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과의 두 번째 만남엔 깜짝 손님이 있었다. <신과함께>로 한국 판타지물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린 김용화 감독이었다. 김용화 감독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는 나를 보며 주지훈은 감독님 계신다는 말 안 해서, 놀랐죠? 크하하하웃는다. 흥미로운 일을 도모하는데 한창 재미가 들린 주지훈다웠다. 김용화 감독과 주지훈은 연출자-배우사이라기보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우정을 도모하는 친구’, 혹은 해원맥이란 캐릭터를 공유한 형제같았다. 주지훈의 마음 깊숙한 곳엔 <신과함께>라는 이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왼쪽부터)주지훈, 김용화 감독.

#3.신과함께라는 주지훈의 방

정시우: 지훈 배우를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고 부르신다면서요? (웃음)

김용화: 하하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 가장 중요했던 작품으로 만났으니까요.

정시우: 많은 작품이 기다리고 있는데, 왜 벌써

김용화: 저는 늘 오늘이 마지막이란 느낌으로 사는 사람이거든요. 주어진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살려고 노력해요. <신과함께>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작품이죠. 그런 작품에 지훈이가 연기의 중도를 지키면서 중요한 역할을 잘해 줬고요. 너무 고맙죠.

주지훈: 감독님과 저랑 나이 차이가 12살 나요. 그런데도 매일 찾게 돼요. 감독님이 농담으로 , 귀찮게 좀 하지 마할 정도예요. (웃음) 요즘도 자주 만나요. 제가 나이에 비해 일찍 일어나는데, 아침 8시에 만나서 함께 걷는 거죠. <신과함께> 작업을 하면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정말 편해졌어요.

정시우: 좋은 사람들 영향이죠?

주지훈: . ()정우 형과 저는 감독님을 영도자라고 불러요. 왜냐하면, 정말 큰사람이거든요. 권위적이지 않은데, 심지어 너무 재미있으세요. 정우 형이 매일 그래요. “(흉내) 주지훈이~ <신과함께> 안 했으면 어떨 할 뻔했뉘이~?” (일동 웃음)

정시우: 음성 지원이. 처음 만나는 날, 지훈 배우가 용화 매직에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신과함께> 시리즈 해원맥.

주지훈: 감독님 기억해요? 사실 제가 <신과함께> 출연을 고민했었어요. 김용화라는 연출자에, ‘신과함께라는 엄청난 웹툰에, 게다가 해원맥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준다고 하니, 너무 감사했어요. 그런데 그때 미리 약속한 작품 스케줄 픽스가 안 된 상황이었죠.

정시우: 출연을 확답할 수 없는 상황이었군요.

주지훈: . 그런 상황에서 술자리에서 갑작스럽게 감독님을 만나게 된 거예요. 만났는데 감독님이 보자마자 “(90도 폴더) 아우~ 지훈 씨, 안녕하세요. 김용화입니다.” 하는데, ~ 말투나 행동 자체가 나이 어린 사람을 대하는 투가 아닌 거예요. 한참 후배인 저에게 깍듯하게 대해주시는 감독님 반응에 놀라서 저도 모르게 엉뚱한 반응이 튀어나왔어요.

정시우: 사람이 놀라면 그렇게 되죠. (웃음)

주지훈: 그날 제가 또 너무 솔직했지 뭐예요. “감독님, 저는 솔직히 이 대사는 별로인 것 같아요. 저는 자신이 없어요.” 어떻게 보면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였을 수 있어요. 실수였던 거죠. 그렇게 이야기하면 이 사람이 움찔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 네네, 지훈 씨, 그건 저희가 차차 이야기하면서 풀어가요.” 토닥이시는데 말도 계속 안 놓으세요. 그때 제 마음이 확 열린 거예요. ‘, 이런 사람이 다 있지?’ 한 거죠. 이후부터는 감독님 만나면 저절로 “(기합 바짝) 아우~ 감독님 안녕하세요!”가 됐어요.

