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과 <부산행>의
연결고리?
<부산행> 첫 언론 시사회가 있던 날, 극장을 나설 때까지 심은경이 영화에 출연하는지 몰랐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트위터를 보고서야 알았다. <부산행> VIP 시사회가 있던 날, <서울역> 메인 예고편과 스크린X판 쿠키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부산행>의 시작을 열어젖히는 좀비이자, (사실 창밖으로 본, 역무원 덮치는 좀비가 먼저 등장한 건 넘어가자.) 그녀가 연기한 ‘가출소녀’가 바로 <부산행>과 프리퀄 애니메이션 <서울역>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라는 것을.
그래서 심은경을 직접 찾아가
영화에 관해 묻고 싶어졌다.
심은경을 만나기 전에 약간의 공부가 필요했다. <돼지의 왕> <사이비> 등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 <서울역>을 먼저 준비하다가 속편 격인 실사 영화 <부산행>을 뒤이어 기획했다. 개봉 순서는 바뀌었지만 <서울역>이 먼저 작업한 영화다. 그런데 두 영화가 어떻게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건가? 말 그대로 전편과 속편의 관계인가?
그러니까
<서울역>이 무슨 영화야?
<서울역>은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한 서울역 주변을 배경으로 혜선(심은경)과 그의 남자친구(이준), 그리고 혜선의 아빠(류승룡)가 좀비를 피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 시간순으로는 <부산행>의 수안(김수안)이 석우(공유)에게 부산 가고 싶다고 투정부리던 그 날 밤에 서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것. <서울역>에서 보여주게 될 아비규환의 재난 현장 다음 날이 바로 <부산행>의 첫 장면인 새벽 즈음이다. 그렇기에 <부산행>에서 KTX를 타기 위해 감염된 몸을 이끌고 힘겹게 탑승했던 '가출소녀'가 <서울역>에 출연할 주인공 '혜선'과 동일인물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두 캐릭터 모두 심은경이 연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두 편을 모두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씨네21과 한 인터뷰의 말을 들어보자. "부산역이라고 하면 애니메이션 <서울역>의 다른 이야기쯤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부산행>이라는 제목에서는 전혀 다른 단독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두 영화는 단지 시간 순으로만 이어지는 것일 뿐 전혀 다른 주제와 형식을 지닌 영화란 말인가. 그래서 심은경에게 두 영화의 관계에 대해 질문했다.
<부산행> 출연제의는
언제 받았나?
2년 전이었을 거예요. <서울역> 녹음이 딱 하루 걸렸거든요? 감독님의 작업방식이 굉장히 빨리 진행돼요. 아침부터 오후까지 작업을 속도감 있게 끝냈죠. 그러다가 몇 개월 후에 감독님이 꼭 저여야 한다면서 <부산행>의 시작을 알리는 가출소녀 역을 제안받았어요. 저는 실은 승무원 역을 하고 싶었죠. 단독 장면 중에서 구두 한 짝 벗고 이렇게 (직접 팔을 들고 목을 꺾어 보이면서) 걸어 나오는 장면을 연기하고 싶어서 감독님께 '이 역할은 어떠냐'고 했더니 감독님이 생각하는 승무원의 이미지와 제가 맞지 않았나 봐요. 그래서 원래 역할에 충실하게 연기했어요. (웃음)
<서울역>의 혜선과 <부산행>의 가출소녀는 동일인물인지, 그러니까 둘은 어떤 관계인지 궁금하다.
<서울역>은 혜선과 남자친구, 혜선의 아빠 세 사람이 좀비 바이러스 감염체들에게 쫓고 쫓기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예요. 가출소녀 혜선이 중심이 되어 돌아간다기보다는 서울역 주변에서 벌어지는 하룻밤 동안의 이야기죠.
두 영화에 등장하는 저는 약간의 연결고리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제가 시나리오도 직접 읽어보고 연기도 했지만 (두 영화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지, 실은 긴가민가 해요.
영화를 두 번 봤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가출소녀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흐느끼더라. 그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서울역>에서 등장하는 것인가.
아주 자세히 들으면 제가 복도를 걸어가면서 살짝 욕도 하는 게 들릴 거예요. 호흡이랑 물려서 헉헉대면서 내뱉는데 많이 묻혔더라고요.
저는 이 가출소녀가 <서울역>의 혜선과 완벽하게 연결되는 부분은 없어 보여요. 조금은 별개의 캐릭터인데 <서울역>의 결말을 보면 그녀가 왜 등장했는지는 이해되는 정도일 거예요.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웃음)
비록 등장하는 시간은 짧지만 어쨌든 <부산행>의 시작을 알리는 캐릭터인데 얼마나 공들여 촬영했는지도 궁금하다.
