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콧’이란 사회·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된 항의의 표현으로, 특정 개인, 기업, 조직 및 국가 등과의 거래를 중단하는 자발적인 행동이다. 보이콧은 영화계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움직임 중 하나다. 사적인 이유에서부터 사회적인 물의로 인한 보이콧까지 얽힌 사연 또한 다양하다. 오늘은 2019년 보이콧 논란이 일었던 영화들을 정리했다. 글을 읽고 지나친 비난과 도를 넘은 댓글들은 지양해주길 바란다.
왜곡된 역사 영화?
올여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이하 메가박스)의 텐트폴 영화였던 <나랏말싸미>. 송강호와 박해일의 만남이 기대를 모았던 가운데, 영화는 개봉 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도서출판 ‘나녹’이 조현철 감독과 투자·배급사인 메가박스를 상대로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기 때문. 나녹이 독점 출판권을 갖고 있는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평전>의 2차 저작물이며, “<나랏말싸미>가 허락 없이 영화 제작을 강행했다”라는 이유에서였다. 가처분 신청은 기각되었으며, <나랏말싸미>는 7월 24일 무사히 개봉할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개봉 이후에 발발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세종 친제설’이 학계의 정설인데, 영화는 ‘야사’를 다뤘기 때문. 물론 야사를 다룰 수는 있다. 문제는 신미가 세종의 조력자를 넘어 혼자 한글을 만들다시피 했다는 것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를 본 관객들이 “역사 왜곡이다”, “세종 대왕의 업적을 폄훼했다”라는 의견을 제시해 관람 보이콧으로 이어졌으며, 일각에서는 별점 테러와 함께 국내 상영 및 해외 배급 금지 가처분 신청 청원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글문화연대는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의 주역을 ‘신미대사’로 그리고 있는데, 이런 가정을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라 믿는 감독의 소신에 바탕을 두고 있어 일반적인 창작의 자유와는 결이 다르고 위험하다”라는 등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나랏말싸미>는 창제에 관한 여러 설 중 하나를 ‘소재’로 만든 픽션일 뿐이며,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한다는 대립된 주장 역시 존재한다. 영화는 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시작 전,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일 뿐이며,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자막을 통해 이와 같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기도 하다. 조철현 감독은 해명문을 통해 “우리는 역사 속에 감춰져 있던 신미라는 인물을 발굴해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으로 조명하고자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거기에 “세종대왕께서 혼자 한글을 만드셨다 하더라도 그 내면에서 벌어졌을 갈등과 고민을 드라마화하기 위해 이를 외면화하고 인격화한 영화적 인물이 필요한데, 마침 신미라는 실존 인물이 그런 조건을 상당히 가지고 있었기에 채택하였던 것이다”라 전했다.
덧붙여 “이 영화에 대해 반감을 표하는 분들의 마음을 안다. 그러나 제작진의 마음과 뜻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폄훼하고자 한 것이 결코 아니다. 진심을 전달하고자 하는 소통과 노력의 부족으로 이런 점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던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라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나랏말싸미>에 대한 역사 왜곡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못했고, 영화는 100만을 채 넘기지 못한 95만 관객을 기록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페미니즘 영화?
올해 영화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이슈를 뽑아보자면 단언 ‘페미니즘’과 '여성 영화'다. 그중에서도 비난과 옹호,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갈등을 이뤘던 두 작품이 있다. 올 3월 개봉한 <캡틴 마블>은 MCU 첫 여성 히어로 솔로 무비라는 점에서 큰 화제를 몰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주연인 브리 라슨이 ‘페미니스트’라는 점을 문제 삼으며 비판이 생겨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마블의 대부인 스탠 리가 사망했을 당시, SNS 계정에 올렸던 사진이 부적절했던 사건이 있다. 추모의 의도로는 보기 힘든 자세와 패션 등이 그 이유였다. 사진에 대한 의견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미투 고발과 성추행 소송을 당한 스탠 리를 향한 브리 라슨의 개인적인 추모의 방식일 뿐이다(스탠 리는 간호사들에게 구강성교를 요구하고 성추행을 한 것으로 고발당했다)”, 라는 것과 “추모의 태도가 선을 넘었다. 당연히 옳지 않다”는 견해였다. 브리 라슨은 해당 글을 삭제 조치하였지만 해당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개봉 전부터 <캡틴 마블>에 대한 별점 테러가 이어졌으며, 상영 금지 청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한 커뮤니티에는 “당일 상영관 앞에서 보이콧 시위를 할 것”이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그러나 <캡틴 마블>은 아무런 해프닝도 일어나지 않은 채 개봉했으며, 국내에서만 58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를 본 사람보다 안 본 사람의 별점과 리뷰가 더 많은 영화’라는 <82년생 김지영>도 마찬가지다. 82년생인 주인공 김지영을 주인공으로, 한국 사회 속 여성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비췄다는 점에서 한국의 페미니즘 이슈의 중심에 선 작품이다. 영화는 100만 부 이상 판매된 조남주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제작 전부터 영화는 ‘페미니즘’을 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나친 비난과 조롱을 당해야 했다. 보이콧 운동은 물론이다. 개봉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영화에 등장하지도 않는 대사들이 명대사로 등록되어 있고, 해당 영화 감상평을 게재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연예인들이 악플을 받아야 했다. 온라인상에는 영화에 대한 온갖 논평이 쏟아졌으며, 곧장 갈등을 빚어내기도 했다. 보이콧 운동에도 불구하고 <82년생 김지영>은 개봉 8일 만에 손익 분기점을 돌파, 최종 367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하였다.