김용화: 처음 만났을 때 노말(normal)’하진 않더라고요. (장난스럽게) 사실 제가 어디 가서 그렇게 하면 보통 사람들이 함께 엎드리거든요. (좌중 폭소) 이런 애는 처음 본 거예요. 뭔가 심하게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구나, 뭔가 좀 불안하구나, 했어요. 본인은 여유로운 척하는데, 아닌 거죠. 필요 이상으로 웃음소리도 크고.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하겠다는 열망이 그득한 걸 느꼈어요.

정시우: 노말하지 않음에도 (웃음), 손을 계속 내민 이유는 뭔가요?

김용화: 저는 가능성을 보거든요. 화면을 보다 보면 ? 저 배우 잘하겠다. 작품과 잘 맞겠다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오는 순간들이 있어요. 지훈이도 그런 느낌을 가지고 만났는데, 실제로 보고 나서 굉장히 매료됐어요. 남자가 봐도 너무 멋진 남자인 거예요. 주지훈을 실제로 보면 외모에서 확 오는 게 있잖아요?

정시우: 아우라가 있죠.

김용화: 유전자가 일단 남다르니까. 몸 자체가 한국사람 같지 않은데, 남자다우면서도 귀엽고 순수한 면모들이 믹스돼 있으니까 굉장히 끌렸어요. (짓궂게) 그에 비해 태도는 좀 이상하긴 했지만. (좌중 웃음)

주지훈: 감독님 대본은 참 신기해요. 글로 보면 사실그렇게 재미있지 않거든요. (일동 웃음)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조금 설명적이기도 했고, 지옥도를 어떻게 표현할지 글로는 안 보이니까 잡히지가 않았던 거예요. 그런데 김용화 화법으로 현장에서 만나면, , 엄청 재미있어져요. 시나리오보다 훨씬 재미있는 그림이 나오는 거죠.

정시우: 시나리오보다 더 재미없게 나오는 경우가 많지는 않잖아요?

주지훈: 잘 쓴 시나리오일수록 리스크가 더 크긴 하죠. 그만큼 나오는 게 굉장히 어렵거든요. 글은 너무 좋은데, 이 글을 영상으로 옮길 수 있을까란 의심이 들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정말 감독의 예술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스타 감독들이 배우들을 옥죌 것 같잖아요? 제가 경험해 본 바로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단역 배우들 이야기도 더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김용화: 하면 할수록 몰라서 그래. 처음엔 겁 없이 하다가,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경험을 통해 터득하는 거죠. 의도하지 않은 부분에서 관객 반응이 오거나 하면, 정말 여러 생각이 들어요. 집단이 뭔가 일치된 걸 만들어낼 때는 겸손해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되는 거죠.

주지훈: 정말이지, 리스펙트는 강요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그 사람의 성품과 인품과 그런 것들을 보고 존경이 저절로 생기는 거지. 그런 것들을 많이 배웠죠.

문득 나는 두 사람이 어떤 ‘인(因)과 연(緣)’으로 이생에서 만났을지 궁금했다. 확실한 건, 서로가 서로에게 귀인이지 않을까.

김용화: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잖아요.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며 사는 시기가 있고,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중요한 시기가 있는데, 어른이 된다는 건 후자를 언제 느끼는가라는 생각을 해요. 100%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인간은 누구나 전자를 살아요. 안 살지 않는다고요.

정시우: 평생 전자로만 사는 사람도 많을 테고요.

김용화: 조심스럽긴 한데 그렇죠. 어쩌면 이 이야기를 하는 저 또한 전자로 살고 있는 것일지 몰라요. 제 경우엔 <국가대표>라는 영화가 분기점이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거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정확히 말하면 태도는 비슷해요. 그런데 그게 진심이냐, 아니냐로 많이 옮겨졌어요. 지훈이는 그게 저보다 훨씬 강한 직종의 직업을 가지고 있어요. 후자로 살기엔 너무 어려운 직업이죠. 그런데 <신과함께>를 하면서 무엇인가를 느낀 것 같아서 뿌듯해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관계성 같은 것들을요.

