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메간 마클이 전세계의 축복 속에 영국 해리왕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혼 경력이 있으며, 혼혈인데다가 미국 연예인이라는 신분으로 보수적인 영국 왕실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다소 파격적인 조건일수도 있으나, 그만큼 현대적인 가치에 접근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제 ‘서식스 공작부인 전하(Her Royal Highness The Duchess of Sussex)’라고 불러야 하는 메간 마클의 배우 활동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어떤 작품에 출연했는지 돌아본다.
그녀는 2002년 TV 드라마 <제너럴 호스피털>에서 데뷔한다. 작품은 에밀리 매클로플이 골든글로브 후보에 오르는등 나름의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메간 마클이 연기한 간호사 ‘질’은 그렇게 대단한 역할은 아니었다. 영화 <우리, 사랑일까요>(2005)에서는 애쉬튼 커쳐의 비행기 옆자리에 앉게된 여인으로 등장했다. 이름도 없이 그저 ‘핫 걸’로 불리는 단역이었다.
이후, 드라마에 자주 얼굴을 비치지만 좀 처럼 비중있는 역할을 따내지는 못 했다. 한국 관객들이 알만한 작품으로는 <CSI: 뉴욕>(2006)가 있지만, 가터벨트를 입고 청소하는 섹시녀 ‘베로니카 페레즈’로 잠깐 등장했을 뿐이다. CSI 프렌차이즈에서 그나마 중요한 역할을 따낸것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0년에 <CSI: 마이애미>였다. 화재현장을 누비는 경관으로 한 에피소드에서 활약했으나, 이후 에피소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메간 마클은 백인도 흑인도 아닌 자신의 외모때문에 주요 배역을 따내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드라마나 영화의 배역이 아니라, 게임 쇼 ‘Deal or No Deal’에서 서류가방을 나르는 미녀들 중 하나로 활동한 적도 있다.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2011)에 잠시 등장해 ‘필요 이상으로 예쁜 페덱스 직원’으로 깜짝 출연하는 식으로 ‘연기’ 보다는 ‘외모’로 소비되곤 했다.
역시 그녀의 유일한 성공작은 드라마 <슈츠>다. <슈츠>는 가짜 변호사 마이크 로스의 살얼음판 같은 직장생활을 다룬 드라마다. 메간 마클이 연기한 레이첼 제인(Rachel Zane)은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으로 마이크 로스와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회사와 학업을 병행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척척 걸어가는 인물로 평소의 그녀와 닮은 점이 많다. 참고로 리메이크되어 우리나라에서 방영하고 있는 <슈츠>에서는 고성희가 연기한 ‘김지나’라는 캐릭터다.
안타깝게도 <슈츠>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2011년 이후의 작품중에도 별다를게 없다. 로맨틱 코미디 <랜덤 엔카운터스>는 커피숍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났다고 믿는 순진한 친구에게 연애 상담을 해주는 단짝 ‘민디’로 출연한다. 엉성한 로맨틱 코미디였으며, 당연히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 했다. <안티-소셜>(2015)은 반정부 성향을 가진 스트리트 아티스트의 여자친구로 등장한다. 남자친구의 형제가 무장강도 행각을 벌이는 바람에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역시 극을 이끄는 주도적인 역할은 아니었다.
드라마 <슈츠>에서 마이크와 레이첼은 결혼할 뻔 하지만, 마이크가 감옥에 들어가면서 성사되지 못 했다. 드라마에서는 결혼에 골인하지 못 하고 현실에서는 세상 모든 사람이 부러워 하는 결혼을 한 셈이다.
그녀는 또한, 11살 때, 힐러리 클린턴에게 메일을 보내 성차별적인 TV 광고를 바꾸게 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로 유명하다. 이후, 일하는 여성을 위한 패션 브랜드를 런칭하고 사회 활동 웹사이트 ‘The Tig’를 창립하는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펼쳐왔다.
스크린 안의 삶보다 현실의 삶이 훨씬 드라마틱했으니, 그동안 그녀의 필모그래피가 알려지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씨네플레이 객원 에디터 안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