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Meme) 유전자가 강한 배우들

인터넷 밈(internet meme)’을 아는가. 인터넷에서 이미지, 동영상, 해시태그 등의 형태로 번져나가 사회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은 소셜 아이디어, 활동, 트렌드 등을 일컫는 말이다. 1976년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어렵다면 짤방’(짤림방지의 준말)을 떠올리면 된다. , 이것도 하나 알아두면 좋겠다. 생물학적 유전자=‘(gene)’이라면, 이에 대비되는 문화적 유전자=‘임을. 강한 유전자가 오래 살아남듯, 밈적(memetic) 유전자를 가진 브랜드만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는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걸 배우에게 대입해 볼까.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많지만, 스타가 되는 배우는 드물다. 스타가 된 배우 중에서도 밈적 유전자가 강한 배우는 또 더 드물다. 화제를 만들어내는 것도 힘들지만, 그것을 소비자 스스로가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하는 밈적 요소로 진화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톱스타라도, 아무에게나 인터넷 밈 현상이 일어나는 게 아닌 이유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수많은 별이 뜨고 지는 연예계에서, 단순히 자신의 팬이 아닌, 불특정 다수인 일반 대중을 움직이는 배우들은 무엇이 다른지. 밈 유전자가 강한, 바이러스 형 배우들을 통해 그 이유를 가늠해 봤다.


1. 라이언 고슬링, ‘hey girl’ 밈
라이언 고슬링, ‘hey girl’

품절남이면 어떤가. 그는 이미 뭇 여성들의 랜선 남친(인터넷 상의 남자친구)’인 것을. 인터넷상에 유영하고 있는 그의 수많은 페르소나가 이를 증명한다. 인터넷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모은 ‘hey girl’이라는 밈이 대표적. 라이언 고슬링 사진에 ‘hey girl’이라는 문구를 붙인 후, 손발이 다소 오그라드는 문구를 삽입하는 이 놀이처럼 확산됐는데 이를 통해 그는 세상에서 가장 스윗(Sweet)한 남자친구로 대중들에게 자리매김 했다. 가령 이런 거다. (과도한 달달함 주의) “헤이 걸, 내 스웨터 좀 만져 봐. 뭐로 만들어졌는지 알아? 남친 전용 재질로.” “헤이 걸, 너의 이름 구글이야? 왜냐면 내가 찾는 모든 걸 네가 가졌거든.” 쇼프로그램에 나와 해당 짤들을 보며 낯뜨거워하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hey girl’ 밈의 주가는 더욱 상승했더랬다.

라이언 고슬링 밈은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그가 무언가를 사양하는 영화나 방송 화면에다가 스푼에 담긴 시리얼을 절묘하게 들이밀며 탄생한 라이언 고슬링은 시리얼을 먹지 않는다(Ryan Gosling won’t eat his cereal)’ 짤방도 유명하다. 해당 밈을 탄생시킨 팬 라이언 맥헨리(Ryan McHenry)’가 암으로 사망하자 고슬링은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시리얼을 먹는 동영상을 자신의 SNS에 직접 찍어 올리기도 했다. 이런 말과 함께 라이언 맥헨리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조의를 표합니다. 작게나마 그의 삶의 한 부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의문이다. 왜 수많은 여성들이 라이언 고슬링을 랜선에서 공유하며 즐거워하는지. 로맨스 영화 <노트북> 때문에? 이 영화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대체 불가한 그의 매력에서 답을 찾는 수밖에.


2.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오스카 밈

이견이 있을 수 있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유전자 자체가 우월한 배우다. 그리고 밈적유전자 역시 강력한데, 이는 그의 오스카 수상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오스카 불운의 아이콘, 오스카의 노예뭐라 부르든 눈물겨웠던 디카프리오의 그 유명한 45기 고군분투기 말이다. <길버트 그레이프>의 수상 실패로 시작된 오스카와의 악연은 이후에도 세 번이나 그에게 줄 듯 말 듯, 줄까 말까 한 희망 고문을 안겼다.

흥미롭게도 디카프리오의 오스카 좌절기는 전 세계 포토샵 장인들에게 번뜩이는 영감을 제공했고, 그로 인해 기발한 짤방들이 온라인을 강타했다. 심지어 그의 오스카 도전을 바탕으로 한 풍자 코믹 게임도 출시됐었다. ‘레오의 레드카펫 광란(Leo’s Red Carpet Rampage)’이란 제목의 이 게임은 디카프리오가 오스카 트로피 쟁취를 위해 온갖 장애물을 피해가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다시 봐도 절절하다.

주지할 점은 이러한 짤방들이 완벽해 보이는 디카프리오의 인간적인 매력을 오히려 극대화 시켰다는 점이다. 금발의 톱모델들과 분기별로 염문을 뿌릴 때는 피해야 할 카사노바로 보이다가도, 아카데미에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쓸쓸한 뒷모습으로 그래도 이 남자라면 한 번쯤 감싸주고 싶다는 보호 본능을 들게 했다. 지난 2016<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또 한 번 남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됐을 때 전우주적인 응원이 쏟아진 것도 이 때문. 그리고 생간을 먹는 열연까지 선보인 이 영화로 드디어 오스카 트로피를 안자, 그땐 축하 짤방이 인터넷 세계를 수놓았다. 이 복 받은 배우 같으니라고.
 