주지훈: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질문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런데 감독님도 그렇고 정우 형이나 우성 형도 그렇고, 제가 묻는 어떤 사안에도 단언하지 않아요. 어떨 땐 대답이 다 다를 때도 있어요. 그럼 저는 거기에 제 생각을 입히며 고르는 거죠. 행복한 상황인 거예요. 그랬더니 참 신기한 게, 10년 동안 앓던 불면증이 사라졌어요.

정시우: 저런, 불면증이 10년이나요?

주지훈: 제가 불면증이 얼마나 심했냐면, 지금은 드라마 현장이 그 정도는 아닌데, 이전에는 일주일 내내 밤샘 촬영도 하고 그랬어요. 중간에 2시간 정도 여유가 나면 그때 쪽잠이라도 자는 거죠. 그런데 그 2시간을 자기 위해서도 수면제를 먹어야 했어요. 그 센 수면제를 먹고도 2시간 후에 눈을 딱 떴고요. 누가 깨우지 않아도 혼자서. 그 정도로 심했어요. 가 멘탈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던 거죠.

김용화: 멘탈이 강한 사람이 어디 있어. 없어. 강한 척하는 거지.

주지훈: 요즘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다 보니, 기운도 좋아졌나 봐요.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 말해요. 그 말들이 참 고맙죠.

김용화: 지훈이가 이른 나이에, 직종에 대한 밑천도 없을 때 너무 큰 사랑을 받았잖아요. 그게 사실은 정말 선택받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시쳇말로 로또맞았다고 하죠.

정시우: 아무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죠.

김용화: . 일단 그 시대 트렌드가 좋아할 만한 외양을 갖춰야 하고, 말하는 투나 뉘앙스 등이 복합적으로 작품과 맞물려서 태어나는 건데, 그걸 약관의 나이에 딱 만났죠. 그런데 그런 배우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전례들이 많잖아요. 모두가 행복하지는 않았다고요. 그런데 지훈이는 하느님이 그걸 망가뜨리지 않고, 어떤 운이 작용해서 외부적인 어떤 악재를 하나 준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정시우: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는 열망이 지훈 배우에게 그득한 것 같다고 했잖아요? 어느 지점에서 그런 걸 느끼신 건가요.

김용화: 드글드글한 근성을 본 거죠. 재능에 비해서 기회를 덜 만난 케이스라고 생각했어요. 가지고 있는 내공은 많은데, 보여줄 수 있는 창구가 적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자신도 모르게 비집고 나온 게 아닌가 싶었죠.

정시우: 첫 만남에서 주지훈이란 배우의 많은 걸 보셨네요.

김용화: 많은 사람이 그런 것 같아요.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생각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살아요. 그런데 사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도, 대중은 그 사람에게 그렇게 큰 관심이 없거든요.

정시우: ‘타인은 생각보다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

김용화: 가령 내가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매일같이 신경 쓰고 있다고 가정해 봐요. 불변의 법칙이, 10명이 있다면 그중 1명은 나를 엄청 좋아한대요. 그리고 2명은 날 엄청 싫어해요. 나머지 7명은 아예 관심이 없고요. 역으로, 타인에 대해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묵묵히 살아가는 경우. 그런 사람을 보고도 1명은 엄청 좋아하고, 2명은 저놈은 저렇게 살면서 고마움을 저렇게밖에 표현 못해?’ 라고 하고, 나머지는 별 관심이 없대요. 정신분석학까지 가면 복잡한데, 생각보다 타인은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아요.

정시우: 굉장히 공감하며 듣게 되네요.

