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록 밴드 YB의 리더인 윤도현이 나고 자란 곳이다. 그는 그곳에서 세탁소집 아들로 불렸다고 한다. 영화 [정글스토리]의 주인공인 도현. 극중에서 그의 고향 역시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이다. [정글스토리]는 이처럼 실제와 가상이 뒤섞여 있다. 문산에서 성장하며 로커의 꿈을 키우는 도현은 윤도현의 실제와 닮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또 가상이다.
[정글스토리]는 도현이라는 로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음악영화다. [장미빛 인생]을 연출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던 김홍준 감독과 음악평론가인 강헌이 함께 시나리오를 쓴 이 영화는 1990년대까지 남아있던 일종의 낭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음악의 꿈을 위해 상경해 낙원상가 악기점에서 일하고 있는 도현. 악기점 동료의 제안으로 함께 밴드를 하고 거기에서 눈에 띄어 솔로 앨범을 내지만 그마저 뜻대로 되지 않고 다시 문산에 돌아가 새롭게 밴드를 결성하며 음악의 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다.
결코 만듦새가 훌륭한 영화는 아니다. 전문 배우를 쓰지 않아 연기는 어색하고, 로커와 록 음악을 생각할 때 흔하게 떠오르는 클리셰 덩어리들이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먹는 건 라면뿐이고 비닐하우스에서 숙식하며 멤버끼리 갈등을 빚는 건 흔하지만 그만큼 진부한 설정이기도 하다. 록 클럽이 문을 닫는다고 할 때의 관객들 반응이나 영화의 마지막 거리공연 모습은 다소 민망하기도 하다. 연출을 한 이도 시나리오를 쓴 이도 모두 관습적으로 '록 스피릿'이라거나 '헝그리 정신'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영화가 개봉했던 1996년 당시도 이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지금은 그런 부분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영화는 약 6.600여명의 관객을 모으고 금방 간판을 내렸다.
물론 음악에 관심이 많다면 흥미를 갖고 지켜볼 장면들도 있다. 영화의 핵심 연기자들은 대부분 직접 음악을 하는 음악가들이다. 주요 배역을 맡은 윤도현과 김창완을 비롯해 윤도현밴드(YB)의 멤버였던 유병열, 박태희, 김진원 등이 같은 밴드 멤버로 윤도현밴드의 곡을 연주하고 연기도 한다. 넥스트와 시나위, 멍키헤드의 공연을 볼 수도 있고, 클럽 록월드의 당시 모습을 확인할 수도 있다. 기타리스트 김광석이 등장해 "편곡비나 제때제때 줘"라는 명대사를 남기기도 한다. 헤비메탈의 시대에서 얼터너티브의 시대로 넘어가는 당시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또 하나, [정글스토리]가 남긴 건 영화의 사운드트랙이다. 당시 넥스트의 리더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신해철은 [정글스토리] 사운드트랙을 통해 솔로로서 더 자유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 6천 명의 관객이 들었지만 사운드트랙 앨범은 50만 장 이상이 팔렸다. 그만큼 앨범을 훌륭했고, 신해철의 위상은 높았다. 더 이상 아무도 영화 [정글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정글스토리]의 영화음악은 여전히 자주 들리고 있다.
그 선봉에는 신해철의 음악역사를 통틀어서도 남을 만한 발라드 '절망에 관하여'가 있다. 그 모든 처절함을 더한 듯한 이 노래는 여전히 신해철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대표적인 리퀘스트가 되었다. 반대편에는 더 이상 발랄(하며 시니컬)할 수 없을 것 같은 댄스 팝 '아주 가끔은'이 있다. 산울림의 곡을 더 잔뜩 일그러뜨려 커버한 인더스트리얼 록 스타일의 '내 마음(내 마음은 황무지)'과 '아주 가끔은' 사이의 간극은 신해철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김동률의 현악 편곡과 김세황의 기타 연주를 빌려 완성한 장엄한 연주곡 'Main Theme', 1970년대에 대한 향수를 슬프게도 낭만적이게도 그린 '70년대에 바침' 등 신해철이 하고 싶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이 모나지 않게 한 장의 앨범 안에 담겨 있다.
[정글스토리]의 사운드트랙이기도 하지만, 신해철의 솔로 앨범이기도 하다. 영화 사운드트랙임에도 재킷에는 신해철의 모습이 전면에 등장한다. 신해철은 늘 영화음악 작업을 하면서 영화의 완성도를 뛰어넘는 결과물을 만들어왔다. [비오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가 그랬고 [영혼기병 라젠카]가 그랬다. [정글스토리] 역시 그 명단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앨범이다. 창작열이 가장 왕성할 때의 신해철의 모습이 담겨 있다. 사람은 가도 음악은 남았고, 영화는 가도 역시 음악은 남았다.
김학선 /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