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료가 결정되는 요인은 다양하다. 배우의 인지도와 연기력, 감독에 대한 신뢰도, 제작비 규모, 시나리오의 완성도, 협상의 전략... 생각보다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예상보다 훨씬 낮은 개런티로 출연한 배우들의 사례들을 정리했다. 아래 기사의 후속편 격이다.
※ 괄호 속 원화는 '1달러 = 1100원'을 기준으로 셈했다.
빌 머레이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웨스 앤더슨의 거의 모든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있다. 빌 머레이다. 앤더슨의 두 번째 영화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Rushmore, 1998)부터 함께 하게 됐는데, "(당시) 연기한 모든 캐릭터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허먼 역을 위해 머레이는 불과 9천 달러(990만 원)에 캐스팅을 수락했다. 그는 초창기부터 꾸준히 작업한 해롤드 래미스 감독의 <사랑의 블랙홀>(1993)에 출연할 때도 영화배우 조합 기준 가장 낮은 선의 개런티를 받았던 걸로 알려져 있다.
힐러리 스왱크
<소년은 울지 않는다>
힐러리 스왱크는 비수술 트랜스젠더를 연기한 <소년은 울지 않는다>(1999)로 첫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았다. 훗날 큰 영광을 안게 되긴 했지만, 당시 그의 출연료는 3천 달러(330만 원)에 불과했다.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치열하게 부딪혀야 하는 캐릭터였음에도 의료보험조차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었다. 2년 후, 오스카를 받은 후 처음 캐스팅 된 <어페어 오브 더 넥클리스>로 무려 천 배 오른 3백만 달러를 받았다.
토니 팹워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
이름이 영 낯설 수 있다.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죽음의 성물 2부>(2011), 회상 신들에서 '아기' 해리 포터를 연기했다. 태어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던 이 배우가 받은 출연료는 40 파운드였다. 어린 시절의 대단한 자랑거리라고 생각한다고 쳐도 너무한 금액이다. 한 장면에서만 나온 것도 아니고, N자 표식까지 분장해야 했는데. 영화가 2억5천만 달러를 들여 근 5배 이상을 벌어들였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더더욱.
톰 크루즈
<매그놀리아>
10만 달러(1억1천만 원). 출연하는 작품마다 수천 만 달러를 받는 할리우드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톰 크루즈의 출연료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액수다. <부기 나이트>(1997) 이후 한창 물이 올라 있던 폴 토마스 앤더슨의 세 번째 영화 <매그놀리아>(1999)의 시나리오에 매료된 크루즈는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 <미션 임파서블>(1996)과 <제리 맥과이어>(1996) 이후 1998년 스탠리 큐브릭의 마지막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1999) 촬영에 매진하며 색다른 캐릭터에 대한 의지가 커지던 부풀던 시기라는 점을 떠올려보자.
오프라 윈프리
<컬러 퍼플>
천하의 오프라 윈프리도 3만5천 달러(3800만 원)를 개런티로 받던 날이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흑인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컬러 퍼플>(1985) 때였다. 청소년 시절 가장 감명깊게 읽은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인 데다가 첫 영화 출연작이었기에 그저 기뻤다고 한다. <컬러 퍼플>에 함께 출연한 매거릿 에이버리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1986년 가을 <오프라 윈프리 쇼>가 세상에 도착했다.
바크하드 압디
<캡틴 필립스>
소말리아 출신의 신인배우 바크하드 압디는 해적 대장을 연기한 <캡틴 필립스>(2013)에서 주연 톰 행크스보다 더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5천5백만 불의 예산으로 제작된 이 영화에서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를 맡은 압디의 출연료는 6만5천 불(7150만 원)이었다. 영화배우 조합 기준 최소 금액은 6만 달러를 겨우 넘긴 액수인 셈이다.
일라이저 우드
<반지의 제왕> 시리즈
<아이스 스톰>(1997), 딥 임팩트>(1998), <패컬티>(1998) 등을 거쳐 할리우드의 주목 받는 아역배우로 성장한 일라이저 우드는 20만 달러(2억2천만 원)에 보너스를 더한 개런티로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출연했다. 물론 편당이 아닌, 근 4년에 걸쳐 촬영이 진행된 3부작 전부를 합친 금액이다. <구니스>(1985)의 주인공으로 한때 화려한 아역을 시절을 보낸, 샘 역의 션 애스틴도 25만 달러를 받았다.
