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스마트폰이 아니,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인터넷도 없고 이제 막 PC통신을 하던 시절. 30여년 전 그 시대의 청춘의 담은 영화 다섯 편을 소개한다. 갑자기 왜 1990년대냐고? 음… <캡틴 마블>을 보고 나니 문득 생각이 났다고 해야 할까.


<천장지구>

천장지구

天若有情: A Moment Of Romance, 1990

감독 진목승 출연 유덕화, 오천련

1980년대 홍콩영화의 열풍은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다. 유덕화, 장국영, 곽부성, 주윤발, 장학우 등이 국내에서 인기를 얻었다. 왕조현, 장만옥, 임청하, 관지림, 구숙정 등 여자 배우들의 인기도 상당했다. 유덕화와 오천련을 내세운 <천장지구>는 홍콩 누아르의 완성형이다. 1990년대 한국에 정우성이 있었다면 홍콩엔 유덕화가 있었다. 질주하는 오토바이에 탄 유덕화와 오천련의 이미지는 그 시절을 살았던 청춘들에게 절대 잊혀지지 않을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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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스케치>

청춘스케치

Reality Bites, 1994

감독 벤 스틸러 출연 위노나 라이더, 에단 호크, 벤 스틸러

새삼 놀라운 점이 하나 있다. <청춘스케치>는 코미디 배우로 먼저 인지되는 벤 스틸러의 감독 데뷔작이다. 또 새삼스러운 점은 위노라 라이더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예쁘다는 점. 에단 호크가 아주 젊다는 것. <청춘스케치>를 연출한 감독, 출연한 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다시 볼 이유는 충분하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음악 이야기를 빼놓 수 없다. 더 낵(The Knack)의 ‘마이 새로나’(My Sharona)가 이 영화를 대표하는 노래다. 밴드 이름이 생소하더라도 노래를 찾아 듣는 순간 어디서 들어본 익숙한 기분이 들 거다. 그밖에 레니 크레비츠, U2, 크라우디드 하우스의 노래 등 <청춘스케치> O.S.T.에 수록됐다. 간혹 영화는 보지 않고 O.S.T.만 들었던 사람도 있을 정도로 <청춘스케치>에 사용된 노래는 힘이 세다. 물론 벤 스틸러 감독의 청춘을 스케치한 연출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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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

러브레터

Love Letter, 1995

감독 이와이 슌지 출연 나카야마 미호, 사카이 미키, 카시와바라 다카시

또? <러브레터>를 얘기하는 건 반칙일까. 그렇다고 빼먹기는 그렇다. <러브레터>는 청춘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러브레터>를 생각하면 자전거를 탄 나카야마 미호가 뒤를 돌아보는 장면이 먼저 떠오르긴 한다. 뒤를 본다는 것. 나카야마 미호가 나오지 않는 영화 속 과거 장면을 먼저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따스한 햇살과 살랑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이 있던 도서관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교복을 입고 있던, 후지이 이츠키라는 같은 이름의 소년(카시와바라 다카시)과 소녀(사카이 미키)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소년은 후지이 이츠키라는 이름이 써 있는 도서대출증 다섯 개를 펴보이며 “후지이 이츠키 스트레이트 플래쉬”라며 실없는 농담을 소녀에게 건넸다. 도서대출증이라는 게 사라진 지금. <러브레터>를 본 ‘옛날사람’들은 대출 예약이 필수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도 봤을 것이다. 책을 읽기 전 도서대출증에 쓰여 있는 이름을 훑어본 적이 있을 걸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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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

비트

1997

감독 김성수 출연 정우성, 고소영, 유오성, 임창정

“나에겐 꿈이 없었다.” 정우성의 이 한마디. 청춘이란 이런 것이다. 아픈 게 아니다. 사실 영화가 시작하면서 바로 듣게 되는 저 대사는 정확하게 말하면 정우성이 연기한 <비트>의 민이 한 말이다. 민? 누가 <비트>의 정우성을 민이라고 기억할까. <비트>의 남자 주인공은 그냥 정우성이다. 정우성은 <천장지구>의 유덕화처럼 오토바이를 탔다. 뒷자리에는 부잣집 딸 로미(고소영)가 타고 있었다. 어쩌면 청춘영화라는 것은 청춘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라기보다 청춘의 아이콘을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1997년의 정우성을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히 축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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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즈 리턴>

키즈 리턴

キッズリタ ン, 1996

감독 기타노 다케시 출연 안도 마사노부, 카네코 켄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키즈 리턴>을 관통하는 저 대사는 <비트>의 “나에겐 꿈이 없었다”와 같은 말이다. 분명 다른 단어의 문장이지만 뜻이 같다. 우린 아직 청춘이라는 뜻이다. <키즈 리턴>의 신지(안도 마사노부)는 꿈이 없었다. 문제아 중에 문제아 마사루(가네코 켄)가 그를 권투의 세계로 이끈다. 꿈이 없던 신지는 권투에 빠져들고 마사루는 야쿠자의 길을 간다. 마지막에 두 사람은 좌절한다. 권투도 야쿠자도 망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그들이 다니던 학교 운동장을 뱅글뱅글 돈다. 그들은 뭘 해야 할지 모른다. 인생이 끝난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은 이제 인생을 시작했을 뿐이다. 당신이 더 이상 ‘키즈’가 아닐지라도 <키즈 리턴>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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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