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맨>

데뷔작부터 아카데미 수상까지 단 3편이면 족했다. 1985년생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2009년 졸업영화로 만든 <가이 앤 매들린 온 어 파크 벤치>를 시작으로, 2014<위플래쉬>를 거쳐 2016<라라랜드>90년에 이르는 오스카 역사상 가장 젊은 감독상 수상자가 되었다. 그가 연출한 이 3편의 영화는 물론, 각본을 썼던 <그랜드 피아노>까지 포함한다면 그의 필모그래피 대부분이 음악과 관련 있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는데, 놀랍게도 차기작으로 택한 건 음악과 전혀 관계가 없는 닐 암스트롱에 대한 영화였다. 맞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 표면을 밟은 그 사람. <퍼스트맨>NASA 창립 60주년을 맞은 올해에 걸맞게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삶에 대해 스케치한다.


기대와는 조금 다른 건조하고 메마른 시선
<퍼스트맨>

<퍼스트맨>은 개봉 전부터 이슈에 휘말렸다. 첫 공개가 이뤄진 베니스영화제에서 달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이 영화에 없다며 일부 비난이 일었고, 암스트롱과 같이 아폴로 11호에 탑승했던 버즈 올드린마저 불쾌감을 표한 것이다. 달 착륙이 조작된 거라 여기는 음모론자들에 의한 평점 테러도 이뤄졌다. 셔젤 감독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닐 암스트롱의 개인적인 모습과 고뇌에 더 집중하고자 내린 결정이었다고 답했지만, 이 논란은 영화 흥행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힌 모양새다. 개봉 첫 주말 미국에선 <베놈><스타 이즈 본>에 밀려 3위로 불안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퍼스트맨>은 기존의 다른 우주 배경의 영화들과 달리 6000만 불이란 비교적 저렴한 예산을 들였고, 접근법 또한 조금 다르다.
 
달 탐사라는 희망찬 프론티어 정신이나 경이로운 우주의 낭만 따윈 철저하게 거세되고, 하나 둘 죽어나가는 동료들의 죽음이 던지는 상실감과 미지의 공간이 주는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지독하게 현실적인 무게의 고통과 공포가 이성을 마비하고, 최초라는 압박감이 사방에서 죄여온다. 폐쇄적인 우주선 안에 갇힌 채 긴장된 표정의 클로즈업과 멀미날 정도로 심하게 흔들리는 화면, 굉음과 고요가 한꺼번에 찾아드는 사운드의 먹먹함은 <위플래쉬>의 공포만큼이나 심신을 지치게 만든다. 1961년부터 1969년 발사까지 닐 암스트롱의 행적을 쫓아가며 그 자신과 가족의 심정까지 포착하는 이 영화는 탐험가의 이면에 주목한다. 여전히 성공이란 화두에 목말라있는 셔젤의 시선을 통해서.

(왼쪽부터) <퍼스트맨> 주연 라이언 고슬링, 클레어 포이, 연출 데이미언 셔젤

재즈에서 벗어나 전공으로 돌아온 저스틴 허위츠

그래서 성공적인 실패였던 <아폴로 13>이 던져주는 짜릿한 감동실화의 감흥이나 진짜 우주 속을 체화하게 만들어주던 <그래비티>의 압도적인 비주얼, 혹은 긍정적인 기운을 심어주던 화성판 로빈슨 크루소 <마션>의 낭만성, 그리고 부녀간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랑과 동료들 간의 유대감을 담아낸 <인터스텔라>의 정서적 울림 등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퍼스트맨>의 건조하고 메마르며 날 것 같은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은 살짝 당황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앞선 두 작품으로 탄탄한 캐릭터 직조술과 심리적인 묘사, 능수능란한 완급조절의 연출력을 선보인 셔젤 감독이었던 만큼 실망감을 주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감정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건 든든한 음악적 조력자이자 평생지기인 저스틴 허위츠의 몫이다.

(왼쪽부터) 데이미언 셔젤 감독과 저스틴 허위츠

하버드 재학 당시 4년간 룸메이트이자 상업적인 데뷔까지 할 뻔한 체스터 프렌치라는 인디밴드에서 각각 드럼과 키보드로 활동했던 셔젤과 허위츠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작품을 함께 해온 끈끈한 유대감을 자랑한다. 심지어 허위츠는 셔젤 외에 다른 작품의 음악을 맡은 바도 없다. <라라랜드> 이후 차기작으로 제임스 R. 한센 원작의 <퍼스트맨>이 정해졌을 때부터 그들은 음악을 소재한 영화가 아님에도 음악적 방향성에 대해 사전에 깊게 토의했다. 이전 작품들이 활력 넘치고, 아름다우며, 강렬한 재즈 사운드를 바탕으로 삼았던 만큼(게다가 오스카 음악상마저 거머쥔 상황에서) 전혀 다른 정서와 스타일을 갖춘 이 작품에서 어떤 사운드를 시도할지 고민이 컸을 것이다.


테레민과 하프의 조화
<퍼스트맨> O.S.T. CD 음반과 LP 음반 커버.

