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과 짠맛. 둘은 상극이다. 하지만 이런 상극이 만나 ‘단짠단짠’이란 매력적인 맛이 탄생하지 않았던가.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은 그런 ‘단짠단짠’ 같은 작품이다. 락 콘서트와 감성적인 뮤지컬을 결합한 <스쿨 오브 락>은 어느 공연에서도 느낄 수 없는 독보적이고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동안 원작 영화 <스쿨 오브 락>을 최소 7번은 감상한 기자가 <스쿨 오브 락> 브로드웨이 팀 내한 공연을 직접 보고 온 후기를 적어본다.
<스쿨 오브 락>은 2003년 제작된 동명의 영화 <스쿨 오브 락>을 원작으로 한다. <스쿨 오브 락>은 밴드 대회에 나가고 싶은 듀이 핀(잭 블랙)이 경연 참가비를 모으기 위해 대리 교사로 위장취업했다가 지도 학생들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함께 밴드를 만드는 이야기를 다룬다. 일견 성장 영화처럼 느껴지지만 함께 하는 음악이 ‘락’이기에 유쾌한 에너지로 극을 채워나간다.
영화는 락을 소재로 쓰지만 뮤지컬보다 음악영화에 가깝다. 영화 속 창작곡은 두 곡뿐이고, 나머지는 (듀이의 표현을 빌리면) “영감을 주는” 전설적인 밴드들의 대표곡으로 채워졌다.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은 이런 쟁쟁한 곡들을 들어내고 새로운 창작 넘버들로 채우는 부담스러운 선택을 한다. 그리고 진두지휘를 세계 최고의 뮤지컬 작곡가 겸 제작자 앤드루 로이드 웨버(<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를 맡았다.
인터미션 20분을 제외한 140분간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은 제목처럼 락 스피릿이 충만한 넘버들로 채워졌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도 모든 곡은 라이브로 연주되는데, 오케스트라를 기용하는 여느 뮤지컬과 달리 <스쿨 오브 락>은 백밴드가 라이브 연주로 강렬하고 에너자이틱한 락의 매력을 극대화하며 관객들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한다.
물론 모든 넘버가 오로지 락으로만 채워진 건 아니다. 극중 배경인 호레이스 그린 학교의 규율 중심적 사고를 강조하는 ‘히얼 앳 호레이스 그린(Here At Horace Green)’나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아리아’를 재해석한 ‘퀸 오브 더 나이트(Queen of the Night)’는 본격적으로 락에 빠져들기 전 워밍업을 담당하며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켜준다.
또 영화의 시그니처 곡이 ‘스쿨 오브 락(School of Rock)’이라면, 뮤지컬도 뮤지컬만의 시그니처 넘버를 들려준다. 바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 “권력자에게 맞서라”라는 뜻의 ‘스틱 잇 투 더 맨(Stick It To The Man)’이다. 듀이와 반 학생들이 호흡을 맞추며 락의 정열에 빠져드는 이 넘버 또한 <스쿨 오브 락>의 흥겨움을 한 층 더 끌어올린다.
<스쿨 오브 락>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마법 같은 순간'
‘마법 같은 순간’. 무대 위의 상황이 가짜임을 알면서도 관객들이 온전히 작품에 빠져들 때, 흔히 마법 같은 순간이라고 표현한다. 구태의연한 말이지만, <스쿨 오브 락>이 관객들을 끌어당기는 순간을 수식하기에 딱 맞는 말이다. <스쿨 오브 락> 원작 영화에서처럼, 아역 배우들이 직접 악기를 연주한다. <스쿨 오브 락>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그것이다. 순둥이 같은 아이들의 손에서 강렬한 연주가 시작되는 그 순간, 관객들은 이전 어떤 공연에서 경험하지 못한 몰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아이들의 연주가 시작되자 객석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고, 밴드의 공연을 보러 온 팬들처럼 박수와 환호성이 이어졌다. 아역 배우들의 능수능란한 연주는 속된 말로 관객들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무대 위로 끌고 간다. 제아무리 객관적인 시선을 가진 관객이라도 그들의 연주 밀당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저 연주만 잘했다면, 이들이 <스쿨 오브 락>이란 뮤지컬의 무대에 설 수 있었을까. 이 아이들이 만드는 앙상블 또한 여타 뮤지컬과는 다르다. 애초 성인 배우가 주역을 맡은 인기 뮤지컬들에선 아역 배우들의 앙상블을 듣기 힘들다. <스쿨 오브 락>은 20여 명의 아이들이 제각기 화음을 맡고, 성인 배우들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특히 아이들이 각자 가정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담아 부르는 ‘이프 온리 유 우드 리슨(If Only You Would Listen)’ 같은 넘버는 화려한 연주 실력을 뽐내는 그들의 프로페셔널한 모습과 대비돼 관객들의 가슴도 먹먹하게 만든다.
잭 블랙 이상의 듀이 핀, 뮤지컬만의 히든카드 로잘리
사실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의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걱정스러운 건 ‘창작 넘버의 퀄리티’나 ‘아역배우들의 연기’가 아니었다. 영화에서 역대급 존재감을 보여준 잭 블랙의 에너지를 대처할 배우가 있는가였다. 그런데 공연의 막이 오르고 그런 걱정이 기우였음을 인정하고 즐길 수 있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듀이 핀 역을 맡은 코너 존 글룰리는 잭 블랙과 필적, 혹은 그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물론 영화와 뮤지컬은 전혀 다른 영역이니 배우 연기를 두고 우위를 가릴 순 없다. 하지만 코너 존 글룰리의 연기는 적어도 잭 블랙의 듀이를 잊게 할 만큼 인상적이다. 노래 실력이 보장된 브로드웨이 배우인 만큼 리드미컬함과 음역대를 오가는 대사 처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40분의 공연 시간 대부분을 무대에서, 그것도 여기서 저기를 오가고 모든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면서도 지친 기색 하나 없는 그의 맹활약은 이 배우를 보기 위해서라도 <스쿨 오브 락>을 놓치지 말라고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빛나는 배우가 또 있다. 호레이스 그린 학교의 교장 로잘리 멀린스 역의 카산드라 맥고완이다. 앞서 언급한 <마술피리>를 재해석한 넘버 <퀸 오브 더 나이트>로 감탄할 수밖에 없는 가창력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스쿨 오브 락>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2부에선 ‘웨어 디드 더 락 고?’(Where Did The Rock Go?)라는 단독 넘버를 선보이는데, 카산드라 맥고완은 교장이 되면서 너무 많이 변해버린 자신에 대한 회한을 매끄러운 가창력과 섬세한 감정처리로 단번에 관객들의 뇌리에 박힌다. 단연 환상의 듀오라고 장담할 수 있다.
이처럼 <스쿨 오브 락>은 원작의 쾌활한 에너지, 유머러스한 감각, 성장해가는 인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뮤지컬만의 독창적인 해석과 실제 공연이란 마법을 더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 글을 백 번 읽어도 기자가 공연을 보며 느낀 열정과 에너지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자신의 삶이 지쳐있고, 어딘가 새로운 에너지를 얻길 원한다면 당장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을 선택하라. 인생이 즐거워질 것이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