김용화: 가령 어떤 사람이 아무리 주지훈을 사랑한들, 온종일 주지훈만 생각하진 않잖아요. 자기 인생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지훈이가 여러 경험을 통해 빨리 터득해서 배우로서든 남자로서든 잘살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보시다시피! 지나고 보니까 그래요. 지훈이가 저와 함께 보낸 시간도 있지만, <아수라> <공작>을 통해 기라성 같은 배우 감독들과 2017∼2018년을 겪으면서 어마무시하게 성장한 것 같아요. 사람이 이렇게 멋있을 수가 없어요.

주지훈: 제가 감독님과 형들 만난 걸 되게 감사하는 게, 세상과 혼자 외롭게 싸우다가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들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세상을 겸허하게 바라보는 법도요.

정시우: 그런 생각이 들어요. <신과함께>그렇게 큰 성공을 했는데 그 성공이 선물해 준 게 그 무엇도 아닌, ‘겸허라니너무 아름다운 거 아닌가요.

김용화: 진짜 그렇게 돼요. 상상을 넘어서는 일이 일어나면.

주지훈: 단순히 관객 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감독님 기억나세요? 버스 타고 무대인사 하러 다닐 때 다들 눈시울 붉어진 일. 지금도 이 이야기하면 울컥할 텐데, 누군가가 이거 보세요!” 하면서 SNS를 보여줬어요. 딸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엄마를 찍은 사진이었는데 <신과함께>를 보고 나와서 막 찍은 것 같더라고요. 그 사진 이렇게 글이 쓰여 있었어요. “우리 엄마가 <신과함께>를 보고 나와서 할머니에게 전화를 드리고 있다.” 순간 너무 감동해서,

정시우: 영화의 힘을 느끼는 순간이었군요.

주지훈: . 감독님이랑 저랑 눈이 빨개지는데, 들키면 서로 부끄러우니까 ‘(눈에 힘 빡 주고) 어헝?’ 했던 기억이 나요.

김용화: 그런 순간을 만나면 사람이 오히려 더 겸손해져요. 영화라는 걸 함부로 만들면 안 되는구나, 정서가 되게 중요하구나를 느끼게 되죠.

주지훈: 그런 경험을 겪고 나니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이전에는 내 취향이 아니면 일단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작품을 봤어요. 지금은 달라요. 작품이라는 게 제 취향의 사람들만 보는 게 아니잖아요. 또 제 취향이 정답인 것도 아니고요. 보다 많은 관객을 배려해서 만들어야 하는구나,를 알게 된 거죠. 다만 기준이 조금 흐려진 건, 부작용 같긴 해요. (웃음) 다 좋아 보이니까. 뭐든 다 오케이야~ (웃음)

정시우: 긍정 열매가 열렸군요. (웃음)

주지훈: 제가 <아수라> <신과함께> <공작> 순으로 영화를 찍었어요. 사실 이전에는 어떤 선입견이 있었어요. 톤 앤 매너 자체가 다른 영화들임에도 이전에는 <신과함께>처럼 엔터테이너하고 뭔가 라이트하게 다가오는 영화는 고뇌가 덜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완전 오판이었어요. 그 어떤 작품도 단 1초도 허투루 하는 게 없어요. 어두운 영화를 찍는 연출자가 더 고뇌할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고민의 무게는 똑같아요.

정시우: 중요한 포인트네요.

주지훈: 소고기를 찌느냐 굽느냐의 문제일 뿐, 소에게 좋은 사료를 먹이고 정성스럽게 방목시켜서 키우는 건 똑같아요. 같은 고민을 하는데 표현 방식이 다른 것뿐이라는 걸 느꼈죠.

