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츠> 톰 후퍼 감독

“영국 이외에 프로모션할 나라를 딱 한 곳 고를 수 있었는데, 한국을 선택 했다”. 지난 12월 23일 열린 영화 <캣츠> 기자회견장. 영화 개봉을 맞아 한국을 첫 방문한 톰 후퍼 감독이 한국을 향한 애정을 드러내자 장내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레미제라블>에 보내준 한국 관객들의 사랑에 늘 한국에 오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그의 얼굴은 국내 팬들을 만날 기대감으로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뮤지컬 영화 <캣츠>는 1년에 단 하루,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축제 ‘젤리클 볼’이 열리는 밤 펼쳐지는 젤리클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킹스 스피치>, <레미제라블> 등 여러 굵직한 작품을 통해 아카데미의 사랑을 받아온 톰 후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약 39년의 세월 동안 사랑받아온 뮤지컬 <캣츠>를 스크린에 옮겼다. 첫 내한이라는 뜻 깊은 방문에 씨네플레이는 톰 후퍼 감독을 직접 만나 <캣츠> 제작에 관한 여러 비하인드를 물었다.


영화 <캣츠>

<캣츠>는 오랜 전통을 지닌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다. 감독님도 인터뷰를 통해 어린 시절 뮤지컬을 보고 전율을 느낀 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캣츠를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옮기고자 한 것이 큰 도전이었을 텐데. 이를 결심하게 된 구체적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2012년에 <레미제라블> 편집을 끝내고 길을 걷는데 문득 내가 뮤지컬과 뮤지컬의 라이브 노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뮤지컬 영화를 또 제작하지 못한다면 굉장히 슬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영화로 아직 제작되지 않은 훌륭한 뮤지컬이 있는지 생각해봤다. 사실 굉장히 적지 않나. 난 즉각적으로 ‘캣츠’를 떠올렸다. 선택의 이유에 어린 시절이 있었던 것도 맞다. 또, 비주얼 적으로 이를 구현하는 게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궁금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도전은 ‘고양이들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알다시피 인간과 고양이를 완벽하게 섞은 창조물을 만드는 작업은 3, 4년이 걸리는 긴 여정이기 때문이다.

<캣츠> 속 럼플티저, 빅토리아, 몽고제리

또 다른 도전은 더 많은 이야기를 넣는 것이었다. 뮤지컬은 이야기가 굉장히 함축되어 있지 않나. 뮤지컬을 보고 있으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는 퍼포먼스가 중점인 작품임에도, 더 많은 이야기가 있길 바랐다. 그래서 ‘빅토리아’ 라는 아이디어를 낸 거다. 영화 속에서 빅토리아는 인간으로부터 잔인하게 버려졌으며, 갑자기 이상한 세계에 던져진 캐릭터다. ‘젤리클’이라 불리는 고양이 종족들 사이로 말이다. 그녀는 우리(관객)의 눈과 귀가 되고, 그녀가 각각의 캐릭터들을 통해 배우면 보는 우리도 함께 배우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는 주인공이 사람을 상징하는 각각의 다른 등장인물들을 만나 성장하게 되는 전통적인 도덕성을 띠는 이야기에 들어맞는다. <캣츠>를 보면 인간의 악을 대변하는 각각의 다른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다. 몽고제리(대니 콜린스)와 럼플티저(나오임 모건)는 범죄를 저지르는 고양이다. 럼 텀 터거(제이슨 데룰로)는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는 고양이고. 빅토리아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선택할 때, 삶이 달라질 수 있는 여러 캐릭터들을 본다.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빅토리아는 도덕적 나침반을 찾게 되고, 그렇게 찾은 그녀의 친절함이 깃든 행동의 힘이 이야기의 결과로 변화돼 나온 것이다.

<캣츠> 봄발루리나 역의 테일러 스위프트

캐스팅이 화려하다. 제니퍼 허드슨, 주디 덴치 등 유명 배우들뿐만 아니라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무용수 프란체스카 헤이워드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이들을 캐스팅하는데 있어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이나, 인상 깊었던 점은 없었나.

