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인터넷 커뮤니티가 대혼란에 빠졌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자사의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실사화 캐스팅을 공개했는데, ‘클로이 앤 할리’로 활동 중인 가수 할리 베일리를 주인공 에리얼 역에 발탁한 것이다. 캐스팅이야 제작사 마음이라고 해도, 이미 원작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사랑하는 팬덤이 두터운 만큼 대중들은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에리얼은 원작에서 적발의 백인 여성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할리 배일리를 캐스팅한 건 ‘블랙워싱’이란 비난이 이어졌다. 몇몇 영화광들은 이를 두고 ‘21세기의 토큰 블랙’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이 말하는 블랙워싱과 토큰 블랙은 도대체 무엇일까.
※ 현재 흑인이란 단어는 아프리카계 OO인으로 대체되고 있으나, 본문에는 이해를 돕기 위해 흑인이란 단어를 사용했음을 명시한다. 흑인 또한 인종차별적 언어이니 가급적 사용을 자제하도록 하자.
블랙워싱의 원류는 화이트워싱
블랙워싱은 신조어에 가깝다. 원래 백인으로 설정된 캐릭터를 흑인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경향은 최근에야 나타났기 때문에 이 단어의 원류인 ‘화이트워싱’부터 정리한다. 화이트워싱은 흑인, 아시아인 등 유색인종 캐릭터를 백인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뜻한다.
화이트워싱의 역사는 오래됐다. 할리우드처럼 흥행을 노리고 제작하는 상업 영화계는 기본적으로 주 소비층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백인 중산층이 중심이고, 유색인종이 등장하는 이야기라면 인기 있는 백인 배우를 써 캐릭터의 인종을 바꿨다. 나중에는 유색인종 실존 인물도 백인으로 캐스팅하는 사례가 발생했는데, 대표적인 영화가 존 웨인이 몽골인 징기스칸으로 출연한 <징기스칸>이다.
할리우드는 화이트워싱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자 이를 피하기 위해 우회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미키 루니가 연기한 일본인 미스터 유니오시(<티파니에서 아침을>)처럼 백인을 동양인으로 분장시키는 옐로우 페이스(Yellow Face), 인종은 그대로 캐스팅하되 캐릭터를 완전히 백인처럼 묘사하는 등의 방식을 사용했다. 때문에 화이트워싱은 유색인종 캐릭터에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좁은 의미에서 캐릭터의 성격이나 행동 양식을 백인화하는 것까지 넓게 이르는 말로 확장됐다.
최근 인종의 다양성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면서, 많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화이트워싱을 직간접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헬보이>는 일본인 벤 다이미오 역에 에드 스크레인을 캐스팅해 논란을 불러왔는데, 에드 스크레인 본인이 직접 하차한다고 밝히며 화이트워싱을 반대했다. 이후 해당 배역은 한국계 배우 대니엘 대 킴이 캐스팅됐다.
비난을 피하기 위한 면피, 토큰 블랙
토큰 블랙 역시 화이트워싱에 대한 비난을 피하려는 영화계의 몸부림에서 나온 산물. 백인을 중점적으로 묘사하는 매체에 대한 사회의 반발이 심해지자 제작자들은 유색인종, 특히 흑인 캐릭터를 하나둘 등장시켰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들은 실제 그 인종에 대한 이해보다 편견으로 주조된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힙합을 좋아하고 시도 때도 없이 슬랭(비속어)을 쓴다거나, 극빈층이라서 사회에 대한 분노가 많다던가 하는 식으로만 그려졌다. 대중들은 이렇게 억지로 껴 넣은 흑인 캐릭터를 두고 토큰 블랙이라고 불렀다. 토큰은 ‘형식적인’이란 뜻이다.
이후 아시아인, 성소수자, 혹은 그 외의 인종인 캐릭터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자 영화계는 그에 맞춰 아시아인, 퀴어 캐릭터 등을 등장시켰다. 물론 토큰 블랙과 마찬가지로 해당 캐릭터에 대한 진지한 이해보다 편견이나 일반적인 이미지만을 차용한 캐릭터가 많았다. 예를 들면 게이 캐릭터는 무조건 하이톤으로 말하거나, 흐느적거리는 행동을 한다는 식으로. 때문에 지금은 흑인 캐릭터만 이르는 토큰 블랙 대신 이런 경향 전체를 이르는 ‘토크니즘’이란 단어로 대체되고 있다.
국내에서 쓰는 용어, 블랙페인팅·흑인쿼터제·흑인화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소수자들을 배려하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이런 유색인종 캐릭터에 대한 반응도 다양해졌다. 화이트워싱과 반대로 원작에서 백인인 캐릭터를 흑인 배우가 캐스팅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중 <어벤져스> 시리즈의 닉 퓨리나 <나는 전설이다> 윌 스미스 등이 호평을 받았다. 국내 커뮤니티에선 이런 사례들을 부정적인 의미의 블랙워싱과 구분하기 위해 ‘흑인화’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최근 <데드풀 2>의 도미노가 흑인화의 좋은 예시로 언급된다.
반대로 앞서 설명한 <인어공주> 같은 경우, 덴마크가 배경이란 점에서 흑인 캐스팅의 설득력을 잃었고, 사회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무리한 캐스팅을 했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대중들은 이를 두고 블랙워싱, 혹은 블랙페인팅이라고 말했다. 두 단어 모두 유색인종 캐릭터를 억지로 백인화시키는 ‘화이트워싱’을 역전시킨 단어로 대체로 블랙워싱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하나 ‘워싱’이 하얗게 한다는 뜻을 내포했기 때문에 국내에선 ‘블랙 페인팅’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인어공주> 뿐만이 아니라 백인 캐릭터를 흑인 배우들에게 맡기는 작품이 점차 많아지자 항간에는 ‘흑인쿼터제’라는 단어도 생겼다. 흑인쿼터제는 자국 영화의 상영을 최소한으로 보장하는 스크린쿼터제를 변형한 단어로, 작중 시대상이나 인물의 특징과 맞지 않게 분별력 없이 흑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경우를 비꼬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