영화 <좋은 친구들>

인적으로 배우 주지훈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던 건, <좋은 친구들>이란 영화에서부터다. 신인 이도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좋은 친구들>은 우연한 사건의 파장으로 돌이킬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세 명의 친구들 이야기다. 사건의 크기보다는 벼랑 끝에 몰린 인물들의 미세한 감정 변화가 이 영화의 정수였는데, 주지훈은 딜레마에 놓인 주인공 인철에 현실감을 부여하며 극 전체에 공감을 불어넣었다. 그때 나는 <좋은 친구들>이 이 배우의 터닝포인트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난 10월 개봉한 <암수살인>은 주지훈이란 미지의 책자를 읽는 또 한 번의 안내서다. 극중 주지훈은 살인범 강태오를 맡아, 관객이 살인범에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일말의 여지마저 완강하게 버티며 막아낸다. 그를 향한 여러 연기 호평이 날아드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주지훈: 제가 잘해서라기보다는, ()윤석 선배 영향이 커요. 보시는 분들이 김윤석에게 완전 밀릴 줄 알았는데, 나름 버텨내네?’ 이런 생각에서 좋게 봐 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웃음)

김용화: 이게 방증하는 건, 주지훈 효과가 엄청 크다는 거죠. 2017∼2018년의 주지훈은 전체 관객 수를 떠나서, 신이 있다면 판을 한 번 쫙 깔아준 느낌이랄까.

정시우: 올해만 3500만 관객을 만났나요? 영화 3편이 모두 성공했고요.

주지훈: 이런 행운은 정말이지로또 맞았죠, . (웃음) 약간 무섭기도 해요.

정시우: 안 그래도 살짝 두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아수라> 주지훈과 정우성.

주지훈: 다행히 감독님과 형들이 AS를 되게 잘해 주세요. 술 한 잔 먹고 그러면 지훈아, 이게 우리가 잘나서 이렇게 된 게 아니다. 이런 좋은 게 항상 오지 않는다. 멘탈 관리 잘해라말씀해 주시죠.

김용화: 또 작품이 안 되더라도,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그 부담도 떨쳐야 하는 거야. 요샌 그런 생각을 안 할 수 없을 거 아니야. 계속 잘되니까. 그런데 전혀! 설령 안 되는 작품을 만난다고 해도, 또 다른 작품으로 걸어가면 되니까. 그리고 앞으로 안 되는 작품이 안 나오겠냐? 당연히 나오지.

주지훈: 잘된 작품이 가끔 나오는 거죠, 사실.

김용화: 그렇지. 그리고 앞으로는 더 심해질 거야. 점점 더 대중은 극장을 안 갈 테니. 이젠 자기가 생각하는 기대작,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한다 하더라도 그게 원하는 아이템의 영화일 때만 극장을 가는 것 같아요. 실제로 극장 사이징이 작년부터 작아지는 추세잖아요? 경제적인 상황도 있겠지만 이젠 IPTV도 있고 영화를 볼 수 있는 창구가 워낙 많으니까요.

주지훈: 맞아요. 시대가 변하고 있죠.

김용화: 그런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 지금처럼 시나리오 보고 네가 재밌게 할 수 있는 걸하면 돼. ‘잘될 것 같은 작품이 아니라. 잘될 작품을 어떻게 알겠어.

정시우: 감독님이 보시기에 배우로서의 주지훈과 인간으로서의 주지훈이 좀 다른가요?

김용화: 저에겐 같아요. 그런 건 있어요. 외국 사람들이 주지훈은 어떤 배우야?”라고 물어보면 한국의 라이언 고슬링 같은 배우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지훈이가 라이언 고슬링처럼 됐으면 좋겠어요. 라이언 고슬링이 더 위대한 배우라는 게 아니라, 느낌이 그래.

주지훈: 감독님, 도와주세요! (일동 웃음)

김용화: 이 이야기를 꼭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럼 주지훈의 가장 큰 매력은 뭐냐! 지훈이는 다른 건 없고요, 되게 똑똑해요. 무슨 이야기냐면 머리를 안 굴려요. 우리가 젊었을 땐 머리를 많이 굴리잖아요. 10원 하나 더 가지려고. 혹은 더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 그걸 평생 하는 사람이 스마트한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느 시점을 넘어가면 , 내가 머리를 굴려서 얻어 낼 수 있는 게 별로 없구나를 아는 시점이 오거든요. 그다음부터는 사람이 머리를 안 굴려요. 솔직해지죠. 그런데 그렇게 한다는 게 되게 스마트한 거거든요. 지훈이가 그래요. 제가 만나본 배우 중에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아이는 처음 봤어요. 똑똑한 아이인 거예요. 똑똑하니까 연기도 잘하고. 똑똑하니까 모험도 하는 거죠. 그래서 지금은 스태프들도 그렇고, 상대 배우들도 그렇고, 얘랑 뭘 하면 다 팬이 되는 거고요. 이런 것만 잘 키워나가도 더 멋져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4. 더 흥미진진해 질, 주지훈의 방
 
