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4일 개막한 제72회 칸 영화제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경쟁부문에 최초로 흑인 여성 감독 마티 디옵의 데뷔작을 초청하거나, 과거 가정 폭력 등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배우 알랭 들롱에게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여하는 등, 시작부터 떠들썩한 이슈로 화제를 모았던 2019년 칸영화제. 1946년부터 현재까지, 칸영화제를 달궜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모아봤다. 사진기자들의 손가락을 바쁘게 만들었던 순간들을 소개한다.


1953, 칸영화제 복장 규칙 어긴 최초의 인물?

칸영화제는 복장 규정이 까탈스럽기로 유명하다. 많은 이들이 그에 반기를 든 패션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그 저항의 시작에 선 인물이 바로 파블로 피카소다. 그는 배우 이브 몽탕의 영화 <공포의 보수> 상영 참석 차 칸영화제를 방문했다. 정장에 보타이를 고수해야 하는 복장 규칙을 어기고, 그 위에 무스탕 코트를 걸친 모습이다.


1954, 시몬느 실바 사진 찍다 뼈 부러진 사진 기자

워낙 유명한 사진이지만 네이버 심의 규정이 엄격하니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으로 소개한다. 신인 배우 시몬느 실바는 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제7회 칸영화제에 참석했다.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그녀는 축제 주최자들로부터 '미스 페스티벌 1954'의 칭호를 얻었고, 톱스타 로버트 미첨과 해변에서 사진을 찍었다. 시몬느 실바는 촬영 도중 상의를 벗었고, 그녀의 파격 포즈를 담기 위해 사진기자들은 몸싸움을 벌였다. 몇 명의 사진기자가 부상을 입었고, 그중 두 명은 팔과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언론은 파격적인 신인의 등장에 환호를 보냈으나, 칸영화제는 그녀의 행동을 반기지 않았다. 시몬느 실바는 주최 측으로부터 칸영화제를 떠나라는 통보를 받았다.


1955, 곧 미래의 남편을 만나게 될 그레이스 켈리

1955년, 제8회 칸영화제 참석 차 칸에 머물고 있었던 그레이스 켈리. 그곳에 있는 동안 그녀는 모나코 공() 레니에 3세와 함께하는 화보 촬영에 초청됐다. 촬영이 진행된 장소는 칸에서 약 55km 떨어져 있던 그의 궁전. 스케줄 조정 끝에 그레이스 켈리는 레니에 3세와 만날 수 있었고, 1년 후 그와 결혼에 골인해 모나코의 공비가 됐다.


1966, 마이클 케인의 과거를 만나보자

알고 보면 매력 천재 영국 배우 계보의 출발선에 서 있는 배우. 마이클 케인은 출연 영화 <알피>로 제19회 칸영화제를 찾았다. 바람둥이 알피의 연애를 담은 <알피>는 2005년 개봉한 주드 로의 주연작 <나를 책임져, 알피>의 원작이 된 영화다. 알피의 이름과 함께 ‘IS LUCKY’(행운이에요)‘IS TERRIFIC’(대단해요) 등의 문구가 박힌 바지를 입은 늘씬한 여성 모델들이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이클 케인을 둘러싸고 있는 화보가 영화의 내용을 대신 설명한다. <알피>는 그해 칸영화제의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1977, 칸을 뜨겁게 달군 29살의 보디빌더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보디빌더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펌핑 아이언>(Pumping Iron) 홍보 차 제31회 칸영화제를 찾았다. 그의 비현실적인 피지컬이 모두의 시선을 빼앗은 건 당연한 일. 여성 모델들과 시내 곳곳을 돌며 인터뷰까지 진행한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홍보 겸 퍼포먼스로 제 존재감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1979, 미래의 부녀 감독

제32회 칸영화제 속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과 그의 딸 소피아 코폴라를 포착한 카메라. 1979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지옥의 묵시록>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소피아 코폴라는 그로부터 27년 후인 2006년 연출작 <마리 앙투아네트>로 제59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1991, 마돈나의 파격 의상

팝의 여왕은 확실히 달랐다. 마돈나는 그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진실 혹은 대담>이 제44회 칸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올라 팔레 드 페스티벌을 찾았다. 핑크색 가운을 두르고 레드 카펫을 걷던 마돈나는 계단 꼭대기에 올라 망토를 벗고 과감한 룩을 드러냈다. 원뿔 모형의 브래지어를 걸친 그녀는 레드 카펫 위 수많은 카메라의 플래시를 독차지했다.


