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강자 <왕좌의 게임>은 없었지만, 올해도 수많은 드라마가 새롭게 선보이며 냉정한 평가를 받았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할리우드 유명 감독과 스타 배우들을 더 가깝게 볼 수 있어 즐겁기도 했다. 많고 많은 드라마 중에서 2018년에는 어떤 작품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을까. 해외 매체 ‘인디와이어’에서 공개한 ‘신작 드라마 베스트 15’에 선정된 드라마를 소개한다. (로튼토마토/메타크리틱 기준일 12. 20)
15.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Chilling Adventures of Sabrina)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80% / 메타크리틱 메타스코어 74
마녀와 인간의 피를 물려받은 사브리나는 열여섯 생일을 맞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인간 세계의 친구들과 멀어지고 본격적으로 마녀의 세계에 발을 들여야 하지만, 사브리나는 그대로 운명에 굴복당하고 싶지 않다. 1990년대 <미녀 마법사 사브리나>로 방영됐던 시트콤은 21세기를 맞아 진취적인 주체성을 갖고 새롭게 재탄생했다. 호러와 오컬트를 넘나들며 장르적 매력까지 두루 갖추고, 반인간 반마녀 사브리나의 새로운 여정에 닻을 올렸다. 최근 크리스마스 스페셜 에피소드가 공개됐으며, 2019년 4월 파트 2로 돌아온다.
14. 리틀 드러머 걸(The Little Drummer Girl)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89% / 메타크리틱 메타스코어 75
무명 극단에서 활동하는 배우 찰리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우연히 알게 된 매력적인 남자가 여행을 제안하는데 알고 보니 모든 게 정교하게 꾸며진 각본인 데다 심지어 위험한 테러 집단에 접근할 것을 요청하며 찰리를 시험한다. 박찬욱 감독의 첫 해외 드라마로 관심을 모은 <리틀 드러머 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을 심리 첩보물로 풀어낸 존 르 카레의 동명소설을 6부작 시리즈로 옮긴 작품이다. 플로렌스 퓨,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마이클 섀넌 등 쟁쟁한 출연진과 클래식한 매력이 깃든 세련된 미장센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며,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13. 키딩(Kidding)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76% / 메타크리틱 메타스코어 68
오랜 기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 ‘미스터 피클’ 제프에게 말 못 할 속사정이 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들 필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해 아내 질과 이혼했고, 남은 쌍둥이 아들 윌과의 관계도 소원하다. 카메라 앞에서는 늘 해맑게 미소 짓는 제프는 이제 아이들에게 마냥 친절하고 밝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지 않다. <키딩>은 작품마다 독특한 영상미를 선보이는 미셸 공드리 감독과 정극과 코미디를 아우르며 폭넓은 연기를 선보이는 짐 캐리가 만난 작품이다. 사회적인 성공과 달리 개인의 비극에 직면한 남자의 이야기는 감독 특유의 연출법으로 미묘한 불협화음을 자아내고, 거기에 표정만으로도 불행한 삶을 감춰야 하는 복합적인 심리를 표출하는 짐 캐리의 연기가 깊은 인상을 남긴다.
12. 코퍼레이트(Corporate)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85% / 메타크리틱 메타스코어 75
맷과 제이크는 농산물, 약품, 가전제품부터 무기까지 다 만드는 다국적 기업 햄튼 데빌에서 신임 임원 승진을 위한 훈련에 돌입한다. 독재자 CEO와 그의 오른팔, 왼팔이 두 사람을 지켜보는 가운데 사건 사고는 도대체 그칠 줄을 모르고, 이들은 유일한 동지인 인사과 그레이스와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텨 나간다. 직장 코미디라는 점에서 <오피스>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코퍼레이트>는 한층 더 냉소적이며 어둡다. 중간 관리자급 두 주인공의 회사 생활을 통해 시스템과 이윤을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기업의 관료제를 1g의 사탕발림 없이 그린다. 보고 있으면 내가 회사를 다니는 게 용하다고 느낄 수 있다.
11. 하워즈 엔드(Howards End)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90% / 메타크리틱 메타스코어 86
배려심 많은 지성인 마가렛은 우연한 계기로 부유한 가문의 윌콕스 부인을 만나 가까워진다.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마가렛 자매와 보수적이며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진 윌콕스 가문은 서로 다른 배경에도 뜻하지 않는 형태로 교류를 시작한다. <하워즈 엔드>는 1992년 영화로도 나온 E.M. 포스터의 유명 소설을 4부작 드라마로 옮긴 작품이다. 마가렛을 맡은 헤일리 앳웰은 온화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연기로 드라마를 지배하며,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케네스 로너건은 각본을 맡아 계급과 관습, 진보와 보수의 대립, 연민과 사랑 등 불가해한 감정으로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를 매혹적인 이야기로 풀어낸다.
