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하반기, 많은 영화인이 대중과 사랑을 나눈 작품들을 남겨놓은 채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생전 커리어를 돌아보며 추모한다.


엔니오 모리코네

Ennio Morricone

19281110

20200706

엔니오 모리코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음악가라는 거창한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 아티스트. 26세가 되던 1954년부터 익명이나 가명을 써서 영화 작업을 하던 엔니오 모리코네는 1961년 <파시스트>로 영화음악가로서 정식 데뷔했다. 이탈리아 자국의 코미디 영화들에 이름을 올리던 가운데, 세르지오 레오네의 두 번째 영화 <황야의 무법자>(1964)를 시작으로 그가 연출한 일련의 스파게티 웨스턴의 음악을 전담했다. 훗날 유작까지 함께 한 레오네와의 작업 덕분에 모리코네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활동 반경으로 할리우드와 유럽까지 확장했고, 자국에서는 특히 공포/정치 드라마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400편이 넘는 방대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했다. 한국에서는 유독 <미션>(1986), <시네마 천국>(1988)의 서정적인 선율로만 잘 알려져 있는데, 해외에서는 수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덜 알려진 작품을 발굴해 변화무쌍한 모리코네의 스펙트럼을 만방에 알렸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킬 빌 2>(2004)부터 모리코네가 과거 발표한 스코어들을 꾸준히 인용했고, 결국 모리코네는 <헤이트풀 8>(2015)의 음악감독으로 활약해 생애 처음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시네마 천국>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2016년 작 <시크릿 레터>가 모리코네의 마지막 영화음악을 담고 있다.

<시네마 천국>


나야 리베라

Naya Rivera

19870112

20200708

<글리>

나야 리베라는 아역배우/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불과 4살에 TV 드라마 <로얄 패밀리>에서 가족 중 막내딸로 출연해 남다른 재능을 선보였다. 스타덤에 오른 건 2009년 처음 방영을 시작한 하이스쿨 뮤지컬 드라마 <글리>의 산타나 로페즈 역을 맡으면서부터. 첫 시즌에선 조연급의 못된 치어리더였지만, 이후 레즈비언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면서 드라마 속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 LGBTQ 커뮤니티의 아이콘이 됐다. <글리>의 인기에 힘입어 싱글 'Sorry'를 발표하기도 했다. <더 데블스 도어>(2014)로 스크린 신고식을 치렀지만 영화계에선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근래엔 춤추는 청춘들을 그린 유튜브 오리지널 시리즈 <스텝 업: 하이 워터>에서 학교 교장 역을 맡아 녹슬지 않는 춤 실력을 선보였다.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스텝 업: 하이 워터>


앨런 파커

Alan Parker

19440214

20200731

앨런 파커

TV광고계에서 카피라이터/감독으로 커리어를 쌓은 앨런 파커는 첫 번째 극장용 영화 <벅시 말론>(1976)을 연출하면서 영화감독으로서 출사표를 던졌다. <벅시 말론>은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호평받았고, 할리우드로 건너가 터키에서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던 미국국인 빌 헤이즈의 에세이를 바탕으로 한 <미드나잇 익스프레스>(1978)를 만들어 오스카 작품상/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첫 영화로 뮤지컬 <벅시 말론>을 연출한 파커는 <페임>(1980)과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1982), <에비타>(1996) 등 음악이 중추가 되는 작품들을 내놓았다. 핑크 플로이드와 마돈나라는 거대한 아티스트가 그와 협업한 데엔 다 이유가 있었을 터. 뿐만 아니라 30년이 채 안 되는 활동기 동안 실화(<미시시피 버닝>), 가족 드라마(<결혼의 위기>), 호러(<엔젤 하트>)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창작력을 발휘해왔다. 결국 유작이 되어버린 <데이비드 게일>(2003) 이후 오랫동안 메가폰을 잡지 못하고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채드윅 보스만

Chadwick Boseman

19761129

20200828

<블랙 팬서>

채드윅 보스만은 무대에서 시작했다. 흑인 명문학교인 하워드 대학교에서 연출을 공부한 그는 연극계에서 연기와 연출을 병행하면서 실력을 쌓았다. 초창기엔 몸을 많이 쓰는 스포츠/액션 영화에 출연한 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연기한 <42>(2013)와 불세출의 소울 가수 제임스 브라운을 연기한 <제임스 브라운>(2014)으로 제대로 얼굴을 알렸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블랙 팬서/트찰라'에 캐스팅되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에 출연해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를 능가하는 존재감을 뽐내면서 MCU 최초 흑인 솔로 히어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확 높였다. 그리고 전세계 인류가 보스만을 보며 기꺼이 "와칸다 포에버"를 외쳤다. 보스만이 우리 곁을 떠난 후, 그가 이미 <시빌 워>가 개봉된 2016년에 결장암 3기를 진단받고 이를 숨긴 채 활동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사이 보스만은 블랙 팬서는 물론, 흑인 최초 대법관 서굿 마셜(<마셜>), 뉴욕의 경찰 살해 사건을 해결하는 베테랑 경찰(<21브릿지: 테러 셧다운>), 1920년대에 활동한 트럼펫 연주자(<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역을 맡아 연기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타케우치 유코