제 분량은 2회차 촬영분이었어요. 두 번만 현장에 가면 되는 거였는데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는 장면을 찍은 때가 아마 4월 중순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기차 안에 들어와 화장실에 앉아 발작 일으키는 장면이나 하이라이트 장면은 한참 뒤인 6월 초 쯤에 촬영했어요. 그사이에 틈이 너무 많아서 걱정됐어요. 좀비 역할을 대충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가출소녀라는 역할은 짧게 스쳐지나가지만 관객들에게는 강한 인상을 남겨야 했어요. 이 소녀로 인해서 <부산행>의 아비규환이 만들어지는 거니까
역할은 작아도 책임감은 컸죠.
감독님도 제게 중요한 역할을 맡긴 거니까 실망하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정말 연습 많이 했어요. 소녀가 발작 일으키는 움직임이나 승무원 뒤에 올라타는 동작 리허설을 승무원 역의 우도임 언니랑 파주 액션스쿨에 가서 연습하고,
와이어로 달아서 여러 가지 테스트도 해봤어요.
좀비 동작을 디자인한 박재인 안무가는 좀비의 움직임을 연기하는 당신에게 어떤 동작을 요구했나.
안무가께서 레퍼런스 동영상을 자주 보여주셨어요. 특히 간질환자 영상을 자주 보여줬는데 현실성 있는 동작을 표현하기 위한 안무가의 의도가 느껴지더라고요. 연습하기 전에 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 눈에도 익히고 머릿속에 채워 넣으려고 했어요.
재미있었던 건, 제가 레퍼런스 영상을 한 번 본 다음에 테스트 삼아서 직접 해봤는데 감독님이 저의 테스트 영상을 보시더니 너무 만족해하면서 다른 좀비 역할 배우들에게 이대로 해달라고 보여줬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동작도 동작이지만 좀비 분장도 정말 사실적이더라.
인터뷰를 통해 꼭 강조하고 싶어요. 정말 분장의 몫이 대단했어요. 한국의 좀비 특수분장은 아직 본격적으로 결과를 보여준 적 없기 때문에 위화감이 들 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전혀 어색함이 없었어요.
보통 한번 분장하는데 두 시간 이상씩 시간을 들였는데 정말 핏줄 하나하나에 굉장히 신경을 쓰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분장감독님이 제 피부를 보며 '분장의 쾌감이 느껴진다'고 하신 기억이 나요. 제 피부가 하얗다 보니까 그려 넣는 선이 잘 보인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관객들이 <부산행>을 재미있다고 느끼는 점 중에는 그런 특수효과가 전혀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거예요. 장르 영화의 열렬한 팬으로서 한국에서도 이런 장르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점이 너무 좋고, 그런 영화에 제가 잠깐이나마 출연했다는 사실이 뿌듯해요.
<서울역>에서는 캐릭터를 목소리로만 표현했다면, <부산행>에서는 연관된 인물을 온몸으로 직접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재연하듯 연기하게 된다. 이런 작업에서는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목소리만 연기할 때도 현장이 정말 재미있어요. 감독님하고 저하고 둘이서 온몸을 쥐어짜면서 악을 지르고 울부짖는 소리를 녹음하거든요.
그리고 <서울역> 녹음 때는 그림도 미완성이어서 영상을 보며 연기한 게 아니라 정지화면에 콘티 걸어놓고 그걸 보면서 연기했어요. 그러면서 감독님이 "은경씨가 편한 대로 그냥 하시면 나중에 제가 거기에 맞추면 돼요"라고 하시기에 막 질렀죠. (웃음)
영화가 긴장이 고조될수록 제 목소리도 따라서 올라가요. 그럼 감독님은 부스 밖에서 "더 세게 해주세요~" 라고 주문하면 (인터뷰 도중 심은경은 직접 녹음 장면을 재현하듯 어깨를 들어 올리고 주먹을 꽉 쥔 다음에 고개를 숙이고 악을 썼다) "아아아악~" 이렇게 소리 지르면서 했죠.
그런데 아무래도 목소리로만 하니까 아쉬운 거예요. 그렇게 녹음을 하루 만에 끝내고 몇 달 후에 제의를 받았을 때 생각했죠. '여기서 제대로 한 번 해보자.' 그래서 저는 한을 풀었습니다. (웃음) 이런 장르 연기를 얼마나 해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진짜 내가 이렇게 즐기면서 영화만 생각하면서 촬영한 게 얼마만인가 싶더라고요. 그런 재미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게 <부산행>이었어요.