3. 존 조, #StarringJohnCho 놀이

<007> 시리즈 제임스 본드가 동양인이면 어떨까. 캡틴 아메리카가 캡틴 아시아라면? 이러한 상상 놀이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며 지지를 얻은 사건(?)이 지난 2016년에 있었다. 대중이 상상 속 주인공으로 내세운 인물은 한국계 미국 배우 존 조. <007 스펙터> <마션> <어벤져스2: 에이지 오브 울트론> <미 비포 유> <마션> 등을 비롯한 할리우드 영화 속 남자 주연 얼굴에 존 조 얼굴을 합성해 #StarringJohnCho’이라는 해시태그를 올리는 이른바 존 조 놀이가 그것이다. 인종의 다양성을 재치 있게 요구한 이 운동의 기저에는 아시아인 역할에 백인을 투입하는 일명 화이트워싱(WhiteWashing)’에 대한 반발이 깔려있다.
 

영화 <서치>

할리우드에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동양계 배우 중, 왜 존 조를 두고 이러한 운동이 일어났을까. 아니, 반대로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동양계 배우를 내세워야 이 운동이 묻히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느 쪽 질문이든, 존 조가 할리우드에서 쌓아올린 도전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존 조는 2004<해롤드와 쿠마>에 주연으로 발탁, 흥행을 이끌어내며 주목받았다. 그의 말대로 아시아계 미국인이 주연으로 캐스팅된 것은 할리우드에서는 혁명적 사건이었다. 이후에도 아시안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할리우드 편견에 맞서는 자리에 늘 존 조가 있었다. <스타트렉: 더 비기닝>1등 항해사 술루 역으로 승선했던 그는, “아시아 배우들 스스로, 나쁜 쪽으로 고정된 배역이 들어왔을 땐 (No)’할 줄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리고 <서치> 흥행으로 또 한 번 입증된 존 조 마법. <서치>는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가 주역을 맡은 최초의 메인 스트림 스릴러였다. 아시아계 배우의 당당함을 위해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존 조. 해시태그, #존조 #님좀짱인듯   


4. 하정우, 먹방‘짤’
<황해>

다양한 생산 능력을 보유한 국내 배우는 단연 하정우다. 남다른 드립력과 허를 찌르는 상황 판단능력과 귀여운 카리스마를 겸비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면모 덕이다. 여러 움짤들 중, 중독성이 가장 강한 바이러스는 역시 먹는 연기. ‘먹방’ ‘쿡방프로그램이 범람하는 시대에, 하정우는 예능에 굳이 출연하지 않고도, 출연 영화만으로도 먹방 신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는 먹방계의 대부되시겠다. 각종 SNS 음식 사진엔, 어김없이 해시태그, 하정우가 따라붙는다. 영화에서 음식을 먹는 배우가 하정우만이 아닐진대, 왜 그의 먹방만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이며 끈질기게 이슈가 되는 것일까.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일단 하정우의 먹는 연기엔 전형성을 거부하는 그만의 리듬이 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그는 크림빵을 세로로 먹기 위해 입 크기 공간 확보에 신경을 쓰는 치밀함을 보였다. 소주를 입에 털어 넣은 후 가글가글하는 명장면은 기사식당 아저씨들의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한 응용술덕분에 나온 생활연기였다. 똑같은 컵라면, 핫바, , 복숭아, 감자, 소시지, 빵이라도 하정우의 입으로 들어가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으로 군침을 돌게 하는 기현상. 아마도, 이 모든 것은 그가 진심으로 먹었기 때문에 나온 반응일 것이다.

<황해>

하정우의 먹방 연기는, 수많은 연예인이 먹방 스타대결에 과도하게 뛰어들게 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더 주목받기 위해 과장되게 먹는, 급기야 눈물까지 보이는 후발주자들의 리액션들이 쏟아졌지만 하정우의 자리를 위협하지는 못했다. ‘소울(soul)’의 차이일까. 전투적으로 음식을 먹는 사람을 보면서 식욕이 돋는 게 아니다. 하정우처럼 김 한 장을 먹더라도 자연스러움이 느껴질 때, 침이 고인다.


5. 케빈 베이컨, ‘베이컨 법칙’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

인터넷 밈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 방송 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화자 된 배우가 있다. <일급살인> <아폴로13> 등으로 유명한 케빈 베이컨이다. 혹시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Six Degrees of Kevin Bacon)’이라고 들어봤는가. 케빈 베이컨과 작품을 함께 했던 배우들을 연결하면, 대부분 6단계 내에서 연결된다는 게 골자다. 우연히 이 게임을 즐기던 세 명의 미국 청년들이 인기 토크쇼에 출연, 관객들이 제시한 배우들로부터 케빈 베이컨까지를 6명 이내에서 연결시키는 시범 게임을 선보이면서 세계적 화제가 됐다. 가령 BTS는 베이컨과 무관하지만 베이컨과 <일급살인>에서 등장했던 게리 올드만이 <다키스트 아워>에서 함께 한 릴리 제임스가 <베이비 드라이버>에서 연인관계로 나온 안셀 엘고토와 친분이 있기에 6단계 안에서 인연이 있다는 식이다. 이를 계기로 한창 미국에서는 베이컨 게임으로 불리는 놀이가 대유행하기도 했다. 케빈 베이컨 밈이 색다른 지점이라면, 이것이 단순한 재미를 떠나 하나의 사회, 심리학적으로 연구 대상이 되고 이론으로까지 정착됐다는 점일 게다.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

케빈 베이컨이 이 게임의 주인공이 된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거론된다. 앞서 세 청년 중 한 명이 관계의 6단계 법칙중 한 단어를 케빈 베이컨으로 잘못 알아들은 데서 비롯됐다는 설. 나머지 하나가 더 유력한데, 그의 넓은 활동 반경 때문이라는 설이다. 국내 표현으로 하자면, ‘다작 배우쯤 되려나. 케빈 베이컨의 앞서 거론한 스타들과 달리, ‘으로 인해 더 큰 유명세를 탔다는 점에서도 차별성을 지닌다.


정시우 /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