1992, 장 클로드 반담 VS 돌프 룬드그렌

칸영화제 레드 카펫 위에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1992년, 액션 영화 <유니버설 솔저>로 제45회 칸영화제를 찾은 주연배우 장 클로드 반담과 돌프 룬드그렌. 상영 직전 두 사람 사이 긴장감이 돌았고, 이는 두 사람의 가벼운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알고 보면 이는 영화 홍보를 위해 두 사람이 연출한 상황극이었다고.


1997, 밀라 요보비치, 촬영장 의상 같은 레드 카펫 룩!

밀라 요보비치는 뤽 베송 감독, 브루스 윌리스, 당시 브루스 윌리스의 아내였던 데미 무어와 함께 제50회 칸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았다. <제5원소> 상영 전 나타난 그녀의 의상은 영화 속 그녀의 비주얼만큼 파격 그 자체. 당시 신인이었던 밀라 요보비치는 <제5원소> 속 여전사 리루를 완벽히 소화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2006, 칸을 뒤집어놓으셨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보랏’

사챠 바론 코헨의 충격 과거를 보고 싶다면 2006년 칸영화제 속 그의 모습을 찾아보자. 사챠 바론 코헨은 당시 출연작 <보랏-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 홍보에 열중이었다. 그는 정말 주요 부위만 가릴 수 있는 형광색 수영복을 입고 제59회 칸영화제를 찾아 제 존재감을 뽐냈다. 중요한 건 이 영화가 그해 칸영화제에 초청되지도 않았다는 것.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가장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셈이다. 수영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심의 규정 상 상의만 잘라 소개한다. 전신은 알아서 상상해보시길!


2011, 칸영화제 블랙리스트 오른 라스 폰 트리에

문제적 감독 라스 폰 트리에는 줄곧 칸의 사랑을 받아왔다. <도그빌> <브레이킹 더 웨이브> <어둠 속의 댄서> <안티크라이스트> 등이 칸의 주목을 받았던 그의 연출작. 2011년 연출작 <멜랑콜리아>는 제64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다. 기자회견 도중, 그는 “히틀러가 이해된다. 그에게 약간 동정심을 느낀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그의 옆에 앉아있는 커스틴 던스트의 표정이 당시 모든 상황을 설명한다. 칸영화제 측은 그를 '비우호적 인물'(persona non grata)로 규정했고, 라스 폰 트리에는 칸영화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2011,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에게 정면 돌진한 라이언 고슬링

제64회 칸영화제의 핫 포토. 라이언 고슬링 주연 <드라이브>를 연출한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은 제64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에서 라이언 고슬링은 그에게 정면 돌진해 키스를 선사했다. 예상치 못한 브로맨스! 준비된 자만이 건질 수 있었던 사진이다.


2016, 맨발로 레드 카펫에 오른 줄리아 로버츠

제69회 칸영화제에서 <머니 몬스터> 프리미어에 참석한 줄리아 로버츠는 맨발로 레드 카펫을 걸어 화제를 모았다. 칸영화제의 엄격한 복장 규정에 뼈 있는 비판을 날린 것. 다수의 해외 매체는 그녀가 이전해였던 2015년 칸영화제에서 “<캐롤> 상영 당시 건강상의 이유로 하이힐을 신지 못했던 중년 여성들이 복장 규정 위반으로 극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건을 비판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2016, 선글라스+슈트+플랫슈즈 조합!

수잔 서랜든 역시 칸영화제의 복장 규정을 과감히 어긴 모습으로 주목을 받았다. 제69회 칸영화제에 참석한 그녀는 슈트를 입고 낮은 굽의 플랫 슈즈를 신은 채 등장했다. 레드 카펫에서 포토타임을 가지는 내내 선글라스를 벗지 않은 모습도 화제를 모았다.


2016, <아메리칸 허니> 팀의 운동화+스냅백+막춤 조합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는 제69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미국을 횡단하는 방황하는 젊은 세대를 조명한 이 영화는 전문 배우를 캐스팅하는 대신, 감독이 미국의 8개 주를 여행하며 직접 만난 청춘들을 출연시켜 화제를 모았다. 출연 배우들은 칸영화제 레드 카펫에서도 제 개성을 확실히 했다. 운동화와 스냅백을 착용하고 등장한 채 힙합 음악에 맞춰 막춤을 선보인 것. 칸 레드 카펫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임은 분명하다.


