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슬퍼하는 이가 슬퍼하는 동안 그 곁을 함께 해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인 순간도 있는 법이다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아끼는 사람들이 많이 아팠다. 비슷한 나이대에 비슷한 직종을 지닌 친구들이 몸이 아파서, 혹은 마음이 아파서, 또는 상황이 아파서 차례로 쓰러지고 누웠다. 대부분 자신을 쓰러뜨린 것과 맞서 치열하게 싸웠지만, 드물게는 더 오래 싸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었다. 나이 마흔도 채 되기 전에 이처럼 자주 문병을 가고 문상을 갈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억울한 마음이 들다가도 내가 당사자만큼 억울하고 분하랴 싶어서 그 마음을 꾹꾹 안으로 눌러 담았다.
억울하고 분한 것보다 더 힘든 건 적당한 위로의 방법을 찾는 거였다. 사람을 위로하는데 재주가 쥐뿔도 없는 나는 매번 적절한 말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힘내라’는 말은 속 모르는 말처럼 느껴졌다. 이미 안간힘을 쥐어 짜내고 있으니까 지금처럼 나랑 말을 섞고 있겠지. 거기에 더 힘을 내라고 말하는 건 얼마나 간편한 일인가? 그렇다고 ‘힘들지’라고 묻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내가 뭐라고 감히 상대가 겪고 있을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듯 떠들 수 있단 말인가?
힘든지 묻는 것도, 힘내라고 당부하는 것도 썩 적절치 않은 듯했던 나는, 자주 평소처럼 일상을 이야기하고, 상대의 말을 묵묵히 듣고, 그러다가 할 말이 떨어지면 우두커니 서 있다가 오곤 했다. 아프고 서러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애써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일러주는 것, 차마 무슨 말을 하는 것도 힘에 겨운 상대가 선택한 침묵을 함께 견뎌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내가 가장 힘들던 시기에 내가 받은 제일가는 위로도 그런 것이었으므로.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엔 그런 위로를 할 줄 몰랐다. 아프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내가 더 크게 화를 내고 내가 더 먼저 서러워했다. 야, 그 새끼 어디 있어? 내가 가서 요절을 내 줄게. 아이고, 어쩌면 좋니. 너 정말 어떻게 하면 좋니. 나는 주제넘게 상대의 마음보다 한발 앞서서 요동치곤 했는데, 그게 상대가 제 속도대로 아픔을 견디고 분노를 정리할 기회를 앗아가는 일이라는 걸 몰랐다. 친구들은 네가 내 몫까지 아파하고 화를 내 준 덕에 나도 위안이 많이 되었다고 말해줬지만, 지금은 안다. 친구들이 너그러운 거지, 결코 내 위로가 이타적인 건 아니었다는 것을.
MBC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에는 유달리 기억에 오래 남는 위로의 순간이 있다. 정준하가 연기한 캐릭터 이준하가 오랜만에 취업에 성공했던 날의 저녁 식탁 장면이다. 조금은 설명이 필요하겠다. 이준하는 김병욱 감독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인 ‘경제력 없이 얹혀사는 남자’다. 15년간 증권사 펀드 매니저로 일했으나, 키보드에 묻은 케첩을 닦아 먹다가 실수로 0을 두 번 더 눌러 1만 주 살 주식을 100만 주 사들이는 바람에 해고당해 지금은 3년째 백수 신세다. 아버지 순재(이순재)와 아내 해미(박해미)가 함께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으니 생계에 큰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집에서 노는 게 마냥 편하지는 않다. 아버지와 아내에게 의존해 살고 있는 제 신세도, 아버지가 맡긴 자산을 매번 작전주에 낚여 까먹고 욕을 먹는 상황도 사실은 내심 답답하다.
어느 날 준하는 경력직으로 한 증권회사에 취직한다. 아내 해미는 물론, 엄마 문희(나문희)도 아들 민호(김혜성)와 윤호(정일우)도 준하의 취직을 제 일처럼 기뻐한다. 이 녀석 또 헛물켜는 거 아니냐며 불퉁한 소리를 하던 무뚝뚝한 아버지 순재조차, 첫 출근길에 나선 준하의 주머니에 돈봉투를 찔러주며 말한다. 밖에 나가서 일하다 보면 밥 살 일 생길 거 아니냐고. 이 돈 쓰라고. 그렇게 모두의 응원을 안고 간 첫 출근 날, 준하는 이번엔 정말 잘하겠노라 다짐한다. 처음으로 써서 올린 보고서로 상사의 칭찬도 듣고 뿌듯한 마음으로 퇴근한 저녁, 준하는 식구들이 준비해 준 취업 축하 저녁상에 앉는다.
이제 케이크의 촛불만 끄고 수저만 뜨면 되는데, 상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회사가 오늘 인수합병이 결정이 났다고. 정말 미안한데, 기존에 있던 직원들의 고용승계도 위험한 상황이라 준하씨까지 데리고 갈 수 없게 됐다고.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아버지 순재의 질문에, 전화를 끊은 준하는 서럽게 울며 말한다. 아버지, 저 또 잘렸어요. 회사가 합병한다고. 이번엔 진짜 제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요. 숙연해진 식구들은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거든다. 괜찮다고. 차라리 잘 됐다고. 다 늦게 무슨 회사냐고. 집에 있는 게 백배 낫다고. 아무튼 오늘 고생 많이 했고, 어서 촛불 끄고 밥부터 먹자고.
하지만 준하가 초를 끄고 어둠 속에서 마침내 오열하기 시작하자, 식구들은 더는 준하를 위로하지 못한다. 그만 울라고 다그치는 사람도 없고, 섣불리 쉬운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람도 없다. 준하가 실컷 울 수 있도록 불도 켜지 않은 채, 준하네 식구들은 어둠 속에서 가만히 준하의 슬픔을 함께 견뎌준다. 차마 그가 우는 모습을 볼 엄두가 안 나 등을 돌리고 서 있을지라도, 아무도 감히 준하를 다독여주지 못할지라도, 그 울음을 오래오래 함께 견뎌준 것이다.
누군가를 위로해야 하는데 어떤 말로 위로를 하면 좋을지 가늠하기 어려울 때면, 나는 그 저녁의 식탁을 떠올린다. 더는 어떤 말을 덧붙이지 않고 조용히 준하가 우는 순간의 무시무시한 적막을 함께 견뎌준 준하네 식구들을 떠올린다. 세상엔 슬퍼하는 이가 슬퍼하는 동안 그 곁을 함께 해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인 순간도 있는 법이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