밀려드는 차기작 준비로 스케줄이 꽉 찬 김용화 감독은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자리를 다시 정리하는데, 주지훈이 조용히 , 재밌어~!”라고 혼잣말을 내뱉는다. 놓치지 않고 뭐가 그렇게 재미있으세요?” 물었더니 , 모든 것들이요라는 답변이 날아들었다.
 
-정말 긍정적으로 변하셨습니다.
=원래도 긍정적이었는데, 지금은 인간애같은 게 생긴 것 같아요. 옛날에는 누가 뭘 못하면 왜 이렇게 못하니?” 했어요. 그런데 다른 좋은 말이 많잖아요. 똑같은 상황에서 잘할 수 있어, 힘내라고 하게 된 것 같아요.
 
-점점 <신과함께> 이전의 주지훈이 궁금해집니다. (웃음)
=그땐 강박적으로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그걸 하기 위해 몰아쳤던 것 같아요. 그건 지금도 똑같아요. 다만 그때는 제가 몰아쳤다는 표현을 하는데, 지금은 그런 표현은 안 쓰죠. 이젠 그냥 열심히 한다,고 표현해요.

주지훈에게 운동은 왕(王)자를 만들기 위함이 아닌, 캐릭터 준비 과정의 일환이다.

-열심히 하는 것 중 하나가 운동이죠? 꾸준히 하는 것 같던데.
=시간 나면 무조건하려고 해요. 평균 주 3회 정도너무 바빠서 못 가는 주도 있고, 어떤 주는 다섯 번도 가고 그래요. 아침에 눈뜨면 공복에 운동부터 합니다.
 
-당신의 몸은 타고나기도 했지만, 관리의 산물이기도 하군요.
=그런데 관리라는 게, 배에 ()’ 자 만드는 게 아니거든요. 저는 그냥 제 역할에 맞게끔 준비하는 거예요.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역할에 비해 몸이 비대해졌다 싶으면 그땐 반대로 몸을 줄이는 거죠.
 
-데뷔가 패션 잡지 화보죠? 얼마 전 당신의 데뷔 때 사진을 봤는데 많이 마른 느낌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지금이 훨씬 안정감 있어 보여요.
=저도 지금이 좋아요. 그때는 키 185cm에 몸무게가 60kg이었어요. 지금 제가 80kg이거든요. 관객들이 기억하는 드라마에서의 제 모습은 70kg이고요. 제가 탱자탱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10kg씩 증량과 감량을 매년 했어요. (웃음) 작품에 따라서요.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주지훈.

-<간신> 때 닭가슴살 투혼으로 몸을 만드셨죠?
=그때 처음으로 몸을 불렸어요. <간신> 78kg이었는데 체지방이 3.2%인가 했어요. 앞모습이 안 나와서 좀 아쉽긴 한데(웃음) 그때 운동의 재미를 알아서, 이후 멋진 몸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취미로 해요. 작품을 위해 가장 많이 불린 건 <아수라> 때에요. 그때가 85kg.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지니고 있는 아우라가 있잖아요? 화면 안에서 우성 형과 맞부딪혀야 하는데 제가 너무 호리호리해 보이면 작품 느낌이 안 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찌웠죠.
 
