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중이 공기’라는 말이 있다. 존재감이 너무 없어서 공기처럼 의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캐릭터들은 비중에 비해 상대적으로 하는 일이 없어서, 역으로 존재감을 남겼다. 노쓸모라서 의외의 존재감을 남긴 캐릭터들을 살펴본다.


<콩: 스컬 아일랜드>

경첨

얼굴은 알지만 누굴 연기했는지 알 수 없는 배우. 항간에는 “이 배우 나오면 거른다”라는 말까지 드는 배우.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중국 배우 경첨이다. <그레이트 월>, <콩: 스컬 아일랜드>, <퍼시픽 림: 업라이징>에 나왔는데 그나마 작품이 괜찮은 <콩: 스컬 아일랜드>에서 더 많이 까인다. 톰 히들스턴, 브리 라슨, 코리 호킨스처럼 이미 실력을 입증했거나 유망주로 평가받는 배우들과 함께 4인방으로 출연한 것이 무리수였고 극 중에서도 ‘그냥 아시아인 하나 억지로 넣었네’ 싶을 만큼 비중이 없었던 것. 이 작품에서 안 좋은 의미로 눈도장을 찍었고, 차기작 <퍼시픽 림: 업라이징>의 혹평이 이어져 현재 다시 중국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이런 라인업에 낀 것부터 독이 된 셈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

자자 빙크스

스타워즈 팬덤의 증오를 한몸에 받는 ‘그 녀석’

이런 분류에서 탑 오브 더 탑, <스타워즈> 프리퀄 시리즈의 자자 빙크스다. 1987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 이후 12년 만에 돌아온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은 팬들의 환호성을 받았다. 하지만 제아무리 스타워즈의 광팬이라도, 광팬이라면 더 자자 빙크스를 용서할 수 없었다. 건간족의 자자 빙크스는 시종일관 쓸데없는 몸 개그와 멍청한 성격 때문에 영화 내내 민폐를 끼쳤고, 훌륭하긴 했지만 여전히 어색한 CG는 자자 빙크스를 더욱 밉상으로 만들었다. 오죽하면 미국의 한 매체는 자자 빙크스를 ‘스타워즈 최고의 악당 15인’으로 선정했을까. 몇몇 팬들은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를 창조했다는 자만심의 결정체가 이 캐릭터라고 발언하기도.

자자 빙크스를 연기한 아흐메트 베스트(왼쪽)은 팬덤의 살해 협박마저 받아 자살 시도까지 했었다고.


<트로이>

파리스

영화에서만큼은 걸어다니는 재앙 수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 중 트로이 전쟁 부분을 옮긴 <트로이>. 신화 속 쟁쟁한 인물들 사이에서 희생된 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올랜도 블룸)다. 반신 같은 존재인 아킬레우스와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에 비해 파리스는 헬레네(다이앤 크루거)와 사랑에 빠져 전쟁만 일으킬 뿐,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않는다. <일리아스>에서 전후 사정을 숙지한다면 몰라도, <트로이>의 상황에서 보면 사랑꾼 노릇하다 패가망신시킨 꼴이니 욕먹어도 할 말 없는 입장. 거기다 파리스를 연기한 올랜도 블룸도 카리스마 넘치는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연기력이나 캐릭터 해석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트로이>의 파리스는 비중이나 영향력에 비하면 존재감은 참담한 수준이다.

이 라인업에서 더 활약하는 것도 힘들긴 하겠다


<엑스맨>

스톰·립타이드

영화가 개봉해도 스톰은 할리 베리의 스타일 변화로 거론될 뿐…

아니, 구 <엑스맨> 시리즈의 개근 히어로 스톰이 무쓸모라고? 곰곰이 생각해보자. 스톰이 시리즈 전체, 혹은 단 한 편이라도 영향을 준 적이 있는가? 할리 베리라는 배우를 데려와 근사한 스톰을 보여준 건 인정이지만, 스톰이란 캐릭터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에 비하면 비주얼 말곤 딱히 보여준 것도 없고 사건의 중심에 선 적도 없다. 무척 잔인하지만, 로건/울버린, 매그니토, 프로페서 X, 진 그레이에 비하면 그는 사이클롭스 못지않게 애매한 비중을 가지고 있다. 스톰 팬들도 영화의 특정 캐릭터 사랑에 반감을 표하는 이들에 포함될 것이다.

