이 개봉 전날인 목요일 기록이 포함된 수치이니 목요일 성적을 제외하면 17만9100명에 그친다”고 <진주만>의 신기록을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재미있는 건 변칙 개봉이 한국에만 있다는 사실이에요.
앞에서 CJ엔터테인먼트가 외국에서는 깜짝 유료 시사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 말은 맞아요.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이벤트용 모니터링 시사를 많이 진행합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만 관객의 주머니를 열지 않는 모니터링 시사일 뿐, 관객수나 수익이 전혀 집계되지 않아요.
또, 유럽은 최대한 다양한 영화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분위기가 오랫동안 형성돼 있어요.  

개봉 첫주에 최대한 많은 상영관을 확보해
최대한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와이드 릴리즈 배급 방식이 변칙 개봉의 주요 원인

변칙 개봉이 한국에만 있는 이유는 와이드 릴리즈 배급 방식과 관련 있어요.
와이드 릴리즈는 개봉 첫주에 최대한 많은 상영관을 확보해 최대한 관객을 불러모으는 배급 전략입니다.
1930년대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기 위해 미국 전역에 자체 배급망을 구축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블록버스터를 개봉할 때만 사용하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미국 전역에 와이드 릴리즈를 하려면 그만큼 많은 디지털 프린트를 공급해야 하는데, 확실한 흥행 보장이 없는 영화에게는 그만한 위험 부담이 없거든요.
게다가 미국은 롤아웃 배급 같은 다양한 배급 방식이 있어요.
롤아웃은 첫주에 적은 숫자의 개봉관에서 시작해 관객 반응에 따라 스크린 수를 차차 늘려가는 방식이에요.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가 첫주 5개 도시 9개 상영관에서 시작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얻으며 개봉 넷쨋주 총 275개관으로 확대 개봉한 바 있어요. 스티븐 스필버그의 <링컨> 역시 11개 상영관에서 시작해 2천개 이상의 스크린으로 확대 상영되기도 했어요.
어떤 면에서 롤아웃이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수익을 늘려나갈 수 있는, 안정적인 전략입니다. 
하지만 첫주 성적이 향후 흥행 레이스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한국 시장에서 롤아웃 방식은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전략입니다. 

웨인스타인 컴퍼니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의 북미 배급을 롤아웃 방식으로 진행했다.

현재 영화 업계가 합의한 상영표준계약서에는 영화를 최소한 일주일 이상 틀어야 한다고 나와있어요.
물론 개봉일을 무슨 요일로 해야 한다는 규칙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개봉일을 수요일로 앞당겨도 문제는 안 되죠.
다만, 제로섬 게임이 되지 않으려면 모든 영화가 수요일에 개봉하면 돼요.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피해를 보는 영화가 생기는 거예요.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죠?

"음, 이 기사를 메모한 뒤 어디가서 변칙 개봉 이야기가 나오면 똑똑한 척 해야겠군."

씨네플레이 에디터 펩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