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속 세계를 강타한 사건은 전 우주적인 비극이었는데, 자그마치 인류의 반이 핑거 스냅 한 번에 흔적도 없이 먼지로 사라져 버린 '인피니티 워'의 결과였다. 타노스는 폭력적 성취를 달성하고자 물불을 가리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히어로 캐릭터들은 물론이고 민간인들도 희생당했다. 결국 핑거 스냅으로 인해 자그마치 5년이란 시간 동안 사람들은 고통받아야 했고, 작중 '블립'이라고 부르는 이 사태의 피해자들은 사라졌던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비극적인 사실은 실재하는 현실도 MCU의 가상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재해 있었건만, 이제는 전 세계 인구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누구도 이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코로나 이후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만인의 일상생활은 물론 모든 업계가 변혁을 맞아야만 했으며 1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위협은 실존한다.
히어로들의 현실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걸어왔던 히어로들이 전대미문의 사태였던 핑거 스냅 그리고 블립 사건을 되돌리기 위해 활약했던 것이 바로 <어벤져스: 엔드 게임>이었다. 히어로들은 희생을 톡톡히 치르기는 했으나 사라졌던 사람들을 되돌리는 데 성공했고 이제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는 '블립' 즉 핑거 스냅으로 인해 사라졌던 사람들이 현재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간략히 보여준다. 누가 어떻게 사라질지 예상할 수 없었고, 돌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없었으며 시간의 흐름이 변화함에 따라 그들의 생환 이후에도 문제는 여전했다. 오히려 더 많아졌을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재산 분쟁과 국가 정책 문제는 물론이고 사람들 사이의 나이 문제까지 도무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는 상황이다. 결국 핑거 스냅이 무효화되었다 한들 블립은 없던 일이 될 수 없다.
MCU의 페이즈4는 이런 상황 속에서 새로운 히어로들과 기존의 히어로들이 이 문제에 대응하는 일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타노스가 죽었지만 세계는 야욕으로 불타는 악당들로 여전히 가득 차 있고 히어로들은 인지된 문제는 물론이고 또 다른 문제에 맞서야만 한다는 뜻이다. 거기에 이전부터 있어 왔던 문제들도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더 많고, 여기에 그들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예정되어 있는 스토리라인에서는 생환한 히어로들은 물론이고 맞서 싸웠던 히어로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돌아왔지만 돌아올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진정한 추모, 그리고 핑거 스냅 이후로부터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전까지 겨우 적응했던 현실이 다시 뒤바뀐다는 변화에 대한 적응도 모든 이들의 과제다.
때문에 이 세계에는 더 강력한 힘을 지닌 히어로들이 등장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에 발맞추기 위해 수많은 사건을 거치며 더욱 단단하고 견고해진 캐릭터들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있고, 이전까지 등장한 바 없었던 '이터널'같은 새로운 종족들이 출전 준비 중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고통받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괜찮을지 모른다. 그곳에는 수많은 위협이 있는 대신, 수많은 히어로들도 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현실
현실에는 비브라늄 방패도 수트도 없다. 강력한 힘을 지닌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속 히어로들처럼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들은, 솔직히 그리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우리는 늘 가진 자들의 정의에 대해 의심해야 하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화려한 액션과 웅장한 사운드, 그들이 지닌 막중한 책임과 그에 걸맞은 눈부신 능력들, 그게 히어로 무비의 전부는 아니다. 행복을 이야기하기가 너무도 어려운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그 모든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해 줄 히어로를 원한다. 현실에서는 너무도 어려운 일들을 압도적인 지혜와 힘으로 해결하는 히어로가 영화 속에는 존재했고, 역으로 현실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해 보게 하는 어떤 위로가 이 장르에는 있었다.
물론 모든 작품이 그렇게 따뜻했던 것도 아니고, 안일한 의식으로 인해 오히려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 장르가 쌓아 온 공감대는 결국 작중의 캐릭터들과 민간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이 우리가 가진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전대미문의 팬데믹에 모두가 고통받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MCU 작중의 세계에서는 가장 큰 이슈였던 핑거 스냅은 무효화되었으나 블립 피해자와 주변 사람들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현실 역시 같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종식된다 하더라도 이미 직장을 잃은 사람들과 무너진 업계, 그리고 죽어간 사람들은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콘텐츠는 그 배경이 가상의 판타지 속 공간이건, 실재하는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어느 공간이건 간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어떤 정경을 닮아 있다. 데미갓이 망치를 휘둘러 번개를 불러오고 총알을 맞아도 끄떡없는 수트가 존재하며 인간이 동물의 형상으로 변하고 감마선에 노출되어 녹색 괴물이 되는 MCU에서조차 그렇다. 캐릭터들은 우리가 갖고 있던 고민에 신음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좌절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위해 마음 아파하기도 한다.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일상이 바뀐 만큼,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이제 평범하고도 소소한 행복은 더욱 중요해졌으며 그런 일상을 누릴 수 있었던 과거를 모두가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 이전의 과거는 어쩌면 절대 되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향후의 히어로 무비에서 이 전대미문의 전염병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룰 것 같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서까지 이 지독한 현실을 그대로 보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고. 하지만 이 시대를 겪어낸 사람들이 그려내는 그 속의 현실은 여전히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때보다도 우리에게는 히어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