저스틴 허위츠가 선택한 건 하프와 테레민을 내세운 미니멀한 접근법이었다. 이런 우주를 다룬 영화들에서 전형적이고 익숙하게 깔리던 영웅주의와 휴머니즘의 팡파르 대신 전위적인 음향과 영롱하지만 처연한 음색의 아르페지오가 1960년대 우주를 배회한다. 달 착륙이란 큰 이벤트보다 이를 감행해내야 하는 인물의 심리에 영화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보다 미시적이고 섬세한 소리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당시 각종 SF영화들에서 장르적으로 활발히 활용되던 테레민을 역으로 현실에 대입한 발상도 재밌고, 실제 닐 암스트롱이 테레민으로 연주된 ‘루나 랩소디’(Lunar Rhapsody)를 좋아했다는 것에 착안한 선택이기도 했다. 테레민을 쓰자는 셔젤의 말에 그 즉시 허위츠는 테레민을 배우기 시작했다.

클라라 락모어의 테레민 연주 앨범.

테레민은 러시아의 음향물리학자이자 첼리스트인 레온 테레민이 두 고주파 발진기의 간섭에 의해 생기는 소리를 이용해 1920년에 발명한 전자악기로, 독현금이나 톱 연주와 비슷한 소리를 갖는다. 오묘하면서도 신비로운 소리라서 가끔 사람의 발성(특히 울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그 묘한 일렁거림을 통해 영화 내 쉽게 드러나지 않는 닐 암스트롱의 감정과 고통을 대신 표출하려 한다. 스펙터클한 장엄함을 위해 한스 짐머가 <인터스텔라>에서 파이프 오르간을 택했듯, 허위츠가 시도한 테레민은 감정적인 파고와 심리적인 두려움을 드러내는데 탁월한 역할을 해낸다. 또 여기에 그 당시 유행한 다른 빈티지 전자 악기인 무그 신디사이저와 에코플렉스 등을 동원했으며, 특별한 음향 효과를 위해 (하몬드 오르간에서 볼 수 있는) 레슬리 로터 스피커 통해 연주되는 스트링을 녹음했다.

<퍼스트맨> O.S.T. 앨범 디자인

<위플래쉬>와 닮은 꼴 그리고 60년대 삽입곡
<퍼스트맨>

물론 종종 큰 스케일의 심포닉 사운드도 덧입혀진다. 제미니 도킹 장면에선 자신이 잘하는 아름다운 선율의 왈츠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빌 콘티의 <필사의 도전>이나 제임스 호너의 <아폴로 13>, 마이클 케이먼의 <지구에서 달까지>에서 들려줬던 스펙터클한 찬가와는 확연히 다르며, 스티븐 프라이스의 <그래비티>와 해리 글렉슨 윌리엄스의 <마션>이 가진 재난물의 성격이나 한스 짐머의 <인터스텔라>의 애상과도 거리가 있다. 대체적으로 곡들은 매우 짧고 어둡고, 있는 듯 없는 음향과 함께 부유하다 사라진다. 방점을 찍듯 등장하는 묵직한 브라스와 규칙적인 퍼쿠션은 이 미션의 중압감과 무모함을 상징할 뿐이다. 이전의 <위플래쉬>에서 드러난 긴장과 조바심, 두려움, 이를 극복하고 난 뒤 잠깐 사로잡히는 찰나의 희열에 가깝다. 그렇게 안도와 위로가 지나가고 난 뒤 남는 건 옅은 슬픔이다.
 
시대적 배경을 드러내기 위해 쓰인 삽입곡들도 허투로 쓰이지 않았다. 메레디스 윌슨이 부른 ‘아이 씨 더 문’(I see the moon)을 비롯해, <인사이드 르윈>에서도 삽입됐던 피터, 폴 앤 메리의 ‘파이브 헌드레드 마일스’(500 miles)과 밥 딜런이 그들을 위해 써준 또 다른 히트곡 ‘돈 씽크 투와이스, 잇츠 올라이잇’(Don’t think twice, It’s alright등이 의미심장하게 깔린다. 더 킹스톤 트리오의 ‘레몬 트리’(Lemon Tree)와 더 샨텔즈가 부른 ‘슈어 오브 러브’(Sure of Love), 조니 에이스의 ‘프레징 마이 러브’(Pledging My Love)도 영화 내 언뜻 스쳐 지나간다. 사운드트랙에 실려 있는 건 앞서 언급한 ‘루나 랩소디’와 힙합에 지대한 연향을 준 질 스콧 헤론이 부른 ‘휘트니 온 더 문’(Whitney On The Moon)을 리온 브릿지스가 새로 부른 버전뿐이다.
 


저스틴 허위츠의 백투백 오스카?
2017년 아카데미에서 <라라랜드>로 음악상을 수상한 저스틴 허위츠

저스틴 허위츠가 <브로크벡 마운틴><바벨>의 구스타보 산타올라야처럼 백투백 오스카 음악상을 거머쥘 수 있을까. 참고적으로 빌 콘티의 <필사의 도전>과 스티븐 프라이스의 <그래비티>가 오스카 음악상을 수상했고, 제임스 호너의 <아폴로 13>과 한스 짐머의 <인터스텔라>는 후보에 올랐다. 마이클 케이먼의 <지구에서 달까지> 역시 TV의 오스카라 불리는 에미상 음악상 후보에 오른 저력이 있다. 인간의 도전과 성장을 다룬 이 장르의 음악들은 아카데미 회원들의 구미에 비교적 잘 맞는다. 내년 시상식을 기대해본다.

퍼스트맨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라이언 고슬링, 클레어 포이

개봉 201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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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엠마 스톤, 라이언 고슬링

개봉 2016.12.07. / 2017.12.08.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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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마일즈 텔러, J.K. 시몬스

개봉 20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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