2017, 모니카 벨루치-알렉스 루츠의 키스 세리머니

제70회 칸영화제 개막식의 사회를 맡은 모니카 벨루치는 함께 사회를 맡은 배우 겸 코미디언 알렉스 루츠와 함께 키스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개막식. 알렉스 루츠의 뒤통수를 잡고 애절한 키스를 선보인 그녀의 짧은 공연이 끝난 후 박수가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2017,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기립박수 현장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제70회 칸영화제의 비경쟁부문에서 상영됐다. 상영이 끝난 후 기립박수가 터져 나오자 감동을 받은 듯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소녀스러운 모습.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2019년 신작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를 공개했고, 2월에 열린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명예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 작품이 그녀의 유작이 됐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지난 3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2018, 82:1688 이 의미하는 것

2018년, 제71회 칸영화제 레드 카펫, 팔레 드 페스티벌의 계단을 82명의 여성 영화인이 메웠다. 케이트 블란쳇, 아녜스 바르다 감독, 레아 세이두, 크리스틴 스튜어트, 마리옹 꼬띠아르 등이 참석한 자리.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케이트 블란쳇은 “1946년 칸영화제가 시작된 이후 71년 동안 82명의 여성 감독만이 이 계단을 밟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71년 동안 레드 카펫을 밟은 남성 감독의 수는 1688명. 약 20 대 1의 비율이다. 영화계 내 성 평등을 요구하며 레드 카펫에 모인 82인의 여성 영화인의 연대는 제71회 칸영화제를 상징하는 모습이 됐다.


2018, 레드 카펫 관행을 깬 케이트 블란쳇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으로 2018년 칸영화제를 찾은 케이트 블란쳇은 2014년, <블루 재스민>으로 골든글로브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당시 입었던 아르마니 프리베 드레스를 다시 입고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한번 입은 드레스는 다시 입지 않는 레드 카펫의 규칙을 깨버린 셈이다.


2018, 하이힐을 벗어던진 크리스틴 스튜어트

심사위원 자격으로 제71회 칸영화제를 찾은 크리스틴 스튜어트. 그녀는 극장으로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하이힐을 벗은 후, 신발을 손에 쥐고 맨발로 계단을 올랐다. 2016년 연출작 <컴 스윔>을 들고 칸영화제를 찾았을 당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남자에게도 드레스와 힐을 신게 하지 않는다면, 여성들에게도 그를 강요할 수 없다” 밝히며 칸영화제의 복장 규정을 비판한 바 있다.


2018, 칸의 규칙보다 편한 내 발이 더 중요한 마리옹 꼬띠아르

2018년엔 다양한 여성 영화인이 칸의 규칙보단 제 마음의 소리를 더 중요시했다. 마리옹 꼬띠아르는 하이힐 대신 낮은 굽의 워커를 신고 행사장을 찾았다. 덕분에 그녀만의 개성 넘치는 룩이 탄생했다.


2019, 관계자에게 제지 당해 끌려내려온 중국 배우

올해엔 레드 카펫 위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중국 배우 시염비가 포즈를 너무 오래 취했다는 이유로 관계자의 저지를 받고 끌려내려오듯 레드 카펫에서 퇴장한 것. 다수의 해외 매체는 “사진 기자 대부분이 그녀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시간이 지나 아무도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관객과 취재진의 야유가 쏟아지는 데도 시염비는 끝까지 여러 포즈를 취하며 내려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에 시염비는 “현장이 시끄러워 스태프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생긴 오해였다”고 밝혔다.


2019, 키디 스마일, 남성 복장 규정도 뿌셔뿌셔!

칸영화제 레드 카펫 행사에 참석한 여성이 이브닝드레스와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면, 남성은 보타이와 슈트, 끈 없는 구두를 신어야 한다. 뮤지션 키디 스마일은 남성의 복장 규정에 반기를 들었다. 올해 경쟁부문에 초청된 마티 디옵 감독의 <애틀란틱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 레드 카펫 행사에 참석한 키디 스마일은 번쩍번쩍 빛나는 디스코풍의 은색 점프슈트, 화려한 플로럴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수많은 카메라의 플래시를 독차지했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