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는 절대 죽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온다. <응답하라> 시리즈와 <무한도전> ‘토토가’ 특집이 나온 지도 꽤 지났다. 지금 다시 복고가 꿈틀거린다. 뉴트로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뉴트로는 뉴(New)와 레트로(Retro)의 합성어다.
북고가 죽지 않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지금 20대는 10년 후에 30대가 될 테고 지금 30대는 40대가 될 테다. 10년, 20년 후에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복고가 될 것이다. 이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는 <캡틴 마블>에서 1990년대 미국 대중문화를 접한다. 너바나, TLC의 노래가 들린다. 캡틴 마블(브리 라슨)은 (지금은 영화음악가로 유명한 트렌트 레즈너가 만든 록 밴드) 나인 인치 네일스 티셔츠를 입었다. 그녀는 비디오테이프 렌탈 체인점인 블록버스터 매장에 불시착했다. 휴대전화가 아니라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캡틴 마블은 닉 퓨리(사무엘 L. 잭슨)에게 (국내에선 삐삐라고 불렸던) 무선호출기를 건넸다. 이런 1990년대의 기억은 한국에도 존재한다. 몇몇 장면을 찾아봤다.
<초록물고기>의 공중전화
기술 발전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의 등장은 통신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몰고 왔다. 동시에 사라지는 것들이 생겼다. 대표적인 것이 공중전화다. 2018년 11월, 서울 홍대역에서 사람들이 공중전화를 쓰기 위해 줄을 섰다는 게 뉴스가 된 적이 있다. KT 아현지사 화재 덕분에 LTE 통신망이 먹통이 됐기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가 개봉한 1997년이라면 어땠을까. 벽돌 만한 휴대전화가 있던 시절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공중전화를 이용했다. 그때는 공중전화 박스 앞에 줄을 서는 게 당연했다. 한석규가 연기한 <초록물고기>의 막동이도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큰 성(형)이야? 엄마는? 엄마 어디 갔어? (중략) 큰 성 그때 생각 나?” 이 공중전화 신은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초록물고기’인지 알려준다. 한석규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영웅본색>의 장국영 못지 않다.
<접속>의 PC통신
2019년 3월 12일, 월드와이드웹(WorldWideWeb) 탄생 30주년이었다. 구글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로고를 바꾸는 두들(Doodle)을 선보였다. 월드와이드웹이 없던 시절엔 인터넷을 어떻게 썼을까. www(국내에서 ‘따따따’라고 부르기도 했다)로 시작되는 웹사이트 이전엔 PC통신이 대세였다. 한석규, 전도연 주연의 <접속>은 PC통신이라는 통신 매체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주로 채팅을 한다. 누군지 모를 타인에게 털어놓는 속마음. 옛 연인을 잊지 못하는 해피엔딩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남자(한석규). 친구의 애인을 사랑하는 여인2라는 아이디를 쓰는 여자(전도연). PC통신은 지금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는 어딘가 다른 느낌이다. 순수했다고 할까. 어쩌면 그건 기술 발전이 덜 됐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PC통신으로 사진 한 장 받으려면 얼마나 오래 걸렸던가. 그 전화비는 누가 감당할 건가. 그래서 주로 채팅을 했다. 채팅은 ‘번개’라는 이름의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해피엔드님과 여인2님은 지금은 사라진 종로3가의 피카디리 극장 앞에서 만났을까.
<8월의 크리스마스>의 사진관
어제 당신은 뭘로 사진을 찍었나. 아마도 아이폰이나 갤럭시나 V40로 찍지 않을까. 좀더 사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캐논 EOS M50, 소니 알파 A7 3, 라이카 Q2, 리코 GR 3나, 캐논 EOS RP, 후지 X-T30 같은 디지털 카메라를 쓸 수도 있겠다. 혹시 니콘 FM2를 아직도 쓰는 사람이 있을까. 20년 전에도 주로 “장롱에서 출토됐다”는 이 카메라는 수동 필름카메라의 대명사처럼 불린다. 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사진관이라는 곳에서 필름 현상, 인화 과정을 거쳐야 확인할 수 있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주차 단속 요원 다림(심은하)이 정원(한석규)이 운영하는 초원사진관에 자주 가는 이유도 이와 같다. 다림은 자동 필름카메라를 썼다. 필름을 정원에게 주고 인화된 사진을 찾아야 불법주차한 운전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사 정원은 필름 현상, 사진 인화 뿐만 아니라 증명사진, 여권사진, 영정사진을 찍기도 한다. 정원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다림을 큰 중형카메라 앞에 앉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원은 다림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찍은 영정사진 속 정원의 미소는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 사진의 빛이 바래 없어질 때까지.
<중경삼림>의 노래 ‘몽중인’
음악의 힘은 위대하다. <캡틴 마블>에서 우리는 느꼈다. 너바나의 ‘컴 애즈 유 아’(Come as you are)의 기타 선율이 극장에 울릴 때 그 노래를 아는 사람들은 곧장 자신만의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 식상한 예를 들자면 기타를 잘 치던 선배와 단둘이 있었던 그때 그 시절 동아리방으로 타임워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속 노래들을 다시 들어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왕비의 ‘몽중인’, 마마스 앤 파파스(Mamas & Papas)의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nia Dreaming) 같은 노래는 1994년으로 우리를 순간이동시킨다. 큰 선글라스를 낀 노랑머리의 임청하, 유통기간이 5월 1일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으던 금성무, 커피를 마시던 경찰복장의 양조위, 쇼커트의 노란 셔츠를 입은 왕페이. 이들은 음악과 함께 기억 속에 살아간다. 사실 1990년대를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음악은 많다. 위에 소개한 <접속>이 그렇고, 대니 보일 감독의 <트레인스포팅>도 그렇다. 굳이 <중경삼림>을 꼽은 것은 이 영화가 당시 젊은이들, 지금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열광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X세대라고 불렸다. <중경삼림>을 소개한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른바 뉴트로의 감성에 딱 맞는 영화라서 그렇다. 아직 못 봤다면 꼭 보길 바란다. <문라이트>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베리 젠킨스도 열광한 영화다.
복고는 돌고 돈다. 언제 다시 1980년대가 1970년대의 문화가 유행할지 모른다. 2000부터 2010년의 지난 10년이 복고의 대상이 될 차례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곧 기자의 옆자리에 앉은 10살 어린 후배가 복고를 얘기할 때 올 듯하다. 아마도 추측하건데 후배는 맨 처음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2001)을 얘기하지 않을까 싶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