사실 가장 먼저 캐스팅 한 건 테일러 스위프트였다(웃음). 테일러 스위프트는 <레미제라블>의 배역을 따기 위해 오디션을 본 적이 있다. 오디션은 굉장히 훌륭했다. <레미제라블>에서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뮤지컬 연기에 흥미 있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번 기회에 그녀를 위해 ‘맥캐버티 송’을 썼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도전은 ‘빅토리아’를 연기한 프란체스카 헤이워드였다. 이번 영화의 스타다. 빅토리아는 주인공이고 우리는 그녀의 눈을 통해 영화 속 세상을 본다. 나는 프란체스카를 찾은 것에 대해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녀 없이 어떻게 이 영화를 만들었을지에 대해선 확신하지 못할 정도다. 알다시피 그녀는 로열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이고 세상 최고의 발레리나다. 그녀는 전에 연기를 해본 적이 없음에도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 그녀는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진정으로 살아있는 느낌을 받는 진정한 퍼포머다. 보다시피 그녀는 노래도 잘 한다. 그래서 그녀를 찾아냈을 때, 나는 이미 영화를 보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출연진뿐만 아니라 연출진도 만만치 않다. 감독님은 물론이고, 앤드류 로이드 웨버부터 안무가 앤디 블랑켄뷰럴, 프로듀서 겸 뮤지선 그렉 웰즈, 데이빗 윌슨 등 그야말로 드림팀이지 않나. 이들과 함께 작업한 소감을 듣고 싶다.

밴드 ‘CHIC' 멤버이자 데이빗 보위의 'Let's Dance' 프로듀서로 유명한, 그야말로 레전드인 나일 로저스와 함께하기도 했다. 이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한 것이다. 또, 나는 8살에 <캣츠>를 보고 사랑에 빠졌었다. 내가 뮤지컬계의 전설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함께 영화 <캣츠>를 창조해 낸 건 진정으로 꿈이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비틀즈도 녹음했던 애비로드에 있는 유명한 스튜디오에 앉아있을 때였다. 영화 OST를 위해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앤드류에게 “우리 뮤지컬 넘버를 더 스피드 있게 해볼 수 있을까?” 말하자 즉각적으로 앤드류가 무언가를 다시 쓰고 더 빠르게 연주해 달라 요청했다. 필름 안의 한 장면을 가정하면서 변화를 부탁하고 응답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구경하는 것은 정말이지 흥분되는 일이었다.

<캣츠> 톰 후퍼 감독

CG에 관해 질문을 안 할 수 없다. 고양이의 털이나 디테일한 부분들에 있어 CG는 상당히 훌륭하다. 하지만 고양이에 배우들의 얼굴만 덧입혀진 ‘인간 고양이’ 이미지 자체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설정을 하기까지 여러 선택지가 있었을 것 같은데. 영화 속 주인공들의 비쥬얼을 구현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T.S. 엘리엇의 시들이 가이드가 되어서 시작했다. 만약 당신이 T.S. 엘리엇이 쓴 황홀한 시들을 읽는다면, 그가 고양이를 풍자하는 것만큼이나 명백하게도 사람들을 풍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젠틀맨 클럽의 멤버이자 모든 시간을 먹는 것에 쓰는 버스토퍼 존스(제임스 코든)를 보면 엘리엇은 고양이의 시선을 통해서 영국 신사 타입에 대해 풍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과 고양이를 일종에 합친 것처럼 말이다. 맥캐버티는 <셜록홈즈> 시리즈의 유명 빌런 ‘모리아티’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데, 엘리엇은 고양이에 대해 말하는 동시에 셜록 홈즈의 캐릭터에 대해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화와 동시에 시의 진정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인간 고양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시가 인간 그리고 고양이에 대해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디자인에 있어서는 큰 가이드가 되었다.

