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액션의 영원한 고전 <터미네이터 2>(1991)가 3D 버전으로 다시 한번 한국 관객들을 만난다. 벌써 28년 전 작품이지만, 화려한 볼거리로 똘똘 뭉친 영화는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터미네이터 2>에 관한 소소한 사실들을 풀어놓는다.


제임스 카메론은 <어비스>(1989)를 개봉시킨 후 <터미네이터 2> 작업을 시작할 준비가 됐다고 느꼈다. 하지만 시리즈 판권의 절반을 가진 영화사 헴데일이 도산해 더 이상 투자를 유치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구원자는 아놀드 슈왈제네거. 그는 <토탈 리콜>(1990)을 제작한 캐롤코픽처스가 판권을 사들이도록 도왔고, 1990년 2월 본격적인 제작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터미네이터 2>는 다행히 투자가 결정되긴 했지만, 1991년 여름에 개봉시켜야 한다는 빡빡한 데드라인이 걸렸다. 제임스 카메론은 캐롤코가 <터미네이터 2>를 소개할 수 있도록 칸영화제 개막 전까지 완성한다는 각오로 <터미네이터>(1984)를 함께 했던 윌리엄 위셔와 밤낮으로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공항 가는 리무진이 집 앞에서 대기할 때 시나리오는 한참 인쇄되고 있었고, 결국 칸에 가는 비행기 이륙을 늦추기까지 했다. 이륙하자마자 카메론은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제작자 마리오 카사르에게 시나리오를 건네고, 비행 내내 잠만 잤다.


터미네이터(아놀드 슈왈제너거)가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채 바이커 바에 들어오는 신을 촬영 할 때, 스탭들은 바깥에서 경찰 무리가 흑인 한 명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모습을 찍었다. 훗날 LA 폭동의 원인이 되는 로드니 킹 폭행사건이었다. 1992년 4월 29일 열린 재판에서 경찰관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이에 분노한 흑인들은 LA 시내로 쏟아져 나왔다. 카메론은 이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한때 아내였던) 캐서린 비글로우가 연출한 <스트레인지 데이즈>(1995)의 시나리오를 썼다.


촬영이 진행된 6개월간, 13살이었던 존 코너 역의 에드워드 펄롱은 쑥쑥 성장했다. 첫 촬영이었던 사막 신의 펄롱은 다른 신보다 확 어려 보인다. 몇 달 새 키가 확 커서 린다 해밀턴과의 신장 차이를 유지하기 위해 촬영 후반부엔 땅에 구덩이를 파 그 위에 서 있기도 했다. 변성기가 시작돼 목소리 대부분은 후반작업 중에 다시 더빙됐다. 제임스 카메론은 존이 터미네이터와 사람들이 왜 우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의 목소리가 오히려 더 드라마틱 하다고 판단해 그것만큼은 그대로 뒀다.


사라(린다 해밀턴)가 터미네이터와 아들 존과 함께 T-1000(로버트 패트릭)의 추격을 피해 정신병원을 탈출하는 시퀀스 중 엘리베이터에서 총격을 벌이는 대목을 촬영 할 당시, 린다 해밀턴은 테이크 사이에 귀마개를 갈아 꼽는 걸 잊어버리는 바람에 청력을 잃게 됐다.


(왼쪽부터) <터미네이터> 마이클 빈 / 빌리 아이돌

제임스 카메론은 <터미네이터> 1편에서 카일 리스를 연기한 마이클 빈이 T-1000을 연기하길 원했지만, 관객들에게 혼돈을 줄 거라는 우려로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가수 빌리 아이돌도 유력한 후보였지만 당시 오토바이 사고가 나는 바람에 역할을 맡을 수 없었는데, 그는 <터미네이터 2>보다 몇 달 먼저 개봉한 짐 모리슨의 전기영화 <도어즈>(1991)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T-800(터미네이터)이 판처 장갑차라면 T-1000은 포르셰”라고 생각했던 카메론은 <다이 하드 2>(1990)에서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상반된 이미지의 로버트 패트릭을 발견하고 그를 캐스팅 했다.

<다이 하드 2> 로버트 패트릭


로버트 패트릭은 숨을 헐떡거리거나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T-1000를 소화하기 위해 코로만 숨을 쉬는 달리기 훈련을 거쳤다. 아주 열심히 트레이닝에 임한 그는 경주용 오토바이를 탄 펄롱을 가뿐히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 빨라져서 오히려 속도를 낮춰야 했다. 패트릭은 더불어 눈을 깜빡이지 않으면서 총을 쏘는 것까지 훈련 받았다.


린다 해밀턴은 이스라엘의 특공대원 출신의 스턴트 배우에게 무기 다루는 걸 배웠고, 촬영에 착수하기 전 13주 전부터 매주 6일, 하루 3시간씩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몸을 만들었다. 촬영 중에도 무지방 다이어트를 진행해 5.4kg을 감량했다. 촬영 첫 날엔 보디빌더 출신의 슈왈제네거로부터 몸을 가꾸는 특훈을 받기도. 이런 혹독한 훈련 때문에 해밀턴은 <터미네이터 3: 라이즈 오브 머신>(2003) 출연을 고사했다.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특수효과 제작사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 매직(ILM)은 컴퓨터그래픽 부서의 아티스트를 6명에서 36명으로 늘렸고, 8개월간 550만 달러를 투입해 영화 통틀어 3분 30초 남짓한 CG 장면들을 완성했다. 제임스 카메론과 ILM은 <어비스>부터 작업을 시작해 현재까지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아놀드 슈왈제너거의 출연료는 1500만 달러(현재 환율 기준 176억 원)였다. 그는 러닝타임 내내 700여 개의 ‘단어’를 말하는데, 단어 하나당 약 2만 1429 달러, “Hasta la vista, baby”만 8만 5716달러인 셈이다. 제작자 마리오 카사르는 아놀드 슈왈제네거에게 감사의 뜻으로 1400만 달러 상당의 비행기 걸프스트림 3의 중고품을 선물했다.

