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안다. 도망치지 않을 거라면, 끝내 내가 선택한 사랑이 가치가 있을 것이라 믿는 수밖에 없다는 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무엇인가 깊게 사랑해 본 사람들은 안다. 내가 온 마음을 다 바쳐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늘 보답 받는 건 아니라는 걸. 나는 그걸 영화학과 입시에 네 번째 떨어졌던 해에 뼈 저리게 깨달았다. 내가 온 마음을 다 해서 영화를 사랑한다고 해서 영화가 내게 와주는 건 아니었구나. 그 해, 완전히 영화감독의 꿈을 접기로 마음먹은 나는 하던 일을 작파하고 다니던 학교도 휴학한 채 방 안에 틀어박혀 우두커니 앉아 TV만 보다가 가끔 울었다. 울다가, 눈물을 닦고 다시 TV를 보며 웃다가, 다시 울기를 반복했다. 슬픈 장면이 나와서 운 건 아니었다. 그냥 뭔가 영상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의 성취가 눈부셔서, 제 사랑에 보답 받은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부러워서 울었다. 어떤 사랑은 좀처럼 보답을 허락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지금이라고 뭐가 다를까. 나는 글 쓰는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래서 이 일을 더 잘 하고 싶다. 그러나 내 사랑의 크기에 비해 내가 쓰는 글들은 언제나 보잘 것 없고, 내놓기 부끄러운 글들을 보낸 날이면 밤잠을 설친다. 속을 모르는 이들이야 “너는 그래도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버니 다행”이라는 말을 건넨다. 나 또한 사랑하지도 않는 일을 하며 괴로워하는 친구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들 역시 너무나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랑을 영영 같은 크기로 보답 받지 못하는 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차라리, 일을 좀 덜 사랑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보답 받지 못하는 날들도 지금보단 견디기 수월했을 것을.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첫 회를 보다가 마음이 울컥 하고 넘친 순간이 있었다. 주인공 채송아(박은빈)는 남들 다 부러워하는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사람임에도, 바이올린에 대한 사랑 하나로 4수를 해가며 음대에 들어간 사람이다. 그렇게 고생해서 음대에 갔지만 자기보다 일찍 시작한 동기들을 따라잡는 일은 힘들고, 졸업 후 사랑하는 음악을 계속 해 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개교 60주년 기념 특별 연주회에 참여해 생애 처음으로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서 보나 했던 날, 송아는 지휘자로부터 “바이올린 볼륨이 너무 큰 것 같으니, 바이올린 중 맨 뒤 두 사람은 오늘 연주하지 말고 집으로 가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쉬운 마음에 “연습을 열심히 해왔다”고 말하자, 지휘자는 대놓고 면박을 준다. 너네 성적순으로 앉은 거 아니냐고, 그렇게 연주를 같이 하고 싶었으면 네가 더 잘했으면 될 거 아니냐고.

눈 앞에서 기회를 빼앗긴 서글픔을 애써 누르고 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꼬마가 다가와 송아의 바이올린 케이스를 가리키며 묻는다. “언니, 바이올린 잘 해요?” 막 방금 넌 필요 없으니 집으로 가도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질문은 너무 아프다. 말문이 막힌 송아는 잠시 복잡한 표정으로 웃으며 꼬마를 바라본다. 정말 잘 하고 싶은데,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좋아한 일인데, 바이올린은 송아에게 보답해주지 않았다. 어쩌겠는가. 이런 사랑은 언제나 짝사랑일 수밖에 없다는 걸 송아도 안다. 보답 받지 못하는 상황을 견뎌가며 계속 사랑하거나, 아니면 도망치거나 둘 중에 하나 밖에 없는 상황. 송아는 상처받으면서도 사랑하는 것을 계속 사랑하는 쪽을 택한다. “좋아해, 아주 많이.”

계속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 수밖에 없다. 방학을 맞아 대기업 문화재단의 인턴 사원으로 들어간 송아는, 자신이 담당하게 된 동갑내기 아티스트들과의 식사 자리를 갖는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이미 해외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피아니스트 준영(김민재)과, 어릴 적 ‘제2의 사라 장’이란 이야기를 들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박지현), 그리고 음대 수석 입학, 수석 졸업에 빛나는 첼리스트 현호(김성철)는 송아에겐 너무 멀리 있는 존재들이다. 그래도 음악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엔 두려움이 없었던 송아는 이 자리가 그리 싫지 않다.

“슈만이 죽고 클라라가 혼자 애들을 키웠잖아. 근데 막내아들이 많이 아프다가 결국 죽었거든. 그 소식을 듣고 브람스는 클라라한테 짧은 멜로디를 써서 편지를 보냈어. 그게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의 2악장이야.”

“브람스 식의 위로고 위안이었구나. 말보다는 음악으로. 근데 직접 찾아가서 위로해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음악이 진짜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현호 말대로, 진짜 슬프고 힘들 땐 말 한 마디가 더 큰 힘이 되는 거 같은데.”

현업으로 음악을 하는 이들이 음악의 힘에 대해 의문을 던질 때, 송아는 조심스레 끼어들어 말한다.

“그래도,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 음악이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왜냐하면… 우린 음악을 하기로 선택했으니까요.”

비록 음악이 지금껏 자신을 상처 입히고 배반해 왔지만, 그래도 내가 선택한 사랑이니까 믿어야 하지 않냐고. 이게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어 상처들을 보듬어 줄 수 있을 거라고.

나도 잘 모르겠다. 과연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을 한 뼘이나마 바꿀 수 있을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매 마감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나 끄다가 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잠을 설치는 날들이 길다. 그래도 안다. 도망치지 않을 거라면, 끝내 내가 선택한 사랑이 가치가 있을 것이라 믿는 수밖에 없다는 걸. 그런데 이게 어디 글과 음악만 그러랴. 지금 흔들리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사랑의 대상이 무엇이든 그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그저, 이게 헛되지 않을 것이라 믿고, 보답 받지 못한 마음을 안고 묵묵히 걸어가보는 수밖에.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