10. A.P. Bio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65% / 메타크리틱 메타스코어 59
대학 진학을 위한 생물학 선행 학습반(Advanced Placement Biology) 이야기. 아이비리그를 꿈꾸는 학생들 앞에서 새로 부임한 교사는 “난 가르칠 게 없다”라고 깜짝 선언한다. 꿈의 직장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온 교사 잭은 우등생 아이들을 복수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하고, 교장을 비롯한 학교 교사들은 잭을 통제하고자 쩔쩔맨다.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교사 캐릭터는 익숙하지만, <A.P. Bio>의 매력은 독특한 케미를 연출하는 출연진을 보는 데 있다. 글렌 하워튼과 패튼 오스왈트가 주인공 잭과 더빈 교장을 맡아 유명 코미디언의 명성을 재차 증명하며 웃음을 견인한다. 두 사람과 함께 개성 강한 학생들을 연기하는 배우들도 인상적이다.
9. 카운터파트(Counterpart)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100% / 메타크리틱 메타스코어 76
평범한 사무직 정보 요원 하워드 실크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긴다. 그동안 유엔이 비밀리에 동일한 구조의 다른 차원과 균형을 유지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건너편 세계에서 넘어온 정보 요원 하워드가 양쪽 세계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청부살인업자가 잠입했다며 은밀한 임무를 제안한다. <카운터파트>는 마치 존 르 카레의 첩보물과 필립 K. 딕의 SF가 만난 듯한 드라마다. 냉전시대를 연상시키는 차갑고 건조한 분위기 속에 음모론과 비밀스럽고 모호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긴장감을 유지하며 펼쳐진다. 상반된 성향의 두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한 J.K. 시몬스의 압도적인 존재감도 이 드라마의 절대매력이다.
8. 포즈(Pose)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97% / 메타크리틱 메타스코어 75
<포즈>는 미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많은 트랜스젠더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으로, 1980년대 후반 미국 뉴욕 LGBTQ 커뮤니티의 ‘볼 문화’(Ball culture)를 다룬다. 볼 문화는 주제를 가장 적절하게 해석한 패션과 워킹, 보깅을 선보이며 경쟁하는 자리다. 아프리카계와 라틴계 트랜스젠더가 주축이 됐던 LGBTQ 서브컬처를 중심으로 볼룸(ballroom)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각 하우스 간 경쟁을 심층적으로 그린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친구 정도에 불과했던 트랜스젠더 캐릭터가 주인공, 악당, 코믹 캐릭터가 된다”라는 연출과 각본을 맡은 자넷 모크의 말처럼, 그동안 미디어에서 보지 못했던 집단과 문화를 본격적으로 다룬 점에서 호평받았다. 1980년대 말 HIV/AIDS의 위협에도 삶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여왕들의 이야기는 21세기 시청자에게 공감을 얻어냈다.
7. 석세션(Succession)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88% / 메타크리틱 메타스코어 70
<빅쇼트> 아담 맥케이 감독과 윌 패럴이 제작한 블랙 코미디 드라마. <석세션>은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대기업을 운영하는 로이 가문을 배경으로 아버지 로건이 회사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후 세 자녀가 다음 회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자식보다 회사를 사랑하는 듯한 아버지와 인정받고, 이기고 싶어 끊임없이 경쟁하는 세 자녀의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드라마의 배경과 전개를 보면 폭스와 루퍼트 머독 일가의 실제 이야기가 연상되지만, 제작자는 이들의 삶에 근거했다는 사실을 적극 부인한다.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시즌 1 방영 일주일 만에 후속 시즌 제작을 확정했다.
6. 더 퍼스트(The First)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68% / 메타크리틱 메타스코어 없음
화성에 첫 발을 내딛고자 하는 우주인 팀의 이야기. <더 퍼스트>는 우리가 지금까지 봤던 우주 탐사와 우주인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미지의 세계로 보내야 하는 가족들과 지상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화성 탐사 준비, 우주인 개인의 삶, 우주 프로젝트를 시행하려는 민간 기업이 정치권과 압력과 갈등을 푸는 모습 등 미 항공우주국(NASA) 중심의 프로젝트가 아닌 21세기 우주 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화성 탐사팀의 리더 톰 헤거티를 연기하는 숀 펜은 인간적 고뇌와 우주 탐사에 대한 열망과 갈등을 훌륭하게 표현하며, 소원해진 딸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목숨을 걸 만큼 위험한 우주 탐사를 앞둔 우주인과 가족의 심정을 잘 드러낸다.