-, 그 정도로 찌웠는지는 몰랐어요.
=체형이 크게 두 종류가 있어요. 우성 형과 저는 완전히 반대에요 우성 형은 앞뒤가 얇고 옆이 넓어요. 그런 대표적인 몸이 ()창욱이.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팔이 이만해요. 그런데 물어보면 팔 운동을 안 한대요. 가슴 운동을 해도 어깨로 근육이 가거든요. 저는 마동석 형과 비슷한 체형이에요. 이런 사람들은 앞뒤가 두꺼워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깨 운동을 해도 가슴 쪽으로 근육이 가죠. 제가 이 말씀을 왜 하냐면 영상은 2D잖아요? 제가 아무리 찌워도 아주 커 보이진 않아요. 동석이 형처럼 어마무시하게 키우지 않는 한 말이죠.
 
-과학적이네요, 굉장히.
=그렇죠? 이젠 감으로만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에요. (웃음) 그래서 카메라 테스트도 하는 거고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와서 보고 사전 체크를 하는 거죠. 영화라는 건 종합예술이니까.
 

늘 목표치를 정해서 운동을 한다.

-<아수라> 땐 몸이 조금 무겁게도 느껴졌겠어요.
=걸음 자체가 바뀌었죠. 뭔가 우걱우걱 걷는 느낌? (웃음) 그럼 사람들에게 연락이 와요. 한번은 ()광수에게 전화가 왔어요. “, 저 아는 사람이 지나가다가 형을 봤대요. 그런데 너무 커서 깜짝 놀랐대.” 마른 이미지를 상상했는데, 실제로는 아니었던 거죠. 또 덩치가 크면 키가 더 커 보여요. 너무 커서 야구 선수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걷는 것도 좋아하시죠?
=정우 형만큼은 아닌데, 저도 걷는 걸 즐겨요. 정우 형은 걷는 게 굉장히 단련돼 있어서, 형 페이스에 맞춰 걷다 보면 발에 물집이 잡히기도 해요. 제가 어릴 때 큰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이후 왼쪽 다리 가자미근에 힘이 안 들어가요. 운동할 때 힘이 분산돼야 하는데 한쪽으로면 압력이 가해지니까 몸이 불균형이 됐어요. 그러다 보니 발목에 무리가 가고요. 그래서 정우 형이 자기가 하는 핏빗(Fitbit) 모임(지인들과 단체 방을 만들어서 실시간으로 기록을 공유한다)에 들어오라고 하는데 안 들어가고 있어요. 집요하게 꼬시는데, 집요하게 안 들어가고 있죠. (일동 웃음)
 
-힘들까 봐?
=저는 승부욕이 강한 사람은 아닌데, 또 하면 대충은 못 해요. 안 하면 안 했지, 하면 이겨야 해요. (웃음) 그래서 애초에 손을 안 대려는 거죠. 게임도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종류로 해요. 육성형 게임들, 레벨 올리는 것들 위주로요.
 
-그나저나, 당분간 만날 수 있는 영화가 없네요.
=어후, 잔고가 없어진 느낌이에요. 그래서 조금 허무하기도 해요.
 
-그래도 넥플릭스 <킹덤>과 드라마 <아이템>이 있으니, 꾸준히 뵐 수 있어서 좋네요. 요즘 한창 <아이템> 촬영 중이죠?
=. 어제도 통영에서 촬영하다가 오늘 새벽에 올라왔어요.
 
-어우~ 잠이 많이 부족한 상태시겠네요.
=괜찮아요. 사실 드라마 출연은 고민을 조금 했어요. 관객들과의 스킨십은 참 좋은데, 아무래도 영화에 비해 촬영 스케줄이 빡빡하다 보니 겁이 조금 나더라고요. 그래도 이전보다는 현장이 좋아졌다고도 하고, 또 주변에서 넌 드라마도 잘 맞아라고 해 주시는데, 그런 장점을 굳이 죽일 필요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퇴폐미가 있으시죠. 드라마에 근사하게 어울리는.
=하하. 이전에는 너무 외모적으로 평가받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어요. 지금은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멋있어 보여야 하는 캐릭터도 들어오고, <아수라><공작> 같은 작품도 저를 찾아 주시니까요. 제가 <킹덤>에서 맡은 역할이 세자인데, 세자면 미혼인 거잖아요. 10대란 이야기거든요. (일동 웃음) 아직도 내가 이걸 할 수 있구나, , 감사하다, 이러죠.
 

