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외압과 태풍 피해로 개막 직전까지 난항을 겪었던 2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순항하며 반절에 접어들고 있다. 영화제가 가장 붐비는 주말을 지나면서, 상영작들 대부분이 부산의 관객들을 만났다. 이에 따라 올해의 화제작도 슬슬 굳어지는 분위기다. 에디터는 곳곳에 개설된 티켓 부스들에 문의하고, 영화제 홈페이지 내 티켓 교환 게시판을 살펴보며, 이번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가장 열렬한 관심을 이끌어낸 작품 여섯 개를 추렸다. '올해 부국제 최고작'으로 기억될 이 영화들은, 혹자에겐 '그토록 구하고 싶었지만 끝내 위시리스트로만 남은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 다행히 6개 영화 모두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라라랜드
La La Land
   
감독 데미언 차젤
출연 라이언 고슬링, 엠마 스톤, J.K. 시몬

사제지간의 날카로운 신경전과 휘몰아치는 드럼 연주의 스펙터클을 앞세운 <위플래쉬>로 영화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한 데미언 차젤의 새 영화다. LA를 배경으로,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와 무명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사랑을 그린다. 성공에 더 가까워질수록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이는 자꾸 멀어진다. 환상적인 어울림을 뿜어내는 두 배우의 케미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도시 LA(La La Land는 LA의 애칭이다)의 풍경은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위플래쉬>의 음악감독이었던 저스틴 허위츠가 이번에도 사운드트랙 작업을 맡아 <위플래쉬>를 잇는 음악영화의 향연을 선사한다. 엠마 스톤은 이 작품으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2월 개봉 예정.



너의 이름은
君の名は
    
감독 신카이 마코토
출연 카미키 류노스케, 카미시라이시 모네
 

근래 들어 신카이 마코토와 '비주얼' 사이의 등식은 다소 부정적으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신작을 발표할수록 "화면은 예쁜데 재미가 없다"는 평이 많이 나타났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에 대한 반응은 사뭇 다르다. 감독 스스로도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자신할 만큼, 서사의 힘이 어마어마하다. 처음엔 도시의 소년과 시골의 소녀가 몸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풋풋한 로맨스처럼 보이던 영화는 예상치도 못한 방향으로 몸집을 불리면서 뭇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10월 첫 주 기준) 6주 연속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면서 128억 엔의 수익을 기록했다. 이번 상영을 놓친 이들이라면, 10월21일 개최되는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상영을 노려보자. 내년 1월 개봉 예정.


토니 에드만
Toni Erdmann
   
감독 마렌 아데
출연 페테르 시모니슈에크, 산드라 휠러, 마이클 위텐본

<토니 에드만>은 가족영화다. 밋밋한 노년을 보내던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는 딸 이네스(산드라 휠러)와의 소원해진 관계를 다시 잇기 위해 '토니 에드만'이라는 새로운 자아를 뒤집어 쓴다. 기괴한 가발과 이빨을 착용한 그는 출세에 목매는 이네스의 일상에 불쑥불쑥 나타난다. 영화는 빈프리트의 갖은 기행들과 이를 맞닥뜨리는 이네스의 당황스러움을 통해 숨넘어갈 만한 웃음을 선사한다. 배가 끊어져라 웃다 보면 한결 가까워진 부녀의 모습이 따뜻한 감동을 선사한다. 올해 칸 영화제 경쟁작이었던 <토니 에드만>은, 아쉽게도 주요 부문의 수상은 놓쳤지만, 영화제 내내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회자되었다.


  은판 위의 여인
La femme de la plaque argentique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출연 타하르 라힘, 콘스탄스 루소, 올리비에 구르메

구로사와 기요시는 드라마, 호러, 스릴러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왕성한 창작력을 자랑하고 있다. <은판 위의 여인>은 기요시가 프랑스에서 만든 첫 번째 영화다. 장(타하르 라힘)은 유명 사진작가 스테판(올리비에 구르메)의 조수로 고용된다. 실물 크기의 은판을 활용한 촬영 방식을 고수하는 스테판은 모델인 딸 마리(콘스탄스 루소)의 자유를 통제하고, 장은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공간과 배우, 그리고 언어까지 프랑스로 바뀌었지만 기요시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영혼에 대한 관심은 <은판 위의 여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장과 마리의 로맨스는 스테판의 기묘한 대저택에 서려 있는 불안한 공기와 함께 상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한순간도 공포를 내세우진 않지만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에게 근사한 호러를 본 듯한 감흥을 선사할 것이다.


더 테이블
   
감독 김종관
출연 정유미, 정은채, 한예리, 임수정

김종관 감독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관계다. (주로 연인인) 두 주인공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혹은 변해가는지 차분한 호흡으로 바라본다. 감정의 미묘한 결을 만지는 특유의 섬세함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감성적'이라는 수식이 따라붙곤 한다. <더 테이블>은 제목처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에 집중한다. 정유미, 정은채, 한예리, 임수정이 분한 4명의 여자가 각자 다른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옴니버스 구성으로 모였다. 신의 변화 없이 계속 이어지는 대화는 그 단조로운 형식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바뀌어가는 관계의 양상을 보여주며 관객의 집중을 꼭 붙든다.


단지 세상의 끝
Juste la fin du monde
   
감독 자비에 돌란
출연 가스파르 울리엘, 나탈리 베이, 마리옹 꼬띠아르, 레아 세이두

당대의 젊은 영화감독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자비에 돌란의 신작. 장 뤽 라갸르스의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삼았다. <단지 세상의 끝>은 자비에 돌란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회복되기 어려워 보이는 가족관계를 그린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작가 루이(가스파르 울리엘)가 12년 만에 가족을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쫓아간다. 옛날 얘기만 되풀이하는 어머니, 줄담배만 피워대는 동생, 냉랭하기만 한 형 등 그의 등장은 가족들에게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가장 '힙한' 감독 자비에 돌란과 프랑스의 쟁쟁한 배우들의 협업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단지 세상의 끝>은 칸에서 공개돼 혹평 세례를 받았지만 끝내 그랑프리를 거머쥐었다. 12월 국내 개봉 예정.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