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해외 드라마 시장에선 미니시리즈가 전성기를 맞고 있다. IMDB 드라마 시리즈 최고 평점을 얻은 <체르노빌>, 넷플릭스 화제작 <그리고 베를린에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부터 시즌별 독립된 이야기를 풀어가는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등 여러 작품이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전에도 미니시리즈는 꾸준히 제작되었고, <뿌리>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 <더 퍼시픽> 등이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고전 드라마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요즘 공개된 작품은 화제성과 작품성 모두에서 장편드라마 시리즈를 압도한다.
영화만큼 매력적인 프로젝트
미니시리즈는 2013~14년, A급 배우들이 흥행 보장이 어려운 영화 대신 선택하며 부상했다. TV 드라마 시리즈의 퀄리티가 영화에 버금갈 만큼 성장하면서 “한물 간 스타들의 도피처” 이상의 대안이 된 것이다. 2014년 제작된 HBO <트루 디텍티브> 시즌 1은 매튜 맥커너히와 우디 해럴슨이 출연해 매 화마다 화제를 일으켰다. 독립된 이야기로 진행된 시즌 2는 콜린 파렐과 레이첼 맥아담스, 시즌 3은 마허샬라 알리가 주연을 맡았다.
이젠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미니시리즈에 나오는 게 어색하지 않다. 에이미 아담스가 <몸을 긋는 소녀>로 TV 시리즈 첫 주연을 맡았고, 샘 록웰과 미셸 윌리엄스는 브로드웨이의 전설들의 삶을 다룬 <포시/버든>에 출연해 호평을 받았다. 옥타비아 스펜서의 <셀프 메이드: 마담 C. J. 워커>, 레지나 킹의 <7초>도 시청자와 평단 모두에서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스트리밍 시대가 연 미니시리즈 전성기
미니시리즈가 스타의 명성에 기대지 않고 작품만으로 화제가 된 건 스트리밍 서비스가 전 세계적인 플랫폼으로 발돋움한 시기와 비슷하다. 짧게는 3부, 길게는 12부까지 제작되지만 한 시즌으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모두 볼 수 있는 미니시리즈는 ‘몰아보기’ 시청 스타일에 가장 알맞은 작품이다. 넷플릭스, 아마존, 훌루가 미니시리즈 제작/배급에 뛰어들며 시장 자체가 커지고 히트작도 많이 나왔다.
영국 TV 시청률 집계 이후 최고 기록을 세운 BBC <보디가드>는 넷플릭스에 공개돼 전 세계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가 다룬 ‘센트럴 파크 파이브’ 사건은 약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주목받았고, 드라마 시청자들은 사법 집행기관의 구조적 인종차별을 강력히 비판했다. 테리 프래쳇, 닐 게이먼의 소설 <멋진 징조들>은 아마존 미니시리즈로 제작됐는데, 게이먼이 직접 각본을 써 원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며 시청자를 만족시켰다.
창작자에게 사랑받는 매력적인 포맷
어떤 이야기를 얼마나 길게, 깊게 이야기하는지는 창작자의 손에 달려 있다. 미니시리즈는 최근 창작자들에게 2시간 내외의 영화와 몇 년을 거듭하는 장편 드라마 사이에서 경쟁력 있는 포맷으로 평가받는다. <체르노빌>의 전개 속도와 리듬감, 이야기의 깊이는 5부작 미니시리즈라는 포맷 덕분에 더 돋보였다.
책이 원작인 경우 영화보단 미니시리즈 포맷이 소설의 이야기와 감성을 온전히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다. 최근엔 논픽션이 원작인 넷플릭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장편 소설을 영상화한 훌루 <노멀 피플>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미니시리즈의 호황 덕분에 요즘 영미권 출판사의 장편 소설은 발간 전부터 TV 판권을 확보하려는 스튜디오와 제작사의 경쟁이 치열하다.
연장은 위험해 – 미니시리즈의 마법이 깨지는 순간
완성도 높은 완결된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해도, 인기를 경험하게 되면 미니시리즈 창작자와 제작사는 연장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욕심을 부리는 그 순간 미니시리즈가 품은 마법은 깨진다. 니콜 키드먼, 리스 위더스푼이 뭉친 <빅 리틀 라이즈>는 시즌 1의 폭발적 인기 덕분에 시즌 2가 제작됐지만, 메릴 스트립이 참여했음에도 기대만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야기를 연장한 것이 결국 독이 된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FX가 시도한 앤솔로지 시리즈를 주목할 만하다. 시작은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다. 매 시즌 독립된 이야기를 다루되 동일한 테마를 다룸으로써 이야기의 완결성을 담보하고 시리즈의 브랜드 가치를 올렸다. 실화 범죄를 테마로 한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코엔 형제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파고>도 매 시즌마다 주제와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를 선보이며 인기를 얻었다. 또는 USA 네트워크 <죄인>과 TNT <에일리어니스트>처럼 주연인 수사관이 매 시즌 다른 사건을 수사하는 방식으로 독립된 이야기를 다룬다.
에그테일 에디터 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