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루크 케이지> 시즌 2

 넷플릭스의 <루크 케이지> 시즌 2를 재미있게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시즌 1보다 더 깊이 있고 다양한 마블 코믹스의 초 마이너 캐릭터들을 인상 깊은 조연들로 만들어내는 플롯에 감탄하면서 시청하였다. 메인 빌런인 부쉬매스터(무스타파 샤키어), 블랙 머라이어(알프리 우다드)나 루크 케이지(마이크 콜더)의 조력자인 미스티 나이트(시몬 미식)와 나이트셰이드 등은 마블 코믹스 팬들 중에서도 <루크 케이지> 관련 만화를 열심히 읽은 사람이 아니면 생소할 캐릭터들인데 이러한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훌륭하게 묘사되었다고 생각한다.

우탱 클랜 데뷔 앨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만 꼽자면 에피소드 10 중반부에서 같은 넷플릭스 프로그램 <아이언 피스트>와 <디펜더스>에 등장한 아이언 피스트(핀 존스)와 함께 마약 판매상 소굴로 쳐들어가 일망타진하는 장면이다. 우탱 클랜의 데뷔 앨범에 있는 ‘세븐스 챔버 파트 2’(7th Chamber Pt. 2)가 배경에 흐르면서 펼쳐지는 액션 장면은 여러 번 돌려 볼 만큼 장르적 쾌감의 대폭발이었는데, 마블/넷플릭스가 <히어로즈 포 하이어>를 단독 시리즈로 만들겠다는 선언처럼 보이는 장면이라서 더 인상 깊었다.

쿵푸 열풍으로 태어난 히어로
 지금은 쿵푸라는 표기가 더 익숙한 쿵후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1980년대 후반의 아련한 추억이다. 직접 쿵후를 배운 적은 없지만 단편적인 기억들이 아직 선명하다. 예컨대 등굣길에 전봇대에 붙어 있었던 이소룡의 흑백 사진이 인쇄되어 있던 쿵후 도장 전단지는 아직 뚜렷하게 기억한다. 또한 해태제과에서 나왔던 <쿵후 36>이라는 판박이 껌의 도안과, 사촌 형 네 집에 놀러 갔을 때 형들이 모여 보고 있던 쿵후를 소재로 한 홍콩 영화 비디오테이프 등의 기억들도 당시 유행하던 쿵후에 대한 기억이다.

<쿵후 36> 판박이 껌 도안

홍콩의 쇼 브라더스와 골든 하베스트 영화사에서 만든 마셜 아츠 영화들은 미국에서도 크게 성공했고 1970대 말에는 쿵푸 도장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등 미국에서 쿵푸 열풍이 불었다. 대중 매체에서도 쿵푸는 가장 핫한 새로운 소재였는데, 1972년부터 1975년까지 방영된 데이빗 캐러딘 주연의 TV 드라마 <쿵푸>도 쿵푸라는 단어를 미국 전역에 익숙한 용어로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하였다. 만화업계도 이러한 시류에 편승하여 다양한 쿵푸를 소재로 한 캐릭터들이 만들어졌는데, 이 중 가장 유명하고 현재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캐릭터가 아이언 피스트와 샹-치(Shang-chi)이다.

현재 인기나 인지도 면에서는 아이언 피스트가 훨씬 앞서 있지만, 첫 등장 시기상으로는 샹-치가 1년 정도 빨랐다. 샹-치는 1973년 <스페셜 마블 에디션> 15호에 등장했는데, 저렴한 느낌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타이틀은 마블 코믹스의 이전 출간 만화들을 재탕하는 쉽게 말해서 돈벌이용 타이틀이었던 것이다. 샹-치가 데뷔하는 15호에서야 처음으로 오리지널 스토리가 등장한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라
마블 코믹스는 원래 앞서 언급한 TV 드라마 <쿵푸>를 만화화하고 싶었으나, 제작자 워너브러더스가 판권을 내어 주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던 쿵푸 관련 만화를 내고 싶었던 마블 코믹스는 1930년대 펄프 잡지 시절부터 존재하던, 동양인에 대한 온갖 스테레오타입이 응축된 악역 캐릭터인 푸 만츄의 판권을 사들이는 데 성공하고, 샹-치를 푸 만츄의 아들이라 설정한다.


푸 만츄에 의해 어렸을 때부터 훌륭한 스승들에게 권법을 연마한 샹-치는 청년이 되자 이미 쿵푸의 대가가 된다. 푸 만츄는 그로 하여금 자신의 철천지원수를 찾아가 그를 처치하라 하지만, 알고 보니 그 원수가 선한 사람이고 부친인 푸 만츄가 악당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샹치는 정의의 편에 서서 악당인 부친 푸 만츄와 맞서 싸운다는 내용이다.

TV 드라마 <쿵푸>(1972~1975)

다행인 것은 마블 코믹스가 유행을 따라 쿵푸/마셜 아츠 관련 캐릭터를 대량 생산하지 않고 아이언 피스트와 샹-치 정도 만드는 것으로 끝내는 자제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아이언 피스트와 샹-치 둘 다 고유의 특징과 동양 마셜 아츠 전문가라는 마블 유니버스 내에서 희소성 있는 캐릭터가 되어 현재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언 피스트와 샹-치는 마블 코믹스 내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엑스맨, 어벤저스와 함께 싸운 적도 많고 스파이더맨, 판타스틱 포, 맨-씽 등 같이 협업하지 않은 캐릭터가 없을 정도이다.

(왼쪽부터) 마블 코믹스 아이언 피스트, 샹-치.

히어로 업무 의뢰 사무소?
역시 <샤프트> 등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 열풍에 승차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캐릭터 루크 케이지와도 인연이 있다. 앞서 언급한 <히어로즈 포 하이어>는 아이언 피스트와 루크 케이지가 세운 ‘히어로 업무 의뢰 사무소’인데, 히어로 일을 돈 받고 하겠다는 신선한 개념이다. 1970년대 후반 별도의 타이틀이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는데, 원작 만화에서는 여기에 샹-치가 세 번째 멤버로 합류하기도 한다. 추후 넷플릭스 드라마에서도 샹-치가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는 부분이다.


또한 루크 케이지의 조력자인 미스티 나이트와 아이언 피스트의 조력자인 콜린 윙도 그냥 조연으로 끝나는 캐릭터가 아니라, 원작 만화에서는 ‘드래곤의 딸들’이라는 팀을 이루어 활동하기도 한다. 이러한 캐릭터들이 계속 누적되어 가면서 현재 실버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와 별개로 뚜렷한 특성을 지닌, 블록버스터 영화보다는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와 특성을 더 많이 공유하고 있는 마블 TV 유니버스가 전개되어 가는 모습이 원작 만화 팬 입장에서는 매우 반갑다.


최원서 / 그래픽 노블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