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수많은 영화가 있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이들을 위해 쓴다. ‘씨네플레이’는 10년 전, 20년 전 이맘때 개봉했던 영화를 소개한다. 재개봉하면 당장이라도 극장으로 달려가서 보고 싶은 그런 영화들을 선정했다. 이름하여 ‘씨네플레이 재개봉관’이다.
스카우트
감독 김현석 출연 임창정, 엄지원, 박철민, 이대연, 백일섭, 양희경, 김희원, 이건주 개봉 2007년 11월 14일 상영시간 94분 등급 12세 관람가

- 스카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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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현석
출연 임창정, 엄지원
개봉 2007 대한민국
김현석 감독의 <스카우트>는 다른 영화와 비교되기 일쑤다. 10년 전 개봉 당시에는 4개월 정도 먼저 관객과 만난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와 비교됐다.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소재 때문이었다. 지금은? 김현석 감독의 최근작 <아이 캔 스피크>와 비교해볼 수 있다. <스카우트>를 다시 보며 <아이 캔 스피크>와의 어떤 지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면에서 다른지 살펴봤다.
야구와 광주민주화운동 VS 영어와 일본군 위안부
<스카우트>는 광주제일고 3학년 선동열을 스카우트하려는 Y대학 직원 이호창(임창정)의 고군분투를 담은 코미디 영화다. 여기까지가 <스카우트>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다. 막상 영화가 시작되면 검은 화면에 하얀 글씨가 등장한다. “이 영화는 광주민주화운동 직전 10일 간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99% 픽션이다.” 이 자막의 등장으로 <스카우트>가 그냥 야구 영화가 아님을 알게 된다.
<아이 캔 스피크>는 시장 사람들에게 사사건건 간섭하는 민원왕 옥분(나문희) 할머니가 원칙주의자 공무원 민재(이제훈)에게 영어를 배우는 코미디 영화다. 왜 영어를 배우는지는 감춰져 있다. 영화의 초반, 옥분 할머니의 등장에 긴장하는 구청 직원들의 모습 등 코믹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중반 이후 옥분 할머니의 향학열의 이유가 밝혀진다. 일본 위안부 피해자로서 미국 의회에서 증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스카우트>와 <아이 캔 스피크>의 가장 큰 비교 지점이 여기다. <스카우트>는 김현석 감독이 직접 각본을 썼고 <아이 캔 스피크>는 각색만 했고 각본가가 따로 있지만,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을 살짝 감추는 전략이 유사해 보인다. 이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다. 뒤통수를 맞았으나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야구, 순애보, 광주
<스카우트>가 광주민주화운동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좀더 알아보자. 시작은 선동열이다. 선동열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광주로 내려온 호창은 대학 시절 첫사랑 세영(엄지원)과 재회한다. 여기서부터는 야구보다는 순애보가 키워드다. 세영은 광주 지역 YMCA(김현석 감독의 장편 데뷔작은 <YMCA 야구단>이다)의 활동가로 비밀리에 광주민주화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이유로 7년 전, 이소룡이 죽던 날 헤어졌다. 호창은 다시 만난 세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호창이 선동열의 아버지(백일섭)에게 읍소하는 장면, 두 사람 뒤로 보이는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전남도청 앞 시위대를 비춘 뉴스 화면에 세영의 얼굴이 등장한다. 촛불을 들고 호창에게 이리 오라는 듯 손짓을 보낸다. 광주가 등장할 차례다. 5월 17일, 광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때쯤 호창과 세영이 헤어진 이유가 밝혀진다. 호창은 경찰서에 있는 세영을 구하려 한다.
그래도 코미디
<스카우트>와 <아이 캔 스피크>는 무거운 소재를 정공법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비슷하다. 그것이 꽤 성공적이라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다만 미세하게 다른 점을 찾아보자면 <스카우트>가 좀더 가벼운 느낌이다. 코미디가 좀더 중심에 있다고 보면 좋겠다.
이른바 ‘생활연기’를 선보이는 임창정은 넉살 좋은 애드리브를 보여준다. 선동열을 찾기 위해 변장을 하는 모습도 나온다. <스카우트>는 임창정이라는 배우의 장점을 잘 살려낸 영화다. 김현석 감독의 거의 모든 영화에 출연한 박철민은 세영을 짝사랑하는 동네 주먹 곤태를 연기한다. 자신을 화투짝 ‘비광’에 비교하는 절묘한 시를 쓰는 곤태는 <스카우트>에서 매우 비중 있는 조연이다. 그러니까 <아이 캔 스피크>가 후반부에서 웃음기를 확 걷어낸 것과 비교하면 <스카우트>는 비교적 코미디영화의 정체성을 많이 보여준다.
광주민주화운동 소재의 <택시운전사>와 비교해보면 <스카우트>가 보여주는 일종의 태도를 더 확연히 알 수 있다. <택시운전사>에선 총을 쏘는 계엄군에 맞서는 주인공 김사복(송강호)을 볼 수 있다. 군인이 투입된 광주는 아수라장이다. 반면 5월 18일 이전 10일 간의 이야기, 말하자면 광주민주화운동 프리퀄을 다룬 <스카우트>는 한발짝 옆으로 나와 있는 기분이다. 호창이 진압경찰과 단둘이 마주한 장면, 경찰은 곤봉을 휘두르지 않는다. 바로 경찰서 취조 장면이 이어진다. <택시운전사>에서 본 경찰, 정확히 말해 사복 군인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스카우트>의 이런 태도가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김현석 감독은 <아이 캔 스피크> 개봉 당시 <씨네21>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내가 광주 출신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광주 사람을 피해자로만 묘사하는 게 싫었다. 우리는 비극적인 역사를 경험했지만 또한 평범한 일상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김현석의 진화
<스카우트>와 <아이 캔 스피크> 사이, 김현석 감독은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열한시>(2013), <쎄시봉>(2015) 등을 연출했다. 이 시간들이 그를 진화시켰을까. 비슷한 접근법으로 만든 <스카우트>보다 <아이 캔 스피크>의 성취는 더 클까. 쉽게 말하긴 어렵지만 <아이 캔 스피크>의 묵직함을 생각해본다면 분명 김현석 감독은 진화했다고 말할 수 있다. 관객수를 놓고 본다면 차이는 확연해진다. <스카우트>는 약 31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아이 캔 스피크>는 약 10배인 약 320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그의 진화를 말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스카우트>의 경쾌함과 엉뚱함을 더 좋아하긴 한다.
<스카우트>에서 눈에 띄는 장면 셋
1. 호창은 세영이 일하는 YMCA의 임시 체육교사직을 자처한다.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던 호창은 운동신경이 좋은 한 아이에게 이름을 물어본다. 야구 할 생각 없냐며. 그 아이는 어떻게 답했을까. 대답은 “종범인디요.”
2. 호창은 사투리를 쓰는 세영을 보고 추억에 잠긴다. 그러면서 사투리를 흉내내며 깐족거린다. 이때 세영이 이렇게 말한다. “그만 뚝!”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을 본 사람은 눈치챌 수 있을 거다. <극장전>에 대한 오마주다.
3. 호창과 세영의 대학 회상 장면. 두 사람의 연애는 달달하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뽀뽀를 하는 게임을 즐기는(?) 장면이 압권이다. 지는 사람은 어떻게 하냐고? 그냥 뽀뽀를 받으면 된다. 이기나 지나 뽀뽀를 하는 게임이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