스톰과 함께 비중 대비 무쓸모로 거론되는 건 립타이드. 립타이드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세바스찬 쇼의 심복으로 등장한다. 손에서 폭풍을 일으켜 CIA를 막고, 자비에 영재 학교에 쳐들어가는 등 강력한 힘으로 큰일을 저지를 것 같은 포스를 뿜어낸다. 하지만 쿠바 사건에서 잠수함 벽면에 깔려 기절하면서 진짜 중요한 싸움에선 아무것도 못 한다. 속편에라도 나올 듯 암시했지만, 속편이 하필 엑스맨 유니버스를 총망라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여서 등장조차 하지 않아 그의 강력한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발 빠른 퇴장에 많은 팬들이 아쉬워했다고.


<인디아나 존스>

윌리 스콧

연기가 찰지다고 꼭 좋은 건 아니다. <인디아나 존스>의 케이트 캡쇼는 엘헬미나 윌리 스콧 역을 너무 찰지게 연기해서 현재도 ‘쓸데없이 존재감 넘치는 캐릭터’로 기억되고 있다. 윌리 스콧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에 휘말리는 가수 캐릭터. 목숨을 건 여정에 얼떨결에 끼어들었으니 시종일관 비명을 지르고, 호들갑을 떤다. 덕분에 나름대로 활약했단 사실도 잊힌 비운의 캐릭터. 이 영화에서 비슷한 조력자 캐릭터 쇼트(키 호이 콴)가 어린 나이에 비해 영특했던 것과 대비돼 철부지 이미지를 유독 강하고, 케이트 캡쇼가 비명을 너무 잘 질러서 역으로 짜증 유발하는 것도 있고.


<호빗> 삼부작

알프리드·타우리엘

<반지의 제왕> 삼부작의 피터 잭슨 감독이 <호빗> 시리즈로 다시 중간계에 복귀했다. 결과는 아주 나쁘지 않았다. 몇몇 오리지널 요소들을 제외하면. <반지의 제왕>이 방대한 원작의 이야기를 깔끔하게 정리했다면, <호빗>은 동화적인 스토리를 판타지 대작으로 만들기 위해 오리지널 인물까지 추가했다. 그리고 이 인물들은 지금도 <호빗>의 제1단점으로 지목받고 있는 처지가 됐다.

유명한 건 엘프 타우리엘. <호빗>은 타우리엘이란 오리지널 인물을 등장시켜 전작의 레골라스를 자연스럽게 합류시켰고, <반지의 제왕>의 아라곤-아르웬의 로맨스 라인처럼 킬리와의 로맨스 라인도 추가했다. 사실 타우리엘은 하는 일이 없어서 욕먹는다기보다 오리지널 캐릭터면서 저지르는 일이 너무 많아서 팬들이 뒷목 잡은 경우. <반지의 제왕>의 로맨스도 길다고 지적하는 관객들이 있었는데, 오리지널 캐릭터로 굳이 로맨스를 형성한 것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등장부터 강한 전사의 이미지를 풍긴 타우리엘이 로맨스로 소비된다는 반응도 있었다.

반면 알프리드는 오리지널 캐릭터인데 너무 하찮아서 기억되는 캐릭터. 타우리엘처럼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부터 등장한 오리지널 캐릭터다. 비범한 인물들 사이에서 처세술 하나로 살아남는 소박한(?) 악당 캐릭터를 노렸는데, 전체적으로 코믹한 톤의 캐릭터라 점점 무거워지는 극중 분위기와 상이하단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영화 속에서 제대로 된 마무리 없이 퇴장한 것이 그의 하찮음을 더 부각시켰다. 나중에 공개된 확장판에서 충격적인 마무리를 만날 수 있긴 하나, 그래도 평가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펄프 픽션>

파비엔느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펄프 픽션>. 여기에 쓸모없는 캐릭터가? 싶겠지만 부치의 여자친구 파비엔느가 그런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캐릭터의 역할은 부치의 여자친구, 딱 그 정도다. 그나마 전개에 영향을 준 건 부치가 반드시, 꼭 챙기라고 한 시계를 놓고 왔다는 것. 좋게 말하면 파비엔느 덕분에 <펄프 픽션>이 더 괴상한 영화가 됐지만, 캐릭터 존재 자체가 부치에게 책임감을 부여하는 정도로 그치는 건 무척 아쉬운 일이다. 동그란 눈으로 파비엔느의 낙관적인 분위기를 내뿜는 마리아 드 메데이로스의 연기를 보면 캐릭터의 한계가 더욱 아쉬울 수밖에.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