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의 신작 <기생충>의 박스오피스 독주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9년간 봉준호가 발표한 7개의 장편영화가 개봉 당시 어떤 작품을 만나 흥행을 겨뤘는지 살펴보자.
<플란다스의 개>
2000년 2월 19일 개봉
봉준호가 시작부터 작품성과 흥행력을 동시에 보장하는 감독이었던 건 아니다. 단편 <지리멸렬>(1994)으로 단편영화계 스타로 추앙받고, 정우성 주연의 <모텔 선인장>(1997)과 <유령>(1999)의 시나리오를 써 일찌감치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올랐으나, 2000년 2월 중순 개봉한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는 평단의 좋은 반응과 달리 시장에선 철저히 외면 받았다. 전에 없던 스타일의 블랙코미디는 <레옹>(1994)과 <제5원소>(1997)의 뤽 베송이 야심차게 준비한 전쟁물 <잔 다르크>(1999), 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돼 스타일리시한 액션영화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일본영화 <사무라이 픽션>(1999)과 같은 날 개봉해 두 작품의 1/4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고 상영을 마쳤다. 2주 전, 설날 시즌에 개봉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던 김지운 감독/송강호 주연의 <반칙왕>(2000)도 <플란다스의 개>의 부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살인의 추억>
2003년 4월 25일 개봉
2003년 봄 개봉한 <살인의 추억>은 3년 전 <플란다스의 개>의 흥행 실패에 대한 아쉬움을 말끔히 씻어냈다. 개봉 전부터 영화를 향한 호평이 대단했을 뿐만 아니라, 같은 날 개봉한 <모노노케 히메>(1997)와 <볼링 포 콜럼바인>(2002)이 작품성과는 별개로 대중적인 인기를 불러일으키지 못해, <살인의 추억>의 독주 체제는 뚜렷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지속됐다. 한 주 뒤,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반응을 일으킨 <엑스맨 2>(2003)는 한국 시장에선 유독 힘을 쓰지 못했다. 호평일색이었던 형사물 <와일드 카드>(2003) 역시 <살인의 추억>이 개봉한 지 4주차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1위를 차지할 수 없었다. 5월 23일 <매트릭스 2: 리로디드>(2003)가 개봉될 때까지 <살인의 추억>의 선두 행진은 계속됐고, 525만 관객을 동원하며 최초의 천만 영화 <실미도>(2003)와 장대한 서사시의 대미를 장식한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2003)에 이어 2003년 흥행 3위를 기록했다.
<괴물>
2006년 7월 27일 개봉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송강호 콤비가 한강을 배경으로 괴수영화를 만든다? 그야말로 대박이 불 보듯 뻔한 조건이다. 흥행을 기대한 작품은 죄다 <괴물>을 피했던 건지, 같은 날 극장가에 걸린 영화들 가운데 차트에서 그나마 눈에 띄는 작품이 2주 먼저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2006)였고, 관객수는 무려 9배 차이였다. <괴물> 개봉 3주차엔 <각설탕>(2006), <다세포소녀>(2006), <몬스터 하우스>(2006) 등이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올랐으나 한강의 괴물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1달 뒤 개봉한 일본의 재난영화 <일본침몰>(2006)이 이미 천만 관객을 빨아들인 <괴물>을 딛고 잠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상위권에 머무르던 <괴물>은 1300만 명을 돌파했고, 2009년 말 제임스 카메론의 3D영화 <아바타> 이전까지 역대 흥행 1위의 왕좌를 지켰다.
<마더>
2009년 5월 28일 개봉
봉준호의 네 번째 장편 <마더>는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 비해 대중성이 약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개봉하자마자 가볍게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같은 날 극장가에 걸린 영화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 차트 차석과 차차석을 차지한 건 1주 전 개봉한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2009)과 2주 전 개봉한 <천사와 악마>(2009)였다. 개봉 2주차엔 2006년 460만 관객을 동원한 바 있는 <박물관이 살아 있다>의 속편과 엎치락뒤치락 경합했고, 그 다음주 개봉한 김윤석 주연의 <거북이 달린다>(2006)에 선두 자리를 내준 뒤 300만 관객을 가까스로 돌파했다.
<설국열차>
2013년 8월 1일 개봉
제작비로 450억 원을 투입한 글로벌 프로젝트 <설국열차>는 송강호는 물론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존 허트, 에드 해리스 등 할리우드 스타들을 대거 기용해 일찌감치 2013년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꼽혔다. 개봉 이틀 만에 100만 관객을 가뿐히 넘어섰다. 2013년 여름방학 시즌 극장가가 흥미로웠던 건 무서운 기세로 앞을 향해 달려가는 <설국열차>의 독주가 아닌, 같은 날 개봉한 하정우 주연의 독특한 재난영화 <더 테러 라이브>(2013)와 '쌍끌이 흥행'의 양상을 보여주며 박스오피스 양강 구도를 이끌어갔다는 점이다. 개봉 3주차에 손현주 주연의 공포영화 <숨바꼭질>(2013)과 김성수 감독의 10년 만의 복귀작 <감기>(2013)의 공세로 최상위권을 내줬지만,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는 각각 950만, 558만 명의 최종 스코어를 기록했다.
<옥자>
2017년 6월 29일 개봉
넷플릭스의 넉넉한 지원 아래 제작된 봉준호의 여섯 번째 장편 <옥자>(2017)는 개봉 당시 작품 자체보다는 상영관과 관련한 이슈로 더 화제를 모았다. 스트리밍 서비스사인 넷플릭스의 자본으로 제작된 작품인 만큼 넷플릭스와 극장에서 동시에 공개된다는 점을 문제 삼아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메이저 멀티플렉스들이 모두 <옥자>의 상영을 거부했다. 결국 <옥자>는 94개 스크린을 통해 개봉됐다. 같은 주에 개봉해 박스오피스 1,2위를 차지한 <박열>(2017)과 <리얼>(2017)의 상영관 1/10배 규모였다. 그럼에도 <옥자>를 스크린에도 보겠다는 팬들의 의지는 확연했다. 개봉 첫날 <옥자>보다 14배 많이 상영된 <박열>은, <옥자>보다 6배 앞선 관객들을 만났다. 한편, 12배 많은 상영횟수의 <리얼>은 <옥자> 대비 2.5배의 관객수를 기록했다. <옥자>가 넷플릭스만 켜면 그 자리에서 당장 무료로 볼 수 있는 조건이었다는 걸 떠올리면 더 놀랍게 와닿는 관심이다. <옥자>는 32만 관객을 만나고 극장 상영을 마쳤다.
<기생충>
2019년 5월 30일 개봉
봉준호와 송강호의 네 번째 협업작 <기생충>은 2019년 상반기 최고 기대작 중 하나였다. 그런 와중 한국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의 관심은 한껏 증폭됐다. '문화의 날' 특수를 포기하고 5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개봉해 첫 날 57만 명, 주말 이틀간 210만 명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1주 먼저 개봉한 <알라딘>이 그 뒤를 따라붙었다. 할리우드 대작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엑스맨: 다크 피닉스>,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이 연달아 개봉했지만 금세 확연한 드랍율을 기록하며 <기생충>의 흥행 가도는 계속됐다. <알라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한 티켓 파워를 자랑하며 여전히 <기생충>의 뒤를 바짝 따라잡고 있다. (6월 13일 기준) 765만 관객을 동원한 <기생충>은 6월 20일 개봉하는 <토이 스토리 4>에 선두 자리를 내줄지도 모르겠다.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