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비>는 12월 10일(목) 올레TV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극장에 걸리진 않았지만 이대로 놓치기 아쉬운 영화들을 한 주에 한 편씩 소개합니다.


<보이스 비> 노영학, 김희찬

각자의 방식으로 우정을 지켜내는 두 소년의 성장기

닮아있는 점이라곤 나이밖에 없을 만큼 승인(김희찬)과 현태(노영학)는 다른 성질의 사람이다. 승인은 싸움을 좋아한다. 아니 잘한다.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이들에겐 무자비하게 주먹을 가한다. 허나 실상은 외로움 가득한 인간이다. 반면 현태는 싸움을 못 한다. 아니 싫어한다. 억울하게 맞는 일이 있더라도 폭력으로 응수하지 않는 평화주의자, 비교적 어른스럽고 곧은 학생이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상극의 성질을 가진 두 소년은 놀랍게도 서로의 냉장고 사정까지 알고 있는 오랜 단짝 친구다. 이 둘은 서로에게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다. 미주알고주알 서로의 행선지까지 보고하는 그런 사이. 그러던 어느 날 승인이 척 지고 있던 다른 학교 패거리와 그들이 데려온 싸움 고수가 승인에게 야만적인 린치를 가한다. 우연히 그 현장을 목격한 현태는 온몸이 굳어 벌벌 떨며 승인이 맞고 있는 장면을 그저 지켜본다. 그날 친구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트라우마에 빠진 현태는 달라지기 위해, 보여주기 위해 주먹질을 배우기 시작하며 영화는 급물살을 탄다.


묵직한 타격감과 속도감이 혼합된 살아있는 액션 연출

<보이스 비>가 전해주는 오락적 쾌감은 단연 액션으로부터 기인한다. '본격 스쿨 라이브 액션'이라는 영화의 제 소개답게 러닝타임 내내 '살아있는' 액션신이 풍성하게 펼쳐진다. <보이스 비>는 액션이란 말보단 싸움이란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영화다. 그만큼 모든 액션신에 현실감이 깃들어 있어 마치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싸움 현장을 지켜보는 듯한 저릿함을 선사한다. 주먹질의 '주'자도 몰랐던 현태가 재야의 싸움꾼으로부터 막싸움을 익히는 과정은 물론, 승인과 희식의 사탕 구타신, 싸움 고수가 승인과 현태를 묵사발로 만드는 장면 등 모든 액션 시퀀스마다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타격감이 강렬하다.

이는 촘촘하게 계산된 콘티의 결과물이다. 신(Scene)과 신(Scene)을 어떻게 찍어서 어떻게 붙여낼지를 미리 정교하게 그린 지점들이 눈에 띈다. 이를테면 7분 이상 펼쳐지는 영화의 마지막 액션신이 이 영화의 압권인데, 카메라는 승인과 현태가 흘리는 땀방울은 물론, 얼굴을 적시는 핏자국과 꺾이는 관절까지 클로즈업을 통해 담아내 액션의 리얼함을 배가했다. <보이스 비>의 연출은 단편 액션 영화 <우기>로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윤민식 감독이 맡았다. <보이스 비>를 통해 전작 <우기>의 세계관을 규모적으로나, 서사적으로나 확대하고 싶었던 감독의 욕망이 고스란히 담겼다. 조금은 투박했던 전작의 만듦새를 뛰어넘어 윤민식 감독은 매 장면 연출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였고, '하이틴 액션'이라는 제 장기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때 그 시절 우정의 의미

<보이스 비>는 특별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영화다. 영화 속 승인과 현태가 그랬던 것처럼 <보이스 비>는 어딘지 모르게 투박하고, 서툴고, 날 것의 향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치 오랜만에 꺼내먹는 불량식품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이런 지점은 영화가 그리고 있는 두 소년의 치기 어린 성장 내러티브로부터 기인한다. 누구에게나 학창 시절은 있었다. 그 시절 우리에게 친구, 그리고 우정의 의미는 지금과는 달랐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지켜내야만 했던 친구와의 관계는 그 시절 전부와도 같았으니까. 그때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승인과 현태의 '우정 지켜내기'가 허세라기보단 공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즉 <보이스 비>는 무작정 액션을 펼쳐내기보단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얹어 이들이 왜 싸움을 하게 됐는지, 왜 이렇게까지 우정을 지키고 싶었는지를 마땅하게 설득시킨다.

평화주의자였던 현태가 승인을 위해 싸움장에 들어서고, 이 악물고 싸움을 배우는 모습은 물론 변심한 듯한 현태의 행동을 불안해하는 승인의 모습 등을 통해 그 시절 우정의 의미가 얼마나 남다른지를 세세하게 그려내 이야기의 몰입감을 높인다. 이런 지점에서 우리는 익숙한 영화 두 편을 소환해 볼 수도 있겠다. '남고'를 나왔다면 누구나 공감할 우정의 세계를 그린 <파수꾼>, 남자 어른이 되고 싶었던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바람>. 두 영화가 떠오를 만큼 <보이스 비>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그때 그 시절' 우정과 성장의 서사를 드라마틱하게 다룬다. 알량한 권력 관계,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의리와 우정, 성장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학원 액션물의 팬이라면 <보이스 비>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거다.


배우 김희찬

류준열, 지수, 수호와 함께 출연한 영화 <글로리데이> 속 김희찬

배우 노영학

출처 / MBC

포스트 이제훈, 박정민? 노영학, 김희찬 배우의 재발견

청춘 독립 영화에서 관객들은 새로운 얼굴의 발견을 기대한다. <파수꾼>의 이제훈과 박정민이 그랬던 것처럼, 신선한 배우들의 면면을 만나볼 수 있다는 기대감은 독립 영화를 택하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보이스 비>는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다. 제야의 싸움꾼을 연기한 배우 이두석과 승인과 현태의 라이벌을 연기한 배우 강혁일의 연기도 눈에 띄게 좋았지만, 단연 <보이스 비>는 승인과 현태의 영화다.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싸움 본능을 일깨워가는 현태는 배우 노영학이 연기했다. 노영학은 '아역계의 최수종'이라고 불렸을 만큼 다수의 사극 작품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 탄탄한 경력답게 노영학은 영화 속에서 승인이 마주하는 방황, 두려움의 얼굴은 물론, 극 후반부엔 쌓아온 모든 분노를 터뜨리는 액션 연기를 훌륭하게 선보였다. 노영학은 한 인터뷰에서 <보이스 비>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되게 고민"을 많이 했던 작품이라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보이스 비>를 택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노영학의 스크린 첫 주연작이라는 <보이스 비>는 배우 노영학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현태와는 정반대로 매사 주먹이 앞서는 승인은 배우 김희찬이 연기했다. 영화 <글로리데이> 속 섬세하고 입체적인 연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김희찬 역시 흐트러짐 없이 승인을 연기해내며 극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다소 거칠고 비호감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던 승인이라는 캐릭터에 고독함의 분위기를 얹어낸 김희찬은 극이 진행될수록 승인이란 캐릭터에 애틋한 동정심이 들게 할 만큼 다면적인 얼굴을 선보였다. 신선한 배우들의 호연과 몸을 아끼지 않는 액션 열연으로 호평을 받은 <보이스 비>는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어 제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씨네플레이 인턴기자 유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