竹内結子

19800401

20200927

<지금, 만나러 갑니다>

타케우치 유코의 첫 영화는 일본 호러의 한획을 그은 <링>(1998). 사다코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되는 토모코가 바로 타케우치 유코였다. SMAP의 두 멤버 쿠사나기 츠요시, 기무라 타쿠야와 각각 함께한 영화 <환생>(2003)과 드라마 <프라이드>(2004)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스타덤에 올랐고,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4)의 대성공에 힘입어 2000년대 초중반 일본 로맨스를 대표하는 얼굴이 됐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만나 결혼한 나카무라 시도의 외도로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지만, 골든타임에 방영된 드라마 <장미 없는 꽃집>(2008)으로 재기해 미국 드라마 <플래시포워드>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참여했다. 한국에선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유독 큰 사랑을 받아 (손예진, 소지섭 주연의 리메이크도 흥행에 성공했다)로맨스의 주인공으로 흔히 기억되지만 자국에서는 멜로는 물론 공포/스릴러, 가족 드라마 등 여러 장르에 참여해왔다. 지난여름 스스로 세상을 등져, 코미디를 표방한 시대극 <결산! 츄신구라>(2019)가 유작이 되고 말았다.

<결산! 츄신구라>


숀 코너리

Sean Connery

19300825

20201031

<007 살인번호>

영원한 제임스 본드, 숀 코너리. 초창기 범죄/액션물에 (연기 못하는) 조연으로 참여하다가 1962년 <007 살인번호>에 캐스팅돼 7번째 시리즈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1971)까지 10년간 초대 제임스 본드로 활약해 근 60년이 지난 현재까지 역대 최고의 제임스 본드 배우로 추앙받고 있다. 제임스 본드로 이미지가 굳어질 것을 염려해 자리를 내려놓고 시드니 루멧, 존 부어만, 존 휴스턴 등 거장들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스펙트럼을 넓혀나갔다.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을 잇는 스타일링을 고수해 <붉은 10월>(1990), <더 록>(1996), <엔트랩먼트>(1999) 등 마초적인 에너지가 물씬한 영화에서 중년 액션스타의 노익장을 자랑했다. 2003년 작 <젠틀맨 리그>에서 스티븐 노링턴 감독과 대립한 후 작품 활동을 멈추고 3년 뒤 은퇴를 선언해 다시 영화 현장에 돌아오지 않았다.

<젠틀맨 리그>


송재호

19390310

20201107

<영자의 전성시대>

KBS 소속 성우로 일했던 송재호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기로 마음먹고 녹음실 부스를 나서 27살이 되던 1964년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이듬해 <흑맥>(1965)을 통해 60년대 한국영화계를 호령한 명감독 이만희를 만나면서 3년 사이 6편의 작품을 함께 했다. 30대 시절 송재호의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준 건 70년대 유행한 호스티스 영화의 대표작 <영자의 전성시대>(1975)다. 베트남전에서 귀환한 목욕탕 때밀이 창수(송재호)는 우연히 알게 된 영자(염복순)를 짝사랑하면서 기구한 삶을 이어가는 영자의 곁을 맴돈다. 당시 영화 속 남성 캐릭터는 대개 야성적인 마초나 순박한 얼뜨기로 양분됐던 것과 달리, 송재호가 보여줬던 남성상은 사려 깊고 쓸쓸한 구석이 있었다. 이만희와 더불어 변장호, 김호선, 배창호 등의 감독들은 재차 송재호를 캐스팅해 제 편애를 드러냈다. 80년대 중반 이후 영화보단 드라마에서 자주 얼굴을 비췄던 송재호는 2000년대 들어 다시금 영화 작업을 활발히 했다. 짙은 부산 사투리를 내뱉으면서 오합지졸 형사들을 데리고 화성 연쇄살인을 지휘하던 수사반장을 연기한 <살인의 추억>(2003)과 기존의 것과 전혀 다른 이미지의 박정희 대통령을 선보인 <그때 그사람들>(2005)이 당대 젊은 관객들에게 또렷이 어필됐다. 청장년기보다 더 활발히, 다양하게 쌓였던 송재호의 필모그래피는 한국영화사의 귀중한 페이지로 기억될 것이다.

<살인의 추억>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