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은 혈연이 아닌 사람들이 맺어진 유사 가족을 다뤘고,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가족의 이야기에 배우라는 예술가의 삶을 더했다. 어느 인터뷰에 보면 <태풍이 지나가고> 이후 조금 시간을 가진 후에 다시 가족영화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전과 지금 무엇이 달라졌나.
<태풍이 지나가고>(2016)는 정말 말 그대로 가족드라마였다. 모든 일이 그 집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주 좁은 공간, 반경 10m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좁은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정성스레 주워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면 보다 큰 것이 보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처음부터 큰 것을 의식하지 않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반면 그 후에 만들었던 <어느 가족>(2018)이나 이번에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같은 영화는 또 다른 삶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보시는 분들은 똑같은 가족드라마 아니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느 가족>은 집과 사회, 가족과 사회의 어떤 접점들과 거기서 벌어지는 마찰을 다루고 있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시야가 확장되는 이야기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원래 가족드라마로 구상하거나 기획했던 것이 아니라 연기라는 것을 삶의 중심에 놓은 세 명의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미 세상을 떠난 한 사람(사라)이 있고, 또 여배우(파비안느)가 있고, 여배우가 되려고 했지만 되지 못한 사람(뤼미르)의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는 이야기다. 미묘하지만 각기 색깔이 다른 영화다.
감독님 영화에는 함께 음식을 만들거나 식사하는 장면이 유독 많다. <걸어도 걸어도>(2008)에서는 옥수수튀김, <태풍이 지나가고>에서는 카레우동,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에서는 소바와 매실주를 만들어 먹는 장면이 떠오른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파스타를 만들어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있고.
내가 먹는 장면을 좋아한다. (웃음) 먹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만드는 과정, 그리고 음식을 만들면서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또 어떤 소리가 들리는가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이것들을 영화에서 구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맛이라는 것은 영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인데, 음식을 만들거나 준비하는 과정에서 담는 색감, 소리 등이 영화에 실리면 영화를 즐기는 요소가 하나 더 추가되는 느낌을 받는다.
식구라는 말이 있다. (일본에는 식구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한집에 살며 식사를 함께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함께 식사한다는 행위가 유대감을 더 크게 느끼게 한다.
그런 측면도 있다. 누구와 먹는가도 중요하다. 음식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기억과 결부되기도 하고 기억을 환기하기도 한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예를 들어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매실은 할머니, 잔멸치는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리고, 식탁을 둘러앉는 모습에서도 가족의 역사와 현재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누가 부엌에 가장 가까운 곳에 앉는지, 중심이 되는 인물은 어디에 앉는지 등에서 말이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묘사할 수 있기 때문에 식사하는 장면을 찍는 일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