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터데이>

한동안 서브컬처에서 이세계물이 인기를 끌었다. 아침 등굣길(혹은 출근길)에 집을 나서다 누군가를 구해주는 대신 트럭에 치이는 교통사고로 이세계에 전생해 제2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들이다. 영화 <예스터데이>도 이와 유사하게 시작하지만, 용사가 돼 세상을 구한다는 플롯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사고로 자신이 깨어난 세계에 만약 비틀즈가 없어졌다면? 그리고 무명가수인 자신만이 그들의 유명한 명곡들을 알고 부를 수 있다면? <러브 액츄얼리>와 <노팅힐> 그리고 <어바웃 타임> 등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자 감독인 리차드 커티스가 각본을 맡고 스타일리쉬한 대니 보일이 25번째 007에서 하차한 후 바로 연출한 이 사랑스러운 소품은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가정에서 시작된 영화다.

20세기 지구 최강 뮤지션, 비틀즈

비틀즈

비틀즈가 누구인가. 전 세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 누구도 모를 수 없는 아티스트다. 모차르트 이후 최고의 뮤지션이자 대중음악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록 밴드로, 7년이란 공식적인 짧은 활동 기간 동안 수많은 전설적인 곡들을 쏟아냈다. 그들은 초기 로큰롤을 바탕으로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록의 새로운 영역을 탐구해 창의적이며 혁신적인 사운드로 진화해갔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보편적이면서도 철학적인 가사, 형식을 파괴한 크로스오버에, 앨범 중심의 음악적 완성도를 높인 작품성까지 절묘하게 대중들과 교감하며 20세기 최고 문화유산이 되었다. 자신들의 독립 레이블도 만들고, 컨셉 앨범을 시도하며, 스타디움 라이브에, 프로모션용 영상도 도입하는 등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도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냈다.

비틀즈

비틀즈가 빌보드 1위를 기록한 싱글(Hot 100)은 총 20개로 지구상 가수들 중 역대 1위이며, 해체한 후에도 각 멤버들이 모두 1위를 한 번 이상씩 해본 유일한 경험도 갖고 있다. 빌보드 앨범 차트(Hot 200)에서도 정규 앨범 외 앤솔로지 편집 앨범을 포함해 총 19번의 1위를 기록했고, 본진인 영국에서도 15개의 앨범이 1위에 올라 최다를 자랑한다. 한 해(1964년)에만 빌보드 1위 곡 6개를 내놓는 기염을 토하며 ‘브리티시 인베이젼’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해냈으며, 그 다음 해(1965년)에도 5곡이 1위를 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런 만큼 역사상 가장 많은 앨범을 팔아치운 아티스트로 기네스에 올랐는데, 비틀즈는 2001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무려 10억 장 이상의 물리적, 디지털 앨범을 팔아치웠고, 지금도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팔리고 있다.


비틀즈가 없는 비틀즈 음악

비틀즈

이런 전설적인 뮤지션답게 비틀즈의 음악은 쉽게 저작권 허가를 받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작에 앞서 리차드 커티스와 대니 보일은 비틀즈 멤버인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 세상을 떠난 존 레넌과 조지 해리슨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했으며, 저작권을 가진 애플 레코드와 소니 ATV 음악 퍼블리싱과 협상해 사용 권리를 획득했다. 그 비용에만 1000만 달러가 소요된 것으로 한 외신은 추측했는데, 이 영화의 총 제작비가 2600만 달러니 비틀즈의 음악이 어느 정도 비중인지 짐작할 수 있을 듯싶다. 전 세계적으로 1억 4천 달러의 흥행을 달성하며 <보헤미안 랩소디>와 <로켓맨> 등에 이어 음악영화 강세에 방점을 찍어주는 한편, 전통적으로 음악이 소재가 되는 영화는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또 한 번 증명해주었다.

<예스터데이>

<예스터데이>는 비틀즈가 없는 세계를 다루고 있는 만큼 비틀즈가 부른 원곡은 나오지 않지만, 대신 비틀즈의 노래들을 원 없이 들을 수 있는 작품이다. 이미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나 <아이 엠 샘> 등 비틀즈 노래들로 채워진 작품들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비틀즈를 스토리 전면에 내세워 직접적으로 연관시켜 활용한 경우가 없었기에 신선하고 익숙하게 다가올 듯싶다. 대니 보일은 영화를 위해 스무 곡 정도를 선곡했다고 밝혔는데, 최종적으로 영화에 쓰인 건 17곡이다. 너무나 유명하다 못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커버된 곡으로 기네스에 올랐고, 본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Yesterday’를 비롯해, ‘Let It Be’와 ‘Hey Jude’는 물론, <무한도전>에 나왔던 ‘All You Need Is Love’와 ‘Help!’, ‘I

Want To Hold Your Hand’ 등 누구나 다 아는 곡들이 흘러나온다.