통영에서의 주지훈. 드라마 '아이템' 촬영 중, 짬을 내 산책 중이다.

-<아이템>은 물건들에 초능력이 있는 설정이라면서요? 당신이라면 어떤 초능력을 지닌 아이템을 원하나요?
=. 순간이동 할 수 있는 아이템?
 
-어떤 욕망의 발현이죠?
=결국 사람은 어린 시절 영향인데, 제가 멀미가 되게 심했다고 했잖아요? 차 막히면 힘들어하고. 아마 그런 욕망이지 않을까 싶어요. (혼잣말) 내가 이동을 되게 힘들어하긴 하는구나. (웃음)
 
-저번 만남에서 변화하는 가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잖아요? 그래서 궁금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나요? 이것만은 지키고 싶다하는 가치요.
=있어요. 제가 유일하게 안 변하는 건 솔직하자염치 있자에요. 이건 쉽게 고쳐지지 않는데, 제가 염치없는 걸 못 봐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진심이 아닌 마음으로 대하는 건 참그래서 저도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솔직한 게 나도 편하고 너도 편하고가 된다고 믿거든요.
 
-상대에게 너무 잘하려는 이유로 솔직하지 못할 때도 있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중간 지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가령 제가 뭔가가 싫어요. 이전엔 그럼 참다가 곯거나, 참다가 터지거나 둘 중 하나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인상 쓰지 않고 조곤조곤하게 난 네가 그렇게 하는 게 사실은 조금 불편해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게 된 것 같아요. 그게 참 쉬워 보이지만
 
-엄청 어려운 일이죠.
=. 그 과정까지 많은 생각이 필요하니까요. 에너지도 필요하고요.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악역을 하는 거잖아요. 가령 친구가 매일 늦어요. 거기에 대고 , 난 네가 늦어서 너무너무 불편해라고 이야기하면, 분위기가 뻘쭘해질 수 있잖아요? 보통은 그게 싫어서 아무 소리 안 하는 거고요. 이게 뭐랄까책에 나오는 것처럼 완벽하게 옳고 완벽하게 그르게 현실이 돌아가지는 않죠.
 
-현실을 조금 더 복잡하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내가 잘못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불편함을 이야기할 용기도 있어야 하는 것 같고, 그걸 감내할 용기도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럼 잠깐은 어색하지만, 뒤는 깔끔해지는 것 같고요.
 
-그날, 그 말은 진심이세요? “나는 뭔가를 남기고 산화될 것이다
=하하하. 어릴 땐 뭘 모르고 맹목적으로 내가 이 직업을 가졌으면 뭐라도 하나 남겨야지!” 하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관점이 조금 바뀌었는데, 내가 열심히 하면 자연스럽게 무언가가 남겠지, 가 됐어요. 뭔가를 증명하기 전에는 설레발 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배우 인생은 어차피 긴 여정이니까.


주지훈을 만나고 생각했다. 어쩌면 행복이라는 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굴하고 찾아내야 한다는 걸. 그를 둘러싸고 있는 긍정의 에너지는 그런 노력이 모인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언제고 했던 말처럼 인생은 결국 플러스, 마이너스. 매번 잘되는 삶도 없고, 매번 안 되는 삶도 없다. 그의 삶도 이전처럼 롤러코스터를 탈 것이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적어도 그는 삶의 굴곡을 어떻게 넘어야 하는지 아는 자 같으니까. 나는 이 배우가 어떤 영광과 시련을 만나든, 그 영광과 시련 안에서 무엇이든 배우고 그걸 발판삼아 다시 나아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점에서 주지훈은 적어도, 최근에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널리 그리고 멀리 나아가고 있는 배우다.   


정시우 /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