데이지 리들리 & 존 보예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스타워즈> 시리즈를 책임질 새로운 주역 데이지 리들리와 존 보예가는 30만 달러(3억3천만 원)에도 못 미치는 출연료를 받은 걸로 알려져 있다. 한편, 그들보다 적게 출연한 해리슨 포드의 개런티는 수익 보너스를 제외하고 2500만 달러(275억 원)를 받았다. 70배를 훌쩍 넘는 수준. 시리즈를 잇는 상징성을 쥐고 있는 배우라는 점을 감안해도 너무나 큰 차이다.
해리슨 포드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
그렇다면 <스타워즈> 시리즈를 처음 찍을 1976년 해리슨 포드의 출연료는 얼마였을까? 주급 1천 불을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1만 불(1100만원)로 최종 합의했다. 그리고 <제국의 역습>(1980)에선 그보다 10배 올린 10만 불, <레이더스>(1981)와 <블레이드 러너>(1982)를 거친 후 출연한 1983년 <제다이의 귀환>에선 50배 올린 50만 불을 받았다.
줄리아 로버츠
<귀여운 여인>
여러 청춘영화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던 줄리아 로버츠는 1990년 <귀여운 여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로버츠가 받은 개런티는 30만 달러(3억3천만 원). 당시 이미 톱스타였던 리차드 기어는 수백만 달러를 받은 걸로 알려져 있다. <귀여운 여인>의 감독 게리 마샬이 연출하고, 다시 한번 기어와 호흡을 맞춘 1999년 작 <런어웨이 브라이드>에서 로버츠는 1700만 달러(187억 원)를 받아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여성 배우로 군림했다.
다이앤 키튼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낸시 마이어스의 로맨스 코미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2003)은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이 보여준 중년 커플의 케미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니콜슨이 받은 수익 보너스를 키튼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영화가 개봉하고 2년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니콜슨은 보너스의 절반을 키튼에게 전했다.
제이미 도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모델 출신의 제이미 도넌은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로 배우로서의 입지를 제대로 다졌다. 사실 도넌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2015) 섭외 우선 순위에 놓이지 않았다. 제작사는 드라마 <선즈 오브 아나키>의 찰리 허넘을 원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고, 그보다 낮은 12.5만 달러(1억4천만 원)로 도넌을 캐스팅 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제작비 대비 15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고, 도넌은 692만 달러(79억 원)를 받고 후속작 2편에 출연했다.
짐 캐리
<예스 맨>
전성기 시절 편당 2천만 달러는 너끈히 받을 수 있었던 짐 캐리는 <예스 맨>(2008)에 1센트조차 받지 않고 출연했다. 그 대신 영화 수익의 36.2%를 가져가기로 협상했다. 흥행 성공과 실패의 기록이 뚜렷한 캐리의 커리어를 돌이켜보면 분명 리스크가 큰 결정이었지만, <예스 맨>은 2억 불을 훌쩍 넘기는 흥행을 기록해, 캐리는 결국 3500만 달러(395억 원)를 챙길 수 있었다.
갤 가돗
<원더 우먼>
DC 확장 유니버스 최초의 여성 솔로무비 <원더 우먼>의 주인공 갤 가돗의 개런티는 30만 달러(3억3천만 원)다. 놀랍지만 사실이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와 <나잇 & 데이>(2010)에 조연으로 참여했지만 이름값은 그리 높지 않았던 시기에 책정된 출연료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DC의 또 다른 슈퍼 히어로 영화 <맨 오브 스틸>(2013)의 헨리 카빌이 1400만 달러를 받았다는 소문과 함께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에 대한 비판이 일기도 했다. 가돗은 <원더 우먼>의 출연료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원더 우먼 2>에 대한 패티 젠킨스 감독의 임금이 전편 대비 3배 오른다고 하는데, 가돗의 개런티는 과연 얼마나 오르게 될지.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