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오는 충무로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추석에는 개 두 마리를 무대에 올려도 흥행이 된다.’ 풀이하면 영화를 평소 거의 보지 않던 사람들도 이날 하루만큼은 극장에 간다는 말인데요. 추석엔 어떤 영화를 걸어도 장사가 됐다는 의미입니다.
여담에 따르면 소위 잘나가는 감독들은 영화를 만들 때, 내 영화는 꼭 설이나 추석 명절 혹은 여름 성수기 중에 걸 수 있는지 약속해달라는 요구를 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각 영화사마다 엄선하고 공들인 대작들이 맞붙는 추석이야말로 그 해의 흥행을 점쳐볼 수 있는 중요한 시기임은 확실합니다.
역대 추석영화 대전을 통해 어떤 흥행공식이 있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성룡’ 추석마다 찾아온다
언젠가부터 ‘추석영화 하면 성룡’이란 공식이 생겨났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단 한해라도 극장에서 성룡을 보지 않은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과연 추석과 성룡의 등식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1979년 영화 <취권>은 서울 관객 89만 명을 모으며 추석부터 시작한 흥행 릴레이를 이듬해 설까지 이어가는 대단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멀티플렉스를 통한 와이드 릴리즈가 보편화된 지금의 상황으로 환산해보면 족히 1000만 관객을 모은 것과 다름없는 대단한 흥행입니다. 바로 '추석영화는 성룡'이라는 공식이 시작된 순간입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성룡은 거의 거르지 않고 해마다 영화를 들고 우리나라를 찾았는데요. 여기에 몇 가지 오해와 진실을 알아보겠습니다.
지난 40여 년간 거의 매해 한국에서는 성룡 영화가 개봉했는데 추석에만도 20여 차례나 됩니다. 여기에 설날까지 더하면 성룡의 영화 대부분을 명절에 개봉한 셈입니다. 흥행성적을 살펴보면 <취권> 이후 성룡의 영화가 추석 최후 승자가 된 경우는 1984년 <프로젝트A>, 1987년 <프로젝트A 2>, 1998년 <러시아워>, 2001년 <러시아워 2> 정도입니다. 승률이 그리 높지 않다고요? 하지만, 내실로 보면 성룡의 영화는 거의 모든 작품이 우리나라 영화 흥행의 척도인 서울 관객 15만(멀티플렉스 이후 30만)을 넘어섰습니다. 절대 손해 보지 않고 무려 40년간 해마다 명절의 승자로 남았으니 정말 대단합니다.
조폭 코미디의 전성시대
2001년 개봉한 <조폭마누라>는 '추석엔 조폭 코미디'라는 새로운 공식을 열어젖힌 일종의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540만 명을 동원하며 추석 극장가를 싹쓸이한 이 영화를 필두로 이듬해인 2002년 <가문의 영광>, <보스상륙작전>. 2003년 <오! 브라더스> <조폭마누라 2>. 2004년 <귀신이 산다>. 2005년 <가문의 위기>, 2006년 <가문의 부활>까지 수년간 코미디 영화의 전성시대를 이어갔습니다. 2007년 <상사부일체>를 끝으로 조폭 코미디류는 인기가 누그러지는 듯했으나, 2011년 추석 <가문의 영광 4>가 깜짝 흥행을 기록하면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는데요. 추석영화의 아이템으로 언제 다시 조폭 코미디 영화가 부활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극이 대세
최근 추석영화의 대세는 사극입니다.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 2013년 <관상>, 2015년 <사도>로 이어지며 사극 불패의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사실 사극의 유행은 이전에도 존재했었습니다. 1961년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이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3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충무로에 사극 붐을 불어넣었습니다. 1962년에는 <인목대비>를 포함해 추석 한국 영화 5편이 모두 사극일 정도로 유행은 대단했습니다. 이후 1971년 추석에 개봉한 <성웅 이순신>까지 무려 10년간 사극은 추석 한국 영화의 지배자였습니다.
시대별 대표 흥행작들
1970년대 <취권>에 버금가는 한국 영화의 흥행 돌풍이 있었습니다, 바로 <겨울여자>인데요. 1977년 추석에 개봉하여 다음해 설 시즌을 넘기고 무려 3월까지 상영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100일 넘게 전회 매진이었다고 하니 당시 최고의 히트작임엔 분명합니다. 이 영화 한편으로 장미희는 시대의 스타가 되었음은 당연하고요.
1980년대는 에로영화의 전성시대였습니다. 1985년 추석 개봉한 이보희, 안성기 주연의 <어우동>을 비롯해 1988년 추석 <매춘>까지 극장에 후끈한 광풍이 대단했습니다. 시대의 암울함이 오히려 감상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멜로와 에로영화의 전성기를 만든 아이러니일까요?
1990년대는 웰메이드 한국 영화의 전성시대였습니다. 이 시기 추석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1997년 개봉한 <접속>입니다. 서울에서만 70만 명을 불러들이며 한석규, 전도연을 최고의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전국 극장가에 ‘A Lover’s Concerto’가 울려 퍼지게 했던 그 영화, 기억하시나요?
올 추석엔 한국 영화로는 정통 사극인 <고산자, 대동여지도>와 시대극 <밀정>이, 외화는 <매그니피센트 7>과 <벤허>가 여러분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연 최종 흥행 결과가 어떨지 궁금합니다. 연휴가 지나고 박스오피스 기사에서 함께 확인하시죠.
씨네플레이 에디터 다스베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