(왼쪽부터)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마리오 카사르

<터미네이터 2> 제작자가 아놀드 슈왈제네거에게 선물한 비행기 걸프스트림 3.


터미네이터가 존과 T-1000을 처음 만나는 쇼핑몰은 LA 인근에 위치한 셔먼 오크스 갤러리아다. 숀 펜과 피비 케이츠의 청춘영화 <리치몬드 연애소동>(1982)과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코만도>(1985) 등 여러 작품들도 그 곳에서 촬영됐다. 독특한 건물 구조를 활용한 영화들이 많았는데, <터미네이터 2>는 대형 쇼핑몰 이상의 의미를 두진 않았다.

<리치몬드 연애소동>

<코만도>


유명한 대사 “Hasta la vista, baby”(하스타 라 비스타, 베이비)는 스페인어다. 스페인어 버전의 영화에는 “さようなら, ベビー”(사요나라, 베이비)로 바꾸어 외국어의 맛을 살렸다.


<터미네이터 2>는 R등급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용 장난감이 어마어마하게 출시됐고, 당연히 불티나게 팔렸다.


영화 초반부를 짜깁기한 예고편을 원치 않았던 제임스 카메론은 <터미네이터>와 <에이리언 2>(1986)의 특수분장을 담당한 스탠 윈스턴에게 티저 예고편 연출을 의뢰했다. 15만 달러의 예산이 투입된 티저 예고편은 강철들이 조립돼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터미네이터로 완성되는 과정의 비주얼로 완성됐다. 카메론은 1편에서 완전히 망가진 터미네이터가 다시 돌아온다는 설정을 보여주는 결과물을 흡족해 했고, <터미네이터 2>가 개봉하기 1년 전(심지어 슈왈제네거의 전작 <토탈 리콜>보다 먼저)부터 상영됐다.


영화 홍보 초반,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에드워드 펄롱과 함께 있는 모습은 전혀 노출하지 않았다. 전편에서 악역이었던 터미네이터가 선한 캐릭터로 돌아온다는 걸 감춰야 했기 때문이다.


사운드디자인 팀의 역할은 상당히 방대했다. 터미네이터가 움직일 때 나는 가죽 재킷, 버클, 발자국 소리는 전부 후시녹음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라가 병원에서 종이 클립을 이용해 침대에서 빠져나와 시건장치를 여는 모든 소리들도 당시에 실제로 녹음된 건 전혀 없었다. 총성도 굉음을 극대화하기 위해 후반작업에서 매만졌다. 사운드 디자이너 개리 리드스트롬은 T-1000이 철문을 빠져나갈 때의 사운드를 개밥이 캔에서 천천히 빠져나오는 소리를 녹음해서 만들어 “특수효과에 600만 달러나 들었는데, 난 고작 35센트 밖에 안 썼다”며 농을 던졌다. 수은처럼 변해서 흐물 댈 때의 소리는, 밀가루와 물을 섞어 미세먼지 제거제를 분사해 만든 용액에 콘돔을 씌운 마이크를 빠트려 얻어냈다.


공장에서의 마지막 전투 신, 사라의 모습을 하고 존에게 다가가는 T-1000은 린다 해밀턴의 쌍둥이 자매 레슬리 해밀턴이 연기했다. 사라가 지구가 순식간에 날아가는 꿈을 꿀 때 등장하는 젊은 사라 역시 레슬리였고, 어린 존은 당시 생후 12개월이었던 린다 해밀턴의 아들 달튼이었다. 한편, T-1000이 사라가 갇힌 정신병원의 보안요원으로 변신하는 신에서는 돈 스탠턴, 댄 스탠턴 쌍둥이가 활약했다.


클라이막스의 망가진 터미네이터 얼굴은 분장하는 데 5시간, 지우는 데 1시간이 걸렸다. 메이크업 담당자들은 로봇인 '평소' 터미네이터의 인조적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슈왈제네거의 얼굴을 분장할 때 러브젤을 섞어 발랐다.


<터미네이터 2>가 개봉한 지 5년 후인 1996년, 제임스 카메론은 유니버설 스튜디오 테마 파크를 위한 영상 <T2 3D: 배틀 어크로스 타임>을 연출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 린다 해밀턴, 로버트 패트릭, 에드워드 펄롱이 모두 제 캐릭터로 등장하는 이 작품을 제작하는 데만 6000만 달러가 들어갔다. 12분짜리 비디오니까, 사실상 영화사상 러닝타임 1분당 들어간 예산으로는 단연 최고의 금액인 셈이다.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든 영화로 알려진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이 181분 러닝타임에 3억 5600만 달러가 투입됐다.


1984년 말 <터미네이터 2>에 관한 프로젝트가 처음 발표됐을 당시의 예산은 <터미네이터>의 2배에 달하는 1200만 달러였지만, <터미네이터 2>는 결국 1억 200만 달러를 들여 완성됐다. 영화사는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할 거라고 걱정했지만, 광대한 배급 덕분에 극장에 걸리기도 전에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었을 뿐만 아니라, <터미네이터 2>는 전작 <터미네이터>의 수익 7800만 달러를 불과 4일 만에 돌파했다. 전 세계 5억2000만 달러를 벌어들여 1991년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터미네이터 2>의 미국 내 수익은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역대 R등급 액션영화 가운데 최고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