비틀즈 입문용 사운드트랙, <예스터데이>

<예스터데이> 사운드트랙 표지

물론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A Hard Day’s Night’, ‘I Saw Her Standing There’, ‘Carry That Weight’, ‘She Loves You’, ‘Something’, ‘Here Comes The Sun’, ‘In My Life’, ‘The Long & Winding Road’, ‘Ob-La-Di, Ob-La-Da’ 등 가히 비틀즈 입문자용으로 괜찮다 싶을 만큼 주옥같은 명곡들을 선곡한 제작진의 센스가 빛을 발한다. 저작권 해결보다 노래 고르는 게 더 어려웠다는 리차드 커티스의 엄살이 빈말로 들리지 않을 정도다. 다만 본격적인 음악영화가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에 성장담 요소도 갖고 있는 터라 이 노래들을 온전히 듣지 못하고 하이라이트 맛보기처럼 스쳐가야 한다는 게 조금 안타깝다. 그나마 사운드트랙 안에는 잭 말릭(히메쉬 파텔)의 데뷔(!) 앨범 ‘One Man Only’와 기찻길 레코딩 세션, 웸블리 라이브들이 끝까지 담겨 있어 그 아쉬움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다니엘 펨버턴

음악은 대니 보일과 <스티브 잡스>를 통해 한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다니엘 펨버턴이 맡아 반짝반짝 빛나는 음악을 들려준다. <맨 프롬 엉클>과 <오션스 8>,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등으로 현재 가장 절정의 감각을 뽐내고 있는 신세대 영화음악가지만, 이번 <예스터데이>에선 아무래도 비틀즈가 주가 되는 만큼 편곡과 이번 영화가 데뷔작인 신인 히메쉬 파텔이 모든 곡을 직접 연주하고 부를 수 있게 지도, 감독하는데 더 신경을 기울였다. 아쉽게도 사운드트랙에는 오롯이 비틀즈를 부각시키기 위한 브릿지 개념의 짧은 간주들만이 6곡 정도 수록됐는데, 실제 영화상에서 그의 스코어는 감동적인 판타지와 로맨틱 코미디 그리고 비틀즈 음악 사이에서 끈끈한 아교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비틀즈, 다니엘 펨버턴 그리고 에드 시런

다니엘 펨버턴

비틀즈 노래들을 본격적으로 구현해야 하는 만큼 펨버턴은 생존해 있는 비틀즈 멤버인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에게 직접 자문을 구하고 상담했는데, 막상 실제 작업을 할 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고 한다. 비틀즈가 없는 세상에 구현되는 비틀즈 음악이기 때문에 오히려 히메쉬 파텔이 만들어내는 감성에 더 주목하는 게 맞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파텔의 편안하면서도 부드러운 보이스컬러는 언뜻 비틀즈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많아 쓸데없는 우려였는지 모른다. 비틀즈가 실제 녹음했던 애비로드 부스에서 작업이 이뤄졌고, 실제 비틀즈가 연주한 피아노를 사용하고, 링고와 같은 방식으로 드럼을 연주하고 녹음해 비틀즈만의 색채를 덧입히고자 했다. 영화상에선 개그로 나오는 ‘헤이 듀드’ 녹음에 대해선 신성한 곡에 그럴 수 없다며 반대하며 버텼지만, 결국 제작진에게 백기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예스터데이>

영화에서 농담처럼 언급되거나 혹은 긴장감을 유도하는 힌트로 쓰이지만 잭이 연주하지 않는 ‘Eleanor Rigby’와 ‘Strawberry Fields Forever’, ‘Yellow Submarine’ 등도 사운드트랙에 제외돼 있어 유감이다. 영화에서 의외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은 에드 시런이 실명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의 노래들(‘Shape of You’, ‘You Need Me, I don’t Need You’, ‘One Life’ 등)도 잠깐잠깐 영화상에서 맛볼 수 있으며, 엘리(릴리 제임스)가 잭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된 오아시스의 ‘Wonderwall’은 스쿨밴드 버전으로 흘러나오기도 한다. 잭의 자작곡으로 소개된 ‘Summer Song’과 ‘Rock This Road’는 음악을 맡은 다니엘 펨버턴이 만들고, 각본가 리차드 커티스가 가사를 쓴 오리지널 곡이다.


사운드트랙스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