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초, 당시 흥행판은 한여름시장을 휩쓸었던 <엽기적인 그녀>, <쥬라기 공원 3>, <에이 아이> 등의 간판이 내려지고 새롭게 흥행이 기대되는 영화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이미 시사회를 통해 흥행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진 정우성 주연의 <무사>(2001. 9. 6. 개봉)와 이보다 한주 먼저 개봉되어 흥행을 이어오고 있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가장 유력한 상태, 9월 흥행은 이들에게 맡겨도 될 듯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미국발 초대형 사건 한방으로 바로 꺾이고 맙니다. 예상치 않던 911테러가 발생하면서 국내 흥행판이 완전히 초토화되고 맙니다. 이런 중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는 9월말 <봄날은 간다>, <조폭 마누라>등의 추석영화들이 대기 중에 있었으니 그들이 그대로 출격을 합니다. 그들로 인해 시장은 빠르게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두려움에 떨다 제날짜에 개봉도 못 하고 연기했더라면 끔찍한 가정이지만 시장 회복은 마냥 더디었을 것입니다. 추석 이후 시장은 가을 비수기 시장이다 보니 그 여파는 겨울까지 이어졌을지도 모릅니다.

2015년 5월 20일 메르스 첫 국내 확진자가 발생합니다. 유치원이며 초등학교, 중고등학교가 휴교를 결정하는 긴박한 상황, 공포가 더욱 확산된 6월 초(23주차)에는 주말관객수가 전 주 대비 20%까지 하락하고 새로 개봉된 <샌 안드레아스>와 <은밀한 유혹>이 직격탄을 맞아 최종관객수가 각각 172만, 15만에 그치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이 사태도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다음 주 <쥬라기 월드>가 그대로 출격하면서 첫 주말관객수 153만에 최종 555만으로 바로 회복세로 접어들게 해줍니다. 만약에 <쥬라기 월드>가 개봉을 연기했더라면, 이어서 개봉된 <극비수사>가 286만 명을, <연평해전>이 600만 명을 넘길 수 있었을까? 거기에 6월은 여름 시장으로 넘어가는 초입이다 보니 여기가 무너졌다면 국내 최고의 시장인 여름시장도 위험했을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를 보겠습니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오고 설 연휴가 지나면서 중국 우한 소식이 들려오면서 본격적으로 불안이 확산됩니다. 다행스럽게도 설 연휴 흥행에는 지장을 주지 않았으나 연휴가 끝나자마자 코로나 감염 상황이 변하며 시장에 영향을 주기 시작합니다. 결국 2월 둘째 주 개봉 예정이었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사냥의 시간>, <결백> 등이 서둘러 개봉 연기를 결정하는 사태가 발생하는데, 이때만 해도 이들은 일단 소나기만 피해보자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2월 18일 코로나19 31번째 환자가 발생하면서 회복 국면에 있던 시장마저 급하락으로 돌변하더니 난생처음 보는 수치인 일일관객수 15,000명대까지 떨어지고 맙니다. 4월 일일관객수(평일) 평균이 20만 명대이니 확연하게 바닥이 아니라 그 바닥마저 뚫고 지하까지 내려갔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달 정도 연기할 예정이던 영화들도 무기한 연기로 바뀌면서 3, 4월 거의 대부분의 영화들이 연기를 결정합니다.

앞서 911테러와 메르스 경우처럼 시장이 침체되더라고 새로 개봉되는 영화들이 시장에서 버텨주면 살아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텐데 코로나19의 감염 확산이 세계적으로 지속되는 지금은 개봉조차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안타깝게도 영화 시장이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코로나 19의 빠른 종식 뿐입니다.


글 |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 《영화 배급과 흥행》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