그래서 진짜 농담이 아니라 연 감독님한테 제가 항상 저의 터닝포인트는 <부산행>이라고 이야기해요. (웃음)
장르 영화로서 <부산행>의 촬영현장은 뭔가 달랐을 것 같다.
부산 세트장에 기차 한 칸을 그대로 재현해놓고 촬영했어요. 그런데 후면영사방식이라고 해서 기차 밖 풍경을 CG 처리한 게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LED를 설치해서 풍경을 틀어놓고 촬영한 거였어요. 배우들이 그 상황을 보다 사실적으로 느끼면서 몰입할 수 있더라고요. 진짜 신세계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출연 배우들과 현장에서 마주칠 일은 없었겠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에라도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하다.
쫑파티 때 감독님께서 내가 꼭 참석해야 한다고 챙겨주셔서 고마웠어요. 저는 그저 잠깐 출연한 정도인데 다른 선배 배우들도 너무 반겨주시더라고요. 비록 2회차밖에 등장하진 않았지만 옆에서 보기에도 이 영화는 팀웍으로 만들어낸 영화라는 게 느껴졌어요. 다들 <부산행>에 대한 애정이 너무 많아요. 특히 유미 언니가 우리 영화 너무 좋지 않냐면서 저보고 너무 잘했다고 격려해주더라고요.
인터넷 댓글에 누군가, 우린 이미 심은경의 접신 연기를 종종 본 적 있다면서 당신의 좀비 연기가 반가웠다고 표현하더라.
VIP 시사회 무대 인사를 돌면서 제가 그랬어요. "<써니>와 <불신지옥>을 넘는 발작 연기를 한 것 같다"고요. (웃음)
제가 이런 역할만 골라서 한 것은 아니고요.
어떨 때는 대중들이 저에게 원하는 특정한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너무 한 쪽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이번에 <부산행>을 촬영하면서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오히려 이를 계기로 나의 특별한 장기를 만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감사하죠.
장르영화의 팬으로서 관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누가 이런 질문을 하면 저는 항상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을 추천해요. 좋아하는 감독을 물으면 주저 없이 스탠리 큐브릭부터 이야기하고요. 장르 영화에 빠지게 된 것도 감독님 덕분이에요. 많은 스릴러 장르의 영화 중 가슴 속에 남아있는 영화는 <샤이닝>뿐이에요. 영화가 진행될수록 서서히 조여오는 서스펜스를 느끼고 싶다면 단연 <샤이닝>입니다. (웃음)

- 샤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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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스탠리 큐브릭
출연 잭 니콜슨, 셜리 듀발
개봉 1980 영국
워낙 음악을 좋아하니, 음악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인스타그램에 주로 올리는 음악을 소개해달라.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건데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같은, 1980년대의 특정 영상을 다시 재조합해서 그 시대가 느껴지게 음악도 편곡해서 덧입혀 만든 작업들을 베이퍼웨이브라고 해요. 너무 신선하더라고요. 요새 꽂혀서 찾아 듣고 있어요. 워낙 1980년대 음악을 좋아하다보니까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가수 영상도 올리곤 하는데, 누구 하나 취향 맞는 사람 걸려라 하는 심정으로 올려요. 이제는 영화 이야기도 많이 해야겠네요. (웃음) 이번 주말에 있을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도 가고 싶은데 촬영이 겹쳐서 못 가게 됐어요. 제가 디스클로저를 정말 좋아하는데...
곧 개봉할 <서울역> 외에도 심은경을 스크린에서 만날 기회가 꽤 많이 남아 있다. 일단 평범한 고등학생이 뭘 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다 벌이는 경보대회 영화 <걷기왕>을 만날 것이며, 박광현 감독의 <조작된 도시>에서는 억울하게 감옥에 간 권유(지창욱)를 도와주는 멤버 중 한 명인 히키코모리 해커 여울을 연기한다. 첫 사극인 <궁합>에서는 송화 옹주 역으로 출연하며, 지금 한창 촬영 중인 박인제 감독의 <특별시민>에서는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톤의 캐릭터를 연기할 예정이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최민식, 곽도원, 류혜영, 라미란 등의 배우들과 함께한다.
얼떨떨해요. 영화에 많이 등장한 것도 아니고 제가 좋아서 출연한 건데 좋게 봐주시고 격려도 해줘서 제가 오히려 관객들에게 감사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더 잘할 걸 그랬나, 아이고 좀 더 확실하게 할 걸 그랬나 생각해요 . <부산행>을 보면서 저이길 알아보기보다 저 좀비 징그럽다고 먼저 반응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연기를 더욱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