덧붙여 나는 쇼에 있어서 춤과 라이브가 영화의 숏에 생생히 담기는 게 가능하길 바랐다. 그러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사람의 몸이 필요했다. 그래서 효과적으로 디지털 털 효과를 활용해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털들을 고양이 코스튬에 입히는 작업을 거쳤다. 사실 충분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방법을 따랐다. 거기에 배우들의 모션 캡쳐를 사용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영화 속에서 고양이들이 자신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원칙을 고수했기에 모든 댄서들이 제 역량을 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 <캣츠>

2.39:1의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제작되었다. <레드 더스트>(2004) 이후 두 번째다. <캣츠>에 이 상영 방식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이걸 대체 어떻게 알았나(놀람). 맞다. <레미제라블>과 <킹스 스피치>는 모두 1.85:1 비율이다. <캣츠>는 3, 40년대 뮤지컬 황금기에 보내는 러브 레터와도 같다. 케이크 위에서 추는 바퀴벌레들의 춤이나 제니의 댄스, 탭 시퀀스 등은 훌륭한 할리우드 전통 뮤지컬들의 오마주와도 같다. 그 포맷이 특정 뮤지컬 타입에 대해 향수를 불러일으켰으며, 그것이 내가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에 있어 하나의 레퍼런스가 되길 바랐다.

‘Beautiful Ghosts’가 골든글로브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것을 축하한다. 그 외에도 많은 곡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가장 아끼는 곡이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항상 맥캐버티(이드리스 엘바)를 좋아했다. 특히 다른 캐릭터들보다 더 좋아하는데, 맥케비티 곡의 경우 나일 로저스와 그의 친형제가 함께 편집했다. 전자기타 소리가 굉장히 멋지다. 그리고 기차 고양이인 스킴블샹크스의 곡을 재창조 했는데, 그 넘버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왜냐면 스킴블샹크스 역의 스티븐 맥레이의 엄청난 탭 댄스가 함께 하기 때문이다(웃음).

<캣츠> 맥캐버티

최근 10년간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일정한 반복이 있는 사이클처럼 느껴진다. <킹스 스피치>나 <대니쉬 걸>과 같이 한 인물의 삶에 집중해 그 인물이 변화를 겪는 과정을 그린 실화 바탕의 드라마와, <레미제라블>, <캣츠>처럼 웅장한 면이 있는 뮤지컬 영화를 반복하는 사이클 말이다. 어느 장르가 더 스스로 흥미롭게 느껴지는지, 따로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도 있는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는가.

질문에서 말한 ‘사이클’이 굉장히 흥미롭다. 하지만 장르를 떠나 난 내 모든 필름들이 ‘용서’라는 키워드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레미제라블>은 성직자가 장발장을 용서하고 장발장은 이를 통해 변화한다. <대니쉬 걸>에서는 릴리의 와이프가 릴리를 진심으로 서포트하기 위해선 릴리의 결심을 먼저 용서해야 하고. <킹스 스피치>에서 주인공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용서해야 한다. <캣츠>에서는 고양이 무리가 그리자벨라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선 먼저 용서를 해야 한다. 나는 그런 서사에 흥미뿐만 아니라 일종의 친밀감도 갖고 있다. 다음 작업에서도 이러한 부분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해보지 않은 장르에 있어서는 과학 공상, SF 장르에 관심이 있다. <캣츠>도 일종의 예시라고도 볼 수 있다. <캣츠> 속 세계는 지어진 것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 않나. 많은 필름들이 그렇듯 영화는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부터 발명하는 것과 같다. 이건 꽤 흥미로운 일이고, 상상적으로 탐험하는 것과 같다. 균열로부터 세상을 창조하는 재미가 있기도 하고. 그래서 언젠간 SF 장르를 해보고 싶은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차기작은 아직 정해진 바가 없지만 다음 영화는 좀 더 쉬운 걸 하지 않을까 싶다. <캣츠>가 정말, 정말 도전이었던 영화이지 않았나(웃음). 댄스 그리고 복잡한 비주얼 효과까지 함께 해야 했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정말 재밌는 도전이었다.

<캣츠> 톰 후퍼 감독


씨네플레이 문선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