일본 NO!
지난 7월 일본이 한국에 대한 반도체 관련 수출규제를 단행, 이어 8월엔 한국을 백색 국가에서 제외하며 양국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고조된 반일 감정을 기반으로 한 ‘NO 재팬’ 불매 운동이 불거지게 되자 일본 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 측은 개봉 전부터 개봉 우려에 대한 입장을 표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날씨의 아이> 보이콧 문제가 대두된 것은 개봉 후 배급사와 마케팅사의 공식 입장문이 발표된 직후부터였다.
<날씨의 아이> 측은 “첫 주말 약 33만 7천 관람객, 감독의 전작 '너의 이름은.' 대비 -70% 하락과 더불어 최종스코어 371만, 그 반의반도 어려운 상황을 마주했습니다”, “경쟁작 대비 낮은 인지도로 준비부터 고초를 겪었고 이는 낮은 예매율과 저조한 첫주 실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를 타개하고자 노력했지만 대부분 거절당했고, 외면 받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 이 시국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콘텐츠와 엮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라며 불매 운동에 관한 현실을 언급했다.
이어 “그럴수록 저희는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본질을 알리고자 하는 그 마음 외 다른 모든 기회는 철저히 저희를 외면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실패로 끝나겠지만 다른 유사 작품들에는 이제 편견을 거둬주십시오” 당부의 말을 남겼다. 그러나 네티즌들과 관객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전작의 성공이 신작의 성공을 무조건 적으로 보장해주는 법은 없지 않냐”, “흥행 부진을 왜 반일과 관객 탓으로만 보나. 영화적 완성도의 아쉬움도 컸다”는 의견이 빗발쳤다. <날씨의 아이>는 65만 관객을 동원, 상영이 마무리되었다.
친중 발언 NO!
<알라딘>의 뒤를 이을 디즈니의 2020년 애니메이션 실사화 기대작 <뮬란>의 새로운 트레일러가 지난 5일(현지시각) 공개됐다. 그런데 생각보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다. 바로 주인공 뮬란 역을 맡은 배우 유역비 때문이다. 1000 대 1을 뚫고 뮬란 역에 캐스팅된 유역비는 자신의 중국 SNS 웨이보 계정에 사진 한 장과 글을 게재했다. 해당 사진에는 “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 나를 쳐도 된다. 홍콩은 중국의 일부고 그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라”는 문구가 적혀있었으며, “나도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라는 해시태그도 덧붙여져 있었다.
이 사진은 홍콩 시위대가 공항 점거 시위를 했을 당시, 시위대가 중국 기자를 폭행했다는 보도와 함께 붙잡힌 기자가 시위대를 향해 “나를 때려라, 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라고 말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 홍콩 경찰을 지지하는 문구로 공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유역비의 친중 발언은 즉각적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유역비는 중국도 아닌 미국 시민권자로, 자유·평등을 중시하는 미국의 정신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누리꾼들 사이에선 ‘#보이콧디즈니(BoycottDisney)’와 ‘#보이콧뮬란(BoycottMulan)’ 해시태그와 함께 보이콧 운동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향후 <뮬란>의 흥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불공정 상영 NO!
보이콧의 방향이 영화를 향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지난 2월 27일 개봉한 <칠곡 가시나들>은 개봉 전 불공정 상영에 반대하며 CGV를 향해 상영관 보이콧 입장문을 발표했다. 김재환 감독은 “CGV가 전국 극장 159개, 스크린 1182개 중 <칠곡 가시나들>에 8개 극장과 8개 관만 배정했습니다. 같은 날 개봉한 CJ CGV 아트하우스 배급 영화의 경우, 순 제작비와 P&A 비용도 비슷하지만 95개 극장에서 140개의 스크린을 확보했습니다”라며 불공정한 상영 현황을 지적했다.
덧붙여 “개봉일 실적과 예매율에 따라 향후 ‘유동적으로’ 몇 회 상영할지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해당 영화의 예매창을 열어준 멀티플렉스 극장이 없는데 어떻게 예매율이 올라갑니까?”, “CGV가 정한 모욕적인 룰은 거부합니다, CGV 넌 내 인생에서 아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후 YTN 뉴스에 출연한 김재환 감독은 입장문을 밝히게 된 계기로 “(입장문을 밝히기 전) 배급사를 통해 CJ CGV 대외협력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CGV 측은 보이콧 입장문을 내지 않는 조건으로 스크린을 왕창 열어주겠다 제안했다”라며 “충격을 받았고, 가만히 있는 게 옳은 것인가는 생각에 입장문을 내게 됐다”고 전했다.
며칠 뒤 감독은 “메가박스에서도 상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라는 입장을 한 번 더 밝혔다. “총 17개 상영관과 평균 하루 1회 상영을 배정받았으나, 그마저도 오늘 정오까지 예매창이 열리지 않았다”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칠곡 가시나들>은 롯데시네마와 일반 예술극장에서만 상영되었으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타고 4만 2천 명이라는 의미 있는 흥행 성과를 거둬들였다. 영진위는 “영화산업 독과점 문제는 시장 지배·경제력 남용 방지 등을 규정한 헌법상의 경제민주화 원칙에도 위배된다”,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또 다른 불공정 사안에 대해서도 적극 대응하겠다” 해당 문제에 대한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씨네플레이 문선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