5. 배리(Barry)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99% / 메타크리틱 메타스코어 83
살인청부업자 배리의 일상은 무미건조하다. 킬러를 직업으로 택했지만 어떤 만족도 느낄 수 없는 일에 지치고 염증만 쌓여간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온다. 새로운 임무를 위해 LA로 간 배리는 그곳에서 연극을 하는 모임과 인연이 닿고, 자신과 전혀 다른 활기로 가득한 샐리에게 마음을 뺏긴다. 빌 헤이더가 연기는 물론 연출에도 참여한 <배리>는 요즘 많은 형태로 등장하는 범죄 코미디의 구색을 갖췄다. 자신의 일에 무료함을 느끼는 살인청부업자, 순수하고 열정적인 예술가와 여전히 범죄에 깊숙이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범죄자를 추적하는 2% 부족한 형사.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관계는 절망적인 지점에서 냉소적인 웃음을 터뜨리며 외줄 타기를 하는듯한 아찔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4. 킬링 이브(Killing Eve)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97% / 메타크리틱 메타스코어 83
일도 결혼생활도 권태에 빠진 MI5 요원 이브는 여느 때처럼 목격자의 경호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는다. 딱히 능력을 발휘할 게 없는 단순한 업무는 정체불명 킬러의 훼방으로 혼란에 빠진다. <킬링 이브>는 무기력한 정보 요원 이브와 천진난만한 사이코패스 킬러 빌라넬의 쫓고 쫓기는 관계를 예측 불허의 빠른 호흡으로 그려낸다. 산드라 오와 조디 코머의 능청스러운 연기,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변덕스러운 전개, 불완전한 캐릭터들의 상호 집착적인 관계가 어우러져 이제껏 봐왔던 스릴러와 결이 다른 치명적인 매력을 뽐낸다. <플리백>의 피비 월러 브릿지가 루크 제닝스의 소설을 드라마로 개발하는 단계부터 참여해 유쾌하면서도 폭력적인 드라마가 나올 수 있게 견인했다.
3. 더 테러(The Terror)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94% / 메타크리틱 메타스코어 76
1845년 존 프랭클린 함장은 북극 항로 개척을 위해 이리버스호와 테러호를 이끌고 차가운 겨울 바다를 향해 출항한다. 자신만만했던 여정은 예상하지 못했던 몇몇 난관에 부딪혀 교착상태에 빠지고 만다. 앤솔로지 드라마 <더 테러> 시즌 1은 지금까지도 완전한 해답을 찾지 못한 탐험대 실화를 토대로 당시의 고급 기술로 무장했음에도 혹한의 날씨에 갇혔던 사람들의 절망과 두려움을 초자연 미스터리로 풀어낸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 없고, 보는 것만으로도 얼어붙을 것 같은 무섭도록 차디찬 풍경은 무력하고 근원적인 공포를 자아낸다. 인간의 자만에서 비롯된 불운한 이야기는 공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매혹하기 충분하다.
2. 몸을 긋는 소녀(Sharp Objects)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92% / 메타크리틱 메타스코어 78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기자 카밀은 고향에서 발생한 소녀 실종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썩 반갑지 않은 어머니의 집으로 향한다. 카밀은 여왕으로 군림하는 어머니 아도라와 사사건건 부딪히고, 그곳 사람들은 외부인이나 다름없는 카밀을 경계한다. <몸을 긋는 소녀>는 장 마크 발레의 전작 <빅 리틀 라이즈>보다 한층 더 어둡고 폐쇄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며, 더욱더 깊고 끈질기게 인물의 내면을 파고든다. 보통의 미스터리 드라마처럼 적극적인 주인공을 보여주는 대신 부유하듯 마을 곳곳을 떠돌고, 혼란스러운 감정에 취한 인물을 묘사한다. 숨소리에서도 고통을 전하는 에이미 아담스의 놀라운 연기는 결코 편하게 볼 수 없는 드라마에 강력한 몰입을 선사한다.
1. 홈커밍(Homecoming)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98% / 메타크리틱 메타스코어 83
하이디 버그먼은 해외 파병에서 돌아온 병사들의 복귀를 돕는 훈련 지원 센터에서 일한다. 실적을 강요하는 상사 밑에서 여느 날처럼 평범한 삶을 꿈꾸는 참전군인 월터의 상담을 맡게 되는데, 그날 이후 하이디의 삶은 완전히 뒤집힌다. <홈커밍>은 하이디가 삶의 큰 변화를 겪기 전과 후를 넘나들며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 근원을 추적한다. 30분가량의 러닝타임은 필요한 부분만 응축해서 보여줌에도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시청자들은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한없이 빠져들게 된다. <미스터 로봇>으로 인정받은 샘 에스메일의 연출력과 줄리아 로버츠, 스테판 제임스를 비롯한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가 어우러져 강한 서스펜스를 형성한다.
에그테일 에디터 Jacinta, 겨울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