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퍼니 게임'은 완전한 반어다. 한 중산층 가정이 호숫가로 휴가를 즐기러 온 별장에 두 청년이 별안간 찾아와 일가족에게 고문을 가하는 영화는 재미는커녕 관객을 극한의 불쾌함으로 몰아넣는다. 오스트리아의 시네아스트 미카엘 하네케는 데뷔부터 줄곧 게으로그와 안나라는 부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잔인한 폭력이 자행되는 과정을 TV와 비디오카메라 등 미디어를 경유해 한껏 부풀리면서 중산층의 불안을 보란 듯 전시했다. 하네케는 본래 <퍼니 게임>을 미국을 배경으로 찍고 싶었지만 사정상 포기하고 자국 오스트리아에서 제작했고, 그로부터 10년 후 나오미 왓츠, 팀 로스, 마이클 피트를 기용해 미국판 리메이크를 직접 연출했다. 비슷한 색과 모양의 옷을 입은 괴한이 돌연 집에 침입해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는 골격이 유사하다.
<겟 아웃>으로 호러의 솜씨를 뽐내 단숨에 할리우드의 가장 뜨거운 감독으로 올라선 조던 필을 상찬하며 함께 언급되는 이름, M. 나이트 샤말란이다. 샤말란 역시 초기작 <식스 센스>(1999)를 통해 대중과 평단의 고른 갈채를 받으며 장르 마스터로 성장한 감독이기 때문이다. 영화 전반에 흩어진 사소한 요소 하나 허투루 쓰지 않고 관객을 공포에 몰아넣는 능력은 <어스>에서 보다 확실히 드러난다. 어릴 적 트라우마로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혼자만 직감하게 되는 <어스>의 애들레이드와 <식스 센스>의 콜은 어쩐지 겹쳐 보인다. 애들레이드가 품고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2003
리스트에 한국영화도 있다. 김지운 감독의 2003년 작 <장화, 홍련>이다. 코미디 <조용한 가족>(1998), <반칙왕>(2000)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아시아 호러 옴니버스 <쓰리>(2002)에 속한 단편 <메모리즈>에 이어 한국 공포영화의 대표작으로 추앙 받는 <장화, 홍련>을 발표해 다양한 장르를 능숙하게 다루는 솜씨를 자랑했다. 공포와 슬픔을 동시에 끌고 가는 <장화, 홍련>과 달리, <어스>는 공포와 코미디를 유려하게 뒤섞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갈등 구도가 가족 내부에서, 다른 가족과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점도 다르다. 하지만 어릴 적 상처를 품고 있는 듯한 여성 주인공이 영화 전반을 이끌어가는 공통분모만큼은 뚜렷하다.
21세기 들어 극단적인 수위의 신체 훼손으로 무장한 일련의 프랑스 공포영화들이 호러의 새로운 경향으로 떠올랐다. 사회 단체들과의 소송 끝에 프랑스 호러 영화 최초로 18세 관람가(프랑스에선 포르노에만 부여되는 등급)를 받은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은 <엑스텐션>과 함께 '뉴 프렌치 익스트림'을 대표하는 영화다. 감독 말에 따르면 '고문'이 아닌 '고통'에 대한 이야기인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은 극한의 고통을 견뎌낸 뒤 얻는 순교를 보여주고자 했다. 동의할 수 있든 없든, 분명 형이상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셈이다. 인종차별이라는 사회적인 테마로 똘똘 뭉친 <겟 아웃>과 달리, <어스>는 어떤 개념으로 쉽게 정리할 수 없는 인간과 삶의 징후를 보여주고자 하는 작품이다.
<렛 미 인>은 공포보단 로맨스에 가깝다. 심약한 소년이 따돌림을 경험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쏟고, 군데군데 많은 피가 쏟아지긴 하지만, 12살의 소년과 오랜 세월을 12살의 모습으로 살아온 뱀파이어의 사랑 이야기가 두드러진다. 그리고 한겨울 스웨덴의 서늘한 공기가 확연히 남는다. <어스>와 <렛 미 인>은 캘리포니아 샌타크루즈 해변과 스웨덴 교외의 설원처럼 서로 딴판이다. <어스>가 바캉스 시즌의 뜨거움 아래 디스토피아의 서늘한 풍경을 보여준다면, <렛 미 인>은 가시지 않는 한기에도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스한 심장이 만져진다. 어쩌면 조던 필은 <렛 미 인>에서 서로 어긋난 기후와 정서의 온도차를 그리는 터치에 탄복했던 거 아닐까.
공포영화의 영원한 고전 <엑소시스트>(1973)의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은 SNS에 "싸이코, 에일리언, 디아볼릭 그리고 지금 바바둑"이라고 남기며 영화 <바바둑>을 극찬한 바 있다. 출산하러 가던 길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그때 태어난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주인공은 행동장애를 보이는 아들이 남편의 창고에서 가져온 그림책 '바바둑'을 읽고 저주에 든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여성감독 제니퍼 켄트가 연출한 <바바둑>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엄마가 아들과의 갈등을 딛고 저주에 맞서는 의지다. 고전적인 방법으로 공포를 퍼트리면서도 무리 없이 싱글맘의 고충과 가족 간의 기묘한 사랑을 전하는 데 성공했다. 가족에서 시작해 가족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어스> 속 루피타 뇽의 얼굴에서도 복잡한 모성애가 엿보인다.
단명한 제목 그대로다. <팔로우>는 누군가 자신을 따라다닌다는 섬뜩한 느낌에 시달리는 주인공을 따라간다. 섹스로 저주가 전염된다는, 호러와 청춘 로맨스를 가로지르는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영화로 데이빗 로버트 미첼은 2014년 즈음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정체를 알 수 없되 그 실체는 두 눈 똑똑히 보이는 존재에 쫓기는 주인공의 처지를 <팔로우>와 <어스>의 두 여성 캐릭터 모두 공유한다. 한편, 두 작품의 스탭진을 훑어보면 겹치는 이름이 있다. 촬영감독 마이크 기오울라스키스다. <팔로우>를 통해 이름을 알린 그는 <23 아이덴티티>(2016)부터 M. 나이트 샤말란의 카메라를 잡은 데 이어 조던 필의 신작 <어스>의 촬영을 맡았다.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